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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1.
        2013.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V선거 개표방송은 각 방송사의 경쟁 속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 해 왔다. 그 중에서도 제 18대 대선 개표방송은 이전의 개표방송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총선은 많은 후보들의 경합이 이루어지는 반면 대선은 두 후보의 경합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2030대 젊은 유권자와 여성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율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개표방송에서 변화의 필요성과 캐릭터 콘텐츠를 활용한 인서트그래픽을 연구하였다. 2030대 젊은 층은 방송3사 비슷한 비율로 다양한 캐릭터를 선호하는 반면 40대 이상은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컨셉(스토리)의 캐릭터를 선호하였다. 개표방송 시청률 증가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이지고 있으며 인서트그래픽이 정보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재미있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일관성 있는 컨셉이 문자보다 캐릭터의 가독성과 가시성을 높였다. 향후 대선 개표방송에서 시청자와 공감할 수 있는 컨셉의 캐릭터를 사용한다면 정보를 전달하는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1902.
        2013.08 KCI 등재 SCOPUS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We investigated the quality characteristics of brewing brown rice vinegar through a traditional static fermentation process. Accordingly, we decided to compare the physicochemical characteristics of brewing vinegar at different temperatures and filtration methods. In four to five weeks’ time, the acetic acid fermentation exhibited the highest titratable acidity and then it eventually decreased. The titratable acidity was affected by the filtration method. It was revealed that the titratable acidity was higher in the forced filtration than the traditional filtration method. Various organic acids were detected in order to initialize the fermentation stage and as the fermentation progressed, only the acetic acid could be detected. The total free amino acid content was higher at a temperature of 30℃ than at 20℃. Moreover, the free amino acid content was dependent on the acetate content during the acetic fermentation process. The main bioactive substance of the γ-aminobutyric acid content was more than twice at a fermentation temperature of 30℃ compared to the fermentation temperature of 20℃. Furthermore, the total amino acid and essential amino acid content at a temperature of 30℃ was excellent. The quality of the brown rice vinegar via forced filtration method at a temperature of 30℃ was the most excellent. Based on these results, the fermentation temperature and the use of nuruks (fermenting agent) affected the quality of the brown rice vinegar, and an appropriate method to consider its purpose is required.
        1903.
        2013.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최근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자연재해에 대한 지속적인 대비와 예측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인간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하여 오랜기간 꾸준하게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재해의 피해 또한 인간의 노력 이상으로 커지고 있으며 자연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비사업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효과분석이 미비한 상태이다. 본 연구에서는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의 효과를 분석하기 위하여 분석대상지구를 선정하고 지역주민 현장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설문도구의 타당성과 신뢰도 분석을 실시하고 빈도 분석 및 기술통계 분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구조방정식모형(AMOS)을 통하여 정책의 타당성을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자연재해정비사업의 정책은 합리성과 적합성이 담보되어 있고, 지역주민의 정신적·물리적 환경을 개선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비사업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식을 형성하였으며, 정부의 정치적 지지도까지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자연재해정비사업의 진행은 합리성과 적합성이 담보된 사업이고 이는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고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04.
