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선교학은 선교학의 영역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개인의 이야기를 미시적인 관점으로 조명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시각장애인으 로 또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한 인물, 김선태의 삶과 사역을 중심으 로 이야기 선교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김선태는 어린 시절 전쟁으로 인하여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후, 이어서 시각장애인이 되는 극심한 불행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신앙심으로 현실의 난관을 이겨낸 인물이 다. 그는 목회자가 되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사역에 평생 헌신하였고, 이러한 김선태의 삶은 오늘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본받을 만한 선교적 삶의 모범이 된다. 이 글에서는 김선태의 삶과 사역을 이야기 선교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는데, 첫째, 그의 사역은 “공존”을 희망하 는 선교, 둘째, 총체적 치유를 지향하는 환대의 선교, 셋째, 약자를 위한 약자의 선교-주변부로부터의 선교로 요약된다.
오늘날 도시선교가 어느 사역보다도 필요한 것은 도시로 몰려드는 이주민들의 행렬이 크게 나타나 도시의 세속화와 빈부의 격차 문제로 인해 선교적인 해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시선교사역이 지금도 한국교회 선교전략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도시로 몰려드는 청년선 교를 위한 것이다. 팀 켈러(Tim J. Keller)는 오늘날의 도시선교가 지상위임명령의 성취의 중요한 사역임을 강조하고 뉴욕 맨해튼에서 리디머장로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하였다. 팀 켈러는 포스트모던 세대인 도시의 젊은이를 전도하기 위한 교회를 개척하고 현대 사회에 필요한 선교적 교회의 목회 방법으로 6가지의 모습을 제시하였다. 첫째, 선교 적 교회는 사회 속 우상들을 대면해야 한다. 둘째, 선교적 교회는 능숙하게 상황화하며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셋째, 선교적 교회는 그리스도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선교의 삶을 살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넷째, 선교적 교회는 공익을 위해 대응문화(Counter-culture) 여야 한다. 다섯째, 선교적 교회는 스스로 상황화 되어야 하고 비신자나 구도자 등이 교회 생활과 사역에 대부분 연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선교적 교회는 반드시 일치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청소년 시기는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잠재력과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청소년 세대를 보다 능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방식으로 신앙을 갖게 하고, 음악을 통해 복음을 표현하게 하며, 다른 친구들에게나 이어지는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제자로 세우는 것은 중요한 청소년 선교사역이다. 그래 서 본 연구의 목적은 청소년 세대를 다음 세대로 보는 것을 넘어서 ‘이음세대’로 세울 뿐 아니라, 수동적인 세대가 아닌 선교적 제자도를 갖춘 세대로 세울 수 있음을 논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선교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첫째, 청소년 세대를 이음세대 로 세움으로써 그들이 앞뒤 세대를 이어줄 수 있고, 교회로 세워지며,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세대가 되게 하며 선교적 제자로 세울 수 있다. 둘째, 음악이라는 구술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청소년세대와 복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선교적 도구이다. 특히 여러 음악 장르 중 힙합을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가수 비와이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힙합이 청소년 세대에게 매력적일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선교적 도구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1930년대 선교사로 부름받아 한국선교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나 역사 속에 묻혀 기록적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변마지 (Margaret F. Pritchard) 선교사의 생애와 선교 사역에 대해 학술적으 로 알리고자 함이다. 변마지 선교사는 돌봄과 섬김에 기초한 기독간호 사를 양성함으로써 한국 선교와 간호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돌봄(caring)을 바탕으로 한 선교, 교육(teaching)을 중심으로 한 선교, 복음 전파에 매진하면서도 의료협력(Medical-Cooperation)을 함께 실천하는 통전적 선교를 했다. 그녀의 돌봄 선교는 간호사 양성과 위생지침을 바탕으로 예방사역에 큰 공헌을 이루었다. 교육선교를 통해 여성이 교육주체가 되는 여성 전문직관의 근간을 이루었다. 