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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6세기에 제작된 초기 낙중낙외도 병풍의 고찰을 통하여 사방위와 사계절을 결합하여 표 현되는 3차원의 시공간 표현의 기원을 살펴보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사계절의 순환 을 통한 새로운 봄의 시각화는 우주 만물의 순조로운 운행과 이상향을 상징하는 주제였다. 특히 정월은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돌아오는 달로 새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시 기이며, 12달 중에 예축적인 세시풍속이 가장 많이 집중된 달이었다. 이 기념비적인 병풍은 초토화된 교토를 재건하면서 도시의 번영을 기원하고 예축하는 의미를 지녔다. 초기 낙중낙 외도 병풍의 곳곳에 이들의 예축활동이 세밀하게 묘사된 것은 도시도 병풍이라는 매체가 지 닌 예축의 기능에 충실히 부합하는 선택된 화제였다고 생각된다. 16세기의 낙중낙외도 병풍에는 사방사계의 아름다움으로 장엄미를 강조하는 중세회화의 면모와 미시적이고 다양한 인간 양태의 묘사에 집중하는 근세 풍속화로의 태동이 모두 감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8,000원
        2.
        202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examines the social and artistic aspects of the Netherlands in the 16th century, focusing on the paintings of 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a representative Dutch painter at that time. Also analyzed were the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each item of the male populace’s and nobles’ costumes at that point in the Renaissance. The results are as follows: most of the populace’s chemises do not have frills on the neckline and sleeves; the doublet has a loose body and sleeves overall; and the sleeves and armholes are fixed with sewing rather than being detachable, making the epaulet invisible. The neckline of the doublet usually does not have a collar, but it sometimes has a hood. In the case of trousers, most males are shown wearing waist-high stockings, and a piece of cord is visible. It seems that the populace’s coats were mainly Spanish-style capes. The 16th-century Dutch populace’s costumes are imitative—reflecting a desire to emulate the codpieces and hairstyles of the aristocrats—while providing individuality through hats and belts. In terms of practicality, it appears that a knife and pouch were used in various living environments. This trend can be seen as a reflection of populace’s perception of the costume at the time.
        4,600원
        3.
        202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빈 미술사박물관의 중세 소장품 중 인상적인 작품의 하나는 ‘덧없음의 알레고리’를 내용으 로 하는 소위 <바니타스 그룹>이다. 세 인물이 쌍을 이룬 조각상은 젊음의 아름다움과 나이 듦의 노쇠함이 명백하게 대조를 이룬다. 노파의 몸은 처진 가슴, 주름진 얼굴 등 노화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강조되는 반면 젊은이의 피부는 매끄럽고 팽팽하다. 서양미술사에서 노인을 소재로 다룬 경 우는 드물지 않다. 그러나 1500년경 독일 남부에서 벌거벗은 노파를 소재로 한 미술품의 증가는 주목할 만하다. 본 연구는 주름과 불거진 뼈 등 육체적 노쇠함의 징후를 강조하는 ‘추한 여성’을 주제로 다룬다. <바니타스 그룹>과 같은 조각상의 유행과 의미는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관계가 깊다. ‘추한 여성’을 다룬 작품이 당대 지식인과 인문주의자의 서재나 쿤스트캄머를 위해 주문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이다.
        6,600원
        4.