        2013.07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에서는 Fairclough의 비판적 담론분석 모델을 적용하여 서울시 무상급식 정책결정과정에 나타난 정책담론들이 수행하는 역할 및 특성을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담론 투쟁과정에서 부각된 담론들에 대한 신문기사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진보와 보수의 논리를 기술하고, 양자 간 대립하며 전개하고 있는 담론을 해석하였다. 또한, 사회적 실천관계에서는 정책이 형성되는 상황적 맥락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제도적 맥락을 살펴보았다. 연구결과에 따른 이 연구의 결론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시 무상급식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책담론들은 진보와 보수 세력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합하며 논쟁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무상급식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정책행위자들, 즉 진보와 보수는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전략을 구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책담론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셋째, 서울시 무상급식에 관한 정책결정은 정책행위자들의 이해와 타협에 의한 결정이라기보다는 담론투쟁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1905.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지금까지 쿠릴열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각 정권별 정책과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통시적으로 살펴보았다. 최근까지 러시아의 입장은 큰 변함이 없다. 즉, 이전 정권에 의해 약속된 것은 크게 부정하지 않는다. 1956년 소일공동선언에 따라, 평화조약 체결 이후 하 보마이와 시코탄의 반환은 인정하되, 1990년대 중반 협상과정에서 일본의 압력에 의해 등장한 쿠나시르와 이투루프는 배제시켰다.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가 결코 정당한 권리로서 자신에게 속한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했다는 사실은 협상의 여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토적 분쟁과 갈등은 다른, 예를 들면 통상갈등이나 분쟁과 달리 특수성을 띤다. 그것은 분쟁당사국의 민족주의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고, 정치권력을 유지하려는 국내지도자에게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며 따라서 국내정치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자원, 특히 석유와 가스 등과 같은 전략적 자원과 관련된 국가적 핵심이익이 개입되고, 어업자원을 포함하여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과 연계되고, 심지어 제3국의 외교정책, 예를 들면 미국의 세계전략 등과도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문제든 협상의 여지는 있다. 러시아와 일본 모두에게 협상은 다양한 국가적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필요조건을 형성한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논의와 러시아 외무성 자료의 검토를 통해 드러난 사실들은 다 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즉, 일본과 분쟁 중인 쿠릴열도 문제와 관련된 러시아의 공식입 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현재 쿠릴열도를 둘러싼 러-일 국경은 확실한 국제적 법적 기반을 가진 역사적 사실이다. 남부 쿠릴열도는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러시아에 귀속되었고, 그 법적 기반은 연합국간 협정(1946년 2월 11일의 얄타협정, 1945년 7월 26일의 포츠담선언)이다. 둘째,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언급된 내용의 수정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 후 아시아에서 전개된 현상유지를 훼손하고, 아시아의 영토적 안정성을 해칠 것이다. (중국 의 국경이기도 한 외몽고의 지위, 한국의 독립, 많은 섬들과 기타 지역의 지위) 셋째, 쿠릴열도의 성격과 관련하여, 쿠릴열도는 분리될 수 없는 지리적 개념으로 고려되 어야 한다. 왜냐하면 쿠릴열도는 그런 분류의 모든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1956년 10월 19일의 소-일 공동선언에 따라 평화조약으로 전쟁상태가 종결되면, 러시아는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일본에 반환할 것이다.
        1906.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최근 동아시아 지역의 해양 도서 분쟁은 불신과 경쟁으로 특징 지워진 이 지역을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잠재적으로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해양(EEZ와 대륙붕) 자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외형상으로는 해양 영토의 보전과 국가안보의 확보라는 형태를 띤 쟁점들이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핵심적 과제로 떠올랐다. 그 결과 해양 쟁점이 아시아 지역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해양 레짐은 이런 갈등을 완화하고 협력에 대한 믿음을 창출한다. 아시아 지역의 확고한 다자간 해양 레짐의 부재는 수용가능하고 관련 당사자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레짐 을 발전시키기보다 현상유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과 위기와 손실과 이익을 고려하는 민족국가들의 정치적 계산을 반영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단지 아직까지 어업자원의 관리와 해양 환경보호에 초점을 맞춘 다자간 해양 레짐의 심각한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종합하면, 이런 상황은 특별하고(ad hoc) 특정쟁점에 전문적인(issue-specific) 다자간 해양 레짐 건설의 발전적 과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동북아 지역으로 이동시키려면, 관련 당사국들은 동북아 다자간 해양 레짐 의 목적과 원칙을 논의하기로 합의해야 한다. 해양관할권의 확장과 관련하여, 몇몇 어업에 대한 양자간 협정이 이미 재협상되고 있다. 그것들은 양자간 협정들을 조정하고 그런 레짐 에 지역의 모든 국가들을 포함시킴으로서 종합적인 지역 협정의 무대와 기초를 형성한다. 비록 진보가 더디긴하지만, 다자간 대화가 이런 과정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동해의 환경보 호레짐 건설은 이런 가속화 과정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1907.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전후 일본의 ‘영토문제’라 하면 오키나와(沖縄)와 북방영토(北方領土)가 주요 대상이었 으며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후에는 북방영토가 최대 현안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 센카쿠(尖閣)와 독도에 대한 ‘영토 내셔널리즘’이 높아져 왔다. 그런 가운데 작년12 월 일본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였고 민주당이 참패하였다. 야당에서도 보수 우익 정당들 이 약진한 반면 혁신정당들은 존폐의 위기에 빠졌다. 1955년 체제하 일본정치에서의 보수 -혁신(진보) 대립은 헌법9조, 미일안보, 자위대가 쟁점이었는데 1990년대 후반 소위 ‘총보 수화’를 거쳐 바야흐로 중의원 의원들 중 거의 80%가 헌법‘개정’과 ‘집단적 자위권’에 찬성 하는 등 일본정치의 ‘우경화’가 두드러진다. 일본정치의 보수화·우경화가 한일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자연 스럽다. 하지만 한일관계사에서는 일본의 보수정치가 항상 부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 었다. 그 사실은 1965년 한일협정이래 소위 ‘65년 체제’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즉, 일본 ‘일당 우위제’ 보수정권과 한국 ‘개발독재’ 정권 사이에서 냉전과 개발의 이익을 일치 시키며 과거청산과 독도문제를 내버려 둠으로서 협조를 이뤄 낸 것이 바로 ‘65년 체제’의 중요한 일면이었다. 따라서 일본정치의 보수화 우경화 가운데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한일관 계에 작용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일본정치에서의 ‘문 화적 폭력’으로서의 식민지주의와 ‘동맹의 딜레마’ 시각에서 일본의 역사인식과 영토정책을 살펴본다.
