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70년대 한국미술에서 전개된 추상담론을 동양화단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특히 동양화단의 추상 및 비구상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정립된 ‘동양적 추상’ 담론의 이론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197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동양화부 비구상부 신설을 계기로 동양화단에서는 추상이 주요 의제로 부상하였다. 1970년대 동양화는 현대 회화로서 동시대성을 추구하며 같은 시기에 서양화단에서 형성된 비구상론을 공유하는 한편, 동양화의 고유한 추상성을 규명해야 하는 이중적인 과제에 직면하였다. 이는 동시기 한국미술 에서 제기된 ‘한국성’ 탐색과도 긴밀하게 맞물려 전개되었다. 특히 동양화 추상 담론은 동양화가 본질적으로 추상성을 지닌다는 인식에 기반하 여, 청동기 문양, 고구려 고분벽화, 서(書) 등 전통 조형물을 추상의 원류로 재해석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양화 추상은 자연의 리듬과 ‘기운 생동’을 핵심 원리로 하는 통합적 조형 개념으로 정식화되었으며, 서양 추상과 구별되는 독자적 범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담론은 이후 동양화 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지속적인 이론적 틀로 작용하며, 1980년대 수묵화운동 등 후속 논의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본 논문은 강익중의 모색기(1984–1997) 작업에 나타난 탈식민주의의 감각적 실천을 분석한다. 탈식민주의의 감각적 실천이란 이 미지·문자·소리·신체·공간·관객 참여가 관계적으로 결합하며 진동과 변주를 통해 통합적 감각이 생성되는 수행적 과정을 의미한다. 이 를 위해 백남준이 제시한 비빔밥 정신을 감각론적 해석틀로 활용한다. 비빔밥 정신은 한국적 전통의 비빔밥에 내재한 비위계적·비결정 적 감각 구조를 호출하여 제시한 통합적 감각의 작동 원리이다.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 비평은 전지구적 미술의 장에 접속하는 과정 에서 문화접변 상황을 주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특정한 모델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본 논문은 강익중의 모색기 작업을 이러한 문 제의식 속에서 재위치시키고, 그의 작업이 한국적 전통의 감각 구조를 독자적 조형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1984년 3인치 그림의 탄생에서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특별상 수상까지의 시기를 강익중 작업의 모색기로 설정하여 3인치 라는 감각의 단위와 축적이 통합적 감각으로 전개되고, 국제 미술계와의 접속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밝힌다. 나아가 강익중의 모색기 작업을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 비평이 요청한 특정한 모델에 대한 감각론적 응답이자, 비빔밥 정신이라는 한국적 전통의 감각 구조 를 독자적 조형 언어로 수행한 탈식민주의의 감각적 실천으로 제시한다.
1855년 안세이 대지진 직후 에도에서는 지진의 원인을 오나마즈라는 거대 메기에게 돌리는 나마즈에가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본고는 그 가운데 오나마즈가 요리되고, 구타당하며, 유령에게 원망받고, 포박되거나 유배되는 장면에 주목한다. 나마즈에에서 오나마즈는 비인간적 이고 불가항력적인 지진을 요괴의 형상으로 가시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희화화되고 처벌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이를 밝히기 위해 본고에 서는 용과 메기의 도상적 관계, 에도 시대의 메기 식문화와 요리 이미지, 지진 피해자의 유령 도상, 형벌 이미지의 시각 문법을 함께 검토한다. 특히 식재료화, 원한의 대상화, 공적 처벌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가 오나마즈를 재난의 원흉에서 원망과 응징이 향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하 는 과정을 분석한다. 나아가 이러한 장면들이 법제적 처벌만이 아니라 식문화와 불교적 고통관이 결합된 복합적인 응징의 표상임을 밝힌다. 이를 통해 나마즈에가 재난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재난 피해에 대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매체였음을 논한다. 이러한 논의는 나마즈에를 지진 신앙이나 사회 풍자의 표현으로만 보지 않고, 재난 이후 공동체의 공포와 분노를 조율한 시각 매체로 해석하는 데 의의가 있다.
