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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1.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윤치호가 1885년부터 1888년까지 중국 상해에 머물며 남감리회 미션스쿨인 중서서원에서 수학하던 시기를 그 연구대상으로 삼아, 윤치호가 중서서원에서 받은 근대교육과 종교교육에 대해 살펴보면서, 미션스쿨이 윤치호의 개종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대해 본 논문은 첫째, 윤치호가 상해에서 수강한 과목들을 당시 중서 서원의 8년 학제에 포함된 교과목들과 비교하면서 윤치호가 그 중 3-6학년 도 과정을 수학한 것을 밝혔으며, 둘째, 중서서원의 종교교육을 검토하면서 중서서원은 세속학교가 아닌 전형적인 미션스쿨로서, 윤치호도 그가 받은 모든 수업에서 성경이 교재로 사용되었고 매일 두 차례씩 종교예식을 갖고 토요일에는 성경강독 수업을 받았음을 살펴보았다. 셋째, 선행연구에서와 달리 윤치호가 처음 예배당에 간 것은 1885년 2월 15일이 아닌 2월 8일이었으며 교회에 데려간 사람은 알렌이 아닌 로얄 선교사였음을 밝혔고, 이를 통해 윤치호가 중서서원에 입학한 직후부터 선교사들의 특별한 선교적 관심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음을 추론하였다. 결국, 윤치호는 윤리적 종교에 대한 개인적 관심 및 근대 사상에 대한 관심에서 스스로 기독교 에 접근하기에 앞서, 이미 미션스쿨의 종교적 학풍과 선교사들의 전략적 전도 과정을 통해 이미 기독교적 환경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었다.
        302.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마리 당티에르는 16세기 종교개혁이라는 대격변의 시기에 자신이 옳다 고 믿는 진리를 온몸으로 외치며 살았던 평신도 여성 개혁자였다. 마리는 한편으로는 오직 성서의 원리에 근거하여 로마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신학과 실천을 비판하고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대안으로 제시한 종교개혁자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만인제사장 원리에 기초하여 남성중심적인 기존 질 서에 대항한 여성 권리의 옹호론자로 아마도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이 마리는 프로테스탄트 신앙과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이중의 개혁”을 주창하였다. 필자는 먼저 마리 당티에르가 활동했던 16세기 제네바의 역사적 상황을 개관할 것이다. 당시의 제네바의 역사적 맥락을 아는 것은 마리의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필자는 마리의 대표적 저술인 『편지』에 주목할 것이다. 『편지』의 배경, 내용, 중심사상 등을 살펴보면서 마리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인 동시에 페미니스트였음을 논증할 것이다. 또한 제네바의 대표적 개혁자였던 칼뱅과 마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마리 당티에르라는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함으로써 그동안 묻혀 있던 16세기 여성 개혁자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종교 개혁을 보다 온전하고 균형 있게 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303.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그리스도교와 헬레니즘의 관계란 관점에서 유대교의 한 종파 인 예수 운동이 이방인 선교를 통해 세계 종교로 발전하는 제1차 유다이아 전쟁까지의 원시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을 역사적으로 규명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관계를 팔레스티나와 디아스포라를 나누 어 간략하게 고찰하였고(II), 그 다음에는 언어, 유대계 그리스도교와 이방 계 그리스도교의 구분, 유대교 율법과 이방인 선교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III).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첫째, 예수와 그 제자들은 아람어를 사용하고 헬 레니즘을 수용하는데 소극적이었지만, 헬레니즘 유대계 그리스도인(“헬라 파”)들은 예수 전승을 그리스어로 번역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그리스 세 계에 맞게 변용시키고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 교가 그리스 문화를 매개로 지중해 세계 전역으로 전파되는데 핵심적인 역 할을 수행했으며, 둘째,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율법에서 자유로운 이방 인 선교를 주도하고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율법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지만, 후기에는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확신하고 다른 형제자매를 위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하여 율법 이해에서 변화를 보여주었고, 셋째,바울은 주체와 인격의 구별, 개인의 결단과 보편적인 사회의 전망을 강조 했다는 점에서 헬레니즘 정신에 부합되는 새로운 종교를 제시했으며, 마지 막으로 가정 교회가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실현하고 경험하는 모판이 되었 다는 것을 밝혔다. 예수 운동이 이방인 선교를 통해 세계 종교로 발전하는 과정을 추적함 으로써, 본고는 그리스도교와 헬레니즘의 관계를 규명하며, 유대교와 그리 스 문화 사이에서 원시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 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앞으로 역사적 차원뿐만 아니라 신학적 차원에서 이 주제를 다룬 연구가 진척되기를 촉구했다.
