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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9.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고에서는 주자 변점법(變占法)의 체계와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주자의 변점법은 ‘효난동’의 문제로 귀결되고, 체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변점법은 대칭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주자는 역사적 점례를 토대로 자신의 변점법을 체계화하였는데 그 구조적 특징은 대칭성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대칭적 구조 로 자신의 점법을 체계화하면서 그 이전에 내려오던 점례에 관한 다양한 해석가능성과 충돌하게 된다. 주자는 자신이 만든 체계로 쉽게 풀리지 않는 점의 기록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하면서 이전과 해석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자신이 체계화한 구조 속에서 전형적으로 해석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언급에 모순도 보이게 되는데 ‘간지팔’에 관한 논의가 그것이 다. 그러므로 주자의 변점법이 해석의 다양성을 포용하기 힘들다. 그러나 주자가 구조적 특징인 대칭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음을 ‘간지 팔’ 논의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주자의 변점법이 일정한 전통성을 지닌다는 것은 대다수의 학자가 그의 점법을 따르거나 변용과 비판을 통해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5,500원
        5.
        2018.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주자는 『본의』에서 卦變을 『주역』』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주역』』의 19괘에 대해 구체적인 괘변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주자는 왕필에서 이천으로 이어지는 의리역 계열에서의 卦變에 관한 인식에 비판적이었다. 또한 지나치게 복잡한 괘변이론을 펼친 주진의 괘변이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래서 독자적인 괘변이론을 구상하였고, 그 결과 19괘에 관한 괘변이 론을 주장하였다. 주자의 괘변이론은 의리적으로는 「단전」에 근거하고 상수적으로는 인접한 효들끼리의 교환이였다. 이 두 가지 원칙가운데 상수적 원리인 인접한 효들끼리의 변화라는 점을 『역학계몽』 괘변도와 연관해볼 때 상당한 의미가 있다. 결론적으로 주자의 괘변이론의 의리적 근거는 『주역』의 「단전」이라 할 수 있으며 상수학적으로 「역학계몽」의 괘변도와 상당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6,300원
        6.
        2017.06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팽이버섯은 백색이고 저온성 버섯’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토종 팽이버섯 신품종 ‘여름향2호’는 다품목 버섯 재배 농가에 대혁명을 일으켜 돈버는 국산품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교배모본은 ‘갈뫼’(’05, 농촌진흥 청)와 ‘흑향’(’11, 충북)이며, 단포자 교배방법으로 2013년에 육성되어, 2015년 2월에 품종보호등록되었다. 관행 팽이버섯 재배온도인 4°C뿐만 아니라 2~4배 높은 고온재배(8~16°C)가 가능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하고 여름철 냉 방비 33%를 획기적으로 절감시켜 ‘팽이버섯=겨울버섯(winter mushroom)’이라는 상식을 깨뜨려 버렸다. 재배농가 입장에서 또하나의 큰 장점은 백색 팽이에 비해 재배기간이 20일 이상 단축되어 생산비 절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온성 팽이버섯 개발은 농가 보급 확대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다품목 버섯재배 방식의 대혁명을 가져왔다. 신품종 보급의 역발상, 농가의 기존 재배방식에 그대로 접목한다 ! 신품종 보급을 농가의 기존 재배방식 그대로 시험재배하면서 가장 적합한 품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보급 방식은 농가 입장에서 시간과 자본 투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어, 다품목 재배에 갈색 팽이를 선택하는 느타리와 큰느타리 병재배 농가수를 빠르게 증가시켰다. 신품종과 고온재배기술을 접목하여 농가 맞춤형으로 보급하고, 전국을 누비며 우 수성을 홍보함으로써, ‘여름향2호’는 충북,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다품목 재배를 희망하는 전국 7개소와 통상실시, 실용화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집중적인 현장컨설팅과 기술지원을 통해 보급농가 중 4개소가 대량 생산과 사업화에 성공, ‘아삭팽이’, ‘자연팽이’, ‘초코송이’ 등으로 상품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여름향2호’ 팽이버섯의 장점은 식감이 아삭하고, 이 사이에 끼지 않으며 끓여도 질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베타글루칸 함량이 백색 팽이에 비해 2.2배 높은 장점이 있다. 색과 맛으로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아 버섯 틈새시장을 확보한 ‘여름향2호’ 팽이버섯은 세계인의 입맛을 공략하여 2016년 하반기에 유럽시장에 4톤을 수출하는데 성공 하였다. 이미 수출을 하고 있는 문산머쉬와 더불어 2017년 3월 생산규모가 큰 ㈜연우, 지리산버섯, 선우팜 3개소가 통상실시함으로써, 내수시장 다변화를 기반으로 유럽 수출 확대와 동남아, 호주, 미국까지 공격적인 수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품종 개발, 보급, 수출까지 조기 정착된 ‘여름향2호’는 2016년 가락시장 진입을 목표로 경매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장성 평가에서도 극찬을 받았으며, 다품목 버섯농가 만족도 1위 품목으로 부 상, 2017년도 대한민국우수품종상에 출품,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2차 현지심사를 준비하고 있다.
