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고난에 관한 논쟁의 중심에는 ‘행위화복관계사상(Tun- Ergehen-Zusammenhang)’이 있다. 이는 욥의 경건과 모범적인 신앙이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등가적 반응이라는 사탄의 도발적 질문과 세 친구의 집요한 추궁에 잘 드러난다. 욥의 신앙은 소위 ‘주고받기식 (give and take)’ 신앙일 뿐이라는 고발에 대해 하나님은 다소 즉흥적으 로 사탄의 분탕질을 허락하고 만다. 선교적 해석학은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욥의 고난을 인류 보편적 차원의 주제로 수렴하거나 목회적으 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많다. 본 고는 이와 같은 경향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부조리철학의 관점 (absurdism)이 전술한 모호함을 해소할 수 있다는 핵심 논지에 따른 욥의 언어 분석을 통해 행위화복관계사상과 선교적 해석학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행위화복관계사상과 선교적 해석학이 가진 신학적, 해석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신성한 텍스트로서의 성경이 해석학적 관점에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성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과연 문학적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 19세기 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성서와 문학적 관점의 상호 연관성의 가능성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한 이후로, 성서 해석학은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발전되어 오고 있다. 신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신성의 권위를 내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 해석학의 근본적인 전제들 중의 하나는 성경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안에서 어느 특정한 저자에 의해서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 기록 되었다라는 것이다. 폴리쾨르는 포괄적인 해석학의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성경이 하나의 텍스트로서 문학 이론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질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특히 리쾨르는 성서에 드러나는 신의 계시와 다양한 형태의 담론과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각 담론 안에서 신의 계시의 다양성을 지적하였다. 또한 텍스트와 공동체의 관계 안에서 성경의 정전이 어떻게 확립되는지에 대한 과정이 연구되어야 한다. 텍스트는 공동체를 규정하고, 공동체는 동시에 텍스트를 규정하기 때문에 둘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에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선교적 성경 해석학의 방법론을 고찰하는 것이 다. 최근까지, 학자들은 성경 본문 중심의 해석과 독자 중심의 해석에 따라 각기 다른 선교적 해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적 해석은 신앙 공동체 내에서 통합적인 성경 해석 방법론을 사용해야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단계별 해석을 제안한다. 첫째, 선교의 본질과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 독자는 신·구약의 문학 세계 속에서 다루는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탐구한다. 둘째, 선교적 공동체의 '자기-정의' 를 위해, 독자는 독특한 상황에서 성경 내의 공동체와 현대의 기독교 공동체의 선교적 성경 읽기를 탐구한다. 셋째, 독자는 신앙 공동체 내에서 자신들의 주관적 해석을 대화와 담론의 장으로 불러와서 보편적 해석의 의미를 만들어간다. 이 단계적 해석은, 각각의 해석적 국면에서, 독자들이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하고, 그 선교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목표를 둔다.
인공지능 시대의 도전에 종교학적으로 답하기 위해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미메시스(mimèsis) 이론을 그의 종교적 해석학에 접붙였다. 이 접붙임을 통해 드러나는 종교적 텍스트의 본유적인 기능은 개인과 공동체가 종교적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면서 개인과 공동체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한정적인 시간성(Zeitlichkeit)을 넘어선 영원성(eternity)이나 공(空)과 같은 근원적인 시간성과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보면서 일어나는 영혼의 변형과 서사적 정체성이다. 약한 인공지능(weak AI)의 경우, 인공지능이 지식적이고 교리적인 측면의 기능을 감당하게 되어 영혼의 변형이라는 종교적 텍스트의 본유적 기능이 강화될 것이다. 강한 인공지능(strong AI)의 경우, 인공지능이 앞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기 전에 지금까지 종교적 텍스트가 형성해 온 다양한 종교적인 서사적 정체성을 인공지능 프로그램 안에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컴퓨터 공학과의 협업이 강력하게 요청된다.
선교명령은 복음명령 외에도 세상에서 살되 세상문화와 구별된 대조·대항·대안적 문화를 퍼뜨리면서 살아가라는 문화명령(창1:26-28)이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나라의 문화를 만드는데 헌신하도록 초청한다. 선교적 교회는 보냄받은 곳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사귐의 삶을 실천한다. 삼위일체의 결속적 관계는 상호성·평등·열린대화의 관계를 낳는 친교의 모델이며 성령은 진정한 친교가 가능하도록 회복시키는 능력이다. 교회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들과 연대하여 종말론적 하나님나라 구현에 동참해야하며, 한국사회 문제들에 선교적으로 대응하는 공적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공동선을 추구해야한다. 건강한 노동과 조화로운 삶을 통해 새 문화를 창출하는 굿컴퍼니들은 통전적인 하나님의 선교의 길을 여는 파트너이다.
