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신라 말기 문학 서예 역사 철학 등에서 매우 뛰어난 인물로 특히 우리나라 서예사(書藝史)에 큰 족적(足跡)을 남긴 거목이다. 최치원에 대한 시 문학과 사 상. 정치. 철학. 종교 등에 대해 많은 연구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는 서예의 대표작으로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와 『숭 복사비(崇福寺碑)』를 남겼고 시문집으로 『계원필경집(桂苑筆 耕集)』과 『고운집(孤雲集)』등 많은 문헌을 남겼다. 이처럼 그는 인문학적으로 깊고 넓은 학풍과 문학적인 정감을 갖춘 문 장가이며 사상가이며 또한 서예가이다. 본 고에서 논하는 <진감선사비>는 885년에서 887년에 세워 졌다. 본 비문은 학문적 자료 가치가 매우 높으며, 특히 한국의 불교사는 물론 한문학사. 서예사. 사상사에 연구 대상이 되었 다. 더욱 <진감선사비>의 독창적인 전액(篆額)은 수준 높은 경 지를 보여준다. 이는 당(唐)나라에 머물렀던 17년 동안 모든 서 예를 섭렵한 결정체라고 할 것이다. 아울러 <진감선사비> 전 액에서 <설문해자>와 <한간>, <삼체석경>의 조형을 벗어나 오늘날 서예의 한 장르를 창조했다. 이미 1200여년전에 외형적 문자 조형에 깊은 조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특한 최 치원 체라고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서풍을 탄생시킨 것에 큰 의 의를 둔다 그러므로 본 고에서는 서예가로서의 최치원의 <진감선사비> 를 분석하여 서예미를 논하였다.
본 글의 목적은 5·18 광주민중항쟁기 시민군 내부에서 벌어졌던 치열 한 노선경쟁(‘무장해제 협상’ 대 ‘무장 협상’ 그리고 ‘무장해제 투항’ 대 ‘무장 최후항전’)에 초점을 맞춰 무장 협상과 무장 최후항전을 선택한 윤 상원과 시민군들의 저항정신을 ‘공화주의적 애국심’으로 설명하려는 데 있다. 즉, 본 글은 광주항쟁과정에서 윤상원이 시민군 노선을 취하게 되 는지에 대한 과정 그리고 시민군의 실체에 대해 사례를 분석하고, 그것 의 의미를 공화주의적 애국심과 연관시켜 살펴보고자 한다. 윤상원과 함 께 싸웠던 동료시민군이 ‘공동의 자유공간’을 지키기 위해 보여줬던 사 랑, 헌신, 연대를 공화주의적 애국심으로 분석하였다.
Weevils are known as economic and agricultural pests. Additionally, many entimine beetles are also known to cause harm in agriculture. On the other hand, soil-dwelling entimine beetles are known as detritivores, feeding on leaf litter and contributing to soil decomposition. The subfamily Entiminae is the largest group among the family Curculionidae. The genus Asphalmus Sharp comprises 45 species, with only two species [Asphalmus japonicus Sharp and Asphalmus kostali Borovec] recorded in Korea, while the rest are found in Japan. All these species are known as inhabiting leaf and soil litter. While examining of entimine specimens, we distinguished 20 specimens that do not share diagnostic characters with existing Asphalmus species. New species can be identified by the following characters: Reddish-brown body color, elongated body form, absence of teeth on all femora, and the form of male genitalia and female spermatheca.