협력 의 선교에 있어 복음 전파를 우선하면서도 의료협력사역을 실천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질병 예방과 치료, 예수 사랑을 실현하는 간호교육으로 미국남장로교 한국선교역사의 산증인 역할을 하였으며, 복음전파와 의료봉사를 통한 통전적 선교를 몸소 보인 한국선교의 귀감이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시대가 지속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사역에 지장이 없도록 선교사 멤버케어에 더욱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이 도래하 여 국경이 폐쇄되자 한국교회와 파송 단체에서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선교사와 그 가족의 건강에 대해 어떤 특별한 대책이 거의 없었다. 실제적인 도움도 주지 못하고 건강하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선교사 멤버케어의 의미가 무색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선교사 멤버케어의 당위성을 전제로 그 정의와 필요성을 먼저 짚어본 후 그 한계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하 기 위한 대안으로 선교사 자신이 총체적 치유의 개념을 가지고 어떤 곳이든지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실천할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에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 (猖獗)한다고 할지라도 자기(自己) 케어 즉 자신의 건강을 자기 스스로 돌보고 지키며 선교사역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또다시 선교사가 건강문제로 선교지를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본고는 창조세계의 보존과 회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몽골 ‘은총의 숲’ 사업을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검토하고 그 선교학적 인 함의를 모색하고자 한다. 1952년 빌링겐IMC 이후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보다는 교회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발전되어 왔고, 한국의 경우 물질주의와 타종교 이슈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에 집중하면서 창조론에 대한 논의가 미약했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2009년 몽골에서 시작된 ‘은총의 숲’ 사역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몽골의 사막화를 방지하고, 몽골인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며, 무엇보다도 한국기독교의 새로운 선교방안을 제시한다. 은총의 숲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재적인 ‘사귐’ 을 현지인과 피조물과 함께 생태선교로 실천하고 있다.
본 연구는 주요 한국교회 내 탈북민 부서의 현황을 조사하고 선교적 교회론과 접촉 가설을 바탕으로 향후 탈북민 부서 사역의 과제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하여 사례연구로 총 일곱 개 교회의 탈북민 부서를 검토하였다. 본 연구에서 살펴본 탈북민 부서 사역의 쟁점으로는 탈북 민의 호칭과 탈북민의 정체성, 탈북민 부서의 예배 방식, 탈북민에 대한 재정 지원의 문제 등이 있다. 이를 토대로 본 연구는 한국교회 내 탈북민 부서 사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먼저 교회의 탈북민 부서 사역은 교회 내에서 북한과 통일에 관심 있는 몇몇 사람들의 특수한 봉사 영역으로만 제한되어서는 안 되며, 전체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되어야 함을 밝혔다. 또한 교회 내의 탈북민 부서 사역이 탈북민에 대한 이해와 접촉 경험을 늘리는 통로가 되어야 함을 제안하였다. 이외에도 탈북민 성도가 복음 으로 신앙을 가지게 될 때 궁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교회 내의 탈북민 부서가 탈북민 리더십을 세워가는 공간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본 연구는 중세에 잘못된 교권에 저항하면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많은 여성들이 선교를 위해서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선교적 삶을 살고 사역을 하였는지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첫 번째로 중세시대에 여성들이 전승된 여성관 으로 인해 매우 부정적인 대우를 받으며 가부장적 권위 아래서 가사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게 됨으로써 그 존재감이 매우 미약했음을 연구하였 다. 두 번째로는 12세기 이전세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여성들에 대한 교권의 견해를 살펴보고, 라테란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변화된 여성들 의 사역의 부흥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세 번째로는 중세시대 여성사 역의 주요 기구인 베긴공동체에 대해 연구하였다. 베긴공동체 신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신비주의와 신앙적 소명을 통해 발전해가는 여성사 역을 연구하였다. 네 번째로 베긴공동체 여성들이 한 선교사역을 통해 그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통전적 관점에서 기술하였으며, 마지막으로 현대 여성들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간략하게 모색하였다.
