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宗元(773~819)은 唐代의 정치계・사상계・문학계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당송팔 대가 중의 한 분으로서 중국의 산문사(散文史)를 대표할만한 문장가이다. 왕숙문(王 叔文)이 이끄는 혁신집단에 참가하여 정치개혁을 추진하지만 실패하여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영주(永州)와 유주(柳州) 두 폄적지(貶謫地)에서 보내게 된다. 죄인의 신분 으로 정치적 이상을 펼칠 수 없게 되자 “시대에 도움을 주고 만물에 영향을 주는 道 를 지금 펼칠 수 없다면 마땅히 후세에 남겨야 할 것이다. (輔時及物之道, 不可陳於 今, 則宜垂於後)”라는 신념으로 국가・사회・백성들을 위한 우언을 창작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柳宗元의 우언에서 보여주는 “보시급물(輔時及物)”과 “이안원원(利安元 元)”사상에 주안점을 두고 두 사상의 정의와 창작배경을 정리하고 또 이 두 사상이 내포된 우언 작품을 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보았다.
본 연구는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비교하여 김정은 시대 조선로동당 핵심권력기 구의 위상과 역할 변화,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주는 정치적 함의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선군정치로 약화된 당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제 7·8차 당대회에서 당규약 개정을 통해 당 중심의 국정운영체계를 확립하였다. 이 는 당이 군과 정을 실질적으로 지도⸱통제하며 국정 전반을 주도하는 구조를 완성 한 것이다. 김정은 시대의 당 중심 국정체계 확립을 보여주는 주요 사례로 당에 의한 시스템 정치의 부활과 함께 당정치국회의, 당중앙군사위원회, 군정지도부의 위상과 역할 변화를 들 수 있다. 북한의 최고 정책 결정 기구인 당정치국은 수령 제 강화로 김정일 시대에 유명무실해졌으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 수령제를 보좌 하는 기구로 권한이 강화되었다. 당중앙군사위원회는 김정일 시대에 실질적 역할 을 하지 못했으나, 국방위원회 폐지와 핵무력 강화정책을 통해 다시금 그 역할과 권한을 확보하였다. 또한 새로 신설된 군정지도부는 당 조직지도부와 군사부는 물론, 기존에 군 총정치국이 담당하던 군 지도·검열 기능까지 직접 수행하며, 군 통제체계를 다층적으로 심화하는 역할을 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 로 김정은 시대 당군 관계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당 권력 기구의 위상 강화를 통한 권력 구조 안정화의 영향을 규명하였다. 이로써 김정은 체제에서의 당 중심 통치의 정치적 함의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국가목표로 제시하였으 며 핵개발과 경제발전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김정은 시대 북한이 추진한 주요 정책의 특징은 당에 의한 정책목표 결정, 정책추진을 위한 계획수립, 법제정을 통한 정책추진의 당위성 확보, 기구편성을 통한 정책 추진이었다. 김정은은 우주강국 건설을 새로운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북한의 우주개발정책을 김정은 시대 주요 정책추진 특징을 가지고 분석하였고, 당 제9차 대회가 제시할 우주개발의 목표와 향후 정 책추진과제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북한의 우주개발이 가져올 수 있는 위협을 알아보고 우리의 대응방향을 제시하였다. 현재의 북한의 우주기 술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우 주개발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는 만큼 이에 대한 우리의 대비는 지금부 터 필요하다 하겠다.