        7.
        2014.0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茶山의 나이 52세 때인 1813년에 완성된『論語古今注』는 실로 二千年 論語學史에 있어서 획기적인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당세와 후세에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주자의 『논어집주』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탐구의 깊이나 철저한 고증 력에 있어서는 『논어집주』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大作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 닐 것이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은 茶山 論語學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하고 가치를 밝히는데 있어 굳건한 토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본고에서는 [質疑 68]에서 [質疑76]에 대해 검토하였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질의68]은 주자의 仁在心內說을 부정한 것이다. 다산은 여러 저술에서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이고 理가 밖으로 발현되어 行事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인의예지라고 생각하였다. [질의69]는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의 ‘歸’에 대해 주자가 집주에서 “歸, 猶與也”라고 한 것에 대해 이의를 표시한 것이다. 주자에 의하면 여기서의 ‘歸’는 ‘허여하다’․‘칭찬하다’․‘칭탄하다’ 등의 의미가 된다. 다산에 의하면 ‘歸’는 ‘歸化’ 의 의미가 된다. [질의70]은 주자가 “爲之難, 言之得無訒乎?”의 句에 대한 주자의 풀이가 공자 의 원뜻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다산이 이의를 표시한 것이다. [질의71]은 “膚受之愬”에 대한 주자 注에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의 해석에 의하면 “부수지소”는 현재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앞의 “浸潤之譖”은 현 재는 그 현저한 효과가 없으나 서서히 그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침윤지참”과 “부수지소” 모두 그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으로 종국에는 엄청 난 파국을 낳는 것으로 보았다. [질의72]는 “足食, 足兵, 民信之矣.”에 대한 주자의 주에 다산이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는 足食과 足兵이 民信의 선결조건으로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이 세 가지가 각각 하나의 일로, 서로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질의73] 역시 (12-7)의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에 대한 주자의 주에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주자는 임금과 백성이 지배와 피지배라는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여 이 구절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백성과 지도자는 신뢰를 가운데 두고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존재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질의74]는 “惜乎夫子之說君子也駟不及舌”의 句에 대한 주자의 독법에 대해 다산이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에 따르면 이 구절의 표점은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이 된다. 다산은 “惜乎夫子之說君子也.”를 9자 一句로 보았 다. 다산에 따르면 표점은 “惜乎! 夫子之說君子也.”가 된다. [질의75]의 논의는 文質論의 일단이다. 경문에 따르면, 극자성은 重質輕文論者 에 속하고 자공은 文質幷重論者에 속한다. 주자는 文質을 本末 관계로 보았기 때 문에 자공의 문질론은 공자의 문질론과 어긋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자공의 뜻이야말로 공자의 문질론과 일치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질의76]은 “誠不以富, 亦祗以異.”에 관한 程子의 착간설에 이의를 표한 것이 다. 다산은 정자나 주자처럼 착간으로 보지 않고 본문 가운데서도 단장취의로서의 의미로 충분히 성립되는 것임을 증명하였다.
        8,100원
        8.