이 논문의 목적은 선교의 도구로서 이혈이 선교현장에 미친 영향을 한․중이혈학회의 해외선교사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혈을 활용한 선교 전략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혈은 의료선교의 극복해야 할 문제와 선교사의 건강문제에 도움을 주었고, 복음의 접촉점으로서 관계 형성과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교량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이혈은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제약을 받게 된 의료선교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며, 의료선교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을 줄이고, 현지인과 선교사를 대상으로 이혈 교육과 상담을 실시하여 일차적 보건의료의 혜택을 받게 하며, 선교사가 건강문제로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역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웨슬리의 신학과 사역에 나타나는 목회적 특성을 네 가지로 분석하고, 다시 그것들을 ‘선교적 교회 성장’(missional church growth)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 웨슬리의 신학과 사역에는 시대적, 문화적 환경을 초월하는 원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실천과 사역이 지속 가능한 부흥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점을 전제하고 보면 그의 실천과 사역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특성은 크게 네 가지 곧 (1) 교회의 본질에 기초한 목회적 실천, (2) 교회의 유기적 조직과 내적 역동성, (3) 성령의 강한 임재와 현존의 체험, (4) 실용주의적 방법론으로 정리된다. 이것들은 목회적 또는 교회성장 학적 관점에서 선교적 교회 성장의 원리로 구성하면 네 가지 곧 (1) 선교적 교회론, (2)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조직, (3) 성령의 역사와 뜨거운 영성, (4) 효율적 방법론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원리들은 선교적 교회론과 교회성장학의 유익한 점들을 서로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휘튼대회는 1958년까지 함께한 IMC가 1961년 3차 WCC에 귀속 됨으로써 설자리를 잃어버린 선교단체와 선교회, 개 교회와 교단선교부 들이 1966년 휘튼에서 에큐메니컬 선교에 도전하고, 복음주의 선교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복음주의 일치를 꾀하고자 개최되었다.
1. 휘튼대회는 반에큐메니컬 운동과 선교를 선포하였다. 복음주의 진영은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 “이단, 적, 죄악, 교회가 아니다”라는 강경한 어투를 사용하면서 반대하였으며, “WCC와의 만남과 대화도 포기”한다고까지 하였다. 또한 에큐메니컬 진영으로부터 받은 압력과 고난, 고통을 제시하면서 복음주의의 통합과 일치를 강조하였다. 특히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가입한 사건을 개신교 정체 성의 혼란과 혼동을 야기한 주된 요인으로 보고, 심지어 로마가톨릭도 선교의 대상으로 보았다. 복음주의 선교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운동이 복음을 혼란, 변경, 대체 혹은 가감함으로써 복음의 정체성을 흔드는 혼합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향은 1917년 IFMA를 구성할 때 허드슨 테일러의 공식적인 선언에서 발견된 내용과 일치한다.
2. 휘튼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의 성경적 입장을 근거로 에큐메니컬 선교와 통합이 불가능하고, 복음주의 선교와 에큐메니컬 선교가 근원적 으로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 복음주의는 선교를 성서의 권위를 근거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함을 믿고, 말씀의 삶을 결단하는 제자화를 강조한다. 이때 제자화란 복음주 의 선교의 사회적 삶의 실천을 말한다. 에큐메니컬 선교는 이것을 두 영역으로 나누어 하나는 개인구원, 다른 하나는 사회구원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정의하였다. 에큐메니컬 선교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여러 과제 중 상황적으로 긴급한 사역에 집중하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선교 현장을 영적 황무지를 만들고 영혼구원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에 복음주의는 오직 복음으로 회개한 영혼을 구원 하는 활동에 집중하며, 영적 사역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사회봉사 사역이 성취된다고 보았다.
휘튼대회는 양 진영이 더 이상 연합할 필요가 없음을 입증하였다. 복음주의 선교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속적인 압력과, 선교지에서의 회유와 압박을 고통스럽게 호소하며, 오직 복음전도로 주님의 대위임령 을 수행하려고 한다. 복음의 열정이 있으면 사회참여와 봉사가 이어질 것이지만, 설령 사회봉사를 실천하지 않았다고 해도 복음제시가 이루어 졌다면 그것은 선교를 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에큐메니컬 선교 와의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1)
3. 양 진영을 통합하려는 노력보다 서로의 특징을 살려 독립적 선교운동이 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서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복음주의 선교는 에큐메니컬 선교의 핵심적 동심원이다. 따라서 가운데 영역에 복음주의 선교를 놓고 그 주변 원으로 에큐메니컬 선교를 배치해 야 한다.
