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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3.
        199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000원
        324.
        198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7,000원
        325.
        1987.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structure and transition of fertilization system in the 18th century. Especially, on the basis of this analysis, We can find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al productivity in Chosun Dynasty. The improvement of fertilization method in the 18 century is found from all items -i,e-the time and object for fertilization, change of the concept in individual fertilizers. The transportation and the double - cropping of rice and barley in a paddy field had accomplished the improvement of fertilization method. Then,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al productivity in a guarantee of higher fertilization method contributed directly to realize the consciousness of peasant's landownership.
        4,900원
        326.
        1987.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agricultural technologies through plowing and hoeing. One of the purposes on which this study is to analysis process of development and divergence of plough and hoe. The following facts are significant findings ; 1. In early Yi - dynasty, tilling implements used by ard plough and mould board plough did use in three south province, most region mainly used ard plough. Therefore, farming in early Yi - dynasty is extensive. 2. The mould board plough diffused in many fann house, spring farming and autumnfarming formed complet system in early 17th Century. But works of hoeing was continuing to save labor by long hand hoe. 3. Finally in 17th century, Small - scale independent farming ceaselessly tried to make his basis with transtortation intensive farming method. But Small - scale independent farming had not stafely base because extensive farming method continued in this peorid.
        4,300원
        327.
        198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attempts to study the court food based on the historic ceremony book, Jung Ri Eui Gwiea which describes the king's visit to the royal tomb, 'Hyun Neung Won', during the rein of Chung Jo, the 22th King of Yi Dynasty. According to this book, the foods used for the ceremony of the court and the courtesy of dinner party appears as follows. 1. At the birthday party of Bong-su Dang, the main table with 70 dishes and the side table of extraodinary flavor with 12 dishes were served to Mrs. Hong of Hea Kyung Kung, the mother of Chung Jo. As soon as they were served, the napkins, menu card, flowers and soups followed them, and a cup (Jack) of wine (with soup) was served to her seven times. This party was held by Sang Chim, Sang Kung, Sang Eui, Jun Chan, Chan Chang, Jun Eui, In Eui, Sa Chan and Jun Bin. 2. At the birthday party of Yun-hee Dang;the main table with 82 dishes and the side table of extraodinary flavor with 40 dishes were served to her. And the napkins and menu cards followed them and a cup(Jack) of wine was served to her four times. The courtesy of this party was held by Sang Chim, Sang Kung, Sang Eui, Jun Sun and Yeo Jeo Jip Sa. 3. At the party of Yak No Yun for the oldman, there were some soups (Doo Po Tang), cooked sliced meats (Penn Yeuk), steamed legumes (Heuk Tea Zeung), and some fruits on the main table. The napkins, menu cards and flowers followed them, and wine was served on the table for the king. The feast was held by Chan Eui, In Eui, and Tong Rea. 4. Foods used in these parties were classified into 9 groups such as Rice cakes, Rice and Noodles, Dessert Cakes, Sugars, Fruits, Side Dishes, Beverages, Sauces and Wine. 5. The units of height, amount, weight, and number measured for cooking were used variously. 6. The foods accumulated highly on the dishes were decorated with paper and silk flowers. 7. The containers for cooking and the utensils for the feast were used variously.
        4,800원
        329.