이 연구에서는 김정은 시대 북한의 핵 관련 법에 나타난 핵전략과 핵 태세를 분석하였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핵을 개발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김정은 시대 북한은 핵 관련 법을 제 정하고 핵을 무기화하였으며 핵능력을 고도화하였으며 당 제8차 대회 이 후에는 전술핵능력까지 구비하였다. 연구를 통해 북한이 핵을 군사적으 로 사용할 능력을 구비하고 고도화하면서 핵전략과 핵태세가 공세적으로 변화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면서 핵전략 은 선언적 수준의 최소억지전략에서 대남 제한억지전략과 대미 최소억지 전략으로 발전하였고, 핵태세 또한 현재는 가장 공세적인 비대칭확장태 세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계속될 것이 다. 북한의 핵능력증가에 따른 대응 방안 마련이 제한되는 우리로서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 위협이 증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논문의 목적은 마종기 시의 타인에 대한 사랑을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논구하는 것이다. I부에서는 그가 의사로서 인간의 죽음을 응시하는 위치에서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는 사랑을 진혼시로 보여주었다는 전제를 밝힌다. II부에서는 죽음을 향한 존재에 대한 심려로서의 사랑이 논의된다. 「해부학교실」 등에서 의학도로서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로 인식하고 타인에 대한 마음 씀으로서의 심려의 사랑이 나타난다. III부에서는 존재망각에서 깨어나는 ‘세계내존재’의 사랑이 논의된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등에서는 자신을 세계내존재로, 타인을 공동현존재로 인식함으로써 심려로서의 사랑이 세계로 확산된다. IV부에서는 공동현존재와의 대화로서의 사랑이 논의된다. 「갈대의 피」 등에서는 ‘나’와 타인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공동현존재로서의 인식이 확고해지며 대화적 언어가 나타난다. 「동생을 위한 조가」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동생에 대한 진혼시이며, 마지막으로 「희망의 대하여」 등은 시인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순간에 구원을 믿으며 종교적 사랑을 추구한다.
본 연구는 김정은의 권략강화와 독자노선의 제도화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김정 은의 유훈통치와 세습정치과정, 헌법적 지위변동 추이와 ‘수령’의 지위 확보과정, 독자노선의 확립과정 등을 학술논문과 로동신문 등 관련문헌을 통하여 분석하였 다. 김정은의 권력은 개헌을 통해 헌법적 지위와 권한이 계속 상승되었는데 2019년 8월 새 헌법에서는 김일성(주석),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위, 권한보다 우위를 점하였다. 북한에서 ‘수령’은 최고 존엄을 가리키는 대표적 상징이며 최고 수위를 나타내는 용어인데 2021년 1월 8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을 수령으로 추대 하였으며 202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수령으로 지칭하고 있다. 또한 ‘사상의 영 재’라고 불리었던 김정은이 ‘사상의 천재’(김정일)를 넘어 ‘사상의 창시자’(김일성)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2016년 제7차 당 대회에서 ‘당 위원장’이라는 새로운 직 함으로 추대된 김정은은 2022년 7월 ‘새 시대 당 건설 사상이론을 제시하였고 ‘새 시대 당건설 5대 노선’이라는 명칭으로 당의 정식노선으로 채택되었다. 김정 은의 선대영향력과 유훈통치의 탈피시도는 여전히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군의 반발과 갑작스러운 사회통제 메커니즘의 공백을 불러올 수도 있다. 북한은 우리 와 한민족이며 우리가 포용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한국정부 는 김정은 정권의 독자노선 추구와 북한체제의 변화 가능성을 예측하고 분석하 여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통일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본 논문은 이종구의 1980년대 농촌 회화에 나타난 리얼리즘에 대한 연구이다. 이종구는 처음부터 서사와 메시지를 내포한 리얼리즘 작품을 하고자 했다. 단순한 서 술이 아닌 작가 고유의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극사실 기법으로 초 현실주의적인 작품으로 화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그의 관심은 경제발전으로 호황인 도시의 그늘 속에 가려진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후 고향에서 가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자각했고,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 고 있었던 이문구의 농촌소설에서 농촌 표현의 영감을 받았다. 1984년부터 고향 서 산시 오지리를 주제로 농촌사회의 암울함을 회화로 계속해서 표현했다. 1984년 <연 혁-아버지>를 시작으로 농촌회화에 적극적으로 매진했다. 작품에 표현한 아버지의 생애는 개인의 서사를 넘어 보편적인 농민의 일생이다. 이종구의 농민 초상화는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농민들의 애환을 보여주고 소를 의인화하여 농민의 삶과 감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오지리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 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으나 농촌의 실상은 점차 황폐해져갔다. 이것은 오지리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농촌의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이종구는 생명을 길러내던 땅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농촌 상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농촌을 지키는 농민을 민족의 주체로 규정했다.
