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와 상생, 건전한 사회, 공평과 평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화구조, 국가와 국가 간의 상호교류 등이 절실히 요청되는 21세기에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폭력과 배제, 혐오가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는 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환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인문, 사회과 학 전반에서 화두가 되었고 환대의 실천을 제도화하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파송 받은 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 논문은 환대의 신학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을 연구한다. 환대 신학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의 온전한 선교적 삶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하나님의 선교의 출발은 하나님의 환대에서 시작되며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환대를 말과 삶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환대는 하나님의 선교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교회의 선교적 표지이다. 인간다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와 상생, 건전한 사회, 공평과 평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화구조, 국가와 국가 간의 상호교류 등이 절실히 요청되는 21세기에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폭력과 배제, 혐오가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는 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환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인문, 사회과 학 전반에서 화두가 되었고 환대의 실천을 제도화하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파송 받은 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 논문은 환대의 신학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을 연구한다. 환대 신학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의 온전한 선교적 삶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하나님의 선교의 출발은 하나님의 환대에서 시작되며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환대를 말과 삶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환대는 하나님의 선교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교회의 선교적 표지이다. 인간다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와 상생, 건전한 사회, 공평과 평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화구조, 국가와 국가 간의 상호교류 등이 절실히 요청되는 21세기에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폭력과 배제, 혐오가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는 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환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인문, 사회과 학 전반에서 화두가 되었고 환대의 실천을 제도화하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파송 받은 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 논문은 환대의 신학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을 연구한다. 환대 신학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의 온전한 선교적 삶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하나님의 선교의 출발은 하나님의 환대에서 시작되며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환대를 말과 삶을 통해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환대는 하나님의 선교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교회의 선교적 표지이다. 분열되고 배타적이며 혐오로 가득 찬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의 정수는 하나님의 선교적 환대에서 비롯된다.
본 연구는 구약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논할 때 제한적이며, 특히 창조신학과 원역사 안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에서 출발하였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렌즈로 성경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나님의 선교는 성경적인 뒷받침을 얻을 것이다. 본 연구는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사명을 위임받아 보내심을 받은 선교적 인간에 의해 그분을 계시하고 세상에 구속과 샬롬을 이루는 인간의 선교로 나타난다는 것을 주장한다. 즉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에는 창조된 인간이 그분을 계시하고, 세상에 구속과 샬롬을 이루도록 고안된 특별한 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기능을 통해 인간은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져야 하는 방향과 선교가 보내심을 넘어서 하나님을 계시하는 모든 행하심이 선교이고 그것은 세상에 대한 보호와 보존, 발전임을 주장할 것이다. 그래서 보내심의 선교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이 연구의 목적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기독교와 후기식민주의적 선교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시대에 맞는 협력 선교의 새로운 접근으로 “우정과 동행의 선교”를 제안한다. 이것은 협력 선교의 형제/자매애를 강조하는 접근이다. 우정과 동행의 선교는 2015년에 가톨릭 선교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되었던 “시노달리타스(동행)”의 선교를 신학적 근거로 삼는다. 이어서 이 글은 우정과 동행의 선교의 구체적인 여정으로 1. 함께 열린 대화하기, 2. 자원/경험을 함께 나누기, 3. 함께 세상을 향하여 증거하기의 세 단계로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우정과 동행의 선교가 구체적으로 개인적 삶에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우정의 선교 이야기를 세 가지 사례로 제시하였다.
본고는 창조세계의 보존과 회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몽골 ‘은총의 숲’ 사업을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검토하고 그 선교학적 인 함의를 모색하고자 한다. 1952년 빌링겐IMC 이후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보다는 교회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발전되어 왔고, 한국의 경우 물질주의와 타종교 이슈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에 집중하면서 창조론에 대한 논의가 미약했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2009년 몽골에서 시작된 ‘은총의 숲’ 사역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몽골의 사막화를 방지하고, 몽골인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며, 무엇보다도 한국기독교의 새로운 선교방안을 제시한다. 은총의 숲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재적인 ‘사귐’ 을 현지인과 피조물과 함께 생태선교로 실천하고 있다.