        2022.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글은 선조 17년(1584)과 18년(1585)에 개최된 기영연(耆英宴)을 그림으로 기록한 <선조조기영회도(宣祖朝耆英會圖)>를 중심으로 16세기 사연용(賜宴用) 화준(花樽)과 주 준(酒樽)의 조형 특징을 구명하고, 사연에 있어서 두 종류 준(樽)의 진설 방식과 및 진설 의 미를 고찰하였다. 연회에 등장하는 여러 기물 가운데 준화(樽花)를 꽂기 위한 화준(花樽)과 선온(宣醞)을 담았을 것으로 보이는 주준(酒樽)은 16세기 관요에서 제작된 좋은 품질의 백 자․청화백자로 추정된다. 사연용 화준은 조선 전기 국가 의례서(儀禮書) 및 조선 후기 궁 중연(宮中宴) 관련 기록에서 확인되는 호(壺)와 재질․기형․품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장식에 있어서 문양을 생략하거나 청화(靑畵) 문양이 장식되었을 경우 소재 는 대나무․매화․화당초문 등 화훼문(花卉文) 계통을 채택함으로써, 사연의 설행(設行) 목적을 투영하는 동시에 궁중연 용준(龍樽)과 차별화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선조조기영회도> 에 묘사된 주준용 뚜껑은 입구의 가장자리가 위로 살짝 들려 있는 특징에 기인하여 연엽(蓮 葉)형 뚜껑으로 명명하였다. 연엽형 뚜껑은 국가 의례용기, 가마터 출토품, 전세품 등에서도 공통으로 확인되고 있는 만큼, 뚜껑의 사용처와 용도에는 왕실 및 사연용 주준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16세기 <선조조기영회도>의 화준․주준 진설 방식과 사연도(賜宴圖) 속 진설 방식 을 종합해보면, 16세기 화준은 다양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진설 되지만, 주준의 경우 획일화 되고 고정된 진설 방식을 보인다. 화준․주준의 진설 방식은 연회의 주최자인 왕의 교체, 임 진왜란으로 인한 제작 여건 및 관련 기록 소실로 인한 고증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17세기 이후 점차 변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16세기 사연용 화준․주준의 진설 방식은 18세기 이후 양상과는 상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16세기 기영연에 화준․주준이 모두 진설 되 었다는 사실은 이 연회가 문헌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우대된 사연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근 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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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21.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그리스도의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은 선교 명령이 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는 말씀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말씀이 주어진 때와 상황을 미루어 본다면 선교가 얼마나 기독교 신앙과 교회 사역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 논문은 먼저 초기 기독교 시대에 로마제국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교의 역동성과 방식이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형성된 국가교회 체제에서 어떻게 변질되었 는지를 설명하고,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도 국가교회 체제를 수용했 던 관료의존적 개혁 진영은 선교의 개념과 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점을 지적한 뒤에, 동시대에 국가교회 체제의 청산을 주장하면서 등장한 아나뱁티스트 개혁에서 초기 기독교의 선교 개념과 방식이 회복되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이 글은 ‘콘스탄티누스 전환’이라는 현상과 이를 극복하고자 한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선교적 원천에 대한 설명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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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21.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근대 영어와 영문학에 기여한 대표적인 요인으로 교육혁명과 윌리엄 틴데일의 성경 번역을 들 수 있다. 인본주의와 실용성에 근거한 에라스뮈스의 수사학 이론과 번역된 고전들은 많은 영국 작가들을 위한 토양이 되었다. 이와 같은 환 경에서 교육받은 틴데일은 성경은 모국어로 읽어야 한다는 신학적 동기를 가지고 그의 역서에서 원어의 성경적 의미는 놓치지 않으면서 간결하고도 웅장한 구사를 할 수 있었다. 틴데일 성경에 사용된 다양한 새로운 단어들, 관용구들, 그리고 수사적 장치들은 16세기의 언어적이고 문학적인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틴데일이 없었다면 엘리자베스 시대와 그 이후에 나타난 직설적인 산문체는 물론이고,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당대 영국 작가들의 역동적이면서도 간결한 문어체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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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21.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considered the rite of passage ceremonial food in the Mid-Choseon Period through the rite of passage ceremonies, food, and ingredients recorded in the Seoul Noble Ohhweemun Family Diary Shaemirok. The research used a contents analysis method through case studies. The noble families in the Mid-Choseon Period deemed the Jerye to be the most significant out of the traditional ceremonies. The nobles practiced the Sadehbongsah and the Yoonhweebongsah ceremonies for their ancestors. The Rite of passage ceremony required fruit. Of fish and birds, pheasants were used frequently during the ceremonies. Noble families, specifically the richer families, could sustainably normalize the rite of passage ceremonies against the elements. Seasonal ingredients were generally harvested even during spring and winter in large amounts. One of the last rites of passage food by Garye displayed diverse ingredients, such as Bangaeng, Myun, Tang, Uhyookjuk, Poe, Chae, Hae, and Silgwa. Such ingredients prove that the normalization of rite of passage ceremony food was well established and practiced. On the other hand, the birthday rite of passage food did not conform to a specific rite of passage normalcy or preparation. Instead, the birthday food showed a flexible menu of seasonal delicacies that were not confined to a particular traditional form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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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20.