본 논문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엔연설 에서 여러 차례 제의한 종전선언을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김일 성이 밝힌 ‘3대혁명역량강화방침’에 입각해서 추론한 것이다. ‘북조선 혁 명역량강화’에서는 핵무력을 보유한 군사적 역량은 어느 때보다 강하지 만 국제제재와 경제난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등 정치·경제적 역 량은 매우 약화되었다. 이러한 체제내구력 보완을 위해 ‘강한 외부의 적’ 인 ‘미 제국주의’가 필요하므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첫 단계인 종전선언 카드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조선 혁명역량강화’에서는 ‘이 석기 내란 선동 사건’처럼 제도권 침투를 비롯해 노동, 교육, 문화, 종교 계 등 사회 저변에 친북·반미 의식이 폭넓게 퍼져있다. 따라서 미-북 간 종전선언으로 인해 평화체제로 전환된다면 반미 명분이 약화되어 70여 년간 축적된 남한의 혁명역량이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국제 혁명 역량강화’의 핵심은 국제사회에서 반제·반미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미국을 고립시켜 궁극적으로 ‘혁명의 가장 큰 장애물’인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다. 미-북 간 종전선언이 합의된다면 적대관계가 청산되어 미국을 비롯한 반제·반미 이데올로기로 연대한 ‘국제 혁명역량’이 와해될 수도 있다. 따라서 향후 북한은 자체의 힘으로 충분한 대미 핵 억제력 및 체 제 내구력을 갖추고, 전술핵무기와 배합된 남조선 혁명역량을 완비할 때 까지 ‘종전선언 카드’를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시대 북한 재해관리는 최고지도자의 관심과 법률 보완을 통해 체계적 관리로 발전하였다. 김정은 시대 재해관리 체계 확립에 있어 가장 우선시 되었던 조치는 2014년 「재해방지 및 구조, 복구법」 제정이다. 김 정은은 재해 관련 신속한 예방과 대응, 복구를 위해 ‘재해방지 및 구조, 복구법’을 새롭게 제정하고 재해의 범위를 자연·사회·보건으로 규정하여 관련 법률 적용을 일원화하였다. 다음 조치로 김정은의 관심과 현지지도이 다. 2014년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김정은은 6개월 동안 9차례 건설현장 현지지도를 실시하였으며, 이후 「건설감독법(2014)」을 제정하여 건설현장의 엄격한 관리를 규정하였다. 2020년 대규모 수해 발생 이후 김 정은은 2개월 동안 8차례 수해 현장 현지지도를 실시하였으며, 이후 2021 년 「환경보호법」·「건설법」·「산림법」 수정보충 및 「시군발전법(2021)」을 제 정하여 지역 개발과 발전을 도모하였다. 2020년 코로나19팬데믹 현상 이 후 김정은은 총 22차례 정치국 회의를 개최하고 13차례 코로나19 관련 논의를 진행하였으며, 이후 「전염병예방법」 수정보충, 「비상방역법(2020)」· 「의료감정법(2022)」을 제정하여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고 코로나19 확진 자 관리를 위한 체계를 수립하였다. 마지막으로 체계적 재해관리를 위한 조직 구조를 구축하였다. 체계적이며 신속한 재해관리를 위해 국가비상설 재해방지대책위원회와 국가비상재해위원회, 부문별, 지방재해방지대책위원 회, 시도군인민위원회, 국토환경보호성, 중앙인민보건지도위원회, 중앙비상 방역지휘부 등 각 재해 유형별 관리체계를 세분화하여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구축하였다. 특히, 2020년 비상방역상황에서 사회안 전군을 전면에 내세워 신속한 비상방역활동을 실시하였다.