        304.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웨슬리의 설교에 집중하여 중년 이전의 웨슬리의 생각을 추 적하여, 특별히 그가 메소디스트 운동을 시작한 옥스퍼드에서 공개적으로 행한 설교에 집중한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 사건을 전후해서 그가 옥스퍼 드에서 한 9편의 설교를 통해 볼 때, 대학에서 시작된 메소디스트 운동의 중심 사상이 무엇이었는지, 그는 무슨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대학 강단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영국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곳에서 교육을 담당한 교수 들이, 그리고 이후에 목회를 담당할 학생들이 과연 어떤 각오와 결단을 해 야 한다고 웨슬리가 생각했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웨슬리 자신은 교회개혁을 어떤 방향으로 수행하려고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기대를 안고 입학하여 공부한 곳, 그곳에서 자신을 가르친 교수 와 동료와 후배,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그들이 어떤 각오로 공부를 하고, 앞으로의 사역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밝힌 웨슬리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웨슬리의 옥스퍼드 설교는 당시의 교수나, 목사나, 신학도 가 교회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기에, 2017년 종교개 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의 신학대학과 교회에서 활동하는 교수와 목 사들에게, 예언자로서 그리고 종교개혁자로서 선포하는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305.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한국개신교의 종교개혁 500주년과 관련된 최근의 경향을 살펴볼 때, 주 목할 만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대부분의 연구가 500년 전 유럽의 종 교개혁과 현재 한국의 종교개혁을 살펴보면서 양자를 직접적으로 연결시 킨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하나는 500년 전 유럽의 상황과 오늘날의 한국의 상황 사이에는 500년이란 시간적 간격과 서구와 비서구라는 공간적 간격이 있는데, 이것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에 이미 100여 년 전 개신교가 전달되었 기에 종교개혁과 관련된 역사가 1세기에 가까운데, 이런 전(前) 역사에 대 하여 충분한 관심을 보이는가 하는 질문이다. 본 논문은 바로 이런 문제점 에 대해서 답하고자 한다. 이것은 방대한 연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 서 본 논문은 범위를 제한하여, 한국개신교 초기부터 해방 전까지 종교개 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헌 특히 단행본을 분석하는데 집중하고자 한다. 본 논문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해방 전에 나온 일곱 권의 단행본이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처음 네 권은 선교사가 집필했고, 다섯 번째는 한국인이 번역했고, 마지막 두 권 은 한국인이 집필했다. 이것만 봐도 점차 한국인 주도적인 연구가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내용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개혁의 역사서가 네 권 이었고, 인물사가 세 권이었다. 루터교, 종교개혁 전반, 종교개혁 이후 등 구체적이고도 광범위한 역사가 다뤄졌다. 또한 종교개혁의 핵심인물인 루 터, 녹스, 칼뱅이 소개되었다. 셋째, 출판년도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개혁 400주년인 1917년을 전후하여 1900년대에 1권, 1910년대에 2권, 1920년대 에 2권, 1930년대에 1권, 1940년대에 1권이 출간되었다. 이를 미루어볼 때, 종교개혁에 관한 관심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은 해방 전 종교개혁 관련 저서들을 통하여 다음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하였다. 첫째, 종교개혁에 대한—가톨릭교회를 포함하여— 상당한 지 식이 제공되었다. 둘째, 종교개혁에 대한 개념, 용어 등이 개발되었지만 추 후 연구에 성실하게 반영되지 않았다. 셋째, 이 저서들의 출간이 바로 한국 개신교의 자기신학화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었다.