During the initial construction of Won buddhism, the sound absorbing material and diffusion material were used in the interior of the Won buddhism, so the sound performance at each buddhism could not be secured above a certain level, and even in the case of the Won buddhism Bukil dharma hall, the reverberation and volume of the sound generated inside the sanctum was too loud, and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buddhism continued to be dissatisfied, the improvement of the acoustic performance was very urgent. From this perspective, this study measured acoustic performance of the Bukil dharma hall before remodeling, determined the acoustic defects and status, and used acoustic simulation to present three plans for improving acoustic performance. Taking economic feasibility, construction, and construction duration into account, remodeling was performed on the basis of Plan 1 and post-remodeling acoustic performance was measured for comparative analysis of acoustic performance between before and after the improvement. The results of study, before and after sound performance improvement sound pressure level (SPL500Hz) was 71.9dB at 79.4dB , the weighted sound level (SPLdB(A)) was 79.7dB(A) at 89.4dB(A), reverberation time (RT500Hz) was 1.12sec at 1.49sec, early decay time (EDT500Hz) was 1.39sec at 1.63sec, definition (D50,500Hz) was 34.9% at 32.3%, clarity (C80.500Hz) was 1.0dB at –0.4dB, and RASTI was 60.0%(“Good”) at 51.3%(“Fair”) was evaluated. Therefore, the Bukil dharma hall was after remodeling, neither definition(D50) improved notably but excessive volume and reverberation and sound mixing almost disappeared and acoustic performance improved so much that many different events and services could be held.
댄스뮤직이 케이팝의 세계적 성공과 한류의 확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국 댄스뮤직의 역사에 관한 출판기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강원래․박성건의 댄스: 한국 댄스뮤직 100년사는 1930년대로부터 시작하는 한국 댄스뮤직의 과거와 현재를 자세하게 상술하고 있다. 비록 각각의 시대마다 기득권 세력의 형태는 다를지라도, 댄스뮤직은 일제강점기, 군사독재 시기, 근대화 시기를 거쳐 기득권이 제도로서 ‘장치’로 작동시키는 ‘실정성’에 대항하여 대중이 저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원시종교의 의례적 측면을 반영해왔다. 댄스뮤직 가수나 그룹은 의례의 주관자로, 특정 가사를 반복하는 훅송이나 신명 나는 음악은 주문이나 기도로, 노래의 전체를 핵심적으로 표현하는 포인트 안무는 의례 중의 핵심 의례로 해석될 수 있다. 댄스뮤직은 부지 간에 사람들에게 정치적 영성과 초월적 영성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방탄소년단의 대유행에서 나타나듯이, 댄스뮤직의 신성한 예술로서의 승화는 케이팝의 대성공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1950년대에 종합적 유해생물관리(IPM)의 개념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1960년대에는 경제학적 개념이 해충방제에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종합방제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병해충 종합방제에 관한 연구는 1970년대 감귤해충에 대한 종합방제연구와 통일계 품종의 보급에 따른 수도해충종합방제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사과 병해충종합관리 연구는 1980년대 화학 농약을 이용한 방제 및 약제 저항성 연구, 해충 및 천적생태에 대한 연구, 성페로몬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1990년대부터는 농가보급을 위한 IPM 연구사업과 현장실증사업이 병행되었다. 2000년대에는 교미교란제를 중심으로 한 해충예찰과 발생모형 개발, 해충에 대한 DB 프로그램 및 정보공유를 위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2010년대는 무인예찰 및 자동화기술 개발을 통해 IPM 기술이 확장되고 있다.
만은(晩隱) 이규원(李奎遠)은 조선 말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성오(星五)이다. 1851년 19세의 나이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고 되면서 함경도(咸鏡道) 단천부사(端川府使), 경기도(京畿道)의 통진부사(通津府使) 등 지방관(地方官)을 지냈다. 1881년 일본인이 울릉도(鬱陵島)에서 벌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되어 울릉도를 수토(搜討)하였다. 9일간의 조사를 통해 『울릉도외도』와 『울릉도내도』지도를 그려 고종에게 바쳤다. 그의 치적(治積)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제주목사로서도 역사의 한페이지를 남겼다. 1891년 8월 찰리사(察理使) 겸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임명된 이규원은 제주의 안정에 힘을 쏟았다. 일본인들의 어업을 금지하고 민생 안전에 주력하였다. 1894년에는 군무아문대신(軍務衙門大臣)으로 임명되기도 하고, 1900년에는 함경북도(咸鏡北道) 관찰사(觀 察使)를 지내기도 하였다. 1910년에는 그에게 장희(莊僖)라는 시호를 내렸다. 즉 무력으로 중후함을 간직하는 것이 장(莊)이고, 소심하게 공순하고 삼가는 것이 희(僖) 이다.