        1908.
        2013.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기능성 게임(serious games)은 게임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담론에 대해 긍정적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본 연구는 국내 기능성 게임 연구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과 건강 게임에 비해 다소 논의가 부족한 사회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게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이론적 접근을 토대로 게임이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메시지 전달, 인식이나 행동 전환에 있어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관련 게임 개발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제시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관련된 개념들을 정리하고 사회변화 게임 사례에 적용된 요인들을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게임의 역할취득과 시뮬레이션 방식이 타인이나 타인이 처한 상황 또는 특정 사회에 대한 이해 및 소통에 있어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사회적 또는 정치적 문제와 관련한 인식의 변화나 이타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심리적 기제인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도 탁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09.
        2013.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오늘날 유학은 그 존립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공자가 요순시대를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주나라의 주공이 만든 통치체계를 모델로 하여 정립한 것이 유학이다. 유학자는 경전과 육예에 밝으면서 여러 형태의 의례를 집행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공자로부터 유학의 목적은 ‘극기복례’로 규정되었고, 이후에는 이 개념이 ‘수기치인’과 ‘내성외왕’으로 확대되었다. 내면적 인격을 완성하고, 이를 통하여 이상적 정치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은 왕조시대의 통치논리를 정당화 하는 것이지,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에는 맞지 않는다. 본고는 유학의 현대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모색이다. 전통적으로 유학은 중용을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공자 이전의 유학은 ‘황극’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으며, 공자로부터 ‘중용’이 강조되면서 커다란 변신을 가져왔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북송시대의 승려인 계숭이 파악한 유학의 본질에 대한 관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왕조시대의 인물이었으므로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오늘날 유학은 새로운 변신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 근본 덕목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보면서 이를 ‘大公’으로 제시한다. 정치의 형태에 따라 고대 요순시대에는 천자가 중심이 되어 ‘황극’에 의지해 ‘덕화’를 시행하였으며, 공자 이후로는 사대부가 중심이 되어 ‘중용’에 의지해 ‘교화’를 시행하였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오늘날은 국민 모두가 중심이 되어 ‘대공’에 의한 ‘同化’가 시행되어야 하며, 그 세부절목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학이 꿈꾸는 이상사회는 ‘大中至正’한 사회이다.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는 민주주의의 공화국 체제에서 가장 용이하게 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유학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예의의 강조이다. 각종 제례에서의 예의는 이미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가정과 사회에서의 공공예절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의 유학이 스스로의 존속을 위한 정체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현대사회에 필요한 예의 절목을 마련하여 모두가 함께 지키도록 홍보하는 일이다.
        1910.