        306.
        2017.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부르디외의 사회자본 이론과 그라노베터의 연결망 이론을 통해 종교가 어떻게 미군정기의 행정 관료 채용에, 또한 이를 통해 이후 한국 사회의 방향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았다. 1) 부르디외에게 종교는 상징자본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사회자본으로서의 기능을 감당할 수 있음을, 2) 종교적 배경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없었 던 그라노베터의 연구와는 달리, 종교가 미군정기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접 촉 연결망으로 작용하고, 나아가 ‘확장된 내부노동시장’의 장치를 통해 지 속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러한 과정을 네트워크에서 1차 결절점(node)으로서 기능한 3명의 선교사 2세(윌 리암스, 언더우드, 윔스)와 2차 결절점으로서 기능한 1차 등용 관료(조병옥, 정일형, 이묘묵)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307.
        2017.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인간중심적 구원론에 반 대해 신중심적 구원론을 제시했다. 그 결과 루터 신학은 인간의 전적타락 과 노예의지(인간론), 하나님의 자기 충족성과 예정(신론), 그리스도의 의 의 전가를 통한 칭의와 성화(기독론), 성령의 계시에 의한 영적 시련과 위 로(성령론), 행함 없이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구원론), 구원에 토대를 둔 소 명의 삶(기독교 윤리) 등 신학의 제반 주제에서 구원의 원인과 공로를 오 직 하나님께 돌리는 일관성을 나타냈다. 동시에 루터는 신중심적 신학이 인간의 책임성 약화를 초래하는 것을 방 지하고자 신자의 거룩한 삶을 위한 자극과 동력이 되는 성화의 장치를 종 교개혁 신학 체계 안에 마련했다. 즉,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사랑, 순종을 일으키며,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 한 구원은 그리스도의 법에 대한 자발적 성취로, 성령의 은혜는 칭의에 대 한 깨달음 뿐만 아니라 실제적 변화로서 성화로, 또 구원의 믿음은 행함의 열매로, 영적 구원은 세상에서 소명을 다하는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많은 한국 개신교인이 믿음과 행위 사이, 피안적 천국과 이 땅 사이의 이원론에 빠지게 된 것은, 그들이 루터의 신중심적 신학을 받아 들이면서도 그가 강조한 성화의 장치는 소홀히 다루었기 때문으로 분석한 다. 이 점에서 루터의 성화의 장치에 대한 주의깊은 이해와 수용은 한국 개신교의 도덕성과 영성, 사회적 책임성 제고의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308.
        2017.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20세기의 위대한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1909-1998)이 종 교개혁사상을 후기 계몽주의 다원주의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였는지를 살 펴보려는 것이다. 뉴비긴은 20세기 후반의 서구사회에서 과학적 세계관을 새로운 이교주의로 보고 기독교 신학에 인식론적 새 출발을 하려고 했다. 뉴비긴은 개혁신학의 토대위에 선교사의 경험과 에큐메칼 운동의 경험을 수렴하여 통전적이고 독창적인 신학을 제공하였다. 이 글은 첫째, 뉴비긴 의 생애와 그의 신학형성에 영향을 준 사건들을 검토했다. 둘째, 20세기의 세계기독교의 변화에 대한 뉴비긴의 이해를 검토했다. 셋째 뉴비긴의 신학 에서 종교개혁사상과 관계된 부분을 ⑴ 하나님 지식, ⑵ 오직 믿음, 오직 은혜, ⑶ 성경의 권위, ⑷ 교회: 하나님의 가족, ⑸ 선택의 교리, ⑹ 만인제 사장직과 직제, ⑺ 교회와 국가의 순서로 연구했다.
        309.
