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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2014.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will examine the works of Kim Ku-lim, <From Phenomenon to Traces> (1970), with the social and political background of their time. Around the year 1970, Korean society was in turmoil. Its economy had been developing quickly during short period, and the industrialization in urban areas increased the population of cities, which brought out the collapse of traditional values and the rise of new ideas. Korean conventional artistic style had reached its limit to convey the ideas of avant-garde artists. In addition, it was at that time, when the public was under high surveillance and strict censorship which were conducted by the military regime of President Park Jeong-hui. Due to all these reasons, the artist Kim Ku-lim brought body movements, the surrounding environment, time flow, and locations into his artwork. Since the late 1960's, Kim Ku-lim had started doing unconventional paintings, for example, burning plastic on canvas, and making holes on iron plates. In 1969, he gave up any forms and structures and moved to performances, happenings, and film making. In the year of 1970, Kim produced artworks, as known as <From Phenomenon to Traces>. There were all three of them produced in 1970: setting fire to grass, placing ice cubes on floors, and wrapping the Museum of Modern Art. The first work of <From Phenomenon to Traces>, setting fire on grass is the first Earth Work executed in Korea. It introduced the urban environment into his own work, visualizing the invisible flow of time. In addition, a photograph which was taken at that day captured students in military training, marching and passing by the place, and accidently disclosed the political censorship of the period. The second work was showed at the AG Exhibition of experimental artists, and helped people to see the process of time, ice to water, water into air. People couldn't understand this work and laughed at it. The last one, wrapping museum was un-installed within 26 hours by the host sponsor, and revealed how conservative the Korean art institution was. It was the use of body movements and natural phenomenon, which was most interesting during the research on this subject. In the similar time-line, Kim was one of artists who introduced these things into his work. Lee Seung-Taek's 'Wind' series, for example, shared the same idea/ method, in which artists' job is only to set the condition of works and it is nature (wind for Lee, time for Kim) which completes the works. Kim introduced nature and body movements, and it was because of Korean social and political condition of 1970. The Korean government promoted the economic development as its national goal, so the economic wealth became regarded as more important than the traditional customs and nature. Building and houses were built quickly to hold the fast-growing population in cities without long-term planning. During this process, nature was destroyed for buildings and houses. Moreover, the regime of military government seized its power for over ten years since the May 16th Coup and controlled the public with the threat of North Korea. Under the circumstance, Kim introduced natural phenomenon into his works and tried to evoke ideas, which had been often neglected during that period. And this is the reason why the works <From Phenomenon to Traces> has its value in the Korean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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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201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할 때 다수의 서구인들이 조선을 방문했다. 이들 중의 일부는 모국으로 돌아간 이후 자신들의 경험을 다양한 형태의 글로 재현했다. 특히 미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경우 편지, 잡지기사, 팸플릿 안내문, 연설문, 일기, 여행기, 및 기독교 소설과 같은 ‘잡다한’ 글들을 기록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남긴 다양한 출판물 중에서 본 논문은 엘라수 캔터 와그너(Ellasue Canter Wagner)의 김수방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 (KIM Su-Bang and Other Stories of Korea)과 애니 배어드(Annie Baird)의 '동트는 조선' (Daybreak in Korea)을 산문이론으로 접근한다. 일부 학자들은 김수방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동트는 조선'과 같이 기독교로 개종한 조선인들의 삶을 기록한 서사를 ‘선교소설’로 구분한다.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본 논문은 배어드와 와그너의 글을 ‘여행서사’로 분류한다. 배어드와 와그너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선인들의 삶과 당시 두 선교사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처해있던 상황을 볼 때 이들의 글을 여행서사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 본 논문의 쟁점이다.
        5,700원
        84.