본고는 지지울라스의 삼위일체적 교회론을 선교적 관점으로 재해 석한 선교적 교회론 연구이다. 지지울라스는 성부의 인격 엑스타시스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성한 것처럼 세상을 구성하고, 종말론적 코뮤니온을 이루기 위해서 아들과 성령을 세상에 보내시며 코뮤니온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선교는 코뮤니온이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상응하는 교회로서 코뮤니온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회는 존재론적으로 코뮤니온 공동체를 이루는 선교적 차원을 가져야 하고, 지역교회와 교회 일치 운동은 코뮤니온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의 신학의 중심에 성찬식을 두어, 성만찬이 이루어지는 지역교회는 지역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 지역 문화에 배타적이지 않고, 코뮤니온을 이루되 교회성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교회는 교회중심으 로 모여 종말을 선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코뮤니온 교회론은 개인주의와 배타주의를 극복하는 코뮤니온 선교적 교회가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동역자로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무슨 선교를 행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적 연구가 필요하다. 본 글은 우선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게 한 선교신학적 근원을 검토했다. 이는 한국장로교 회가 강조한 영적 교회 설립과 개인주의적 영혼구원 선교였다. 이 정책은 초기 한국인과 갈등을 빚었다(1884-1910). 뒤이어 본 글은 영혼구원 선교에 더하여 사회선교를 강조한 통전선교를 행한 쉐핑 (Elisabeth J. Shepping, 서서평, R.N. 1912-1934) 선교사의 선교 를 검토하고, 그녀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한국인지도자들의 선교와 특징을 분석하였다(1910-1960). 이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통전 선교와 예수 제자도 선교를 하였다. 본 글은 이 특징들이 오늘날 복음주 의 로잔 문건과 WCC 선교문건에서 어떻게 논의되는가를 살폈다. 이들은 주변부 선교, 변혁적 통전선교, 성육신적 제자도 선교인데, 본 글은 이들의 한국교회 적용을 논의했다.
예배회복운동(Liturgical Movement)이 지적했듯이, 오늘날 교 회 예배는 현대 사회의 실용화의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예전(liturgy)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선교적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의 결과물이라 면, 그곳의 예배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적 본성이 전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선교적 예배는 교인들로 하여금 지역 사회의 봉사를 독려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선교적 하나님을 대면하고 경험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또한 선교적 예배는 서구에서 1,500년 이상 지속되었 던 선교 부재의 크리스텐덤(Christendom) 유산에서 벗어나서, 교인 모두가 스스로 하나님의 부름 받고 보냄 받은 자로 인식하도록 하게 한다. 이를 위해, 선교적 예배에서는 크리스텐덤 시대에는 사라진 하나님의 선교 내러티브가 구현되어야 하고 양과 질적인 면에서 축소된 성만찬이 선교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에클레시아[ecclesia (ἐκκλησία)]의 성경적 개념과 오늘날 현대교회 의 차이를 다루는 교회 문헌의 세 가지 경향을 밝힌 연구에 기초하여, 본 연구는 교회가 성경적 에클레시아와 약간 다른 조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네번째 접근을 취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성경적 에클레시아의 형태, 기능, 목적을 탐구하기 위해 신약의 에클레시아를 분석하고 구약의 카할 [qahal ( קה ל )]과 연결한다. 천국과 그 계시에 연결되어 성령의 인도 하에 이 땅에서 사는 것뿐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의 한계를 넘는 에클레시아의 팽창을 조사한다. 에클레시아에 적용되는 성전, 몸, 신부의 비유뿐만 아니라, 성경적 에클레시아의 단일성과 다양성을 관찰하고 논의한다. 본 연구의 결론은 남한과 북한의 선교적 관계와 아시아의 다른 현대적 접근을 참고하여 논의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가진 선교적 공동체로의 정체성은 이미 인간 창조 서술에 암시되어 있다. 그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선교가 먼저 인간의 선교(창 1:26 이하)로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교(창 12:3)로 발전하며,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출애굽기에서 처음 민족적 단위로 세워지며, 온 세계 민족에 대한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음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 세워지는 출애굽기 19장 4-6절에 명시화되어 나타난다. 또한 레위기는 오경의 신학적 핵심에 서 있을 뿐 아니라 책 자체에 고안된 중앙 집중적 구조를 통해서도 자신의 백성의 공동체에 임재하며, 그들에게 속죄의 현재성을 지속적으로 보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백성을 통해 그 속죄의 은혜를 온 세상에까지 전파할 사명을 부여하는 하나님을 제시한다. 구약이 제시하는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가진 정체성은 신약의 교회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뿐 아니라, 에베소서가 제시하는 교회의 정체성으로서의 통일성, 성결성 그리고 보편성에 맞닿아 있으며, 나아가 신약과 오늘날의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가져야 할 모습을 규정하고 있다.