조선은 19세기 60년대부터 외세의 위협을 받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와 병인양요, 미국과 신미양요가 발생하였다. 또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면서 문호를 개방하였다. 일본은 제일 먼저 울릉도·독도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울릉도에 일본인을 보내 벌목사업을 진행하였으며 해산물을 채취하였다. 이것은 1881년 울릉도 수토에서 보고되었다. 수토사들이 울릉도를 순찰할 때 일본인들이 나무를 베어 원산과 부산으로 옮기려 하였고 이 사실을 들은 고종은 이규원을 울릉도관찰사로 파견하여 울릉도를 자세히 조사할 것을 명하였다. 이규원은 울릉도 상황과 「울릉도내도」, 「울릉도외도」지도를 그려 바쳤다. 이후 조선은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고, 도장(島長)을 두어 울릉도를 관리하였고, 군을 설치해 지방관제에 편입하고 관할 구역을 울릉도 전체와 독도를 포함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고종의 관방정책으로 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집권하면서 1870년대 초부터 국경 방어에 관심을 갖고 대책을 강구하였으며 관방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국경지역인 동래, 의주, 황해지역 방어와 이양선의 출몰 등에 대비하여 조치를 강구하였다. 또한 고종의 울릉도 관방정책은 전국 관방정책의 일환으로 울릉도를 개척하고자 하는 그의 영토수호의지를 살펴볼 수 있다. 울릉도는 버려진 섬이 아니라 비웠던 섬이고, 주민을 이주하여 단계적으로 울릉도를 개척하였고, 군청을 설치하는 등 고종의 정책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모드 곤에 대한 보답 없는 사랑은 예이츠의 사랑의 시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얻은 여인보다 잃은 여인에 상상력이 대부분 머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모드 곤이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예이츠의 나날은 비참함으로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참함이 없었다면 시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여인의 사랑이 아니라 시였다. 모든 곤을 이룰 수 없는 여인으로 만든 것은 예이츠 자신 이다. 그는 영혼의 결합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짓는 것에 행복했을 것이다. 시를 위해 여인은 여전히 이상적 사랑으로 보답 없는 채로 남아있어야 한다.
본고는 한국과 중국이라는 국경의 한계를 불문하고 양국의 시인들이 각자 마주한 인생의 고뇌를 해결한 양상을 살펴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에 중국 唐代와 한국 新羅時代의 문인 王維와 崔致遠의 禪詩를 고찰 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인생과 사상을 앞서 살펴보고, 이 어서 그들이 구현한 창작 세계를 선 수행(習禪)과 시 창작(詩作)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상이한 시공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시인 모두 인간적 방황과 고뇌를 존재의 실 상에 관한 선적 가르침과 대자연을 향한 회귀에서 해결하였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선 체험적 깨달음(禪悟)이 시 작품에 공통적으로 체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양국 선시에 내재된 선사상의 보편적 특성과 시 창작 활동의 선수행적 가치에 대해 논의를 시도한 본고의 고찰이 차후에 진행될 선시 관련 연구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수행이 중심이 되는 선원건축은 일반 사찰건축과 다르다. 그 공간적인 미 학 또한 특별하다. 최근 들어 명상센터와 템플스테이 관련한 건축물을 유행 처럼 짓고 있지만 선원건축에 대한 불교건축적인 기준이 없어서 설계와 건 축에 기준을 찾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선원건축의 일반 사찰 건축에 대한 상이성을 모색해 보고자 전문적인 선 수행도량인 해인사 상선 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상선원과 더불어 남양주 화개선원과 문경 봉암 사는 특별한 공통점과 특징성을 가지고 있다. 선원건축은 외떨어진 고요한 곳에 위치해 있으며, 백골건축이라 불릴 정 도로 단청이 생략되어 있고, 건물 사면이 문과 창호 및 복도로 구성되어 있 다. 내부에는 그 어떤 상징물(불상, 불단, 탱화 등)도 없고 생활과 관련된 시 설이 최소화되어 있으며, 마당에는 탑이나 종루도 없이 비어 있다. 그리고 수행에 방해가 되는 혼침과 벌레를 쫓는 환경이 갖춰지고, 수행공간도 평등 의 공간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특별함에 대해 공간미학의 관점에서 비움과 채움, 가둠과 열림, 차가움과 따뜻함, 고요와 폭류의 개념을 추출하였다. 