        2014.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김현승은 한국의 기독교 시인 가운데 성경인용 빈도가 가장 높은 시인이다. 시인 스스로 성경, 특히 신약의 예수의 언행은 자신의 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하고 있다. 본고는 김현승 시에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성경인용 양상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특징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첫째, 인유의 측면에서 어구와 문장, 사건과 일화의 인용을, 둘째 비유의 측면에서 성경의 비유 수용 및 시에서의 비유적 표현을, 셋째 성경의 내용이 시인의 관용적 어구나 개인상징으로 쓰인 경우로 나누었다. 시에서 비유로 활용되거나 관용적인 어구 및 개인상징으로 굳어진 경우는 성경의 내용을 자신의 시에 중요한 시적 심상으로 수용한 경우로, 기독교 시인의 성경수용이 매우 심화된 사례를 보여준다. 김현승 시인은 성서를 폭넓고 심도 있게 수용하여 다른 기독교시인의 성서수용을 비교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6,300원
        85.
        2014.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김석주는 20대를 전후해서 대부분의 사부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는 29 세에 대과에 장원하였는데 작품 가운데 과거 답안인 시권에 해당하는 작 품도 다수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김석주가 부 문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가 과거(科擧)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 다. 그는 당시 사부(辭賦)의 대가인 신최로부터 이 문체를 전수받았다. 신 최는 김석주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창작할 때 유념해야 할 사항에 대해 지 적해주었다. 가르침은 자(字) ․ 구법(句法)에서부터 편법과 의장(意匠)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이었다. 문장 학습의 일반적인 방법은 고문가의 작품을 읽어 문장을 운영하는 기법과 사고를 단련하는 것이다. 김석주도 부 문학을 공부하면서 역대 대 가의 글을 섭렵하였다. 이에 더하여 그는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모의하여 직접 창작함으로써 실력을 키웠다. 이러한 사실은 동료와 함께 스승을 모 시고 별업(別業)을 했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전범을 모방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창신(創新)의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하였 으며, 이로써 당시의 진부한 문풍에서 벗어나 옛 작가의 수준 높은 차원을 회복하려 하였다. 김석주는 다양한 소재에서 부 창작의 실마리를 얻었기 도 하였다. 그는 부뿐만 아니라 다른 문체에서도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선정하여 그것을 부의 문체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그는 마치 책문 과장에 서 책제를 축조하고 전고를 장황하게 훈고하듯이 문장을 전개하여 우월의 식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김석주는 문부를 통해 과거에서 요구되는 고부의 단련을 돕는 한편, 이 과정을 통해 문장력을 향상하였으며 부의 문예적 가 치를 발현하였다. 약관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형식미와 수사를 중시하 는 부에 정통한 김석주는 여타의 문장력이 요구되는 과장(科場)에서도 유 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이것은 문과 장원의 원동력이 되었다.
        6,400원
        86.
        201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의 목적은 추사의「세한도」에 나타난 예술세계를 불교적 사 유의 미학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 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하는 데 있다.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 도 유배지에서 외로움과 고독, 절망의 끝에서 창작된 그의 예술세계 의 절정을 보여주는 수묵화이다. 여기에는 이무 것도 그리지 않은 듯 한 그림 저편에 실로 형언할 없는 사건과 얼룩진 트라우마와 당대의 풍경이 존재하고 있다. 즉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송백(松柏)에 비유하여 그린「세한도」에는 사제지간의 석 교(石交)의 깊은 정이 담겨 있다. 「세한도」에 내재된 중요한 코드 중의 하나는 불교적 사유의 미학이 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추사와 이상적과의 깊은 우정을 담아낸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텅 비어 고요하며 탈속과 성찰, 그 리고 비움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불가의 선적 사유를 드러내 보인다. 이는 간결, 비움, 과감한 생략 등 선적 인식을 바탕으로 시·서·화 를 융합시켜 선과 각 예술의 이치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해 준다. 간결하면서도 모든 것이 걸러지고 생략된 비움의 정신이 깃든「세한 도」는 구도에 가까운 염결성과 사제지간의 석교의 아름다움이 내재 되어 있다. 이처럼 추사가 문기의 경계를 넘어 선기가 충만한 선적 그림을 남긴 것은 그가 선의 세계에 깊이 침잠한 삶을 살았기에 가능 한 것이었다. 「세한도」의‘후조(後凋)’의 정신은 추사 한 사람만의 감 회가 아니라 조선의 모든 선비들의 정신이자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 야 할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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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201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회화사(韓國繪畵史)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알려진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여러 장르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가 성취한 업적은 그가 활동했 던 영조(英祖: 재위 1725~1776)와 정조(正祖: 재위 1777~1800) 년간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꽃피울 수 있었다. 