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주역』의 상(象)과 사(辭)에 초기 주인(周人)의 풍수관이 어떤 양상으로 존재 하며, 후대의 풍수사상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 시원적 요소가 있는지 실상을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배경이 되는 풍수는 주나라의 초기 근거지인 관중평원과 극상 이후 조성된 낙읍 등의 지세와 산세, 수세 등이다. 아울러 『주역』의 서사에 은주교체기의 역사적 상황 이 반영되어 있다는 역사적 관점의 해석을 논증의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주역』의 인식체계는 천지자연의 순환 이치를 집약하고 있는 ()과 (─)의 상징 부호 가 바탕이며, 그 외관인 괘상은 자연계를 구성하는 여덟 가지 물상과 맞물려 있다. 괘상은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인 물상을 통해서 인문세계의 다양한 담론을 전개하며, 물상은 괘상을 통해서 무심한 자연물에서 벗어나 인문적 철리를 밝히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체계는 자연과 인문의 조화를 모색한 풍수 관념과 다르지 않다. 괘상과 물상의 조화가 빚어내는 역리(易理)는 주인의 자연주의 세계관이 바탕이며, 풍수 이론의 근원으로 보기에 도 부족함이 없다. 주인의 풍수관은 건국(建國)의 대강(大綱)을 밝힌 둔괘와 주인의 중행(中行)을 말한 태괘의 서사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주족의 흥기는 근거지인 관중평원을 감싸는 험준한 산 세와 유장한 수세에 의지한 결과임을 말하고 있다. 이는 산용(山龍)과 수룡(水龍)이 호응하 여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 길지에 터 잡으면 인문이 흥성해진다는 풍수 관념과 부합한다. 풍수의 중요한 요소인 상택과 정택은 태괘 구삼에서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효사 ‘于食 有福’은 ‘식묵(食墨)’의 점과 관련이 있으며, 「낙고」 편 중에 주공이 낙읍을 동도(東 都)로 결정할 때 근거로 삼은 점사(占辭) ‘洛食(낙 땅이 길하다)’과 같은 표현임을 논증했 다. 따라서 구삼 효사는 낙읍의 풍수를 인문적으로 통찰한 가운데 건설에 동원된 사람의 노 고를 위무하는 말임을 추단했다. 동북방을 기피(忌避)하는 귀문회피(鬼門回避) 관념은 대륙의 동북방에서 흥기하여 끊임없 이 중원을 침탈했던 귀방(鬼方)과 직접 관련이 있다. 또한 관중평원의 동북방인 요하 유역 에서 기원한 상족에 대한 주인의 부정적 인식이 근저에 있으며, 곤괘의 괘사 ‘西南得朋, 東北喪朋’에 실상이 나타나 있다. 동북방의 기마 유목민족의 재앙적 침탈과 동북방을 존 숭하는 상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이 맞물려 ‘귀문’의 개념을 생성, 회피하는 관념을 낳 았으며, 『주역』 서사 중에 근원이 있음을 논증했다. 사신사는 자연물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은 원시인의 경험과 인식이 맹아이며, 신석기 시 대의 신관인 토템에서 존재성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무축세계의 신화를 벗겨내고 인문 적 신성으로 변모하는 실상이 『주역』 서사에서 확인된다. 또한 상대에 정립된 사방신과 전령인 풍신에 대한 숭배의식이 관중평원의 산세와 연계됨으로써 사신사의 관념을 배태하 는 풍수 공간이 열렸을 것으로 추단했다. 결론적으로 『주역』의 상과 사에서 확인한 주인의 풍수관은 후대의 풍수사상과 밀접하 며, 자연과 인문의 회통을 중시한 주인의 세계관이 풍수의 이론적 토대 형성에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았다.