기독교대학들이 기독교 정체성 유지·제고의 문제로 난항중이다. 필자는 기독교대학에서 교양필수 과목으로 성경을 가르치는데, 80% 안팎의 비기독교인 학생들을 상대로 ‘선교적 해석학’의 틀로 성경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가르친 결과, 대다수의 기독교인/비기독교인 학생 들에게 비교적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긍정적 반응으로서 그리스도인 의 경우는 교회에서 들었던 성경의 파편적 내용들을 하나의 맥으로 관통해서 보게 되어 좋았다는 평가가 가장 많았다. 비기독교인의 경우 는 성경을 처음 접하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기억에 잘 남았으며, 기독교 인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언급이 가장 많았다. 또 종교에 상관없 이 많은 수강생들이 ‘선교적 해석학’을 통해 성경을 이야기로, 메타내러 티브로 이해하게 됨으로써 성경의 거대서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피력하였다. 이것이 바로 메타내러티브로서 성경의 기능이다.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각에 대한 소식, 경찰 같지 않은 경찰, 교사 같지 않은 교사, 성직자 같지 않은 성직자들에 대한 나쁜 소식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좋은’ 교사, ‘인간다운’ 인간, ‘목사다운’ 목사, ‘진짜’ 그리스도인, ‘좋은’ 교회 처럼 명사 앞에 그 명사가 당연히 뜻하는 바를 부연 설명해주는 형용사 가 붙어야만 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금의 한국사회 속에서 교회의 진정성은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는가?
가톨릭 교회론의 명저인 Die Kirche를 쓴 한스 큉(Hans Küng)이 나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은 공통적으로 ‘조직체’인 동시에 ‘영적 실체’ 로서 교회를 정의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 따로 마련된 건물에서 틀에박힌 예배를 드리는 의식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거나 또는 우리가 소속되어 출석하고 있는 영적인 모임만을 떠올려도 안된다. 오히려 우리가 동일한 목표와 목적지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를 통합시켜주는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레고리 비일(Gregory K. Beale)의 ‘성전신 학’(temple theology)은 이와 같은 교회론을 잘 담보하고있다.
비일은 이중적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는 개념으로 신구약성경의 통일성을 규정한다. 성전신학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 의 역사적・신앙적 의미를 구약성경에서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교회 의 선교사명이라는 큰 틀에 맞춰 신학적으로 전개된다. 비일의 주장대 로 에덴동산-성전-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새창조-교회의사명 등 의 주제가 결국 동일한 실재를 나타내는 다른 양상이라면 이때 ‘성전’개 념은 선교적이다. 그의 전제대로 성경텍스트 자체가 스스로 핵심주제 로 드러내고있는 성전개념이 선교적 개념이라면, 성경은 선교의 책이 다. 비일이 자신의 연구를 선교적 해석학(missional hermeneutics) 으로 언명하고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그의 연구를 선교적 해석학으로 분류하여 소개할 것이다.
논문의 구성은 먼저 신구약성경을 통으로 읽지 못할 때의 제반 문제점과 그 결과를 기술하고나서, 신구약성경을 통으로 연결하여 읽어야함을 주장하되 그레고리 비일의 성전신학을 선교적 해석학의 예시로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전신학의 틀로 연구한 선교적 해석 학이 현금의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고찰할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선교에 대한 연구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있는그대로 받아들여서 선교의 당위성이나 특정 선교단체의 목적을 위해 성경의 일부를 차용하던 방식에서부터, 성경전체를 역사비평적으로 연구해 하나님의 선교를 증명해내는 방식에로,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서서히 변화해 왔다. 영미권에서 볼 때 1980년대 이전에는 대개 전문적인 성서학자보다는 선교학자들이 성경을 선교적 관점으로 보는 방식이 주류였다. 이러한 방식은 자의적 안목으로 성경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한계가 있었으며, 특히 구약성경은 십 수 년 전까지도 선교와 많은 관련성을 갖지 못한 책으로 치부되었다. 이와 달리 성서학자들은 하나님의 선교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역사비평에 의존하여 성경전체를 선교적으로 읽지 못하였고 선교현장을 고려한 해석학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서구교회가 반세기동안 형성해온 선교의 중심주제가 ‘선교적교회론’으로 집결되어 나타났다. 이는 교회의 상황을 선교적 관점에서 반성하면서 바람직한 교회운동이 선교회복운동과 맞물려 일어난 것이다. 선교적교회 운동이 교회와 선교의 본질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해야 하겠기에, 최근 호주와 북미의 GOCN은 선교적해석학(Missional Hermeneutic) 방면으로 이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선교적교회론은 학문적 논의의 장이 점차 형성되면서 다양한 선교적교회들이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교회 갱신을 위해서도 도전하는 선교적교회론은 제도화속에 경직화된 한국교회에 도사리고있는 세속적 가치관을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 가치관을 드러내는 성경적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선교적교회론의 뿌리가 되는 교회와 선교의 본질에 대한 성경연구를 최근 부상하고있는 선교적해석학 분야에서 성찰하되, 본 소고는 그러한 성경연구를 위한 표지(標識)가 되는 초점들을 제시한다. 논문의 구성은 선교(학)에서 성경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를 간략히 살피고나서, 선교적교회론에서 선교적해석학의 중요성을 논한다. 다음으로 선교적해석학을 헌스버거(George Hunsberger)를 따라 4유형으로 분류하여 라이트(Christopher Wright), 구더(Darrell Guder) 및 고힌(Michael Goheen), 바람(Michael Barram), 그리고 브론슨(James Brownson)의 입장을 소개한다. 헌스버거는 위의 각 유형들을 서로 배타적이거나 경쟁적으로 보기보다는, 각기 다른 강조점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의존적인 유형들로 보기를 권한다. 그럴 때 모종의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선교적해석학에 ‘토대’를 놓아준다. 즉 ‘선교적해석학’을 위한 구조틀(framework-하나님의 선교의 내러티브), 목적(aim-증거를 위한 교회 형성), 접근방법(approach-독특한 사회적 자리에서 나온 질문들), 그리고 해석적 모체(matrix-해석적 열쇠로서의 복음)를 제공해준다.