김홍도에 관한 연구는 당대 에 그와 함께 활동했던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을 필두로 현재까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추진되어 왔다. 그 결과 김홍도의 생애(生涯)와 작 품세계(作品世界)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진전되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부 분까지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김홍도의 불교 인물화(佛敎人物畵)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어 주목된다. 김홍도는 정조의 명으 로 용주사 불화(龍珠寺佛畵)를 제작한 1790년(46세) 이후 급격하게 불교에 심 취한 듯 여러 점의 훌륭한 감상용 불교회화를 남겼다. 김홍도가 그린 감상용 불교회화는 대략 30점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가 겪은 인생 말년의 불행을 종 교적으로 승화시켜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깊은 여운과 감동을 전해 준다. 다양한 분야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한 김홍도는 주옥같은 명작을 많이 남 겼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홍도는 여러 점의 도석인물화를 제작했는데「군선 도」같은 신선도는 젊은 시기에 치우친 반면 불교회화는 인생의 후반기에 많 이 제작했다. 김홍도는 46세 때 용주사불화의 제작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되 어 진심으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김홍도가 인생의 황금기 때 제작한「남 해관음」이나「혜능상매」는 그의 예술적인 기량과 종교성이 합치돼 탄생한 수 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오히려 실의와 병고 속 에서 탄생한「염불서승」과「노승염송」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 은 작가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시련조차도 예술 가를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홍도의 불교 회화는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하겠다.
        7,800원
        89.
        2014.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金安國의 문집에 실려 있는 ‘勸小學詩’를 통해서 그의 교육관의 특징을 살펴보고 ‘권소학시’ 著作의 背景 및 ‘권소학시’가 지니는 시대적 의의를 파악하였다.『小學』은 유교적 도덕성을 통하여 조선사회를 교화시키는데 활용한 중요한 修身書이다. 조선조 전기에 김안국은 유학교육의 입문서격인『소학』에 담긴 내용을 실천하기를 권하는 ‘권소학시’를 지어서 鄕校 학생들에게 유교사회의 도덕규범을 장려하고 鄕村 사람들을 敎化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김안국의 ‘권소학시’의 창작 배경은 燕山朝의 弊政을 극복하고 강력한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中宗의 적극적인『소학』교육 장려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1517년 金安國은 慶尙道 觀察使로 파견되자 각 鄕校의 유생들에게 적극적으로『소학』을 권하였는데, 경상도 관내의 방문하는 각 향교마다 현판에 ‘권소학시’ 한 편씩을 써 붙여서 강당에 걸게 하여 학도들을 勉勵하고 『소학』을 공부하고 몸소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이때부터『소학』교육 운동이 활발하게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또한『農書諺解』·『蠶書諺解』·『二倫行實圖諺解』·『呂氏鄕約諺解』·『正俗諺解』 등의 언해서와『辟溫方』·『瘡疹方』 등의 의학 서적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으며, 鄕約을 시행하도록 하는 등 열정적으로 교화사업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권소학시’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특징을 지닌 교육관이 드러났다. 첫째는 道德性을 강조한 교육관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건국이념이자 통치철학으로 삼아 백성들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강력한 왕조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건국이후에 훈구를 비롯한 기득권층이 鮮初의 강력한 의지를 상실하고 현실에 안주하여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여 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만연하게되자 김안국은 도학정치로 도덕성을 회복시키고 유교적 도덕 윤리를 강조하여 위정자와 백성을 교육시킬 것을 강조하였다. 둘째는 實踐性을 강조한 교육관이다. 훈구파는 詞章만을 숭상하여 一身의 榮達과 利祿을 취하는 방편으로 삼았으며 문학적인 誇示를 일삼았다. 이에 중종을 비롯한 뜻있는 신진사림파는 정국의 안녕과 국가의 질서를 회복해야함을 통감하기에 이르렀고 유학의 진작을 도모하였다. 이에 김안국은 이러한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고 性理學에 입각한 道德性의 회복과 日常 彛倫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 하였다. 셋째는 日常에서 風俗의 敎化를 강조한 교육관이다. 上下官吏의 貪慾을 抑制하고 純風․美俗을 宣揚하는 方法으로 김안국은 ‘권소학시’를 통하여 성리학의 기본 윤리가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지게 하여 성리학적 풍속의 습관화를 통하여 도덕적인 유교적 인간형이 형성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에 16세기 조선사회가 훈구세력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윤리기강이 무너진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 문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교육적인 내용이 담긴 ‘권소학시’를 창작하였음을 밝혔으며, 이를 통해서 김안국의 교육관의 제 특징을 파악하였다.