본 논문은 ‘구타이미술협회(具体美術協會)’의 ‘앵포르멜’화를 미셸 타피에에 의한 일방적 전도가 아니라, 리더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 1905-1972)의 전후 추상에서 형성된 시간성이 국제적 시각언어와 접속하며 재구성된 과정으로 재해석한다. 전후 일본에서 요시하라의 시간 성은 전체주의와 구별되는 자유로운 개인을 행위와 물질의 흔적으로 가시화하려는 조형 논리로 형성되었고, 이는 구타이 작가들의 작업 논리 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미술 비평계는 이들의 실험을 진지한 예술적 시도로 충분히 평가하지 않았고, 이에 구타이는 자신들의 실험 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피에와 협력하며 국제 무대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때 구타이의 앵포르멜화는 타피에의 이론에 대한 감화가 아니라 시간 성의 논리로 앵포르멜을 해석한 결과였으며, 그들의 작업 논리는 앵포르멜 시기에도 지속되었다. 나아가 국제 무대에서의 인정은 구타이의 시간성이 앵포르멜적 표현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표현의 미술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구타이의 앵포르멜화를 전후 일본의 조건 속에서 나타난 구타이의 조형적 문제의식이 국제적 인정을 거쳐 이후의 실험으로 나아가게 한 도약의 과정으로 재고한다.
본 연구는 윌리엄 다이스의 아서왕 연작을 통해 입헌군주제 하에서 국왕에게 요구된 윤리적·정치적 덕목이 어떻게 시각화되었는지를 분 석한다. 1847년 다이스는 웨스트민스터 궁 여왕 예복실을 아서왕 주제로 장식하는 벽화 의뢰를 받았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적 불안 속에서 중세주의가 부활했고, 아서왕은 도덕과 질서, 신앙을 상징하는 존재로 재해석되었다. 예복실은 군주가 예복을 갖춰 입는 의례적 공간으로서 단순한 의례 공간을 넘어 왕권과 의회 권위가 결합되는 정치적 무대로 기능했다. 왕립위원회와 앨버트 공의 주도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다이스는 프레스코 기법과 도덕적 서사를 결합하여 공공미술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벽화는 신앙, 관대, 예의, 자비, 환대라는 기사도 덕목 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개인의 윤리를 넘어 국가 통치의 원리로 확장되었다. 공간 배치 또한 개인적 덕목에서 공동체적 가치로 나아 가는 구조를 형성하며 상징성을 강화했다. 그러나 제작 과정은 지연과 비판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일부 작품은 미완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다이스가 선택한 아서왕 전설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국가 정체성과 이상적 과거를 결합하는 서사의 원천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며 예술, 정치, 행정이 결합된 국가 이데올로기의 구현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9년에 설립된 예술봉사연맹은 예술을 대중의 일상으로 들여오는 것을 목표로, 이를 통해 농촌 공동체와 경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다. 예술봉사연맹과 같은 영국 모더니스트들의 활동은 서양 미술사의 모더니즘 담론에 서 간과되어 왔으나, 이 연구는 고급 미술과 대중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동시대 아방가르드 미술이 엘리트의 전유물로 남지 않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미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이들의 구상과 실천을 살펴봄으로써 모더니즘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예술봉사연맹의 활 동은 크게 연극부와 미술부로 구성되었다. 선행 연구들은 예술봉사연맹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에 그치거나, 연극부에 초점을 맞춘 경향이 있다. 반면 이 연구는 예술봉사연맹이 발간한 회보와 연보, 전시 팸플릿 등을 중심으로 예술봉사연맹의 미술 사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재구 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글은 영국 미술사의 관습적 서사를 넘어, 1920-1930년대 문화 예술계 구성원들 사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연결 과 상호 작용,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협업 내용을 밝힘으로써 전후의 분위기와 영국 전간기 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할 것이다.