The existing perspectives claims that there is a static relations between Gospel and Culture. That is, biblical text is constant and is the subject of hermeneutics. Besides, context acts passively as the object of hermeneutics. However, context is the totality of human life's creative selfunderstanding. It means Sitz im Leben which is developed in political,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phere. Therefore, it also provides a dynamic hermeneutics of the text. Finally, on the one hand the text illuminates the context, on the other hand the context illuminates the text. The fact that both Text and Context have hermeneutical functions on illuminating each other makes us face both the problems of Truth and humanics. Every one can hear the Good News only in his/her own culturally conditioned context. Therefore, any intercultural understanding prerequisites common hearing. Only when we are together, we can understand the biblical truth in impartial and more complete manner. There must neither be superiority nor inferiority over others where the biblical text is being heard and understood together crossculturally, instead there must be reciprocal dependence with one another. The postmodern intercultural ecumenical missiological hermeneutics aims at realization of the koinonia in diversity, pursuing reciprocal complement and learning through the newly understanding of the Gospel being interpreted in each culture. Thus, the worldwide churches becomes not only a hermeneutical community, but also it becomes a learning, supporting, and celebrating community. The church is the participatory subject and agent of mission of God, but not the sole recipient of Gospel. We need newly interpreted Gospel by crosscultural process. Actually, the authentic subject of the postmodern intercultural ecumenical missiological hermeneutics is the Holy Spirit. Under the free and sovereign work of the Holy Spirit, the church cannot absolutize its own truth claim. Rather, it has to be open to the guidance of the Holy Spirit's leading the church from partial understanding to a fuller understanding of the truth. In this regard, mission is not just something the church is doing alone, but it is primaril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which precedes the church's involvement in missio Dei. The church has to spread this Gospel with words and life. The proclamation and presence go together in mission. Only through the missionary renewal which unites the missionary proclamation and the missionary presence, the church can accomplish mission work more faithfully in the world. Therefore, both western and oriental churches, and all other churches of the world as well need each other.
The first aim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and analyze Alan Colquhoun's architectural hermeneutics of tradition, 'conceptual displacement of the past.' The second aim is to overcome the limit of it, and to suggest new architectural hermeneutics of tradition, 'the reactivation of the past.' The architectural work is reduced by Colquhoun to typology or arbitrary language because he believes that without arbitrary language natural language is not able to work effectively. However, he ignores that two languages cannot be separable. When they are separated the key to natural language is understood to be an unverifiable similarity between a sense perception and its correspondence in the architectural object, while the key to arbitrary language becomes mere artificial agreement on the value and function of the linguistic sign. Therefore, natural language is appropriate only when it permits spontaneous combinations of sensory data within complex structures which emerge from, and support, complex human interaction and communication(the shining of the world and of the possibility of creative being in each individual thing). Only when architecture is translated into this kind of language, can it reactivate the world's past, and become poetic.