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examined the document Shaemirok, which recorded the daily lives of people from Jangsoo (長水), Junrado to Pyeongang (平康), Gangwondo, from 1591 to 1601. This book represents the mid Josun dynasty Noble Lineage's diary together with Muk-Jae (默齋日記). This study analyzed the Shaemirok of Noble lineage’s seasonal food and traditional Korean food through the lens of the Shaemirok. The Shaemirok recorded that Josun people practiced the Julsa (節祀) and Julshik (節食) during the spring, as follows: Sakil (中和節) five times on February 1, Dapchungil (Samjiknal) six times on March 3, Hanshikil five times on March 8, and Deungsuk (Chopile) three times on April 8. Samjiknal on March 3, which is mentioned six times, is the spring Julsa and Julshik that show up most frequently within the Shaemirok’s records. The Shaemirok recorded that Josun people, practiced the Julsa and Julshik during the summer, as follows: Danyang (Danoh) eight times on May 5 Youdoojul six times on June 15, Chilsuk five times on July 7, and Bakjoong five times on July 15. Dangohjul on May 5, which is mentioned eight times, is the summer Julsa and Julshik that show up most frequently within the Shaemirok’s records. The Shaemirok’s author recorded Julsa and Julshik practiced in the autumn eight times annually. Joongangjul, which is mentioned six times, is the autumn Julsa and Julshik that show up most frequently within the Shaemirok’s records. Shaemirok recorded that Josun people practiced the Julsa and Julshik during the winter, as follows: Dongji during November, Sul on January 1, and Daebohrum on January 15 Dongji and Sul, Daebohrum are mentioned eight and seven times, respectively, in the Shaemirok. The people of the Four Main Families of the mid-period Josun practiced more Julsa and Julshik in the winter than in any other season. The Josun people stored the most food during winter, thus had the highest abundance of food. This seasonal factor explains Dongji and Sul, Daebohrum’s unusual frequency with which they were celebrated.
        4,600원
        10.
        2014.04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studies how the continuity and uniformity are achieved in the 16th century polyphony through the imitation technique and cadential formula. Usually imitation technique is needed for the beginning and cadence for closing in the polyphony texture but these two are overlapped in inner cadences thus producing meshed opening and ending in progressions. Cadence is a device for bringing a pause or a close in a section. In spite of that inner cadences should produce a double effect of termination and continuity before the final cadence in order to show coherence. In this sense intensity is important in inner cadences. Imitation is a tool for repetition. Imitation in perfect interval according to hexachord system confrims the fact that “a melody” is repeated by several voices in different register. Sharing a melody denotes uniformity while voices beginning in various time difference represent continuous flow of time. Imitation happens at the beginning of a phrase but it overlaps with the cadence of the previous phrase creating a continuity naturally between two phrases.
        6,900원
        11.
        201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establish the identity of Korean traditional food based on the recorded food preferences during the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Our primary source in this regard was the invaluable, historical document called the "Miam's diary." This important document reveals details of such food preferences from October 1567 to September 1568. By analyzing the income-expenditure trends of virtually every household, this diary was used to describe a vivid traditional food preference of the people during that period. A detailed analysis of the diary reveals the summary of families' characteristics in the 16th century. First, it records the fact that expenditure on food was mainly based on stipend and gifts received. The type of food preferred by the people was diverse in nature; for it included rice, bean, chicken, pheasant, and seafood. However, there were dried or pickled forms too so as to prevent them from undergoing decay. Second, it throws light on the fact that people expended food mainly as a salary for servants. People utilized the income from selling such food items to purchase goods and land. They also used the same either to donate for a funeral or wedding purpose. Third, it records the fact that day-to-day purchase of groceries was mostly based on gift(s) for someone close to them such as a neighbor, colleague, relative, or student. Further, such gifts included small groceries, food items, and clothes. Fourth, based on the data available in the diary, it seemed likely that the gentry families laid emphasis on the customary formalities of a family dating back to as early as the late 16th century. Finally, the document also records the fact that noblemen of the Chosun Dynasty had a notion that they had to extend warmth and affection by presenting generous gifts to their guests at home. Noblemen during that period were very particular in welcoming their guests as they believed that this approach alone would testify their status as noblemen.