        2022.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19세기에 중국에서 󰡔依經問答󰡕, 일본에서 󰡔美以敎會問答󰡕, 그리고 조선에서 󰡔미이미교회문답󰡕이라는 제목으로 순차적으로 번역된 미 북감리회 교리문답서를 그 연구 대상으로 하여, 각 판본의 번역 및 출판 과정을 밝히고, 번역 과정에서 기독교 용어가 어떠한 창출·변용·적용의 과 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865년 매클레이가 번역한 중문본은 영문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기독 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중국인 독자들을 위해서 문제의 내용을 바꾸거나 첨언하는 경우가 있었고, 새로운 문항도 2개 추가되었다. 1876년 소퍼가 번역한 일문본은 영문본을 기본으로 하되 중문본도 함께 참고하면서 용어 에 있어서 약 45%가 중문본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글본에는 2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그 중 플랑시가 수집한 번역자 미상, 연대 미상의 󰡔미이미교회문답󰡕은 1885년 이수정에 의해 번역된 것임이 본 논문을 통해 밝혀졌으며, 이수정역은 일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용어의 약 68% 가량이 일문본과 일치하였다. 이후 1889년 존스가 다시 번역한 󰡔미이 미교회문답󰡕은 영문을 저본으로 하였지만, 중문본과 이수정역에서 차용한 용어가 각각 37%, 17% 정도 되는 등 앞선 번역본들도 참고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수정과 존스가 한글로 창출한 단어들은 현재 대개 사용되지 않고 있 으며 한자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이는 용어의 유통에 있어서 는 번역자 뿐 아니라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대중의 역할이 더욱 크다는 것 을 보여준다.
        330.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소코트라에 인도인, 아랍인, 헬라인들이 거주하며 홍해와 인도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국제무역을 했다는 사실이 1세기에 저술된 『에리트라이해 항해기』에 기록되어 있다. 2000년에 발견된 호크 동굴에서 인도 브라흐미어, 남부 아라비아어, 에티오피아어, 헬라어, 팔미라어 등으로 기록된 낙서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낙서들의 기록 시기를 분석한 결과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라는 사실이 밝혀져 『항해기』의 내용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국제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소코트라에 빠르면 4세기 후반 늦어도 6세기에는 기독교가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빠른 시기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은 354년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의해 힘야르 왕국에 파견되어 기독교를 수용하도록 활동했던 테오필루스이다. 그는 힘야르 왕의 허락을 받아 세 개의 교회를 건축한 후에 자신의 고향인 소코트라에 기독교를 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악숨은 525년 이후에는 힘야르 왕국을 정복하여 기독교를 믿도록 개종을 시켰다. 이 시기에 소코트라는 힘야르 왕국의 지배 하에 있었으므로 악숨인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을 것이다. 셋째로 코스마스의 『기독교 지형학』은 소코트라 섬에 페르시아에서 임직받은 감독들과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코트라의 다하이시와 SHP_067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포크형의 네스토리안 형태의 십자가 모양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페르시아에서 기독교가 전파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코트라에서 고대 시기에 로마제국에서부터 인도양에 이르는 국제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러한 교류활동 가운데 기독교도 함께 전파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331.
        2021.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We projected the temperature changes in the mid-21st century with 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 (RCP) 4.5 and RCP8.5 using the temperature data simulated by four regional climate models (RCMs: WRF, CCLM, MM5, RegCM4) in Korea. The simulation area and spatial resolution of RCMs were the CORDEXEA (COordinated Regional Climate Downscaling Experiment-East Asia) area and 25 km, respectively. We defined the temperature change as the difference (ratio) between the average annual temperature (IAV: Interannual Variation) over the projected 25 years (2026-2050) and that over the present 25 years (1981-2005). The fact that the average annual temperature bias of the four RCMs is within ±2.5°C suggests that the RCM simulation level is reasonable in Korea. Across all RCMs, scenarios, and geographic locations, we observed increased temperatures (IAV) in the mid-21st century. In RCP4.5 and RCP8.5, 1.27°C and 1.57°C will be increased by 2050, respectively. The ensemble suggests that the temperature increase is higher in winter (RCP4.5: 1.36°C, RCP8.5: 1.75°C) than summer (RCP4.5: 1.25°C, RCP8.5: 1.49°C). Central Korea exhibited a higher temperature increase than southern Korea. A slightly larger IAV is expected in the southeastern region than in the Midwest of Korea. IAV is also expected to increase significantly in RCP4.5 (summer) than in RCP8.5 (winter).