        2013.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조선 중기 德溪 吳健(1521-1574)의 학문에서 그의 성리학적 경세론을 알아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덕계의 학문적 배경과 그가 활동하던 조선시대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덕계가 강조한 국가의 비전과 대책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연구결과 덕계의 經世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덕계의 경세관은 정통 성리학의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정치현장에서 정통유학의 의리를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는 유학의 정치 이념을 충실하게 실천한 實踐儒學者였다. 둘째, 言論은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言論은 正義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언론은 역사의 기록이자 志操 곧 正義의 기록이다. 덕계는 정치에 있어서의 疏通은 바로 이 正義를 중심으로 한 자유로운 言路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덕계의 君主論은 聖人君主의 실현이 목표였다. 덕계는 군주의 덕목으로 謙遜・慕善・樂善・敬・誠 등을 강조하였다. 재능 보다는 德을, 威嚴보다는 겸손함을, 말 보다는 실천을 중시하였다. 왜냐하면 誠實하지 않은 지도자는 자신의 말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덕계는 성리학의 理想을 실현하기 위하여 꿋꿋하게 노력한 선각자였다.
        1911.
        2013.01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18세기부터 미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유년모티브가 20세기 후반 피아 노 작품 헬무트 락헨만의 ≪어린이 유희≫에서는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되는지 연구한다. 20 세기 후반 어린이는 기존 세기와 달리 사회적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되며, 특히 70년대 이후 부터 청소년문학 및 청소년 음악의 붐, 68혁명으로 인한 내면성의 미학, 신주관주의 등으로 유년모티브가 확산된다. 락헨만의 사회비판적 의식은 기존의 음악적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 고 새로운 청취습관과 음향을 중요시 여기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음악관은 ≪어린이 유희≫ 속의 유년모티브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유년세계의 모습들이 다양한 음향과 잔향을 통 해 묘사되고 있으며, 동시에 락헨만은 그 유년의 모습들을 피아노가 생산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로 표현하고 있다.
        1912.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952년 2월 12일자 한국정부의 일본정부에 대한 구술서는 “한국정부는 SCAP이 1946 년 1월 29일자 “SCAPIN 제677호”에 의해 독도를 일본의 영유권으로부터 명백히 배제했 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바이다”라고 진술했다. 1952년 4월 25일자 일본정부의 한국정부 에 대한 답변 구술서에서 “위에서 언급된 SCAPIN 제1항에 의하여 일본정부는 리앙끄르도 (다케시마)에 대한 정치적 또는 행정적 권한의 행사 또는 행사의 의도를 중지할 것을 지시 받았을 뿐이다. SCAP이 일본영토로부터 이 소도의 배제를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 했다. 교전점령법의 원칙은 점령은 주권을 배제하거나 이전하지 아니한다. 점령자는 점령 영토 에 대해 군사적 권한을 행사할 권한이 부여된다. 그러나 교전자는 평화조약에 의해 그에게 할양되지 아니하는 한 그 때까지 주권을 취득하지 아니한다. 이 원칙은 학설, 국제판례 그리 고 관행에 의해 일반적으로 승인되어 있다. SCAP은 “SCAPIN 제677호”에 의해 일본정부에게 리앙끄르도에 대해 정치적 행정적 권한의 행사를 중지시켰을 뿐이다. 따라서 일본영토로부터 리앙끄르도의 imperium 만이 분리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정부의 견해는 점령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SCAPIN 제677 호”의 규정에 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일평화조약” 제19조(d)항은 “점령기간 동안 점령당국이 행한 작위와 부작위 의 효과를 승인하고, 지령의 결과를 승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 조항의 “지령”에 “SCAPIN 제677호”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따라서 독도는 “SCAPIN 제677호”에 규정된 바와 같이 “대일평화조약” 제19조(d)항의 규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그리고 이 법적 효과는 동 조약 제2조(a)항 전단의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의 규정에 따라 한국 정부의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까지 소급되게 된다. 그러므로 “SCAPIN 제677호”에 의해 분리된 독도의 imperium 은 “대일평화조약”에 의해 분리된 dominium 과 일치되게 된다. 독도의 dominium 은 “SCAPIN 제677호”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일평화조약” 제19 조(d)항의 규정에 따라 SCAPIN에 의해 분리된 imperium 이 동 조약 제2조(a)항 전단의 규정에 따라 소급적인 dominium 으로 효력을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독도 dominium 의 분리의 직접적인 근거는 “대일평화조약”이고 간접적인 근거는 “SCAPIN 제 677호”라 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독도의 분리근거를 “SCAPIN 제677호”라는 주장에서 “대일평화조약 제19 조(d)항”이라는 주장으로 정책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1913.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2011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주요 언론에서 다룬 독도에 관한 기사들을 바탕으로 언론분야에 있어서 독도문제의 보도현황을 분석하고 앞으로 개선하고 발전시 켜야 할 과제들을 이끌어 내고자 시도하였으며,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주요 언론기관들의 독도관련 기사들을 보도 분야별, 보도유형별, 프레임 유형별로 현황을 파악한 후, 언론이 정책행위자인 정부와 정책평가자인 독자들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독도관련주제에 관한 보도들은 처음의 제한적인 상황에서, 국민정서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선회되었다가, 오히려 오늘날에는 국민정서를 부추기어 정치적 인기를 만회하려는 선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은 정권이 영토문제를 실정을 가리는데 활용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국민이 독도문제로 인하여 군중심리에 묻여버리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과감 히 돌아설 수 있도록 종용해야 하며, 문제의 본질을 짚어주고, 때마다 발생하는 사건 · 사고 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장기적 안목과 포용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 언론은 각 정권이 독도문제를 정치적 이용보다 국가 장래에 도움이 되도록 정책으로 반영하고, 국민들이 독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각자의 일상에 매진하도록 배려하는데 시금석이 되어 주어야 하겠다.