본 연구는 신라 말의 불교 중심 지배체제가 초래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고 려 전기에 풍수가 불교를 견제하는 정치도구로 재편·작동한 과정을 정치문화사 적 관점에서 규명한다. 분석 범위는 신라말 고려초에서 명종대까지이며, 핵심 자료로 「훈요십조」 제2조 검토와 예종대 편찬 「해동비록」의 편찬의미를 검토하 였다. 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풍수는 불교적 성역의 입지 논리를 국 가의 국토 관리 논리로 치환하며 공간 해석권을 교단에서 국가로 이전시켰다. 둘째, 「훈요십조」 제2조는 도선 전승을 매개로 사찰 창건을 풍수의 원리에 종 속시켜 불사 남설을 억제하고 지덕(地德) 보존이라는 국가 논리를 정착시켰다. 셋째, 예종대 「해동비록」 편찬과 잡과의 지리업 운영 등 제도화·관료화를 통해 풍수의 해석권이 표준화되면서, 왕권은 공간권을 독점하려했다. 넷째, 풍수적 판단은 산형·수계·방위 등 가시적 물리 조건을 근거로 하여 불교의 초월적 권위 에 대한 세속적 대안 기준을 제공했고, 국가는 이 기준을 통해 사찰 정비, 도성· 능묘·행차 정책에 개입하였다. 다섯째, 풍수 지식인은 독자 교단을 형성하지 못 한 채 국가 관료체계에 편입되어 통제 가능성이 높았고, 이는 왕권이 필요에 따라 풍수 논리를 선택·조합하는 협상력을 부여하였다. 결론적으로 고려 전기의 풍수는 “보조 이론”을 넘어 왕권이 불교의 과잉 팽창을 억제하고 국가 공간질 서를 재편하는 데 동원한 통치 언어이자 행정 기술로 기능하였다. 이는 불교가 독점하던 공간 해석권의 국가 이전이라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하며, 고려 정치 문화의 권력 균형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본 논문에서는 동아시아 전통의 입지이론인 풍수 이론과 서구의 정원 도시 이론의 유사점을 비교 분석하고, 풍수가 지속 가능한 도시 계획에 있어 기여할 수 있을지를 살 펴보고자 한다. 풍수는 현대 도시 개발에 있어서 크게 활용되지 못하였는데, 풍수의 모 호한 주관성과 1900년대 이전까지 역사적으로 풍수가 묘지 선정에 집중적으로 활용되 어 미신으로까지 취급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풍수를 주거 공간과 도시 계 획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편, 산업 혁명으로 인한 도 시와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에벤에저 하워드가 고안한 정원 도시 모델은 그 핵 심 원칙에 있어서 풍수와 유사점을 보인다. 이러한 공통 원칙에는 도시와 농촌 공간 간 의 균형, 도시 중심지에 중요한 시설 배치, 자연 경계를 활용한 도시 팽창 억제, 환경친 화적인 교통 네트워크 등이 포함된다. 두 이론 모두 사람과 환경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현대 도시 개발 이론과의 이러한 공통점으로부터 풍수가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에 있어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함을 알 수 있다.
한반도의 풍수 유래는 신라 말과 고려 초 시기에 걸쳐 도선이 중국의 풍수 를 한반도에 전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여러 기록들에 따르면 중국에 서 풍수가 전해지기 전에도 한반도에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고유의 자생 풍수가 있었다고 한다. 경주분지 일대는 한반도 고대국가 진한(辰韓, BC 1~AD 3) 소국(小國)의 하나로 신라(新羅)의 기원이 되는 사로국(斯盧國)이 자리하였던 곳으로, 이어 신라가 천년왕국을 유지하는 데에 경주의 자연 지리적 환경이 큰 영향을 미 쳤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경주분지와 주변에는 풍수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고대인들이 자연을 영위한 유적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신라의 수도 경주에 남겨진 한반도 고유의 풍수적 유산 을 살펴보면서, 중국 풍수 이전에도 풍수적 요소가 한반도 고대인의 삶에 반 영되었으며, 신라왕국의 변천,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본 연구는 제주 지역에 산재한 방사탑을 풍수적인 측면에서 해석하고 이를 육지 돌탑과의 비교를 통해 제주 방사탑이 가지는 지역적 특수성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제주 6개 지역의 17개 방사탑을 사례로 하였다. 연구결과 첫째, 육지 돌탑은 각종 재앙의 방지, 보허, 수구막이, 조산, 형국 보완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지만, 제주 방사탑은 보허와 재액방지 등 그 기능 이 비교적 단순하였다. 둘째, 육지 돌탑은 숲이나 나무 등과 혼합된 형태의 비보양상을 보이지만 제주방사탑은 탑 자체만 존재하였다. 셋째, 방사탑의 위 치가 포구가 아닌 마을의 경우 육지와 유사하게 마을 입구에 존재한 반면, 포 구에 위치한 방사탑은 포구 자체를 마을 입구로 상정하고 세워졌다. 넷째, 육 지의 비보가 숲, 돌탑, 연못, 조산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제주 방사탑은 탑만이 존재하는 단순성을 보였다. 다섯째, 육지돌탑은 마을 내부의 기운 이 누설되는 것을 방지하고, 외부의 사기(邪氣)가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등 양면성을 보이고 있으나, 제주 방사탑은 외부의 사기가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 는 것이 주목적인 단면성을 보이고 있다. 여섯째, 육지 돌탑은 비보와 아울러 제의(祭義)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제주 방사탑은 제의기능이 없는 비보기능만이 존재하였다. 이는 결국 육지에서 제주지역으로 유입된 돌탑비 보가 제주지역의 지역적 특수성에 의해 선택적으로 또한 해당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적용된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반도 풍수에서의 비보 역시 제주 지역으로 대표되는 특정 지역에서는 지역적 특수성에 있으며, 이는 풍수적 불 완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제주인들의 풍수적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correlation between the causes of natural disasters and feng shui factors targeting disaster management experts, feng shui experts, and the general public who are interested in feng shui. To this end, it is intended to reveal that the factors of the disaster at M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impact of three factors on disasters: feng shui factors, natural factors, and social factors. To this end, a survey was conducted targeting feng shui experts, disaster management experts, master's and doctoral students in feng shui geography, residents of the Umyeonsan disaster area, and people interested in feng shui geography. 