정리하자면, 양 진영을 통합하려는 시도보다 성경의 권위와 복음 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사역의 다양성 을 전제로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독립적으로 할 것은 독립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 선교의 개종 문제나, 로마가톨릭과 정교회 문제는 에큐메니컬 선교에서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큐메니 컬 선교의 개종 문제나 복음주의 선교의 복음 제시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 양 진영이 서로 논쟁하는 것은 매우 소모적이다. 오히려 복음주 의 선교는 근본적으로 복음의 정체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를 떠받치는 토대로 보는 것이 좋다. 반면에 에큐메니컬 선교는 다양한 선교 영역을 접할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을 지원하며, 연합과 통합된 사역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양 진영의 사역들은 복음증거 사역을 전제로 한 영역으로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컬 선교는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개신교의 교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 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대학들은 그 본래적인 사명인 학원선교에 큰 어려 움을 겪고 있다. 난관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필자는 그 중에서도 선교의 대상인 학내 대학생들에게 드러나지 않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포스트모더니티라고 여긴다. 21세기 들어서 서구에서 시작 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초미세먼지와 같이 보이지 않게 신세대들의 의식 과 생활양식에 서서히 큰 변화를 주고 있다. 모던세대들에게 전하던 방식으로는 복음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먼저 포스트모던 흐름에 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그 다음으로 포스트모던 세대에 맞추어 복음을 전하여 상당한 효력을 보면서 점점 확산되고 있는 이머징 교회 운동을 살펴본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대략 세 부류로 나뉘는데, 기독교의 기존 틀을 바꾸려는 과격한 그룹은 복음 자체를 변질하거나 정통교리와 성경에 근거한 교회의 기본 틀(하드웨어)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있어서 본고에서 지양한다. 다만 보수적인 신앙과 전통교회 구조는 지키면서 예배형식과 설교기법 등을 쇄신하여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합 하게 선교하는 그룹을 택하여 분석 비판한 후 한국교회, 특히 침체된 기독교대학 학원선교에 활용 가능한지를 검토한다. 학원선교의 영역도 여러 가지로 많다. 그러므로 그 모든 영역을 다루기에는 지면이 허락되 지 않아서 채플예배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활용방안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나 뚜렷하 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예배-선교-문화’의 관계를 삼위일체적인 시각에서 그 관계성을 탐구하여 이머징 예배의 예배학 및 선교학적인 타당성을 문화와 관련하여 정리하였다. 끝으로 성령의 삼중적인 사역이 실행될 때에만 포스트모더니즘을 실제적으로 극복하여 채플예배가 활성화되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독교 문화가 꽃피우고 열매 맺을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본 논문은 간호전문인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한 서서평(徐舒平, Elisabeth J. Shepping, 1880-1934, R.N.)이 평신도 그리스도인으 로서 수행한 선교적 삶을 분석하여 서서평을 통해 구현된 선교적 그리스 도인이 한국교회의 선교적 교회 형성에 주는 함의를 논하려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근거를 간략히 서술하여 서서평 의 선교적 삶을 분석하는 틀로 삼는다. 선교적 교회는 신학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선교로 이해하고 전신자선교사화를 추구하고 성령이 주는 은사에 따라 각 신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선교 즉 통전적 선교를 수행하는 교회이다. 본 논문은 독일계 미국인인 서서평에 대한 생애사적 접근을 통해 간호사로서의 소명과 개신교 복음의 만남과 신앙성장을 논하고, 간호사 평신도로서 미국의 다문화 상황에서 뉴욕의 이주민들을 위한 사회봉사 적 선교를 분석한다. 또한 서서평이 남장로교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타문화권인 한국 광주에서 평신도로서 금정교회(현재 광주제일교회) 를 봉사하고 지역사회에서 간호선교, 교육선교, 복음전도, 사회구제 및 사회선교를 실시하였다. 또한 본 논문은 서서평 선교사가 평신도로 서 그리고 교회지도자로서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선교를 추진했는가를 분석한다. 선교적 그리스도인인 서서평이 선교적 교회 형성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1) 서서평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미국 내 다문화 상황에서 지역사회의 이민자들을 상대로 사회봉사적 선교를 수행했고, 기회가 주어져 타문화권인 조선까지 와서 평신도 전문인 선교를 실시하 였다. 2) 서서평은 타문화권인 조선의 광주금정교회에서 평신도로 등록하여 예배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성령이 주시는 다양 한 은사를 활용하여 다양한 봉사를 실시하였다. 