        332.
        2021.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13세기 시리아 문헌인 『랍반 사우마와 마르 야흐발라하 3세의 역사』에 나타난 몽골제국 시대 칸발리크를 중심으로 몽골 기독교를 살펴보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지만, 13-14세기 유럽의 프란치스코 선교사들(Franciscan missionaries)이나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당시 칸발리크와 중국에서 만났던 바로 그 ‘네스토리안(Nestorians)’ 혹은 ‘네스토리오스 기독교(Nestorian Christianity)’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본인은 13세기 시리아어로 기록된 『랍반 사우마와 마르 야흐발라하 3세의 역사』를 주요 문헌으로 사용하여 1) 동방에 있었던 기독교인들의 명칭을 살펴보고, 2) 랍반 사우마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 몽골 기독교의 신앙기원 (사도 도마-앗다이-마르 마리 전통)과 교리를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본 글은 『랍반 사우마와 마르 야흐발라하 3세의 역사』에 나타난 몽골 기독교는 자신들을 사도 전통을 이어 받은 동방 교회의 일원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33.
        202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국경선을 298년에 국경선을 시네로 철수하였고, 메로에 왕조가 4세기 중반 이후 붕괴하자, 트리아콘타스코이노스에서 정치적인 공백이 발생하였다. 이 무렵에 이 지역에서 블레미스인들과 노바데스인들이 등장하여 충돌하였다. 먼저 블레미스인들이 394년에 탈 미스를 점령하였고 5세기 전반기에는 도데카스코이노스와 함께 동부 사막 지대의 에메랄드 광산을 개발하였다. 동부 사막지대에 거주하던 이들은 정치적인 공백이 발생하자 매장지와 목초지를 구하여 도데카스코이노스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치적으로 지배하면서 에메랄드를 중심으로 중개무역을 하였다. 5세기에 제2폭포 지역을 중심으로 노바데스인들이 등장하여 노바디아 왕조를 세웠다. 이 왕조의 실코 왕은 5세기 중엽에 부족연합국가를 형성하여 블레미스인들을 물리치고 도데카스코이네스 지역을 차지하였고 6세기에 접어들어 중앙집권화된 왕국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부족연합국가 단계를 넘어 중앙집권화된 왕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실코 왕은 다른 전통 종교들과 함께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로 인정하였다. 그러한 증거로 블란나 지역의 무덤들에서 기독교의 표지를 가진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고, 사람들을 함께 매장하던 풍습이 사라지다가 500년경에는 큰 무덤을 만드는 매장 풍습이 사라졌다. 동로마제국에서 선교사를 파송하여 나라가 543년에 정식으로 기독교를 수용하는데, 이것은 5세기 후반부터 기독교가 점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의 정점으로 보인다.
        334.
        2020.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한국교회사학회지」에 게재된 16세기 교회사 관련 논문 78편 을 분석하고 평가했다. 1979년 창간호부터 가장 최근인 2019년 8월까지 모두 53권이 발간되었다. 이 53권에는 모두 425편의 논문이 실려 있는데, 16 세기 교회사 관련 논문이 78편으로 18.35%에 해당한다. 이 78편의 논문은 모두 16세기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다루고 있으며, 대부분 그 핵심 인물 몇 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루터 관련 연구가 43편이고 칼뱅 관련 연구가 15편이다. 이러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나서 본 논문은 16세기 교회사와 관련된 연구 영역이 크게 확장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향후 연구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335.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오늘날 기독교 신앙고백은 한 순간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발전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1세기 초기 단계의 신앙고백부터 공의회의 결과물로 나온 4세기 발전된 신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앙고백은 계속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정통신앙고백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각 시대마다 존재했고, 초기에는 대부분 사도적 기원으로 판단했다. 물론 성경 그 자체가 기준이었지만, 다양한 성경해석의 문제 앞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사도였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성경해석과 그들의 신앙은 정통이라 인정받았고, 이러한 사도성에 기준을 둔 신앙고백은 발전해서 4세기 공의회를 통한 신조까지 이어졌다. 본 논문은 성경에 나타난 신앙고백 이외에 사도들로부터 인정된 초기 기독교 신앙고백들의 내용을 밝혀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그 범위를 성서시대를 넘어선 1세기 후반부터 2세기 중반 ‘신앙규범’(regula fidei)이 등 장하기 전까지 나타나는 기독교 신앙고백의 초기단계를 살펴보았다. 이에 클레멘스 제 1서신과 이그나티우스의 일곱서신과 아리스티테스 저서와 순 교자 유스티누스의 저서를 다루면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의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를 분석했다.