        7,000원
        90.
        201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W. B. 예이츠, 김소월, 그리고 김종길 등 3명의 모더니스트 시인들을 통해서 동서양이 시에서 자연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비교하고자 한다. 김소월과 김종길은 동양의 시학을 대변하고, 예이츠는 서양의 시학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는다. 그들은 각기 아일랜드와 한국의 모더니스트 시를 대변하는 시인들이다.
        4,900원
        91.
        201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evolutionary process of Ddeulzip. The subject of this study is a clan family of Euisung Kim in Andong Area. Ddeulzip's evolutionary process in the construction and management is divided into largely three periods. The establishment and changing process of Ddeulzip for Euisung Kim's family are analyzed according to three periods called the early (15~16C), mid(17∼18C) and late(19∼20C). The characteristics of the early period are that they created their own ancestral building form of Ddeulzip. Those of the mid period are in their strong will not only to preserve their on ancesteral housing but also to make additional construction of Ddeulzip. And during the late period, although the construction of new Ddeulzip was started in the early stage, no more formation of Ddeulzip was made as it approached toward the late stage. And most important point is smaller construction space (gan) dan first time. The residential Ddeulzip of Euisung Kim's family created at the start of Chosun Dynasty can be regarded as an representative example that shows a typical form of housing by noble residents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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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2014.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노자사상과 춤과의 유관성을 연구하여 춤의 가치를 재확인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노자사상의 핵심 키워드인 대교약졸(大巧若拙)에 주목하여 이것이 김수악의 진주교방 굿거 리춤의 미의식과 어떤 식으로 연계되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의 과 정에서 먼저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의미파악이 선행될 것이고, 이어 대교약졸의 미적 지향 인 ‘무기교의 기교’와 ‘무언’의 미의식을 학문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런 뒤, 무위자연적인 춤 의 미감을 가진 김수악의 내면을 주시하면서 예인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대교약졸의 근원을 연대 기적으로 밝혀내는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진주교방 굿거리춤에서 드러나는 노자사상의 특질인 무기교의 기교와 예인의 삶속에서 보이는 ‘무언’과 ‘침묵’이 어떤 식으로 춤에 스며있는지 밝히면서 김수악 춤의 미적지향과 노자사상의 유관성을 정리할 것이다. 춤의 사상성은 몸이란 신 체성의 발현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경험론적 계기를 포착한다. 따라서 춤의 정신성의 근저를 이루는 사상은 춤의 미의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춤추는 몸의 내 면이 춤의 움직임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그 면면을 주시하면서 춤과 사상의 유관성을 파악하 는데 있다.
        5,800원
        93.