본 논문은 요한복음의 선교적 동인과 선교주제를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고찰한다. 복음전도를 기록목적으로 명시한 요한복음은 비르카트 하-미님과 성전파괴가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선교의 동인이 되어 선교문서로서의 지향점을 갖는다. 1-4장의 하나님의 선교 주제는 예수의 지상 활동을 선교신학의 관점으로 이해하게 한다. 성육신은 창조와 구원의 사건이자 자기 계시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자녀삼기 위한 전인격적 섬김과 증언이 핵심이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는 구원의 무대인 세상에서 사랑으로 경계를 해체하여 믿는 자마다 구원으로 초대하는 죄와 구원의 보편성을 제시한다. 예수의 선교는 아버지의 선행적 주도권을 인정하고 보내신 이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선교의 지속성을 담보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내시고 보냄을 받는 교제와 협력은 예수 시대의 제자들과 교회에게 추수의 참여자가 될 것을 촉구한다.
칭의론은 기독교의 심장이라 말할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렇 게 중요한 개념인 ‘칭의론’이 오늘날 세계 선교와 선교학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구체적으로 본 논문은 바울의 칭의론이 ‘하나님의 선교’라는 거대한 선교 신학적 패러다임 속에 담긴 칭의론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선교 신학적 이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바울이 예수를 가리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용어는 ‘주’(Lord)이다. 그가 이 ‘주’를 하나님으로 칭송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역시 반드시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후대 삼위일체 교리의 의미에서 “성자 하나님”(God the Son)이심을 암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교’ 관점 속에서 이해된 바울의 칭의론 연구는 21세기 선교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중요한 준거의 틀 역할을 하게 된다.
본 연구는 ‘바울의 선교’를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성을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첫째, 바울 본연의 ‘선교’에 대한 인식과 실천방식에 더욱 적실한 이해와 논의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에 대한 누가의 관점’이 아니라 바울서신에 드러나는 ‘바울 자신의 관점’을 통해서 이루 어져야 한다. 둘째, 바울에게 적용되어야 할 ‘선교’에 대한 더욱 적실한 정의는 바울 자신의 세계관과 목적의식을 반영하는 더 포괄적인 것이어 야 한다. 셋째, 바울서신에는 현대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 의 요점이 말하는 바와 같이, 선교의 본연적 주체로서의 삼위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그 ‘하나님의 선교’에 의해 발생되고 그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은 두 개의 선교, 즉 ‘바울 자신의 선교’와 ‘교회의 선교’에 대한 바울의 인식이 나타난다. 넷째, 바울의 서신은 교회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공동체’로서 이해하지만 바울 자신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복음전도자들의 공동체라 기보다는 개인적, 공동체 내/외적인 모든 차원에서 복음을 충실히 ‘살아냄으로써’(by living out) 복음을 ‘가시화’(visualization)하는 ‘존 재론적-윤리적인 복음의 도구(ontological and ethical agent for the Gospel)라는 측면을 더 강조한다. 다섯째, 이상의 논의는 바울의 선교적 사유와 실천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울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바울’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요청한다.