        2013.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후기 주자 사상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주자어류』에 대한 연구도 활발 해진다. 그리고 제왕학의 일환으로 시행되던 경연에서도 보다 많은 주자 관련 서 적이 강독된다. 영조 때에는 『주자어류』 또한 경연의 소대 교재로 채택되어 영조 16년(1740) 10월 12일부터 다음해 3월 14일까지 약 5개월 사이에 열린 24차례의 召對에서 강독되었다. 그런데 『주자어류』는 주자생전에 주자가 제자들과 가졌던 문답 형식의 대화 즉 ‘語錄’을 수록한 책이다. 주자의 제자들이 『주자어류』를 편찬했던 것은, 당시 주자 와 제자 사이의 대화 현장을 보다 생동감 있게 재현시켜 후대 사람들에게 주자의 사상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어적 환경의 차이 때문에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주자어류』의 글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14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주자어류』 속에서 주자의 핵심 사상을 파악하기 또한 쉽지 않았다. 따라서 『주자어류』의 난해한 단어나 문장의 뜻풀이 작업과 함께 『주자어류』 속에서 주자 사상의 핵심적인 내용만을 선별하여 읽으려는 抄節 작업 등도 성행하게 된다. 이러한 학술적 분위기 속에서 영조 때 경연의 소대에서 강독된 『주자어류』 또한 일부 내용만을 초출한 『朱子語類抄』가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때 교재로 사용된 『주자어류초』는 현행본 『주자어류』권93-137 중에서 제왕학과 관련된 내용 21권을 선별하여 11책으로 재편하여 간행한 것이다. 그리고 경연 강독을 위해 이 『주자어류 초』에 구결을 달았다. 현존하는 규장각본 『주자어류초』(11책21권본)는 바로 영조 때 소대 교재로 사용되었던 판본이다.
        7,800원
        9.
        2007.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동하중의 영향을 받는 구조물의 효율적인 구조 해석 및 최적화 수행을 위해 임계 시간의 동하중을 등가 정하중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동하중을 등가 정하중으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자유도 선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 방법에서는 자유도의 선정이 임의로 이루어져서 몇 개의 자유도에 과도한 정하중이 부과되거나, 구조물의 거동에 영향력이 없는 자유도들이 선정됨으로써 신뢰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제공하기도 한다. 본 연구에서는 2단계 축소기법과의 연동을 통해 중요 자유도를 선정하고, 선정된 자유도에 등가 정하중을 부과하는 방법을 제안하다. 주자유도는 구조물의 거동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손상 탐지나 시스템 검증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자유도이다. 수치예제를 통해 선정된 자유도에 등가 정하중을 분포시킨 후 동하중하의 시간 응답과 비교하여 그 신뢰성을 확인한다.
        4,000원
        12.
        2000.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900원
        13.
        2015.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금호건설은 공항시설과 물류시설, SOC사업 등에서 축적된 기술 경쟁력과 다방면에서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 듭해 온 전통을 가진 건설업체입니다. 금호건설은 1967년 창립한 이후 인천국제공항 등 공항건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등의 SOC 민간투자사업, 목포-압해간 연육교, 호남고속철도 등의 공공토목 건설, 광주신청사 등의 공공건축건설, 한남 The Hill 등의 개발사 업, 전북환경기초시설 등의 환경사업, 인천복합3호기 등의 플랜트 건설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서 국가 기반시설 설립을 주도해 왔 습니다. 금호건설 기술연구소는 R&D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인재양성으 로 건설기술에 대한 기초연구, 국토의 확장과 효율적 이용, 사회기 반시설의 계획과 시공 및 추진관리, 생산성 향상 등의 연구활동으 로 기술 선진국의 꿈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소재 및 정보통신기술 이 융합된 기술, 환경친화적인 기술을 활용하여 건설문화를 이끌 어 가고 있습니다.
        14.
        200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동강 김우옹은 남명 조식의 수제자로서 조선중기 남명학파의 저명한 학자이 다. 김우옹의 학문은 스승인 조식의 영향 아래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근원 을 찾아보면, 보다 더 직접적으로 주자의 영향권 아래 있다. 주자와 김우옹의 정치론과 학문론을 비교해 본 결과, 이 두 학자의 영향 관계 는 매우 직접적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정치론을 살펴보면, 군주론에서는 군 주의 정치적 역량보다 군주의 마음을 가장 중시하였고, 신권론에서는 나라를 경영하는 주체로서 신하의 권한을 옹호하고 있으며, 붕당론에서는 군자와 소인 을 엄격하게 구분할 것을 요구하고, 외세론에서는 시종일관 외세배격의 논리를 지녔다. 그리고 학문론에서는 주자학의 공통된 이념인 ‘性卽理’를 공유하였고, 敬과 실천을 매우 중시하였다. 또한 이들은 인격적 면에서도 매우 유사한 면모 를 보여주고 있었다. 남명학을 두고 주자학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기도 하지만, 적어도 김우옹의 삶 과 사상을 살펴본 결과 김우옹을 위시한 남명학파는 철저히 주자학의 기반위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5.