        2014.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Architecture is a product of numerous influences, as shown in the apprenticeships of Kim, Jung-Up and Kim, Swoo-Geun with Le Corbusier’s influences. Therefore, its identity is need to be re-defined based on such complex relationships. The rhetorical images of ‘the Map of Misreading’, as the core of the poetic identification proposed by Harold Bloom’s ‘the Theory of Influence’, provide an efficient way of explaining the relations between architectural apprenticeships and identities. This research is to re-build a new methodology of architectural criticism based on it. The diachronic transformations of the architecture of Seung, Hyo-Sang also had very characteristic ‘revisionary ratios’ about his precursor Kim, Swoo-Geun. As an antithetic stance of his precursor’s final phase, his early days works pursued continuously geometric abstraction and objective images of the architecture of Adolf Loos. However, his recent works are showing the obvious symptoms of regression to his origins. Finally, the architectural identity should be re-conceptualized as a complexity, based on inter-textuality from complex influences. This new architectural identity can be reflected into the modern obsessive identity.
        4,300원
        94.
        201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한국문학사에서 프로문학 운동을 주도했던 문제적 비평가이자 작가인 김남천의 기독교 인식의 특징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의 김남천 연구에서는 간과되었던 부분으로 식민지 시대 프로문학 계열의 작가, 작품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배제되는 영역이다. 대부분의 프로문학 작가들이 기독교에 반감을 갖고 기독교를 사회주의 운동이 타개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개개인의 의식 속에 있는 기독교 인식의 다양한 측면은 간과되었다. 그러나 김남천의 경우 개인적 체험과 삶의 과정 속에서 경험한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어 여타의 프로문학 작가들과는 변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김남천의 소설에서 기독교적 요소와 긍정적 인식이 드러나는 것은 주로 카프 해체 이후 1939년경부터이며 전향소설로 규정되는 작품들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기독교를 자아 각성과 민족개화의 매개사상으로 인식하면서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작품에 표현하거나, 기독교인을 개화인의 표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종교적 차원의 개인적 신앙으로 승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행동의 변화와 깊이 있는 종교 인식은 부재한 양상을 보인다.
        5,700원
        95.
        201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김은국의 『순교자』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특징인 박해자의 ‘무지’와 폭력의 ‘맹목성’을 폭로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평양에서 목사들이 실종된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장 대령’의 거짓말은, 지라르가 언급한 ‘첫사람의 돌 던지기’와 유사하다. 희생양 메커니즘의 작동을 유도하는 박해자 ‘장대령’을 통해 김은국은 희생양 메커니즘의 본질인 폭력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작품의 중반부에서부터 서사는 “박해자에게서 희생양에게로, 그 사건을 만든 자에게서 그것을 참고 견딘 자에게로” 초점을 옮겨, 이 작품을 희생양의 텍스트로 만든다. 김은국의 영적 통찰력은 희생양 신 목사의 고뇌하는 내면, ‘신의 침묵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희생양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처절한 절망 가운데서 ‘신 목사’는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라는 예수의 명령을 실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신의 개입’이다. 무력하고 병든 모습으로, ‘희생양 메커니즘’의 작동을 중단시키려는 ‘신 목사’라는 캐릭터는 김은국의 종교적 투시력을 높이 평가할 근거가 된다.
        5,400원
        96.
        201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explores the key figure of minjung misul (“the people’s art”), Kim Bongjun, and the art collective Dureong in the relationship between ‘dialogue’ and the dissidents’ structural critique of Korea’s modernities. During the 1980s’ prodemocracy movement, the minjung artists and other dissident intellectuals used the notion of dialogue as metaphor for and allegory of democracy to articulate not only Koreans’ experience of modern history, which they saw as “alienating” and “inhumane,” but also the discrepancies between Koreans' predicaments and their political aspirations and their working toward the fulfllment of those ideals. Envisioning alternative forms of modernities, Kim Bongjun and other Dureong members paid attention to the fundamental elements of art, which consist of art as a modern institution, as well as the everyday lives of people as the very site of Koreans’ modernities. They endeavored to create “art of life,” which presumes its being part of people’s lives, based on the cultural and spiritual traditions of the agrarian community. They also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culture movement, the minjung church, and the alternative-life movement to radically envision everyday lives through the indigenous reinterpretation of democratic values. Despite the signifcant role played by the church mission and its community involvement, its effects on minjung misul have received little attention in the relevant studies. Thus, I consider in particular the minjung church’s and the alternative-life movement’s confuence of multiple cultural and social constituencies in relation to Kim and the Dureong collective’s vision of a new art and community.