선교적 해석학은 선교적 교회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선교적 해석학은 성경해석학이 역사적 발전 경로 를 통해 배태한 양분을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이해와 접목시키는 과정에 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본고는 성경해석학 역사의 흐름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역사비평 해석학과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성경신학운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역사비평 해석과 성경신학운 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신학적 성경해석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학적 성경해석은 역사비평 해석학의 기여를 수용하 되 신학적 전제를 성경해석의 조건으로 주장함으로써 해석의 학문적 객관성과 교회의 신앙 고백을 통합하는 해석학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선교적 해석학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성경해석의 신학 적 전제로 주장함으로써 성경적 성경해석과 해석학적 맥락을 같이한다.결국 선교적 해석학은 성경해석학 분야의 발전 과정에서 배양된 학문적 성취를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다. 선교적 해석학의 신학적 전제로 하나 님의 선교 개념이 중요성을 갖는 정당성의 부분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고는 선교적 해석학에 있어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왜 신학적 전제가 돼야 하는지에 대해 논증했다. 그리고 헌스버거가 분석한 선교적 해석 학의 네 가지 유형 안에 성경해석을 위한 신학적 전제로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헌스버거의 논의 가 갖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헌스버거의 분석 외에 헌스버거가 분류한 대표적 학자들의 논증을 추가적으로 살펴보았고, 마지막으로 각 유형간 상보성에 대해 논증했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 basilei,a tou/ qeou)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이루어가는 선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마 6:33)를 이루는 것이다.그러나 19, 20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의존재는 늘 선교의 주체가 되지 못했으며, 제국의 힘, 서구의 문화,교육, 사상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세계선교도 대형교회 담임목사의 선교관, 선교사의 주관적 선교 이해, 교회 중심의선교, 선교 단체 중심의 선교 그늘 아래 하나님의 선교의 본질적 요소가 무시되어 왔다. 필자는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에 대한 부정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선교적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본 논문의 논지인 ‘하나님나라에 대한 선교적 이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시면서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요구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 예수 전승 가운데서 특별히 Q자료를 중심으로 그 자료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선교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Q자료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는 초월적 내재성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이다. 이 나라는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의긴장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선교의 범위를 보여주기도 한다.이것은 현재의 요구와 초월자의 요구 사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의 나라에 대한 선교적 이해가 없이 이루어지는 선교를 하나님의 선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 하나님의 규율과 법칙이 존재하는 곳이다.
둘째로, 보편적 선민사상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 전승을 통하지 않고 공관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려고 할 때독자의 혼동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며 모든 민족과 족속을 위한 보편적이며 우주적인하나님 나라를 언급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Q자료는 분명히 보편적 선민사상의 개념 속에서 이해된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셋째로, 완전성 추구를 향한 온전성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이다.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온전하시다. 그의 피조물인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해질 수 있다. 온전해지는 과정을 필자는 선교의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예수 전승이라는 텍스트와 21세기 교회와의 역사적 거리감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선교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마음,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인지하는 것은 직접 계시를 제외하고는 환상과 계시의 통로가 되는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따라서 다르게 표현되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도 달랐다.예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방 민족의 압제에서벗어나 사랑, 평화, 공의를 누리는 샬롬의 나라로 이해했다. 그러기에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묵시적 차원에서 도래할 것으로 믿었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이며 미래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고, 그리고 우주적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본론에서 선교적으로 이해했는데, 그 이해를 현상학적 차원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존재론적의미 차원에서 논한 연구이기에 이러한 내용을 실천의 현장인 선교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과제가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하나님 백성의 선교적 사명과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본질회복에 대한 원리를 발견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본 소고는 신학적 관점에서 선교의 주체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대해 살펴보고, 선교적 해석학의 관점에서 하나님 백성의 존재됨과 사명을 성서적으로 규명해 보는 시도를 기울였다. 먼저 필자는 선교적 해석학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다. 비교적 최근에 발전하기 시작한 선교적 해석학은 성경을 선교적 맥락으로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학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 졌으며 그의 백성에게 어떻게 위임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근거가 되었다. 