이 논문은 디자인을 공적이며 사회문화적인 기획 및 실천 활동으로 이해하며 그 바람직한 역할을 모색하는 논의를 ‘디자인 공공성 담론’ 으로 전제하고 그 역사적 궤적과 특성을 고찰한다. 이를 위해 산업혁명 이후 약 150여 년 동안 디자인의 공적·사회문화적 역할에 대한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검토한다. 구체적으로는 19세기 산업 자본주의 비판의 맥락에서 등장한 디자인의 역할에 관한 사유, 20세 기 기능주의적 시각에 근거한 기술적·합리주의적 입장, 20세기 중반 이후 소비사회 비판 속에서 전개된 비판적 담론의 성취와 한계를 살핀다. 아울러 참여 디자인, 전환 디자인,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다원 세계를 위한 디자인, 디자인 정의, 무질서의 디자인, 디자인 커먼즈 등의 동시대 관련 담론이 이러한 계보를 계승하면서도 공공의 조건을 재구성하고, 디자인의 정치성과 존재론을 새롭게 모색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논의한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디자인의 공공성이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사유해 온 현대 디자인의 핵심적 개념이라는 점, 또 그것이 오늘날 의 조건이나 상황에 맞추어 갱신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본 논문은 예술과 과학의 공통 관심사인 재현을 알고리즘과 비알고리즘의 관계 속에서 재검토하고, ‘알고리즘과 비알고리즘 사이의 예술’ 을 21세기적 예술×과학 패러다임으로 제안한다. 굿맨의 기호론적 재현관, 프릭과 응우옌의 DEKI 모델, 반 프라센의 관점 구성적 재현론을 통해 재현 개념을 정초한 뒤, 이데아–원리–형식–공식–알고리즘으로 하강하는 서양 형이상학의 위계를 예술과 과학에 공통된 재현의 작동 논리 로 정식화한다. 이어 파스퀴넬리, 파리시, 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적 형식화가 포섭하지 못하는 잉여, 우발성, 불확정성의 장을 비알 고리즘으로 개념화한다. 이러한 이론적 틀에 근거하여 본고는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난청인과 협업하여 창작된 원우리의 오디오-비주얼 작품 <와우-로그>를 분석한다. 이 작품에서 심리음향적 주파수 측정이라는 결정론적 알고리즘과 기계학습에 기반한 선호 음정 추정 및 선율 생성이 라는 확률적 알고리즘은 난청인의 감각적 판단, 작곡가의 직관적 편집과 비분리적으로 중첩된다. 특히 이 중첩은 계산적 절차와 살아 있는 청각 경험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며, 작품의 비평적 의의를 강화한다. 이를 통해 본고는 예술적 재현이 알고리즘적 형식화로 환원될 수 없으며, 비알 고리즘적 개입과의 구조적 결합 속에서 구성됨을 밝히고, 청각 소수자를 공동 창작자로 위치시키는 재현의 윤리를 제안한다.
본 연구는 인공지능, 즉 AI가 기술적 숭고와 알고리즘의 불투명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정치적 책임을 은닉하는 기제를 ‘AI의 알리바이화’ 로 개념화하고, 동시대 예술이 이를 해체하는 비판적 방법론을 고찰한다. AI는 결정권자의 윤리적 책무를 비가시적 기술의 심부로 유폐시키는 ‘은폐된 장소성’의 아키텍처로 기능하며, 이는 ‘객관성의 환상’에 의해 공고해진다. 본 연구는 행정·사법·군사 영역의 알고리즘 오남용 및 비윤 리적 결정 사례들을 분석하여, 그 핵심에서 ‘현장 부재 증명’을 전용한 비평적 개념을 도출하고 이를 기술적 숭고와 알고리즘적 결정론, 매체 고고학을 경유하여 미학적 작동 기제를 규명한다. 나아가 동시대 미술현장에서 AI의 알리바이화를 해체하는 예술 실천을 분석한다. 포렌식 아키텍처와 트레버 패글런의 ‘가시화의 정치학’은 은폐된 장소성을 해체하고, 제임스 브라이들과 아담 하비의 ‘교란의 수사학’은 객관성의 환 상을 파기한다. 이를 통해 동시대 예술이 비판적 디지털 리터러시이자 사회적 실천으로 기능함을 논증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술 실천은 기술적 결정론 속에 매몰되었던 인간 주체를 다시 현실의 장소로 강제 소환하며, 인적 책무를 복원하는 저항의 이정표로서 의의를 지닌다.
본 논문의 목적은 결정에 대한 근대의 과학적, 미학적 탐구를 배경으로 현대미술에서의 결정체 차용 방식과 의미 변화의 양상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19세기 결정학 발전 이후의 낭만주의와 염세주의 사상, 20세기 초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이론과 21세기 초 제인 베넷의 신유물론에서 결정체와 결정성장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검토하고, 브루노 타우트의 건축과 로저 하이언스의 설치 작업에 나타나는 결정체 형식의 복합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미술에서 결정체에 대한 접근은 상징적 형태에서 물질적 실체로의 이행이 두드러진다. 20세기 초 타우트의 독일 표현주의 건축과 드로잉에서 결정체 형태는 낭만주의 미학의 고딕 건축에 대한 열정을 이어받아 정신적 초월성과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상징하는 중요 모티브였다. 반면 21세기 초 영국 작가 하이언스의 작업은 결정의 화학적 자기생성과 물질의 행위성을 전면화한 신유물론적인 작업으로, 폐건물을 뒤덮은 위협적인 결정체의 물질성이 공공주택 사회정책의 실패를 증언한다. 이러 한 분석을 통해 본고는 결정체가 결정성장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현대 건축과 예술적 실험의 핵심으로 작동했음을 밝히고, 나아가 근대 결정학 과 현대철학의 반향 속에서 예술적 매재로서의 결정이 정신적 초월성의 상징에서 자기생성적인 물질적 실체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