독일 경건주의는 그 시기나 활동영역이 넓고 포괄적이어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18세 기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도전과 급격한 사회변화 가운데서 성경에 기반을 둔 기독교와 경건한 신앙생활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이 논문은 할레 경건주의의 성경해석학을 다룬다. 할레대학은 보편 해석학과 신학적 해석학이 다양한 학자들의 사상과 논쟁을 거쳐 이후 18세기에 해석학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해석사의 관점에서 할레대학은 과도기신학-신신학(Neologie)-신학적 합리 주의의 제단계를 밟았다. 이런 출발점에 할레대학의 설립자인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의 성서해석을 위한 논문들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기에 이를 중심으로 논문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결론적으로 다양한 개념과 사상들이 난무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적인 논리정연성이 계승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해석학의 새로운 구상은 전통적인 개신교 성경원리가 문화적으로 변화된 기본조건에 부합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등장했다고 볼 수 있 다. 그래서 경건주의적인 신앙심의 개혁과 대학의 철학적인 합리주의 또는 근대의 역사적인 인식의 기원은 서로 다른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와 세계 속에서 정당성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아야 한다.
본 연구는 20세기 현대 해석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폴 리쾨르의 서사해석학을 검토하고 내러 티브 정체성을 중심으로 유아교육적 함의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리쾨르의 저서인 시 간과 이야기 1, 2, 3과 타자로서 자기 자신을 중점으로 자료를 분석하고, 관련 선행 연구와 전기 관련 문헌 등을 바탕으로 문헌연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리쾨르 서사해석학이 갖는 유아교육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첫째, 문학 텍스 트의 구조나 내용 요소들의 파악을 강조하는 ‘문학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뛰어 넘어 문학의 세계 속의 사람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문학을 통한 삶의 해석’을 지향하는 방향 으로 나아가야 함을 함의한다. 둘째, 교사와 유아간의 내러티브 행위를 통한 의미의 형성화 과정을 수반한 내러티브 정체성 형성을 중시하며, 내러티브를 통하여 좋은 삶을 지향하는 인성교육이 가 능함을 함의한다. 셋째, 인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올바르게 가지도록 하는 교육의 근원적 목적 달성의 방안으로서 ‘내러티브 생성을 통한 유아의 자아정체성 형성의 지원’이 중요함 을 함의한다.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 이 표어는 종교개혁의 중심원리 가운데 하나로서 다른 모든 신학적 원리들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prima principium)이다. 그러나 종교개혁기에 있어 다양한 논쟁적 상황에서 볼 때, “오직 성경만으로”라는 이 표어가 가지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신학적, 실천적 의미들은 더욱 세분하여 정확하게 논구될 필요가 있다. “오직 성경만 으로”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는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세부적인 교리로 구성됨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1) “성경의 충분성(sufficientia)” 교리와 (2) “성경의 명료성(claritas, or perspicuitas)” 교리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 가운데 특히 두 번째인 “성경의 명료성” 교리가 가지는 실제적이고도 중요 한 의미들을 루터의 신학을 중심으로 연구 고찰한 것이며, 또한 이것이 그의 종교개혁신학의 정립 과정과 성경해석 원리 및 여타 다른 종교개혁 원리들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작동되었는지 살펴 본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신학에 있어 특별히 ‘성경의 명료성’ 교리와 관련하여, (1) 인식적 원리(epistemological principle), (2) 신학적 원리(theological principle), (3) 해석학적 원리(hermeneutical principle),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실천적 원리(practical principle)로서의 그 실제적인 작용과 구체 적인 함의들을 구분하여 고찰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의 명료성’ 교리가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과 그의 종교개혁운동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여러 신학적 논쟁 과 신앙적인 투쟁의 국면들에 있어 다양한 기능의 역할과 함의들을 함축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본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루터에게 있어 그것은 먼저, (1) 신학적 인식과 실천을 위한 명확한 확실성을 담보하는 근원적인 “인식론 적 원리”(epistemological principle)로 작용하고 있으며, (2) ‘십자가의 신학’의 정립을 위한 ‘그리스도와 복음 중심’의 성경해석의 “신학적 원리”(theological principle)로서 기능함과 동시에, (3) 종교개혁신학의 체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성경해석 방법론을 구축하는 “해석학적 원리”(hermeneutical principle)로 작 동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4) ‘말씀의 선포(설교)와 성례전의 개혁’, ‘전성도의 제사장직과 교회 직분의 개혁’,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소명론’과 일상의 삶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종교개혁신학의 핵심적인 “실천적 원리”(practical principle)들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현대 성경해석학 적인 위기의 상황 속에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그들의 종교개혁신 학을 정립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원리(prima principium)로 삼았던 “성경 의 명료성”(claritas Scripturae) 교리와 그것이 함축하는 올바른 성경해석 원리 들을 창조적으로 복원하여 더욱 발전적이며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깊이 있는 연구가 더없이 중요하고 긴급하게 필요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