        8,000원
        97.
        2013.08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This paper investigates the several characteristics of education view through <A Poem recommending Sohak(勸小學詩)>,which is included in the collection of Kim An Kuk and illuminates its the meaning of the times. Sohak is an important book on self‐culture that is used to enlighten Chosun society through confucian morality. In the early age of Chosun Dynasty, Kim An Kuk wrote <A Poem recommending Sohak(勸小學詩)> to advise to practice the theory of Sohak, which was like an introduction of confucian education, encouraged Hyanggyo students to follow the moral standard of confucian society, and made efforts to educate country people. This enlightenment and being custom(化民成俗) are originated from the active incentive of Sohak education by Jungjong. Kim An Kuk was appointed to the governor of Kyungsang‐do and emphasized Sohak intensively. For this, there were vigorous Sohak education campaigns. In <A Poem recommending Sohak(勸小學詩)>, which was written in this situation, there were three remarkable perspectives of education. One of them is the perspective that accentuate morality. At that time, as the graft and moral corruption of the Hungu pervaded, Kim An Kuk emphasized to recover morality with ethical policy, highlight confucian moral ethics and educate people. Secondly, it is the educational view of underlining practicability. The Hungu highlighted poem and lines and made a display of literature. He criticized it and stressed having moral manner and practicing moral ethics. At last, it is the educational view that emphasizes enlightenment of custom in daily life. <A Poem recommending Sohak(勸小學詩)> by Kim An Kuk accentuates that it is possible that confucian customs are penetrated to daily life naturally and moral confucian human type is formed in the living. Following this, it enunciated that <A Poem recommending Sohak(勸小學詩)> was created to reform the Chosun society in 16th centuries that ethical discipline was collapsed by the corruption and power abuse of the Hungu and through this, it also stated the characteristics of Kim An Kuk’s educational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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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쇠뿔현호색은 현호색과 현호색속 현호색절의 다년생 초본으로 우리나라 경산시 계정숲에만 제한적으로 분포하는 특산식물종이며, 춘계단명식물로 제한된 생육기간과 자원으로 생활전략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는 쇠뿔현호색(Corydalis cornupetala Y.H.Kim et J.H.Jeong) 개체군을 대상으로 자생지의 입지 특성과 식생구조를 파악하여 쇠뿔현호색 개체군 및 생태연구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고 자생지 보전을 위한 복원 계획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토성은 미사질식양토이며, 토양산도는 pH 5.4~5.9로 약산성, 전기전도도는 0.22~0.50ds/m, 토양유기물함량은 7.61~15.78%로 나타났다. 토양분석결과 양이온치환용량이 우리나라 산림토양의 평균치보다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방형구에서 유독 칼슘과 마그네슘의 함량이 높게 나타난 결과라 사료된다. 식생분석결과 5개 방형구 내에서 조사된 관속식물은 총 59분류군이었다. 군락분류의 경우 PC-ORD를 이용한 이단계 군락분석 결과 신나무, 갈퀴나물 및 쇠별꽃 군락으로 분류되었다. 쇠뿔현호색의 자생지는 출현종의 수보다는 우점하는 종의 상이성에 따라 집단의 유연관계가 결정되었다. 종다양도는 평균 1.26로 산출되었으며, 우점도와 균등도는 각각 0.08와 0.92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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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김백봉 아카이브 구축을 목적으로 한국무용사의 대표적 주류의 하나인 김백봉의 자료에 근거하여 아카이브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것이다. ‘김백봉 아카이브를 어떻게 구축하느 냐’의 문제는 ‘자료가 얼마나 용이하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효율적인 보존 관리 및 활용을 위해선 자료가 가지는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 다. 