260 copies of the questionnaire were prepared and 248 copies were used for the final analysis. First, in order to analyze the impact of feng shui factors on awareness of disaster occurrence, after controlling for demographic variables, hierarchical multiple regression analysis was conducted to analyze the impact of feng shui factors on awareness of disaster occurrence. Second,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effect of natural factors on awareness of disaster occurrence, looking at each independent variable in the second-stage regression analysis. Third,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effect of social factors on awareness of disaster occurrence, looking at each independent variable in the second-stage regression analysis. Finally, as a result of the T-test and Anova analysis conducted for discriminant analysis, if the p-value was less than .005, the F value for each group was obtained as a result of the ANOVA analysis on the feng-shui factors
Mt. Umyeon is a low-altitude mountain near a residential area, and the actual forest area is not large due to the fact that development for use as a living green space is being completed and in progress across the mountain, so the buffering action for landslides was weak. The unit was located at the top of Mt. Umyeon, and there were reports of contents related to the military unit in some accident areas. Some experts suggested that the landslide that started on the cut side of the unit could be one of the causes of the landslide at Mt. Umyeon. It is presumed that there was a sudden collapse of trees that had fallen due to erosion inside the valley. In the case of the Umyeon landslide, localized torrential rain is the biggest cause, but the fact that it suffered a lot of damage is the result of no preemptive measures. In particular, it can be said that the damage was caused by the concentration of residential and commercial facilities due to the unplanned urban expansion without prior review of the feng shui geography of settlement areas. The important lesson we have learned is that we should recognize nature as living things and live in harmony and coexistence between humans and nature through understanding and cooperation. Adapting to changes in the environment can survive, but if it doesn't, it will be slaughtered. As such, geography influences changes in feng shui. Changes in feng shui have a profound effect on not only humans but also the natural ecosystem.
물은 인간 생활의 필수요소임에 따라, 물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의 전통 적 공간관인 ‘풍수(風水)’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이에 연구는 풍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물’의 논리를 지리학의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특히 연 구는 ‘물은 재물이다(水管財物).’와 ‘기는 물을 만나면 멈춘다(氣界水則止).’의 논리를 중심으로 지리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구체적으로 연구는 ‘수관재물’ 논리에 대해 농업 및 상업의 두 측면에서 분석했고, ‘기계수즉지’논리에 대 해 지리학의 ‘곡류 목 절단 지형’과 비교 분석을 했다. 연구결과, 농업의 측면에서 전통 농경사회에서 빗물의 안정적인 확보와 이용은 농사와 직결되었고, 이는 물이 곧 재물이라는 인식으로 발달되었 다. 상업의 측면에서 물이 모이는 곳은 곧 재물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곡 류 목 절단 지형의 경우, 연구는 땅의 기운(地氣)을 멈추게 하는 물줄기(水) 로서 구(舊)하도와 현(現)하도 중 현하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함을 밝혔다.