수행공간인 선원건축은 건축공간 내에 불교사상이 반영되어 있고 수행정 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선원(禪院)은 진 여가 온전히 드러나는 선의 근원[禪源]이고 불교 수행의 핵심을 담아내는 공 간이다. 이러한 건축적 미학을 선원건축에 담아내고 우리 삶의 공간으로도 끌어와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자전거도로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있는 창원시를 대상으로 자전거 도로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공간 데이터를 구축하여 자전거도로 환경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물리적 환경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는 문헌분석을 통하여 도출하였으며 각 평가 지표의 중요도 평가 및 가중치 설정을 위하여 전문가조사를 실시하였다. 최종적으로 도출된 8개의 물리적 환경 평가지표를 활용하여 현장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수집된 자료는 ArcGIS Program을 이용하여 등급화 하였다. 평가지표별로 높은 점수를 획득한 구간의 면적비율은 녹시율(40%이상, 9.3%), 연결성(1.8이상, 9.8%), 자전거도로 유형(자전거 전용도로, 25.4%), 포장유형(아스팔트, 72.5%), 불법주차(무, 93.9%), 노면표시(유, 46.8%), 제한속도(30km 이하, 48.5%), 교통량(500/hr 이하, 44.3%)으로 나타났다. 8개의 평가지표를 중첩한 결과 1등급의 구간은 31-35점으로 대상지의 전체 도로 면적에서 12.4%로 나타났으며 득점요인은 도로의 유형과 녹시율로 나타났다. 또한 평균 녹시율이 35% 이상으로 나타나 자전거 이용에 있어 안전성과 쾌적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15점 미만을 획득한 5등급 구간의 경우 전체 도로면적의 24.5%를 차지하며 주요 요인은 불법 주정차, 노면표시 미비, 낮은 녹시율로 나타났다.
황순원은 전후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파멸과 몰락의 시기가 회복과 구원을 향한 과도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전통적 묵시록의 개념과 비전을 수용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민족동란이 야기시킨 파괴와 살상의 비극을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표상과 예레미야 신탁의 묵시록적 알레고리로 나타냈다. 전후의 민족공동체를 비탈에 선 나무로 의인화한 이 소설에서는 예레미야서의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이 제시되고 있다. 황순원이 죄로 인한 고난과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묵시록의 양면적 의미에 주목한 것은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 고난에 처한 민족공동체에게 회복과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자기희생적 태도가 타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원과도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동체의 회복과 구원 가능성을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에서 찾고자 했다.
본 연구는 <소나기>를 연구대상으로 발화행위 이론을 이용하여 다양한 언어 환경에서 나타내는 전형적인 언표내적 행위에 의해서 언표내적 행위의 목표, 지향성, 심리적 태도 이 세 가지 차원에서 소녀와 소년의 대화를 분석해, 소녀와 소년의 심리상태와 성격을 해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제2장에서는 설의 이론을 대해 살펴볼 것이다. 설은 언표내적 행위의 목표, 심리적 태도, 지향성을 언표내적 행위의 분류하는 데에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기준에 의하여 언표내적 행위를 진술 행위, 지시 행위, 언약 행위, 표출 행위, 선언 행위로 분류한다.제3장에서는 설의 언표내적 행위 분류 기준으로 <소나기>에서의 대화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정된 환경에서의 특정된 언표내적 행위 유형에 속하는 대화문을 분석함과 동시에 각 유형의 대화문수와 백분율을 통계해 보기로 한다.화용론적인 발화행위 분석을 통해서 소설의 주인공인 소년과 소녀의 성격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소녀의 지시 행위에 질문이 많고 금지의 심리적 태도를 나타내는 지시 행위도 있다. 표출 행위의 경우에는 소녀의 대화 비중이 소년보다 훨씬 더 높다. 따라서 <소나기>는 외향적이고 도전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소녀를 기술하고 있다. 소년의 지시 행위에는 금지의 심리적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없다. 표출 행위의 경우에는 소년의 백분율이 소녀보다 훨씬 낮다. 따라서 <소나기>는 내성적이고 수동적이며 수줍음이 많은 소년을 기술하고 있다.
