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2025년 5월 파나마에서 개최된 제3차 COALA 글로벌 사우스 선교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확장·학술화한 연구로, 존 스토트의 ‘선교의 기독론(Christology of Mission)’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 선교운동 의 신학적 공통성을 분석한다. 세계기독교의 중심이 글로벌 사우스로 이동 함에 따라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교회들은 글로벌 선교의 주요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본 연구는 성육신, 고난, 부활, 영광, 성령, 재림으로 구성된 존 스토트의 여섯 가지 기독론적 단계에 기초하여, COALA 대회에서 발표된 11편의 발표문과 두 개의 공식 선언문(방콕 선언, 파나마 선언)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글로벌 사우스 선교는 토착성과 성육신적 선교, 고난을 통한 선교, 다양성 속의 선교적 생명력, 상호성과 평등에 기초한 우정의 선교 동기, 성령 의존성, 종말론적 긴급성이라는 여섯 가지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기독론적 패턴은 글로벌 사우스 선교의 신학적 기초를 형성하며, COALA 네트워크 내 다중중심적 협력과 공동의 글로벌 선교 신학 형성에 기여함을 논증한다.
본 논문은 19세기 초 수술의 발흥과 통증 완화에 대한 낙관 속에서, 의사이
자 시인인 존 키이츠(John Keats)가 고통을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그 해
소를 모색했는지를 고찰한다. 키이츠는 로버트 버턴(Robert Burton)의 우울의
해부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우울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존재의 조건을 이해
했다. 무자비한 미녀 는 사랑의 황홀 이후 찾아오는 무기력한 소진을 통해 고
통을 잊게 하는 감각의 마비가 존재의 쇠퇴와 직결됨을 보여준다. 라미아 는
고통을 통해 획득한 존재의 변화와 감각적 사랑, 그리고 뒤잇는 환상의 붕괴와
파국적 소멸을 통해, 감각의 극한에 따른 파멸과 죽음을 그려낸다. 이 두 시 모
두에서 키이츠는 연인과의 사랑에서 오는 환희가 로더넘이 제공하는 진통 및
진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일시적 대응일 뿐 궁극적 해법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감각적 사랑에 대한 절대화나 과도한 의학적 낙관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고통과 우울, 그리고 죽음을 인간 존재의 필연적 조건으로 수
용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함으로써 기독교적 초월의 경지에 이른다.
본 논문은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조지아 선교(1735-1737) 를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평가하는 기존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역사신학적으로 접근한다. 이를 위해 조지아 선교 시기의 저널, 일기, 서신, 그리고 복음전도협회(SPG) 및 조지아 신탁위원회 자료와 독일 경건주의 목회자들의 증언 등을 살피고 분석한다. 본 논문에서 사도적 목회 지향이란 초대교회의 복음과 목회 규율에 충성하며 고난 속에서도 거룩을 추구하는 신학적 비전으로 정의되고, 정치적 배제는 이 비전이 식민지의 지배 세력과 충돌하며 왜곡/배척된 과정으로 정의된다. 기존 의 실패 담론은 대체로 웨슬리 개인의 신앙적 결함이나 성적/도덕적 오류에 주목하지만, 본 논문은 그 담론 자체가 저장창고, 법원, 감옥을 둘러싼 조지아 식민 권력과 웨슬리의 사도적 목회 지향 사이에 충돌로 인한 정치적 부산물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본 논문은 조지아 선교에 대한 정당한 평가 기준이 율법주의나 성 스캔들이 아니라, 한 성직자의 비전이 선교지 내부의 정치 권력이나 사법 제도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고 배제되었는 지에 더 주목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존 로스는 만주와 한국의 선교사이자 최초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번 역가, 학교를 설립한 교육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존 로스는 한국 사 학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존 로스의 한국사와 각종 글을 통해 그가 가진 한국사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의 한국 사는 서양어로 쓴 최초의 한국 통사라는 의의가 있다. 고조선부터 강화 도조약까지 한국사를 다루었다. 그는 만주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로 인식 하고,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투쟁하면서 중국과 구별되는 독립성을 가진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한국사 저술을 위해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 고 수많은 책을 참고하였고, 철저한 사료 비판을 하였다. 하지만 한국사 전체를 골고루 다루지 못하고 전쟁을 중심으로 서술했다는 것과 중국 자 료를 많이 참고하였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존 로스는 서구 중심적 인 사고가 팽배한 때 한국사의 독립성과 특수성을 강조하였다. 