특히 선교적 해석학이 발전하게 된 중요한 계기에는 20세기 이후 하나님의 선교라는 신학적 개념 정리가 큰 역할을 했는데, 이로 인해 삼위일체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으로서 성자와 성령을 보내실 뿐 아니라 다시 교회를 사역의 대리자로 파송하게 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특권이며 동시에 책무임을 알게 되었다. 그 비밀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을 통해 계시되었다. 특히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맺으신 언약은 그들이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가 되며 하나님 통치의 가시적 상징과 구원의 도구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실패했고,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계승된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임된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분의 선교사로서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특권을 누리는 존재가 되었지만 동시에 모든 민족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서 열방의 빛이 되고(사 42:6) 하나님의 통치가 가시화될 수 있도록 존재해야 했으며, 이를 통해 모든 민족이 주께 돌아오는 사명이 위임되어 있었다. 필자는 선교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두 가지 관점, 즉 존재(being)로서의 선교와 행함(doing)으로서의 선교로 고찰해 보았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은 존재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세상과 구별되는 탁월한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 의해 살아갈 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거류민으로서, 빛과 소금으로서, 대조사회로서, 대안 공동체로서 존재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세상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 한 가운데서 세상과 함께 하며,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시적 증표와 상징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보냄 받은 사도적 공동체로서, 선포와 섬김을 통해 예수의 증인됨을 실천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말로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과 행함을 통해 사회 변혁을 위해 노력하고, 공의와 정의가 넘쳐흐를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헌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상황화된 유연성과 성육신적인 자세를 통해 세상으로 들어가 선교적 삶을 살아내는 것이 백성의 책무 임을 또한 발견하게 되었다.결국, 선교적 교회는 그 구성원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으로서 자기 존재됨을 발견하고, 보냄 받은 백성으로서 선교적 정체성을 실현하게 될 때 역동성을 가지게 된다.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게 될 때만 교회는 갱신되고 새로워 질 수 있음을 기억하고 한국교회가 끊임없는 회심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귀한 도구로 지속적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If a missionary does not fully comprehend the concept of the mission of God, he can be said to live a second or third dimension of a missiological life. Thus, he always worries about what to eat, what to drink, or what to wear, and the mission of God cannot be fulfilled when he is tempted with these worries. The Will of God which constantly processes from the Genesis until present day surpasses the third dimension, meaning that it exceeds a line formed by connecting a dot and dot, the surface formed by these lines, and the space formed through those surfaces. In the midst of this, the Will of God should be comprehended under the universal concept that surpasses the time and space. The writer names this as the Holistic Missio Dei, or something that goes over, for “finite human mind cannot fully comprehend infinite and eternal God.” When the Will of God comprehended under the universal notion is applied to His creatures, the true mission of God can be accomplished. Through this, we can find out every element relating to mission, such as the principal agent, purpose, direction, strategy, and more.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which belongs to the introduction of the Old Testament, clearly demonstrates that God is the agent of mission. In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the subject of every sentence is God. For 32 times, God is expressed in subjective or possessive. Considering that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consists of 31 verses, every verse includes the word ‘God,’ and here, the word ‘God’ indicates Elohim. In this point of view, the Bible and church history clearly demonstrate us that God created the world and that in the midst of this, the Church was developed. The writer acknowledges that “Today’s Salvation,” which was discussed together with conservative mission perspective in the late 20th Century, should be established as the theme of mission. The conservative mission perspective always was ‘God ⟶ Church ⟶ World.’ Yet, as this proceeded to the modern mission perspectives, it was changed to ‘God ⟶ World ⟶ Church.’ In the conservative mission perspective, modern church was always a community of people with callings and an agent of dispatch. Nonetheless, in the mission of God, the agent of dispatch is God the Trinity, and Church is a community that gathers and scatters as Charles Van Engen asserts. The writer perceives that, by going one step further from the conservative mission perspective and by interpreting the mission in a declaration and participation perspective of the Gospel, the true mission can be erecting the church in the world—where Gospel is declared and God exists— and changing the world through Church. The chart based on the comparison of aforementioned mission of God and biblical foundation of the Old Testament with conservative mission perspective illustrates how missionaries should carry out the ministry work in 21st century mission field.Moreover, God’s work of salvation can not be restrained by a continent, cultural characteristic, or group. Thus, the incarnation of Christ or the declaration of Gospel should be accomplished in a place where includes all nations and races, from one person to the whole ethical group and the world. There, people who confess Jesus as Christ the Lord should have a relationship and love in the name of the Lord by establishing a community of faith such as ל (Kahal) or ekv klhsia, and should live for the glory of God by rejoicing in the grace of Salvation. To understand the mission of God, the comprehension of the Gospel is required. The mission which Jesus Christ, who is the Gospel Himself, claims is the mission of God. Jesus Christ had a clear recognition of both the concept of God and the mission of God. Hence, that same God and the mission of God which Jesus comprehended should be appreciated. Jesus Christ perceived God as Elohim. Especially, based on Deuteronomy 6:4, He said,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From the beginning, Jesus Christ incarnated to accomplish the mission of God manifested in Elohim. Philippians 2:6-11 illustrates God the Father who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and incarnated. Jews did not understand Christ who descended to the world with the heart of God the Father. They did not apprehend the heart of Elohim, but rather said, ‘Luke 23:21.’ Christ prayed at the cross, ‘Matthew 27:46.’ Jesus Christ did not pray to God Yahweh but to God the Father Elohim. With the heart of God and through the Will of God the Father, the mission of Christ can be comprehended. The ministry of accomplishing the Will of God the Father, who earnestly desired the salvation of the world even before the Old and New Testaments were determined as Scriptures, is indeed the mission of God.
This article discusses and evaluates the ministry of an American laywoman missionary Mary Fletcher Scranton and her son William Benton Scranton, who founded the JungDong Hospital, SangDong Hospital, AhHyun Church, SangDong Church, and DongDaemoon Church. The writer first starts with the following questions: “How did they define their identity as a missionary?” The writer answers it in terms of their motive to apply for missionary and their direction for mission. Second, “What was their motive, method, and purpose of mission?” Third, “What was the heritage that they bequeathed to us and what lessons can we learn from?” Answering the above questions, the writer concludes missiological implications based on his research. In particular, he provides evidence supporting that Mary and William Scranton, as apposed to other western missionaries during that time era, did not try religious colonialization and did not intend to ingrain the western civilization into Korean society. In spite of the dangers they faced, they entered into Korea with strong aspirations of missions and in concretely have contributed to building the foundation for the evangelization of Korea by planting local churches and hospitals. The biggest contribution of Mary Scranton's ministry was to challenge the sexual discrimination imposed by Confucianist beliefs, by first starting a new school for women, and thus implanting a spirit that women can work cooperatively with men, not as an inferior, but as a partner, with equal rights. With the love of Christ, William Scranton also did his best to care for the poor and the weak by building new hospitals and pharmacies. In a word, Mary and William Scranton chose Korea to actualize their vision for world mission, and lived a successful life as the Christ’s disciples by understanding the history and culture of Korea and by serving for the poor people in Korea. In spite of their just and healthy motives, method, and purpose for their mission, they, like other western missionaries in that era, lacked to provide the missional church model to Korean Christianity. We cannot learn simply out of their deep dedication and desire to develop the missional church in Korea, enlarging the kingdom of God on earth and adapting to the Korean indigenous culture. This deficit came from their lack of missional theology, being simply lay missionaries, the Scrantons lacked the proper educational background in theology. Despite their deep passions, well intended will, and endless love of Christ, they were not able to grasp the bigger picture of the missional theology, thus falling short in accomplishing God's purpose for the Korean people and the world mission.