본 연구는 효과적인 송이산 관리를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하여 강원도 양양군을 사례로 송이 생육환경특성을 고려한 소나무비오톱지도 작성을 목적으로 수행하였다. 연구방법은 송이와 관련한 국내 외 관련연구 고찰을 통해 송이 생육환경 특성을 도출하고, 송이 생산지의 식물군집구조와 토양환경을 파악하여 소나무비오톱 지도화 기준을 도출하였다. 지도화 기준은 송이가 발생할 수 있는 중요 요인을 지형 조건과 토양 조건, 식생 조건으로 구분하여 도출하였다. 전체 비오톱유형은 송이생산 가능지, 송이생산 잠재지로 크게 구분하였으며, 송이생산 가능지는 송이생산이 가능한 지형구조 및 토양구조 내 분포하는 소나무 비오톱으로 관목층에 기타 관목성상의 수종이 우점하는 흉고직경 30cm 미만의 단층구조의 소나무 비오톱과 아교목층에 소나무가 우점하는 다층구조의 소나무비오톱이 해당되었다. 송이생산잠재지는 송이생산이 가능한 지형구조 내에 분포하고 있으나 흉고직경 30cm 이상의 노령화된 소나무가 우점하는 단층구조의 소나무비오톱, 아교목층에 참나무류가 우점하는 소나무 비오톱, 관목층에 참나무류가 우점하는 단층구조의 소나무 비오톱 등 식생구조가 부적절한 지역으로 향후 식생관리를 통해 송이 발생 유도가 가능한 지역이었다. 연구결과 소나무비오톱은 송이생산 가능지 6개 유형, 송이생산 잠재지 9개 유형, 송이생산 불가능지 등 총 16개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송이생산 가능지는 전체 소나무림 중 총 9.8km2, 15.48%이었고, 송이생산 잠재지는 20.52km2, 32.42%이었으며, 송이생산 불가능지는 32.97km2, 52.10%이었다.
본 논문은 19세기라는 역사적 격변기에 활동했던 문인인 橘山李裕元(1814~ 1888)의 『사찬』과『사영』에 관해 살펴보았다. 기존 이유원에 대한 논의는 『林下筆記』 소재 樂府와 같은 것들에만 집중되어, 그의 역사적 인식에 관해서는 거의 논의가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이유원의 다른 저작인『嘉梧藁略』이나 『橘山文稿』와 같은 다른 작품에 관한 연구는 미진 한 실정이다. 본고에서 언급한 『사찬』과『사영』은 귤산의 저작인 『가오고략』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이는 귤산의 문집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역사관 을 연구하는 데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귤산은 『사찬』에서 15개국에 대해서 시를 쓰고 있고, 『사영』에서는 자신이 다 쓰지 못했던 『사찬』의 餘史를 42명의 인물들을 통해서 보완하여 더욱 자세히 기록 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역사적 작품들을 통해 그가 부국강병을 위해 조선의 현실 을 사실적으로 인식하고 쓴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당대의 다른 문인들과 비교를 해보거나, 전후 시기 문인들과 비교해 볼 때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사찬』과『사영』만을 가지고 귤산의 역사관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겠지만, 본고를 통해 그가 지니고 있던 역사관의 일부나마 살펴 볼 수 있고, 이것이 곧 귤산 뿐 아니라 당대 문인들의 역사관을 이해하고 파악하 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