부석사는 676년 의상이 창건한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서, 2018년 유네 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건자인 의상은 신라 통일기 입당승으로서 풍수에 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부석사의 창건과정 및 설화에는 풍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런 배경에서, 본 연구는 풍수의 관점에서 부석사의 입지 및 가람배치의 특 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부석사의 입지는 풍수의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길(吉)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특히 기도 도량에 적합한 입지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부석사의 가람배치를 대표하는 두 가지 특성인 여러 단의 석단과 굴 절된 축선은 부석사가 자연지형에 최대한 순응해 건축물을 배치한 결과로 해 석되며, 이것이 무량수전 및 범종각 영역이 각각의 안대를 갖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현장연구 그리고 정원주와의 인터뷰를 통해 임실 삼계면에 소재한 노동환(盧東煥) 가옥과 정원 특성을 살핀 것이다. 가옥의 조영역사, 정원배치와 상징미학성 그리고 사랑채에 부속된 화석원(花石園)의 의미 발굴을 통한, 전통정원의 조명을 목적으로 시도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노동환가옥은 소유주의 8대조 오류처사(五柳處士) 노엽(盧燁)이 1760년에 집터를 골라, 1775년에 건립한 것으로 도연명의 귀거래 정신과 백세청풍의 마음을 담아 오류정사라 당호(堂號)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에 게판된 ‘정양사(靜養舍)’ 편액을 볼 때, ‘오류정사’ 또는 ‘북계정사(北溪精舍)’로 명명되어 강학과 성정 도야의 공간인 사랑채는 후대로 오면서 ‘치유의 집’이라는 현실 개념이 보다 강화되었다. 한편 ‘연소형(燕巢形)’과 ‘사두형(巳頭形)’이라는 형국의 긴장감 속에 대립적이며 상호보완적인 가옥과 주변의 풍수지리적 관계는 노동환가옥과 정원에 비보(裨補)와 염승(厭勝)이 담긴 핵심적 상징미학성이 되고 있다. 사랑채 전면에는 3단의 화계 위에 화석원을 조성하였다.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수양 및 풍류의 공간인 이곳에는 사랑채 마루 정면으로 ‘화석(花石)’이란 암각(巖刻)을 중심으로 괴석을 놓았다. 현존하는 화석원의 형태와 사랑채에 게판된 「북계정사기(北溪精舍記)」로 유추해 볼 때 화석원은 중국 당나라 이덕유(李德裕)의 평천장(平泉莊)을 본뜬 치석형(置石型) 석가산으로 판단된다. 또한 ‘화석’은 ‘한 송이 꽃과 돌’을 총칭하는 상징어이자 초건자의 유지를 받들어 가옥과 정원이 자손 대대로 유지되기를 당부하라는 유지를 담은 정원시설물로 풀이된다.
원대(元代)의 몽골 왕조는 한족의 전통문화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수용했다. 송대의 전통 지식체계였던 풍수지리는 원대의 수도 입지론으로 발전되었다. 원의 대도는 풍수지리 형기론을 바탕으로 길지로 판단되었다. 원과 대도 건립에 공헌한 한인(漢人) 유병충은 음양학에도 정통하여. 『옥척경(玉尺經)』을 남겼다. 『옥척경(玉尺經)』에서는 형기론, 이기론을 체용과 겸용의 관계로 상정했다. 『옥척경(玉尺經)』의 풍수론은 명청대 풍수론의 중심에 있었고, 조선시대 풍수학 관료들의 연구 학습서의 내용으로 이어졌다. 원대의 풍수지리는 수도입지론으로 활용되었고 음양학은 관학이 되었으며 음양학 과시서의 주요 내용은 풍수지리였다. 원대 음양학(陰陽學) 과시 시행 은 집현원(集賢院)에서 감독했고, 정식 학교를 설치하여 전문 음양학 관료들을 양성했다. 원대 과시서의 풍수이론은 형기론, 이기론, 선택론, 풍수 각론 등 다양했다. 풍수지리는 지배계층의 전폭적인 신뢰로 사회 전체에서 유행되었으며, 지나친 유행으로 폐단이 심해지자 정부에서는 법률을 제정하여 폐단을 엄금했다. 원대의 풍수지리 연구와 발전은 고려, 명, 청, 조선시대 풍수학 연구와 발전의 계기로 작용했으며, 풍수지리가 수도입지론, 도시계획으로 정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원대의 풍수지리는 호한(胡漢) 문화의 성공적 융합 결과이며, 전통 지식체계의 확산은 동서남북 문화 교류가 촉진되는 발판으로 기능했다. 풍수지리는 대도를 거쳐 북경의 고궁으로 계승되어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귀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