Recent incidents of state terrorism, including the assassination of Kim Jong-Nam, the murder (and attempted murder) of persons with strong ties to Russia, and the Jamal Khashoggi assassination, demonstrate cruelty while implying the involvement of the state, unlike other acts of terrorism since the Second World War. This trend denies the efforts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hich has suppressed physical punishment including the death penalty in modern times and has achieved advances in human rights and humanitarianism under contemporary international law. Accordingly, this paper utilizes Michel Foucault’s indications regarding prison to reconsider recent cases of state terrorism from a broader perspective while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conventional terrorism and the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terrorism-related treaties.
김종철 시인은 사회와 문명에 대한 풍자를 지향했던 초기 시에서 출 발하여 중기 시 이후 ‘못’의 상징에 천착하며 가톨릭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시세계를 갱신해온 ‘못의 시인’이자 ‘못의 사제’로 평가받고 있다. 본 논문은 그러한 김종철의 시세계에서도 특별한 위상을 차지 하고 있는 ‘등신불 시편’에 주목함으로써 김종철의 시세계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사유하는 보편적인 ‘종교 시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김종철 시인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 초기 시에서 부터 추구해온 ‘성모’적 표상이 아닌 ‘등신불’이라는 성상화된 상징을 통해 자기구원과 인간의 영원한 번뇌인 죽음의 문제를 노래했다. ‘등신 불 시편’들은 시인이 암으로 투병하던 시기에 지장신앙의 성지인 구화산을 여행하면서 썼던 기행시편들로서, 죽음의 번민으로부터의 해방과 진정한 존재의 각성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비록 김종철의 전작을 통해 보면 다소 예외적이고 분량상으로도 적어 보이지만, ‘등신 불’ 시편들은 이러한 불교적 ‘각성’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죽음의 문제와 존재론적 화두를 추구해온 그의 시세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본 논문은 예이츠와 김종길 시에 나타난 ‘비극적 환희’를 연구한 논문이다. 두 시인은 각자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환희’로 극복하려는 공통점을 지닌다. 비록 산 시기와 장소는 다르지만 ‘존재의 통합’ 내지 ‘자기실현’을 이루려고 각자의 시에서 ‘비극적 환희’를 공유한 것 같다. 이에 논자는 그들의 시에 나타난 어려움을 ‘비극적 환희’로 수용하면서 최선을 다한 두 시인의 친연성을 탐구한다.
This article treats the quotation of Kim Il-sung and Kim Jong-il in Collected Writings of Korean Linguistics [Chosŏnŏhak Jŏnsŏ / Joseoneohak Jeonseo]. The citation of a political leader in a scholarly paper shows the powerful interference of political ideology on academic research. However, it is possible for scholars to judge what quotation they collect. Therefore, the influence of political ideology on the North Korean language academia can be measured by the status that Kim Il Sung and Kim Jong Il's quotations are used.
Political ideological colors are most evident in communism and class-struggle quotations. However, in some quotations, radical phrases are omitted. There are many quotations about nationalism in Chosŏnŏhak Jŏnsŏ. Quite a few of them have some similarities to the discussion in South Korean academic circles. However, sometimes it is possible to conflict with the North academic circles, because a strong nationalism tendency is avoided in the South academic circles.
In the quotations about language policy, it was noticeable that the contents were different from each other. The northern scholar usually coped with avoiding or ignoring such conflicts because it is difficult to dare criticize any one quotation.
In addition, I have looked at quotations that are close to common sense. The reason why those quotations exist in the scholarship can be seen as the fact that the quotation is just a perfunctory expression. And that nearly half of the quotations are extracted from just four kinds of source articles.