        4,500원
        12.
        2011.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underwear design shown in historical dramas set in Europe between the 16th and the 18th century, woman's bodies were highly restricted, in order to analyze the symbolism of the movie costume and provide basic data for the future education of the department of movie costume design. For a study method, literature relating to movie costumes and underwear as well as captured images from 29 historical dramas set in Europe between the 16th and the 18th century was reviewed. Among them, data from 17 movies where underwear and crinoline were observed was analyzed. Historical movies, set in the 18th century Europe exposed underwear more frequently and decisively than movies set i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For the figure wearing underwear, its expression effect was maximized by the implication function of costumes. Underwear can easily express the time and space background and symbolize the character's social and economic position, attitudes, and values. In addition, the exposure of underwear can reveal characters' internal expressions, such as mental status, taste, temper, intention, mood, time and space display. The result of observing the underwear shown in movies reveals that underwear plays a subjective role in expressing ideal femininity as a woman of a particular age, modesty, social position symbolism and eroticism that depended on the situation. It is expected that the study will provide an opportunity to reconsider the function of underwear, which is different from the meaning of costume history, and its role as a means of communication by considering the change of underwear by age.
        5,100원
        13.
        2009.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More than a century before Grotius wrote his famous work on international law, his countryman Desiderius Erasmus of Rotterdam laid the foundations for the modern critique of war. In several writings, especially those published in the period 1515- 1517, the “prince of humanists”brilliantly and devastatingly condemned war not only on Christian but also on secular/rational grounds. His graphic depiction of the miseries of war, together with his impassionate plea for its avoidance, remains unparalleled. Erasmus argued as a moralist and educator rather than as a political theorist or statesman. If any single individual in the modern world can be credited with“ the invention of peace,”the honour belongs to Erasmus rather than Kant whose essay on perpetual peace was published nearly three centurie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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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aim of this study is to achieve a better theoretical comprehension of the 16th century music. The "modal theory" is a problematic term of Renaissance discourse about music. The 16th-century modal theory drew upon and was synthesized with diverse theoretical traditions. The aspects of modal theory that are most directly concerned with a tonal structure are discussions of modes and counterpoint. In this vein, a mode is not only a music-theoretical construct, an inherited category in a fixed set of categories, but also a tonal type in 16th century music that forms a music-analytical construct. Many changes in modal thought resulted in tensions that are reflected in 16th century theoretical writing, musical composition, and editorial practice. A general trend in 16th-century printed collections was from less tonal ordering to more, and the organization of cyclic sets became more and more common according to modal schemes as the century went on. It is important that major composers of the second half of the century adopted the old system of 8 modes. It centers round the compositions and theoretical writings of Gioseffo Zarlino (1517-90), the most famous theorist of the 16th century. Zarlino adopted Glarean`s nomenclature, including the aeolian and ionian modes. Thus, motet, "Ego veni in hortum meum"-which Zarlino had composed a representation of mode 5 in Canticum Canticorum (1540), labeled as ionian in his 1549 motet print, and mode 11 in the 1558 edition of Le istitutioni harmoniche, and mode 1 in the Dimonstrationi harmoniche (1571). This is a fair representation of multi-faceted situation that held away from the 1570s well into the 17th century. A particular 16th century tonal type has evolved into a particular 17th- century and 18th-century tonality.
        6,600원
        15.
        200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Honam region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development of Korea poetry. So this study focuses on Song Soon among various factors of Honam architecture in 16th century. He was ahead of his times in development of Korean literature, and made buildings that become background and materials of his literature. Song Soon built Myonang-jong in Damyang for his life time and tried to design to pull in nature into his buildings. These buildings were built in beautiful landscape, and showed elegance as a retired scholar and Taoism characteristics. He provided basic ideas, that is, pulling in nature into architecture, and metaphysics morality, and his ideas also influenced Honam School Including Jung Chul. This study looks into Nujung architecture that had become materials of Myonang-jong Song Soon literature and characteristics of Honam architecture through his buildings at the same time.