        1914.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一蠹 鄭汝昌(1450-1504)의 삶과 학문적 특징이 무엇이며 그의 생활 및 강학 공간인 지리산권, 그 가운데서도 하동의 악양정과 함양의 남계서원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것을 따진 것이다. 정여창에게 있어 하동과 함양은 대표적인 삶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하동은 악양정을, 함양은 남계서원을 중심으로 살폈다. 악양정은 그가 은거하며 심성수양과 강학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곳이라는 측면에서, 남계서원은 정여창 사후 이곳을 중심으로 추모사업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정여창은 김종직 문하에서 『소학』을 중심으로 한 실천유학을 배워 김굉필과 함께 도학의 선구가 되었다. 하동의 악양정은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는데 李澄이 그린 「花開縣舊莊圖」나 한말 정재규의 「岳陽亭會遊記」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함양의 남계서원은 북인, 남인, 노론의 장악이라는 정치적 변화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그 중심에는 정여창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수많은 시문이 창작되기도 했다.
        1915.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영토 분쟁이 심화되면서 동북아의 군비경쟁이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간에 점점 분쟁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독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 것이다. 우선 본고에서는 먼저 한일 양국의 영유권 문제의 쟁점에 대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 지 살펴본다. 즉, 역사적 근거, 국제법적 효력 및 2차 대전부터의 정치적 결정의 효력에 관한 해석에 대한 양국의 주장이 상대국에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있는 지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1917.
        2012.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정치의 통속적인 정의를 재검토하고 재조명하여 남명의 정치와의 관련성을 부각시키면서 그러한 맥락에서의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재평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정치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생각해보면 호모 폴리티쿠스인 남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릴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예를 들어,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남명의 출처가 정치적 행위의 일부였음을 인식하는 일이 가장 기본적인 단초가 될 것이다. 호모폴리티쿠스 남명의 총체성을 파악하는 일은 또한 텍스트적인 논쟁과 콘텍스트 구성과 관련된 복잡성을 넘어서서 새롭고 건설적인 방법론적 혁신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방법론을 제안하여 새로운 연구 방향 정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 I 장에서는 정치 현상을 보다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으로 들여다보고 그에 걸맞은 정치의 정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그 결과로써 정치가 포괄하는 범주가 보다 더 광범위해지고 그 안에서의 질서를 새로운 분류로 구분지어 보고자 한다. 이 시도는 남명의 글과 행위의 많은 부분이 정치의 범주에 반드시 귀속되어 있고 따라서 박병련이 주장한 대로 정치학적 프레임은 남명을 연구하는데 필연적이라는 것을 재삼 강조하기 위함이다. 제 II 장에서는 시도된 새 정의에 따라 남명과 관련된 정치 분야에서의 연구 성과를 회고 하고 그 동향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제 III 장에서는 연구 성과에 대한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경향에 대해 두 가지 도움이 되는 방법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남명을 계승한 후대 남명학파들이 정치 일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남명의 족적, 사상이나 가르침, 그리고 정치 행위 등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1918.