        2006.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에서는 주자 독서론의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주자가 생각하는 독서의 의미, 독서를 위한 마음가짐, 독서의 방법과 단계를 살펴보았다. 시대적 부조리의 원인을 학문적 혼란에서 찾은 주자는 시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바람직한 학문의 확립에 주력했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독서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다. 주자는 독서를 올바른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아나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인격적 모범을 보인 성현의 말씀이 담겨있는 책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것이 독서의 진정한 가치라고 믿었다. 주자가 가장 중시한 책이 ‘경전(經傳)’이었고, 책을 읽을 때 마음가짐을 중시했다는 사실은 모두 그의 성인지향적인 독서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자의 독서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독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둘째, 독서의 과정에서 심리적 기재를 중시했다는 것이다. 존심(存心), 허심(虛心) 그리고 평심(平心)과 관심(寬心)은 주자가 강조한 독서를 위한 마음가짐이다. 셋째, 책의 내용에 따라 주안점과 읽는 방법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자는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내면화를 통해 실천하는 독서’를 제안했다. 올바른 독서가 개인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왜곡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주자의 독서에 대한 담론은 ‘전통적 독서’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며, 나아가 실천적인 독서 문화의 새로운 목표와 방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16.
        200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明末淸初의 사상과 日本儒學에 대하여’라는 문제 설정은 江戶사상사 연구의 문맥 안에서 11세기 이전 일본 사회의 ‘주자학적 사유의 존재’라는 丸山眞男의 주장에 대한 비판 · 수정의 흐름 속에 자리 매김할 수 있다. 그러나 17세가 일본에서 수용된 명말청초의 사상을 무익하게 주자학과 떨어진 곳에서 파악하려는 것도 橋狂過正의 폐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근년 중국 근세 사상 연구에서는 양명학은 주자학적 문제의식을 계승 · 발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는 주장이 점차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러한 연구 동향으로부터 이 논문에서는 中江藤樹의 사상을 ‘주자학’적 전개의 가능성 안에서 재구성해 보려 하였다. 그려고 이에 있어 藤樹의 사상에 대해 종래처럼 일부러 세세하게 시가를 구분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한 시가 구분은 藤樹사상의 ‘ 日新’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진 『藤樹先生年諸』의 기술에 의해 도출된 것으로, 오히려 이 논문에서는 초기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藤樹學특질의 추출을 기도하 였다. 그 특질은 藤樹의 사상에 합리성 • 질서성에 대한 합리적 신비 事象에 대한 신념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래에 이 문제는 藤樹가 주자 학에서처럼 ‘理’의 자기관철을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이해되어왔지만, 이 에서는 오히려 藤樹가 ‘理’블 인간의 可知• 不可知에 미치는 모든 영역에 있어서 관철시켜왔기 때문에 표면상에서 그와 같은 모순이 나타남을 논하였다. 이와 같이 불가지의 영역을 신비적 인것으로 보류하지 않은 태도는 주자의 ‘象 數易’에 대한 태도와 공통된다. 또한 이것은 서구 17세기의 과학자들과도 유사한 점이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藤樹의 사상을 ‘주자학’ 안에서 이해하려는 것은, 藤樹사상의 해명에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사 전개의 재조명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17.