        336.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WCC를 중심으로 20세기 세계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방향을 평가하고 21세기의 시대의 징조와 신학적 변화를 고찰하고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을 찾는데 기여하려는 목적이 있다. 20세기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선교, 봉사, 신학의 일치에서 WCC의 창립으로 이어 졌고, 그후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일치, 정의와 평화, 생명보전의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21세기는 세계기독교의 중심이 남반구로 이동하였고, 경제적 양극화와 다원주의, 문명충돌과 같은 문명전환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서구 기독교가 세운 에큐메니칼 질서가 전반적으로 해체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에큐메니칼 신학은 생명과 창조, 화해와 치유, 다양성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 삼위일체론적 보편주의를 강조하게 되었다. 과연 세계 교회와 에큐메니칼 운동은 자본이 지배하는 이 질서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고 예언자적 특성, 신학적 지성, 지도자들의 도덕성을 회복해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은 유럽기독교와 비유럽 기독교의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까? 제10차 WCC 부산총회 이후 세계교회는 한국교회가 신학적으로 재정적으로 유럽 교회와 비유럽 교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교회는 여러 측면에서 쇠락의 징후를 보이고 있어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 쉽지 않다. 향후 10년 동안 한국교회의 영적 에너지를 어떤 곳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한국교회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337.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4세기 예루살렘 교회에 초점을 맞추어 초기교회 입교절차의 신학적 메시지와 교육적 가치를 탐구하고, 한국 개신교회를 위한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했다. 입교절차는 키릴로스의 세례 전 사순절 카테케시스와 세례 후 미스타고지에 근거해 재구성했고, 에제리아의 증언에 도움을 받았다. 입교절차는 세례예식 전, 세례예식, 세례예식 후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가르침과 예식이 치밀하게 짜인 거룩한 사회화 과정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주된 신학적 메시지는 사탄의 통치에 대한 포기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수용, 그리고 그에 따른 세계관과 가치관, 윤리관과 삶의 양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회심과 성화다.
        338.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변혁기마다 여성들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가장 앞장서서 창조적인 사역의 길을 개척하고 여성공동체를 형성하여 교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성장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안정화되면, 여성들만의 특수성을 가졌던 여성공동체는 전체공동체에 흡수 혹은 통합됨으로써 여성들이 다시 소외되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본 글은 여성공동체가 ‘창의적 사역 개척 – 여성공동체 형성 – 통합위원회로 변화 – 여성의 특수성 약화’라는 역사의 순환을 반복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여성의 참여가 안정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 현상은 오늘날 교회에서 여성, 청년, 장애인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20세기 초 교회론의 변화에 따라 여성의 입지가 약화 되는 상황에서, 여성 에큐메니칼 선구자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의 성찰과 에큐메니칼 대화를 통해 여성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을 동시에 전개 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 결과, 교회에서 여성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평신도 신학을 정립하여 20세 교회론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지도자는 사라 차코, 캐슬린 블리스, 마들렌 바롯, 그리고 수잔 드 디트리히가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평가는 미미하다. 그 이유는 이들 역시 여성위원회를 평신도분과로 변경하여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통합공동체를 기대했으나, 다시 부서가 남성 위주의 조직으로 변경되어 오히려 여성의 입지가 축소되고, 여성 사역의 토대마저 다시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권위가 신장된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여성위원회의 존립은 매우 중요하다. 