3) 서서평은 전문인 선교사(교회의 지도자)로서 이일학교를 세워 평신도를 양성하고 훈련 하여 전략적으로 지역사회 선교를 수행하였다. 4) 이러한 지역사회 봉사적 선교는 지역사회가 요구한바 다양한 통전적 선교로 드러났다. 이는 개인에 대한 복음 전도와 교회개척, 교육과 치유, 구제와 헌신을 넘어 사회적 실천과 봉사로 나타났고 또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제도적 접근 선교로서 학교교육(이일학교), 부인조력회, 사회구제와 금주 운 동, 나병환자치료 운동, 공창제도 폐지 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끝으로 본 논문은 한국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한다. 한국교회는 서서평의 지역사회 선교 개념과 활동을 하나의 준거점으로 삼아 지역사회에서 진정성 있는 선교를 수행함으로서 잃어버린 신뢰를 사회로부터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essay is to explore the life and work of Dr. John Scudder (1793-1855), a missionary to Ceylon and to discuss his theological place in the history of missions. He studied at Princeton College and then at 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 New York. As a successful physician, he realized God’s calling to missionary work abroad while he was reading a religious tract in a patient’s home. Together with his wife, Harriet Scudder, and three other missionaries, Dr. Scudder sailed to Ceylon, today’s Sri Lanka, where he worked thirty six years for mission. His primary choice was India, but the East India Company opposed any missionary work in their ruling territories. That was why he had to the northern part of Ceylon where he was free to preach, teach, and treat. Dr. Scudder was the first medical missionary sent by American Church to foreign countries. He was also a forerunner of the medical mission and the most distinguished model for later medical missionaries. He launched a ministry of intensive evangelism by establishing hospitals and schools. He trained natives to become medical doctors. He also founded several churches after he became a ordained pastor in Ceylon. Dr. Scudder made religious small tracts about biblical stories which were written in Tamil to distribute to numerous people. He had to suffer and overcome countless obstacles and hardships against his missionary work. Ecological diseases, famines, economic burdens, family matters, natural disasters, persecutions from other religious groups, and other troubles could not hinder his ministry. He even suffered the losses of his two daughters in the missionary fields. Nevertheless, his mission was very successful and his wife, Harriet, was also wonderful partner to this missionary work. In 1836, he moved to Madras, India in order to supervise young missionaries. During his later days, he visited many missionary posts in South Asia and Africa in order to share his missionary experiences. His last visiting place was the Cape of Good Hope in South Africa, where he went into eternal peace in 1855. Later generations of numerous missionaries were impressed and influenced by his deeds and words. While visiting North America, more than one hundred thousand young people heard his lectures and sermons about mission and foreign cultures. Influenced by Scudder's mission, James Taylor made a resolution to become missionary to American outcasts and westerners. David Coit Scudder also became a missionary after having been impressed by Dr. John Scudder's Mission. Furthermore, his heritage includes forty two missionary descendants, whose years of ministry service in mission fields are close to almost one thousand. One of the most famous medical missionaries out of his descendants was Dr. Ida Scudder who also worked in India.