        2017.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21세기에 관용은 상당히 어려운 주제이다. 관용이란 서로를 자유로운 자요 동등한 자로 인정하는 조건에서만 실제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역 사적으로 살펴보면, 자신의 고유한 전통이 지닌 어두운 측면을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개별화해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이다. 물론 각 전통은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의 질문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도대체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관용 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관용과 진리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왜냐하면 각 신자들에게 신앙의 진리에 대해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관용의 지속적 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교가 유일신교를 표방하는 종교라면 선천적으로 편협하고 배타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관용에 대한 사회의 물음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관용에는 한계가 있는가? 사회는 얼마나 많은 다름과 차이를 견뎌낼 수 있는가? 더군다나 교회 안에 서의 관용은 가장 위험한 것인데, 우리가 ‘복음적’이라고 말할 때는 그 어 떤 권위와 상관하지 않고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믿을 수 있다는 전 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므로 이단과 사교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분명히 관용은 올바른 삶을 소개하는 하나의 양식으로써 다양성을 가공하 는 것이다. 동시에 관용은 신자이면서 능동적인 시민이 되는 것을 허용하 는 것이기에 결코 정신분열증이나 모순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관용은 신앙의 범주에 해당된다. 이 논문은 이런 관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을 중심으 로 관용의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310.
        2017.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독일의 루터10년 프로젝트처럼, 한국교회 역시 많은 학술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종교 개혁 내지는 루터 신학의 세계적인 의미를 찾을 것이다. 본 논문은 루터의 신학에서 “무엇이 종교개혁적인가?”를 다루었다. 관점에 따라서 루터 신학 의 핵심은 다르게 선택될 수도 있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염 두에 두었고, 그 결과 루터 신학의 바른 이해와 적용을 위해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선택하여 논했다. 칭의의 조건은 그리스 도를 믿는 믿음이다. 그렇지만 칭의는 종결이 아닌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시작이다. 신자의 거룩한 삶이 칭의와 더불어 시작되고, 이 세상에서 생을 다하기까지 함께 간다. 그것이 무엇이건 인간이 할 일이 있다면, 칭의 이후의 일이며, 칭의 이후의 일이 역으로 칭의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즉 칭 의를 위해 인간이 할 일은 없지만, 거룩한 삶은 칭의와 더불어 가는 것이 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의 일하심의 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한다. 이것은 가시적인 것 혹은 외적인 권위와 규모 를 통해 신을 파악하려했던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 내지는 스콜라신학을 거부한다. 물질주의에 대한 한국교회의 의존성, 기복 및 개교회 지상주의 는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과 다를 바가 없다. 만인제사장직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적 평등의 선언이자, 직업 활동 을 통한 소명의 성취를 요구한다. 한국교회 역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 분법적 틀을 희석시켜야 하며, 동시에 교회 밖 직장과 사회에서 직업 소명, 즉 제사장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자랑스런 유산을 물려받은 프로테스탄트의 후예이다. 마르틴 루터의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여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는 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311.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2017년은 개신교 종교개혁 500주년이 된다. 근래에 일부 역사가들은 신 학에 비중을 두는 데서 벗어나 종교개혁이 대중에게 끼친 영향과 그들의 역할을 연구하면서 종교개혁의 사회사를 기술하고 있다. 그런 경향을 따라 서 여성사학자들도 종교개혁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은 유럽 여성들의 지위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여성들은 종교개혁 의 전파와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여성들은 단지 종교개혁의 메시지 를 받는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종교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종교개혁 여성들은 실로 개혁된 것이 아니라 개혁을 했다. 종교개혁에 수반된 가장 극적인 변화들 중의 하나는 수녀원의 폐쇄였다. 어떤 역사가들은 수녀원의 해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종교개혁은 타락하고 성차별적인 수도원 제도로부터 수녀들을 해방시켰으며, 여성과 가 정을 정절과 수녀원보다 높은 단계로 상승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 가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다. 수녀원의 폐쇄는 수녀들의 선택권을 제한했 으며, 그들이 가질 수 있었던 제한적인 경력들 중 하나를 부인했고, 여성이 지도력을 행사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수녀들은 그녀들이 겪은 가장 강력한 도전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반응했다. 독일의 많은 수녀들은 수녀원을 탈출해서 종교개혁의 물결에 참 여했다. 그러나 다른 수녀들은 강력한 개혁의 폭풍에 맞서 수녀원 생활을 존속시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또 다른 수녀들은 개혁 세력과 절충해서 개 신교로 개종하거나 수녀원 시설을 학교나 병원으로 전환했다. 종교개혁 시 대의 여성종교단체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아직도 수녀원의 저항이나 존속 보다 해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많은 수녀들이 수녀원에 남았으며 말과 행동으로 저항했다. 독일의 수녀원들은 종교개혁의 격류에 도 휩쓸리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수녀들은 막강하고 정복되지 않는 베일 쓴 군대였다. 접
        312.