김종삼의 시는 1960-1970년대에 이르는 근대화 속에서 시인으로서의 결 핍으로 인하여 더욱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완전한 예술의 시간을 지향한다. 그 안에 순 수와 이상의 세계로서의 사랑이 존재한다. 예이츠 역시 젊은 시절 집요하게 사랑을 추 구하던 시 정신이 노년기에 자아통일의 과정에서 변화하며 반영된다. 두 시인에게 연 인과 애인이란 문명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자신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한 목적이자 삶 의 방식이었다. 또한 닿을 수 없는 과거에 존재하는 그리움이며, 그 고통을 견뎌내면 서 천상의 행복을 삶에서 구하려했던 시의 시작과 종결이었다.
This study examined the traditional edible basis and ingredients of Song-gi used for Pyeon of Jong-ga ancestral ritual food. Through an investigation of references, a case study, and ingredient analysis for traditional edible basis of Song-gi, the nutritional value and availability as food material were reviewed. Among the 4 kinds of pine trees from 4,705 types of edible materials usable as food listed in the 《Korea Food Standards Codex》, ‘Pinus radiata D. Don’, in which the husk is acknowledged as an edible food, was applied in this study. This study processed the Song-gi following the method of jongga and divided into pine inner bark (PIB) and pine inner bark powder (PIBP) to analyze the general composition and dietary fiber. The main composition of PIB was carbohydrate, in which the content was 88.7% per 100 g. The content of dietary fiber was 73.7% per 100 g and the insoluble dietary fiber reached 92.3% in total dietary fiber. In conclusion, the edibility of Song-gi, which has a considerable amount of insoluble dietary fiber caused constipation because it absorbed the moisture in the intestine due to the lack of nutrients but may be developed as a functional food that helps the digestive activation of the intestine and improve the health of the intestine if taken with balanced nutrition.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review Dasik’s recipe of Jong-Ga in the Gyeongbuk area. Main methods of this study were literature review and in-depth interview. To study the historical transition of traditional Dasik, analysis of 11 cooking books from the 1400’s to 1800’s was carried out. Jong-Ga was made using Dasik and main ingredients were Songhwa, Kka and Kong Dasik. Special Dasik was in nine of Jong-Ga (Ipjae’s head family of Pungyang Jo’s clan, Sojea head family Gwangju No’s clan, Sawoodang head family Uiseong Kim’s clan, Heobaekdang’s head family of Bukye Hong’s clan, Taechon’s head family of Gyeseong Go’s clan, Gwiam’s head family of Gwangju Lee’s clan, Songdang’s head family of Milyang Park’s clan, Haeweol's head family of Pyeonghae Hwang's clan, Galyam's head family of Jaeryoung Lee’s clan) and Dasik are Gamphi dasik, Heukimja dasik, Baksulgi dasik, Tibap dasik, Daechu dasik, Yukpo dasik, Misutgaru dasik, Dotori dasik and Omija Dasik. It was used as a ritual food and reception food for guests. These recipes are good examples of functional and modern of Korean food. In the future, Dasik as well as discovery of ingredients in other foods of Jong-Ga are needed.
This study analyzed trends and contents of ancestral ritual foods of Korean traditional Jong-ga as a domestic thesis. In searching the keywords related to ancestral ritual foods using a thesis search site, a total of 15 theses in seven journals were selected for analysis. Three theses from 1996 to 1999, six theses from 2005 to 2008, and another six theses from 2012 to 2016 were announced. In measuring frequency by dividing case families analyzed in the thesis into region, there were 83 families, including seven families from Gyeonggi (8.4%), seven families from Chungcheong (8.4%), two families from Honam (2.4%), and 67 families from Yeongnam (80.8%). Fifty-four families out of 67 families from Yeongnam were located in Andong-si, occupying 65.1% of the 83 families. The family showing the highest frequency was ‘Seoae Jong-ga’ (12 times). The family clan with the highest frequency was eight families of the ‘Jinseong Lee clan’ In the future, it would be necessary to understand the research flow through analysis of research trends in ancestral ritual foods of Jong-ga as well as interdisciplinary research and methodological diversification of studies on ancestral ritual foods of Jong-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