The Korean Church has been doing various mission works in many areas. However, it seems that there is neither profound study nor systematic materials for professional mission. This study is an attempt to a basic study for medical mission in East Timor. This project-style study is a practical one through not only literature analysis but also field research. East Timor is a newly born country. The government of East Timor has made education, health and agriculture as the most priority works in the National Development Plan. These three areas are surely urgent and important for the national development. At present, medical facilities are falling behind and national health indicator is very low in East Timor. Both fertility rate and infant mortality is high. Not only infant mortality but maternal mortality rate is also high. Moreover, the people of East Timor are not free from various diseases. However, a regular prevention of epidemics can reduce attack rate of disease. Medical mission should begin with grasping of the urgent need and importance in the field. It is not only provide medicine and cure a disease, but also takes a disease prevention program and health education. Prevention is better than cure. It plays a role to protect people from a disease beforehand. In order to prepare for medical mission, it is necessary to make stages, set goals, examine processes of operation goals, analyze results and evaluate them. Among the six stages, the first stage is to organize a short-term mission team. It is consisted of 5 to 10 people and the members stay at least two weeks to a month. The team visits a fixed place once or twice a year. This is because the members of the team may have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natives and get the information of their health. This may help grasp their health condition and provide appropriate health care. The second stage is to send one or two medical volunteers to a local clinic or hospital as long-term medical missionaries. The third stage is preparation period for founding a local clinic. In order to found a clinic, carefully examine the necessity of founding a medical institution and a suitable location where is no medical benefit. The fourth stage is a period of founding a local clinic. One nurse and one midwife serve the clinic. The fifth stage is a stable period of operating the clinic. In this period, the clinic provides medical service of good quality and preventive education. The sixth stage is a self-supporting stage of operating the clinic. It is time to change its members as the natives by stages, and transfer its operation to them. Medical mission is a future-oriented work in the respect of the promoting national health. It carries out on the level of Christian mission, so that may share God’s love with the people in East Timor. The society will be healthy through forming a healthy person in both body and mind, and living in harmony with God, neighbor and nature make.
Today is the era of welfare. The desire of social welfare has increased rapidly because of the increase of the average life-span and the rate of the aged people over 65 years old among total population. With this social trend, the necessity of welfare for missionaries for effective missionary work has increased. We can find the biblical foundation for missionary welfare where the Bible mentioned reliefs and welfare in the community of faith. A missionary is a member of the community. Even if a missionary is a servant and instrument of God, he/she is a human being. A missionary has family members. He/she can also get a cultural shock and reverse cultural shock, and an unexpected accident. He/she is aging and shall be retired. He/she, therefore, also needs welfare care for his/her physical, mental, and spiritual health in the community, which can increase the effectiveness in their missional works. There are several dimensions of member cares: 1) Care for physical health, 2) Care for emotional and mental health, 3) Care for retired missionaries. In terms of care for physical health of a missionary, Korean missionary societies are further behind than the International Missionary Societies (ig. SIM, OM, OMF, WEC). They have prepared medical and insurance supporting systems very well. In this respect, Korean church needs to establish this kind of missionary infra. For emotional and mental state, a missionary needs sabbatical year for healing, refreshing and maintaining his/her healthy mental state for effective missional work. For the retired missionaries, a supporting system for housing, foods supply and medical service should be provided. His/her various experiences need to be utilized for developing a strategy and policy for a effective missional work of the future generations. Accordingly, we must prepare a system and policy for missionary member care in order to enhance effective missional works within this welfare and aging times. For this, this study has addressed several dimensions of policy and methodology: For a effective missionary member care, fulfillment of desire for self-realization of missionary, establishment of an appropriate organization and a policy for member care with an effective management for care for crisis/accidental incident, a practical strategy at the denominational level, cooperation for win-win strategy among denominations, sending church and missionary societies should be considered. Missional business strategy and brand standardization for 'missional marketing' have been pointed. First, fulfillment of desire for self-realization. According to A. H. Maslow, the desire of self-realization is the highest desire. A missionary also has this desire. Korean church is lacking of this system for fulfilling the desire of self-realization, especially after a missionary retires. Second, organization and policy for caring member. a Community needs an effective organization for achieving its objective. So is a missionary society. Mission can be effective when members in the community can be managed effectively. Third care for crisis/accidental event. A missionary can also meet crisis/accidental event. Only effective management and care can increase the effectiveness of mission. Four, practice for missionary member care. Missionaries are spiritual soldiers. So they need care and management system and practical strategy at the denominational level. Denomination, sending church and society must cooperate one another for win-win strategy. They need missional business strategy like a business company. Through brand standardization, they must try to increase the value of brand. I wish to call it 'missional marketing'.