        2016.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근래까지 잊혀져 왔던 취리히 종교개혁자 하인리히 불링거 (1504-1575)가 1534년에 출간한 고린도전서 주석의 역사적 형성 배경과 그 의 주석적 방법론의 특성, 특히 자료 인용의 방법에 대한 것이다. 불링거의 성서 주석은 그가 츠빙글리의 사후 위기에 처한 취리히 종교개혁을 유지 발전시키는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과정의 산물로서, 간편하고 유용한 주석 자료를 동료 목회자들에게 제공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주석 출간의 계기는 불링거에게 주석 자료를 보내주고 출간해 주기를 끈질기게 요청했 던 베르히톨트 할러 등 여러 스위스와 독일어권 지역의 개혁자들이 제공했 으나, 불링거는 1532년부터 신약 성서 서신서의 주석들을 출간하여 선물하 고 헌정함으로써 취리히와 여러 지역의 교회, 정치 지도자들 간에 연대와 교류를 만들어가는 기회로 삼았다. 1534년 고린도전서 주석은 프랑크푸르 트 교회의 개혁파 목사인 디오니시우스 멜란더에게 헌정되었다. 불링거의 성서 주석은 멜랑히톤과 칼뱅 등 동시대 다른 주석가들과 비 교해 볼 때, 문헌학과 수사학에 기초한 인문주의적 주석 방법론을 채택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주석 자료 인용의 빈도와 태도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불링거는 적어도 42명의 고대, 중세, 근세 저자들로부터 거의 주석 한 페이지에 한 회 가까이 인용하고 있으며, 간접 인용과 의역이 주를 이루는 다른 저자들에 비해 직접 인용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보인다. 더군다나 그런 경우 비판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을 추구하기보다는 고대 교부들과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인용하며 그 저자들의 목소리를 빌어서 자신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취리히 교회의 성서 해석이 교부적 권위를 담아 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학문적 자료들을 직접 다룰 여력이 없는 평범한 목회자들에게 유용하고 간편한 성서 연구 방편을 제공해 주고 있 다. 불링거의 성서 주석은 취리히 교회와 다른 개혁 교회 공동체, 그리고 고대 교부와 당대 개혁 교회의 구성원들간에 진리의 네트워크와 연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313.
        2016.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 이 표어는 종교개혁의 중심원리 가운데 하나로서 다른 모든 신학적 원리들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prima principium)이다. 그러나 종교개혁기에 있어 다양한 논쟁적 상황에서 볼 때, “오직 성경만으로”라는 이 표어가 가지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신학적, 실천적 의미들은 더욱 세분하여 정확하게 논구될 필요가 있다. “오직 성경만 으로”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는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세부적인 교리로 구성됨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1) “성경의 충분성(sufficientia)” 교리와 (2) “성경의 명료성(claritas, or perspicuitas)” 교리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 가운데 특히 두 번째인 “성경의 명료성” 교리가 가지는 실제적이고도 중요 한 의미들을 루터의 신학을 중심으로 연구 고찰한 것이며, 또한 이것이 그의 종교개혁신학의 정립 과정과 성경해석 원리 및 여타 다른 종교개혁 원리들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작동되었는지 살펴 본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신학에 있어 특별히 ‘성경의 명료성’ 교리와 관련하여, (1) 인식적 원리(epistemological principle), (2) 신학적 원리(theological principle), (3) 해석학적 원리(hermeneutical principle),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실천적 원리(practical principle)로서의 그 실제적인 작용과 구체 적인 함의들을 구분하여 고찰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의 명료성’ 교리가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과 그의 