        2012.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하기방은 주로 1930년과 1940년대에 활동하였던 중국 시인이다. 그에게는 『漢園集』(공동창작)과 『預言』 및 『夜歌』 세 권의 시집이 있다. 이 중 『夜歌』는 작가의 이전 시가와는 경향이 다른 변화된 사상과 시가의 성숙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하기방의 시가는 일반적으로 발동기(1928-1931), 환상기(1931-1932), 고민기(1933-1935), 전변기(1936-1937), 성숙기(1938년 가을 이후)라는 다섯 단계로 요약된다. 본문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시집 『夜歌』는 바로 성숙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에는 26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 한 수 외의 25수는 모두 延安에서 지은 것들이다. 1940년을 전후한 중국의 延安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 혁명의 근거지로, 장래 중국의 희망을 대표하는 곳이었다. 하기방은 이 때 이 혁명의 戰場에서 이전의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사상으로 시를 쓰며 삶을 추구하였던 인물이다. 작가가 이전에 쓴 『預言』에서는 주로 개인·애정·몽상 등을 노래한 것들이 많았다. 이는 작가의 복잡한 심사와 주위 환경 등으로 인한 결과였다. 그러나 점차 사회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사상의 변화로, 문예관은 바뀌게 되었고, 이에 과거의 삶과 사상과는 결별을 하고 혁명으로 접근해 갔다. 그 접근의 결과물이 『夜歌』의 창작이다. 작가는 시에서 새로운 생활과 광명을 찬미하고 침략자를 규탄하고 앞으로의 희망을 갈망하였다. 물론 이전의 자아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여 지식인의 나약한 모습과 방황의 흔적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시가를 가지고 민족 해방전쟁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실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문예가 현실사회에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다고 인식했던 작가가 “사람이라면 맹목적으로 살아서도 안 되고, 그렇게 살 수도 없으며, 이기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과 함께,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 오늘의 『夜歌』다.
        1919.
        2012.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남명의 생애와 발자취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어찌 보면 남명 당대에도 이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남명이 돌아간 직후 이에 대한 정리가 본격화되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남명의 생애 가운데 예민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제자 정인홍의 정치적 부침에 따른 후유증으로 생애에 관한 자료도 여러 차례 여러 사람에 의해 중복하여 지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남명에 대한 생애자료는 그 누구보다도 많이 남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 남명의 생애를 정리하여 소개하는 일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근대의 인명사서 등에 남명에 대한 내용은 비슷한 시기의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략한 감이 있다. 1990년대 초에 남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남명의 생애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본격적인 연구와 번역, 교정 등은 이루어지 않았다. 다만 최근 들어 다행스럽게 남명에 관한 생애자료가 다시 전반적으로 검토되고 정리되고 있다. 남명의 생애에 관한 정리와 소개, 교정과 연구는 논문, 저서, 소설, 사전, 교과서 및 개설서 등 여러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소설로 지어지고 교과서 및 개설서에 소개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으나, 논문, 저서 등의 형태로 점점 깊이 있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인터넷 온라인상에 사전적 설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남명의 생애에 대한 철저한 실증을 바탕으로 생애가 정확하게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남명의 발자취에 관한 정리와 소개는 주로 책으로 몇 권 나와 있는데, 개설적으로 간략히 설명한 것에서부터 특정한 분야 예컨대 한시 등과 관련하여 발자취를 탐방하는 형식으로 된 것도 있다. 그리고 그의 생애의 발자취와 학문적 궤적을 관련지어 연구한 것도 있다. 이들 발자취에 대한 정리와 탐구는 이전의 유적지에 대해 소략하게 소개한 책자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였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발굴하거나 정리가 되지 않은 발자취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1920.
        2012.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의 목적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강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다문화주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국의 민족주의와 다문화주의에 관한 기존 이론과 연구들을 검토한 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다문화주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파악하였다. 한국의 뿌리 깊은 종족-혈통적 민족주의는 한국 근대사에서 자유주의의 발달을 저해하였고, 보편적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시민적 국민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강한 혈연중심 민족주의 정서는 이주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차별로 이어졌고 동화주의에 가까운 한국식 다문화주의를 형성하게 하였다. 산업화, 세계화와 같은 주요 사회변혁과정에서 한국인들이 과거 채택하였던 민족주의 접근방법은 다문화주의 형성과정에서도 상당 부분 재현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의 단일민족주의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주요 이념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 또한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유입인구의 증가와 민주주의 이념의 확대는 현재와 같은 제한된 한국형 다문화주의를 다원적 다문화주의로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