본 글은 세계교회협의회 임시위원회(1938)부터 에반스톤 중앙위원회 (1955)에 이르기까지 여성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에큐메니컬 운동을 연대순으로 분석하였다. 여기에는 세계교회협의회 집행위원회 또는 중앙위원회의 회의록, 세계교회협의회 문서보관소 및 세계 YWCA 문서보관소에 있는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 글의 결론으로 교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완전하고 동등한 참여를 위해서는, 여성공동체는 전체 공동체의 일치를 보호하고, 전체공동체는 여성 공동체의 특수성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성숙한 관계 형성과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사역 참여는 진정한 교회 개혁의 가시적인 표현이며 다가오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39.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잔 달브레는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 시기에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나바라 왕국의 통치자이자 베아른 종교개혁을 이끈 위그노 지도자이다. 로마가톨릭을 신봉하던 프랑스 왕실에서 어머니 마르가리타 당굴렘에 의해 프로테스탄트로 자란 잔 달브레는 다른 왕족 여성들과 달리 공개적으로 프로테스탄트임을 드러낸 보기 드문 의지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프로테스탄트 성향의 가정교사에게 교육 받은 잔은 10대 시절 두 번의 정략결혼이라는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20대에 꾸준히 프로테스탄트들을 도우며 종교개혁자들과 교류하다가 32세에 테오도르 드베즈로 대표되는 칼뱅주의자들의 영향으로 공개 개종을 했다. 이후 자신의 영지 베아른에서 입법과 제도 개혁을 통해 종교개혁을 단행하며 프랑스 위그노 중 가장 높은 위치에서 종교개혁운동을 이끌던 잔 달브레는 오르테즈 아카데미 설립, 성서 번역, 앙리 4세 등 많은 영적 유산을 남겼다. 본 논문은 종교개혁사가 기억해야 할 잔 달브레의 생애와 활동을 프로 테스탄트 통치자와 프로테스탄트 신앙인이라는 두 측면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잔이 어떻게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는지를 기술할 것이다. 이후 프로테스탄트 통치자 잔을 조명하기 위해 ‘베아른 교회법령’에 나타난 베아른 종교개혁과 잔의 국가관을 분석할 것이다. 프로 테스탄트 신앙인 잔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1563년 잔과 다르마냑 추기경이 주고받은 편지, 1568년 작성한 『충분한 설명』 속 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일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종교개혁자이자 프로테스탄트 통치자인 잔 달브 레를 개혁사에 각인시킬 뿐 아니라 프랑스 종교개혁에 미친 잔의 영향력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340.
        2019.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A light-emitting diode (LED) is most efficient in terms of economic benefits. The aim of the present study was to evaluate the effects of LED lighting intensity on milk production, milk composition, and the immune response of Holstein cows. Thirty-eight lactating cows were assigned to four experimental groups: control group (exposed natural daylight without LED light) and three LED treatment group (50 lux; natural daylight and 6 h LED light of 50 lux intensity, 100 lux; natural daylight and 6 h LED light of 100 lux intensity, 200 lux; natural daylight and 6 h LED light of 200 lux intensity). There was a significant effect on the decrease ratio in milk production in 200 lux group. Lactose was significantly increased in 100 lux than the other LED treated groups. In addition to the hemolytic biochemical analysis, AST and β-HB were significantly increased in the 50 lux than the other groups. Prolactin and IGF-1 levels were significantly increased in 200 lux compared to other groups. Besides, cortisol was significantly higher in 50 lux and lowered in the 200 lux than the control, while IgA and IgG were not significant among the groups. Therefore, it was concluded that LED lighting intensity had some impact on blood parameters and immune responses in dairy cows with increased milk prod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