종교개혁운동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여러 신학적 논쟁 과 신앙적인 투쟁의 국면들에 있어 다양한 기능의 역할과 함의들을 함축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본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루터에게 있어 그것은 먼저, (1) 신학적 인식과 실천을 위한 명확한 확실성을 담보하는 근원적인 “인식론 적 원리”(epistemological principle)로 작용하고 있으며, (2) ‘십자가의 신학’의 정립을 위한 ‘그리스도와 복음 중심’의 성경해석의 “신학적 원리”(theological principle)로서 기능함과 동시에, (3) 종교개혁신학의 체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성경해석 방법론을 구축하는 “해석학적 원리”(hermeneutical principle)로 작 동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4) ‘말씀의 선포(설교)와 성례전의 개혁’, ‘전성도의 제사장직과 교회 직분의 개혁’,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소명론’과 일상의 삶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종교개혁신학의 핵심적인 “실천적 원리”(practical principle)들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현대 성경해석학 적인 위기의 상황 속에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그들의 종교개혁신 학을 정립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원리(prima principium)로 삼았던 “성경 의 명료성”(claritas Scripturae) 교리와 그것이 함축하는 올바른 성경해석 원리 들을 창조적으로 복원하여 더욱 발전적이며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깊이 있는 연구가 더없이 중요하고 긴급하게 필요하다 할 것이다.
        314.
        2016.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루터가 가르친 인간의 죄에 대한 제어로서 하나님의 숨어계 심의 세 종류를 제시하고, 한국 개신교에 대한 적용점을 살펴보기 위한 것 이다. 루터에게서 하나님은 첫 번째로, 신자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시지만, 불신자로부터 자신을 숨기신다. 참된 기독교 신자가 되는 길은 성령의 도 우심 가운데 율법과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영광의 신학자로부터는 자신을 감추시지만, 십자가의 신학자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신다. 신자는 탐욕을 추구하여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영광의 신학을 버리고,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극복하게 하는 십자가의 신학을 가질 때 참 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모든 신자로부터 숨어계신 다. 참된 신자는 숨어계신 하나님의 위엄을 알고, 하나님의 계시하신 뜻을 붙드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315.
        2016.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E. 흄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태 도”와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난 본성이 악한, 고정된 그리고 한정된 존재라는 인간 본성에 대한 “종교적 태도”를 대비시킨다. 흄은 인간 본 성에 대한 “종교적 태도”를 가진다. 따라서 흄은 인간을 다스릴 훈련, 질서 그리고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흄은 인간은 불완전하기 에 필연적으로 완전한 존재인 하나님을 믿게 된다고 언급한다. 흄의 영 향으로 흄과 유사한 인간관과 도덕관 그리고 종교관을 갖게 된 T. S. 엘리엇은 「작은 영혼」에서 인간의 한계성을 인정하며 인간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훈련이나 억제 그리고 기도 같은 초월적 힘이 필요 하다는 도덕적 안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이런 점에서 결 국은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허망한 인간의 성장을 흄의 인간에 대한 “종 교적 태도”를 통해 살펴보면서 엘리엇의「작은 영혼」에 그려진 삶에 도 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보았다.
        316.