왜냐하면 개인아카이브에 있어서는 자료의 유형과 내용 등 자체 분석을 통해 그 성격을 파 악하고 그에 기인한 특성화된 분류작업이 이루어질 때 보다 효과적인 DB구축과 운영방안이 마 련될 수 있고 정보적, 사료적, 교육적 활용도 가능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의 목적은 김백봉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기초연구로서 효과적인 분류체계를 위한 자료 현황 분석과 특성화 고찰에 있다. 이를 위해 김백봉의 개인 소장 자료를 중심으로 현 황 조사를 통해 형태적 유형으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형태적 분류는 일차적 분류체계로 자료 의 활용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김백봉의 예술세계와 무용사적 업적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자료를 다시 맥락적 유형으로 분류하여 이를 기준으로 자료가 갖는 특성을 분석하였다. 개인아카이브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삶이 제일 중요한 요소이며 개인의 삶과 예술세계의 특성이 들어나는 아카이브란 결국 그 인물에 초점을 맞춘 맥락적 분류 방법이 가장 적합하였다. 그 결과 김백봉이라는 특정 인물의 자료가 갖는 성격은 ‘다양성’ 과 ‘전문성’ 및 ‘학술성’의 특성화 방안으로 논의할 수 있었으며, 김백봉 아카이브는 개인아 카이브를 넘어서 한국문화사의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로 평가할 수 있었다. 또한 창작과 연구 에 활용될 수 있는 실질적인 운영을 위한 특성화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여 김백봉 아카이 브의 이상적인 준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첫째, 단순히 자료 제공 및 전시에서 벗어나 체험 공 간, 공연 공간 등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며 공연예술 전반에 대해 이해시킬 수 있는 아카이브를 조성한다. 둘째, 학술연구 및 교육과 연계된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창의성제고 및 교육기능의 활성화라는 공공성 확보를 우선으로 한다. 자료를 보관한다는 것보다 어떻게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로서 다소 시간 이 걸리더라도 보다 다양한 시각과 전문성을 가지고 진행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즉 이미 자료자체로 그 가치가 부여되는 것보다 자료들의 정보적, 사료적, 교육적, 문화유산으로 서의 가치는 김백봉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관심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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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현대시는 후기산업사회의 인간 소외나 인간성 상실, 정보화 시대의 낯선 환경과 경험 조건들에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새로움을 중심적인 가치로 삼는다. 모더니즘 시에 있어서의 이 변화는 ‘부정성’을 전제로 한다.김춘수 시에 있어서 환유의 형성 방식은 한국의 모더니즘 시의 언어관을 살피는데 매우 중요하다.『처용단장』의 무의미시에서의 환유는 언어 기호의 물질성과 단절(depaysement), 주체와 대상과의 거리 소멸, 세계와 자아의 변용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들은 언어 기표의 낯선 조합이라는 ‘형태주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김춘수의 무의미시에 나타나는 언어는 하나의 기호, 즉 물질로서 각 기호들 간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단지 이 기호들은 ‘리듬’이나 ‘서술적 이미지’만으로 발현된다. 이러한 리듬과 서술적 이미지들 간에는 서로 단절되어 있어 충돌과 해체를 동반하고 이 충돌과 해체는 낯선 이미지나 엉뚱한 이미지들의 결합에 의해 생겨난다. 이로 인해 환유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나간다.또한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를 보면, 무의미시에서 나타나는 기호는 주체와 그것이 지시하는 지시대상과의 거리가 소멸되고 그 소멸된 자리에 다양한 언표들이 환유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와 지시대상과의 거리 소멸은 자유연상에 의해 환기된다. 자유연상에 의한 이미지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다. 이런 우연적인 결합에 의한 기호들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즉물적인 이미지로 존재하게 된다.마지막으로 무의미시에서 나타나는 물질성인 기호들은 사물 자체의 본질을 소멸시킴으로서 변용을 꿈꾸게 된다.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 생물체와 무생물체와의 관계를 초월하여 관념에 의한 의미 영역이나 이미지를 해체하고 파괴한다. 그리고 사물이 가지고 있는 ‘실용성’이나 ‘합리성’을 소멸시켜 버리고 이러한 각각의 사물들은 등치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전연 다른 이미지로 발현된다. 이와 같이 김춘수의 무의미시에 나타나는 환유의 형성 방식은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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