        4,200원
        18.
        2020.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한국교회사학회지」에 게재된 16세기 교회사 관련 논문 78편 을 분석하고 평가했다. 1979년 창간호부터 가장 최근인 2019년 8월까지 모두 53권이 발간되었다. 이 53권에는 모두 425편의 논문이 실려 있는데, 16 세기 교회사 관련 논문이 78편으로 18.35%에 해당한다. 이 78편의 논문은 모두 16세기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다루고 있으며, 대부분 그 핵심 인물 몇 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루터 관련 연구가 43편이고 칼뱅 관련 연구가 15편이다. 이러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나서 본 논문은 16세기 교회사와 관련된 연구 영역이 크게 확장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향후 연구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19.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잔 달브레는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 시기에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나바라 왕국의 통치자이자 베아른 종교개혁을 이끈 위그노 지도자이다. 로마가톨릭을 신봉하던 프랑스 왕실에서 어머니 마르가리타 당굴렘에 의해 프로테스탄트로 자란 잔 달브레는 다른 왕족 여성들과 달리 공개적으로 프로테스탄트임을 드러낸 보기 드문 의지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프로테스탄트 성향의 가정교사에게 교육 받은 잔은 10대 시절 두 번의 정략결혼이라는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20대에 꾸준히 프로테스탄트들을 도우며 종교개혁자들과 교류하다가 32세에 테오도르 드베즈로 대표되는 칼뱅주의자들의 영향으로 공개 개종을 했다. 이후 자신의 영지 베아른에서 입법과 제도 개혁을 통해 종교개혁을 단행하며 프랑스 위그노 중 가장 높은 위치에서 종교개혁운동을 이끌던 잔 달브레는 오르테즈 아카데미 설립, 성서 번역, 앙리 4세 등 많은 영적 유산을 남겼다. 본 논문은 종교개혁사가 기억해야 할 잔 달브레의 생애와 활동을 프로 테스탄트 통치자와 프로테스탄트 신앙인이라는 두 측면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잔이 어떻게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는지를 기술할 것이다. 이후 프로테스탄트 통치자 잔을 조명하기 위해 ‘베아른 교회법령’에 나타난 베아른 종교개혁과 잔의 국가관을 분석할 것이다. 프로 테스탄트 신앙인 잔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1563년 잔과 다르마냑 추기경이 주고받은 편지, 1568년 작성한 『충분한 설명』 속 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일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종교개혁자이자 프로테스탄트 통치자인 잔 달브 레를 개혁사에 각인시킬 뿐 아니라 프랑스 종교개혁에 미친 잔의 영향력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20.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마리 당티에르는 16세기 종교개혁이라는 대격변의 시기에 자신이 옳다 고 믿는 진리를 온몸으로 외치며 살았던 평신도 여성 개혁자였다. 마리는 한편으로는 오직 성서의 원리에 근거하여 로마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신학과 실천을 비판하고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대안으로 제시한 종교개혁자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만인제사장 원리에 기초하여 남성중심적인 기존 질 서에 대항한 여성 권리의 옹호론자로 아마도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이 마리는 프로테스탄트 신앙과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이중의 개혁”을 주창하였다. 필자는 먼저 마리 당티에르가 활동했던 16세기 제네바의 역사적 상황을 개관할 것이다. 당시의 제네바의 역사적 맥락을 아는 것은 마리의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필자는 마리의 대표적 저술인 『편지』에 주목할 것이다. 『편지』의 배경, 내용, 중심사상 등을 살펴보면서 마리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인 동시에 페미니스트였음을 논증할 것이다. 또한 제네바의 대표적 개혁자였던 칼뱅과 마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마리 당티에르라는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함으로써 그동안 묻혀 있던 16세기 여성 개혁자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종교 개혁을 보다 온전하고 균형 있게 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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