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1952년 이후 세계교회에 처음 등장한 후, 한국은 1969년 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제2차 총회를 “오늘의한국에있어서의Missio Dei”라는주제로열면서공교회의협의체 에 의해 정식으로 도입하였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받아들이게 된 배경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는 NCCK회원 교단들이 주축이 된 도시산업선교(UIM)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UIM이Missio Dei의배경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편, 1960년대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노동환경의 변화, 그에 따른 성장위주의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선교적 대응으로서 Missio Dei를 현재적 종말론적 시각에서 수용한 것이고 다른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과거와는 달라진 한국적 상황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이것을 선교적 과제로 수용한 한국교회의 자의식과 신학적 발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1960년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정치적 참여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한국 교회에는 물론 한국 역사속에서도 이루어져야한다는 강한 의식에서 교회는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수용하여야한다고 주장하였다. NCCK 회원교회를중심으로전개된이러한 노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의 영역이 교회안에 제한되지 아니하고 세계 역사속에서도 계속되어야한다는 인식이 확산됨으로써 Missio Dei신학을 공교회가 받아들이게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끝으로 토착화논의이다. 그 주요 쟁점은 성서전통과 한국문화전통과의 연결성이다. 서남동은 기독교역사 의민중전승과한국의일반역사의민중전승의두백성모두고난의역사로 보고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는 기독교와 한국의 두 민중전승이 Missio Dei 안에서 합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전통문화와 종교와의 대화는토착화논의의중요한주제이며, 1963년Mexico 세계선교와전도위 원회(CWME)의 쟁점이었다. 결국 한국교회의 토착화 논의에는 Missio Dei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Missio Dei’ 이해에는중대한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었다. 1976년 한국신학연구소의 심포지엄에서 ‘Missio Dei’를 지지하는 심일섭과 비판하는 김명혁이 각각 주제를 발표하면서 중대한 오류를 범하였다. 이들은 Missio Dei란 말을 공적으로 처음 사용한 때가 1952 ‘윌링엔’대회이며 ‘호켄다이크’가 주장하였다고 하였으나 대회의 공식보고서나 대회기간중에 사용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Missio Dei는 후켄다이크가 아니라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감독 하르텐슈타인이 처음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NCCK가 Missio Dei를 공식 수용한 총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반응은 거의 없었으나 에큐메니칼 선교에 대한 보수적인 교회들의 비판은 매우 강하였다. 대표적으로 1975 서울에서 개최된 The evangelical Conference for Mission을 들 수 있다. 이들은 “social-political oriented Missio Dei”에 대항하여구속에대한성서적가르침에근거한“Missio Christi”로대체되어 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982년 채택된 “The Seoul Declaration: Toward an Evangelical Theology for the Third World”에서복음주의자들은 서구신학을 비판하면서 고난당하는 자들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해석학을 찾고자시도하였고, 그결과Missio Dei를선언문에서고백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Missio Dei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과제는 Missio Dei를 복음의 토착화를 위한 단초로 삼는것과‘Missio Dei’를한국교회의일치를위한신학적근거로활용하는 것 그리고 ‘Missio Dei’를 성령론적 관점에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The missiological tension with regard to the question of salvation and humanization is dynamic, and it is found in the different perspectives between the WCC camp and Lausanne camp or evangelical and ecumenical camps on the mission. Although the naps are getting narrowed thanks to the holistic missiology, the tension still exists in the Korean context, of which example is the CCK’s case that raised objection against hosting 2013 WCC conference. This paper is, focusing on the holistic feature of humanization and salvation, to provide a missiological base to overcome the problem caused by the discrepancy between K. Barth’s “God’s humanity” and Korean Christians’ inhumanity. It analyses style and patterns of criticism on Korean Christians, and argues that the culprit which causes Korean Christians' humanity to be criticised negatively is Christ-centered and Church-centered attitude of the Korean church, which is Korean evangelical camp’s theological stance. It points out that this is caused by lack of “God’s humanity” which helps Christians remain faithful to their own identity and mission. Therefore it suggests that this problem is solved when Christians acknowledge their own raison d'etre to realize God's humanity, and that by so doing the holistic balance between salvation and humanization is to be achieved. It also suggests ecological system and internet as a sample of holistic mission field which makes the interdependent mission poss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