에스더 쉴즈(Esther L. Shields, 한국이름 秀日斯, 1868-1940)는 미국 북 장로교 파송 한국 간호선교사이다. 쉴즈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1897 년부터 1938년 만 70세로 선교현장인 한국에서 은퇴할 때까지 40여년을 의료선교와 복음전도 그리고 간호교육과 사회사업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 다. 그녀는 “세브란스의 천사”라 불리울 정도로 봉사의 삶을 살았다. 그러 나 그녀에 대한 연구는 그간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의료 선교사였지만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고,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일 가 능성이 높다. 쉴즈는 미국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충분한 임상을 경험 한 후 선교사로 자원하여 한국에 왔다. 그녀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식 간 호사로 사역하였으나 열악했던 당시 한국의 의료상황과 과중한 업무로 인 해 탈진하여 건강을 해쳐 병원 사역에서 벗어나 평북 선천에서 전도와 교 육 사역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세브란스로 복귀하여 은퇴할 때까지 이 곳에서 간호교육과 간호사들을 위한 사역 그리고 병원에서의 전 도와 사회봉사 활동에 매진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쉴즈의 선교사 지원 이전의 삶과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을 시기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그녀의 선교사역이 갖는 특징을 몇 가지로 정 리하였다. 이를테면 그녀는 조직과 협동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이를 매우 중시하여 사역을 진행했으며 그것이 오늘날 한국간호사협회와 같은 기구 로 자라났음을 알 수 있다.
This article is to examine of Duncan M. MacRae’s early missionary work in Korea and its characters. Duncan M. MacRae was born at Cape Breton Island in Canada. In 1897, the Foreign Mission Committee of Canada Presbyterian Church advertised for two missionaries to proceed to Korea. At its February 15 meeting the applications of Dr. Robert Grierson and Mr. William Rufus Foote were received and their appointment was made. Because of the financial difficulties, the application of MacRae was rejected. But when Maritime congregations sent the required funds, the F.M.Committee appointed him to the third member of the first group to go to Korea.
Eventually, following graduation from the Presbyterian College in Halifax, Duncan M. MacRae ventured to Korea to do missionary work. MacRae arrived at chemulpo in Korea on September 7, 1898 and arrived in Wonsan Mission Station on February 10, 1899. And then, he constructed Hamheung Mission Station on the northeast coast of Korea in 1904 and lived on Dragon Mountain for almost forty years. In this station, he did the missionary itinerancy around the city of Hamheung to establish church and managed the Christian academy to educate the Korean Christians.
The characters of MacRae’s early missionary work at Hamheung Mission Station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ly, he theologically was a conservative. Through the Canada Presbyterian Church and his mother, MaRae was affected by the traditional Calvinistic doctrines of the sixteenth century and Puritanism of the seventeenth century. Secondly, MacRae faithfully was a vigorous evangelist. Although he did encounter with many danger in a journey, he frequently had gone to the missionary itinerancy to evangelize Koreans. Thus, his vigour and courage for the spread of Gospel made him a legendary figure among koreans. Thirdly, MacRae ecclesiastically aimed at the establishment of independent and indigenized church governed and managed by the native christians. And also, he was quite interested in the Korean traditional culture and religion in order to indigenize Christianity in the Korean soil. Finally, MacRae has an anti-Japanese Sentiment. He has a forceful personality who did not hesitate to risk a security and reputation when he saw Christian beliefs or his beloved Korea jeopardized by the Japanese authorities. For his courage and passionate concern for Koreans, he was respected and admired by Christian and non-Christi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