        2016.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은 20세기 시인 중에서도 여타의 시인과 확연하게 구별 되는 사상적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시인이었다. 엘리엇의 시학과 사상 에 대해서 행해진 기존의 연구는 철학적, 문화적, 종교적, 인류학적, 그 리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들이 상당하다. 엘리엇은 당시의 심 리학, 철학, 인류학, 그리고 신비주의와 같은 종교적 사상의 방대한 학 문적 배경을 토대로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과 문학적 지표”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엘리엇과 활동연대가 상당부분 중첩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와의 연관성은, 이 두 사람의 시기적 문화적 중첩성을 고려해 볼 때,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초부 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화, 예술 다방면에 걸쳐서 영향력이 줄어 들지 않고 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엘리엇의 사상 및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이 문화와, 문명,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매우 깊고 진지 한 성찰을 행했던 것처럼, 프로이트 역시 다양한 저술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문명, 종교와 문화에 대한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엘리엇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인류의 문화, 문명, 종교라고 하는 아주 근원적인 요소에 대해서 각기 어떤 변별적 차이점을 지향하 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317.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9세기에 중국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가톨릭교회의 선교에 비 해서 그들의 선교가 여러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식하 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교현장에서 의도적으로 개신교회가 ‘성서의 종교’ 임을 강조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으며 성서를 보 급하는 일에 노력하였는데 이는 개신교 선교부의 가톨릭교회와의 차별화 전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가 초기에는 ‘선교보호권’(宣敎保 護權)을 중심으로, 1622년부터는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및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 및 중국선교를 수행하였던 것과는 달리 개신교 선교사들은 대체적으로 자발적 선교회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국 가 또는 강력한 교회중심체제로부터 벗어나 선교를 수행하였다. 일부의 현 상이나마, 가톨릭교회가 기독교를 선점한 중국에서 그리고 당시 직접적 복 음전도의 자유가 없던 중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최선의 전략은 성서원 문으로부터의 성서번역과 보급이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자신들 의 정체성과도 일치하는 일이었다. 로버트 모리슨의 번역본을 시작으로 첫 100여년동안 8개의 다른 중국어번역본을 출판한 개신교의 열정이 그들의 성서에 대한 관심을 증거한다. 그러나, 대립되는 성서판본을 출판할 수밖에 없었던 개신교회의 불일치성은 오늘날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318.
        2015.10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survey was conducted to analysis the facilities safety management of presbyterian churches in the central cities and urban areas. As a result, it need to support the knowledge of safety and protestant religious facilities partial help which located in urban areas.
        319.
        2015.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종교(Religion)는 서양의 어원인 릴레이(Relay), 즉 전달하다, 연결하다의 의미로 신과 인간을 연결 하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의미로 오늘날까지도 교리를 전파하고 교도들을 모으는 것에 주력하고 있 다. 이러한 포교(불교), 선교(기독교), 포덕(대순진리회) 등으로 일컬어지는 전파와 확장의 수단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캘린더 배포를 통해 포교 뿐 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신도들의 종교적 신앙심을 배 가시키고 있다. 신과 인간을 실생활 안에 접목시켜 인간 교화의 목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려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각 경전의 성구(聖句)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교리의 해석을 통해 보다 더 치밀하게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하여 기능적이고 문화적인 캘린더의 방향을 계획하고 텍스트의 이미지화를 추구하여 언어가 보여주는 소통의 힘과 역할을 부여하여 디자인적 주제 가치 와 더불어 표현 가치의 일관성을 집중시킨 캘린더디자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세계 3대 종 교 중 하나이고 불교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기독교용 캘린더디자인 에 스토리텔링을 담아 주제를 선정하고 성구(聖句)를 가지고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하여 그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과 타이포그래피의 이미지화를 통한 시각적 일체성을 통한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새로 운 시도로 종교적 관례와 관습이라는 기존의 디자인표현 양식의 굴레에 대응하여 유동적 사고를 제 시함으로 궁극적으로는 실험적 시각언어 표현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였다.
        320.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글은 개종 후 종교적 색채가 짙어진 엘리엇의 후기시에 나타난 종교적 경험의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이다. 종교적 경험은 특정 종교의 도그마나 교리가 규정하는 대로가 아닌 인간이 압도적 권위나 힘을 가진 초월적 존재에 대한 관계에서 느끼는 정서적 경험으로 이 글에서는 오토와 제임스의 설명을 기초로 삼았다. 이 경험에서 인간은 대상인 절대자 앞에 나약한 피조물로 스스로를 인식하며 세계관과 태도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융은 이 경험을 심리적 공식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의식이 그 근원인 무의식의 중심, 즉 ‘자기’에 노출되면 절대자 앞에선 ‘피조물 느낌’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엘리엇에게 이 같은 종교적 경험이 실재했는가 하는 문제는 정확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는 이 경험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심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종교시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도 시인의 종교적 경험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그의 시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경험을 그리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불러일으킨다. 특히 「동방박사의 여행」과 󰡔재의 수요일󰡕에서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지며 동시에 그의 시는 산문과 달리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회의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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