        200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주자학은 天人合一이라는 우주인간론적 비전을 골격으로 한다. 이 테제는 근대적 심성에는 매우 비의적이고 난해하다. 이 사고는 인간의 본성을 우주적 전체속에서 읽으며, 이는 인간을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는 다른 지평에서 읽을 것을 요구한다. 주자학은 우리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본성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본성’은 유전적 편향과 후천적 습관때문에 자각되지 않고,덮여있다" 주자학은 이 덮여지고 때묻은 본성을 지속적 자각을 통하여 벗기고 씻기는 것을 공부와 훈련의 과제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사적 자아는 공적 자아로 변환되며,자아와 타자를 분리하고 있던 장벽이 사라지면서 언간은 타물과의 우주적 소통을 확보한다. 그것을 전통적으로 철학적으로는 物我-如라는 통일로, 또는 문학적으로는 J홈 飛魚뿔이라는 자연 생명의 약동으로 묘사했다. 그것은 동시에 유가적 가치의 중심인 仁훌禮智가 발현되는 體用의 기제이기도 하다. 퇴계는 이런 본체와 공부의 전 과정을 그림 열 폭에 정돈했다. 이 논문은 퇴계가 정리한 주자학적 본체론을 제 1『太極圖』와 제 2『西銘圖』률 중심으로 해설하고, 이어 그것의 회복을 위한 공부의 규모와 방법을 제 3『小學圖』와 제 4『大學圖』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중심 에 지속적 자각의 파지로 번역될 수 있는 敬이었다.
        18.
        200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일본 유학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논어가 백제로부터 전래되었을 때를 기점으로 한다. 중세에는 고잔(五山) 승려에 의해 접해졌고, 근세 에도시대에 들어와서는 본격적인 수용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의 유학에 대해 근세 유학연구의 선봉적인 역할을 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씨는 주자학이 근세 일본의 幕藩制 유지의 사상적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주자학의 자연법적인 사상이 근세 봉건사회에 부합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마루야마씨의 주자학 이데올로기론은 여러 관점으로부터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 유력한 비판자의 한 사람인 비토 마사히데(尾藤正英)씨는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주자학과 근세일본사회와의 부적합성을 들어 유교가 일본사회에 지식으로 수용된 것 일뿐 생활차원에서의 수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와타나베 히로시(渡邊浩)씨는 에도시대(1603-1867)전기의 일본사회에 있어서 주자학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는 주자학은 당시 일본 국내의 有利한 사정을 바탕으로 점차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違和感을 주는 외래사상이었다고 하고 있다. 이상, 전후 한때 통설로 되어왔던 마루야마씨의 주자학의 일본 근세사회의 부합설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주자학 부적응설로 일반화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자학의 부적응설에도 불구하고 일본 유학은 고대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근세에 본격적인 수용을 거듭하면서 현대에까지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근세에는 다양한 층의 학자들에 의해 수용되어 일본적 사상으로 정착하게 되는데 이하 본 논문에서 필자는 주자학의 일본수용설의 관점에서 그 영향관계를 주자학에서 古學陽明學國學水戶學 등과 관련지어 고찰하고자 한다. 또 한국과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고자한다.
        19.
        2000.0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388年に威化島回軍という事件が起こった. この時期こそが儒學的意味での革命の時期だったにもかかわらず, 當時, 新しい政治勢力として浮上した儒學者官僚たちが想定していたのは革命ならぬ中興であった. ところが, 中興論をもって高麗王朝を立て直そうとした試みは難關に直面し, 槪ね1390年後半から1391年初頭にかけて, 中興から革命への戰略的な轉換が試みられた. そして, ここから中興對革命という對決構圖が出來上がり朝鮮建國までの1年餘りにわたる命縣けの鬪爭が繰り廣げられた. このような當時の政局を踏まえて革命について否定に近い肯定をした朱子の革命論を檢討し, さらに, 鄭道傳の革命についての思惑と行動を考察した. 1392年の鄭夢周の死は, 回軍以降展開してきた鬪爭の決着と同時に高麗の滅亡, そして朝鮮の建國を意味した. 朝鮮建國といえば, 通常最初にその名が擧げられるのは鄭道傳である. しかし鄭道傳は現にあった朝鮮建國という事件の主導者ではなかった. その事件は彼の手を離れて, 彼の意圖とは全く違う方向に展開された. それは簒奪による王朝交替であった. そのような王朝交替に向けての下準備が行われたあとに, 鄭道傳は中央政界に召還された.もし純粹な朱子學者だったならば隱遁すべきであったろう. しかし鄭道傳は出仕した. 自分の出仕は不義への投降ではなく, むしろ不義を正すためだという鄭道傳の辨を糾明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