존 로스 의 한국사 이해는 외부 시선을 통해 한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는 좋 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논문은 마틴 루터와 존 웨슬리의 신학방법론들이 어떻게 사회 변혁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특별히 집중해서 연구한다. 연구자는 신학적 사고를 형성하는 신학방법론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루터와 웨슬리를 분석하기 위해 후스토 L. 곤잘레스와 토레 마이스타드의 체계들을 사용한다. 루터의 신학은 창조와 구원을 강하게 분리하며 도덕적 법적 범주들을 우선시한다. 농민전쟁과 같은 사건들이 진행되는 동안의 그의 정치적 보수성에서 보이듯이 이 이원론은 루터의 사회 개혁 동참을 제한했 다. 대조적으로 웨슬리의 신학은 성화와 연대 구원을 강조하면서 보다 더 목회적이고 사회적이다. 원숙한 웨슬리의 구조적 사회 개혁으로의 전환 은, 특별히 1770년대에 입법 수단들을 통해 구조적 가난을 다룬 것은 그의 점증하는 사회적 관심사를 반영한다. 이 논문은 어떻게 신학방법론들 이 사회 정의와 개혁에 관한 루터와 웨슬리의 차이점들을 만들었는지를 강조한다. 이 논문은 궁극적으로 루터의 이원론적 접근보다 원숙한 웨슬리 의 사회적 구조적 변혁을 포함하는 신학적 발전이 현대 신학과 선교를 위한 더 가치 있는 통찰들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존 밀링턴 싱(John Millington Synge)의 『서쪽 나라의 멋쟁이』를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비평적 개념을 통해 읽어보려는 시도다. 논문은 싱의 작품 전반에서 극단적 형태의 패러디 활용, 유머와 웃음에 대한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흐친의 표현을 활용하여 그를 ‘라블레주의’(Rablaisian) 작가로 볼 수 있음을 제안한다. 논문은 싱의 극과 바흐친의 대화주의(dialogoism)와 카니발레스크에 관한 이론 사이에 연결고리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싱의 작품에서 작용하는 사회적, 언어적 역학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작품 속 웃음이 갖는 전복적 성격, 그리고 크리스티의 지위 변경 등이 서로 다른 세계들의 갈등과 대립을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통합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음을 주장한다.
본 논문은 존 던과 조지 허버트의 시에 드러난 죽음관을 비교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은 17세기 초 잉글랜드의 성직자이자 형이상학파 시인으로, 서로 교류하며 종교시를 남겼으나, 그들 시의 갈래와 성격은 다르다. 이를 알기 위해 그들의 종교관을 파악하여 시를 분석하였다. 결과적으로 던은 아르미니우스의 사상과 가톨릭의 종교관을 가졌던 반면, 허버트는 칼뱅의 사상과 개신교의 종교관을 가졌다. 그래서 던은 시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의 행위구원론과 같이 회개라는 인간의 노력을 끊임없이 촉구한다. 또한 가톨릭의 교리와 같이 사후에 연옥과 같은 중도 상태를 드러내며,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다. 반면 허버트는 시에서 칼뱅주의의 사상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확신한다. 또한 개신교의 교리와 같이 사후에 영혼과 육체가 즉시 분리될 것을 언급하며, 천국에 대한 소망을 드러낸다. 특히 그는 몸의 부활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시에 드러난 죽음관은 그들의 종교관과 관련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백치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고자 했다.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특히 그 그리스도 이미지는 신약성서 요한복음에 기초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실제 요한복음을 깊이 읽으며 그 내용을 자신의 문학 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하고 반영했다. 그러한 경향은 백치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아름다운 그리스도를 묘사하기 위해 므이쉬킨이라는 주인공을 설정하고 요한복음의 그리스도 이미지를 그에게 부여한다. 요한복음을 토대로 백치에서 강조되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성육신, (2) 유로디비 및 사랑, (3) 거듭남과 변화, 부활, 그리고 이로 인한 영생. 강생의 소설 백치는 주인공 므이쉬킨을 통해 강생한 그리스도를 형상화한다. 물론 므이쉬킨은 때로 유로디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를 통해 요한의 예수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이처럼 도스토옙스키가 요한복음을 읽고 해석하여 자신의 작품에 투영한 내용을 토대로, 독자들은 요한복음을 새롭게 읽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요한복음은 거듭남과 변화의 책이며, 이를 통한 영생을 추구하는 책이다.
비극적인 세대의 섹션 5에 있는 베일의 떨림(1922)의 제4권은 시인 클럽과 아일랜드 문학 협회에 대한 명상으로 시작된다. 이 두 조직 간의 연관성은 아마도 시인 클럽에서 활동하는 회원들 가운데 일부는 아일랜드인 또는 켈트인을 동조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1843년 3월에 존 켈스 잉그램(1823-1907년)가 쓴 「죽은 자들의 기억」은 분명 <젊은 아일랜드 시기>의 가장 위대한 발라드이다. 예이츠가 잉그램의 발라드에 권위를 부여했을 때, 이 발라드는 이미 “19세기 동안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애국가”로서 기능했다. 한편 예이츠는 외교관인 다니엘 크릴리(1857-1923)가 1888년 발라드 「바이바이의 남자들」을 낭송한 것을 떠올리면서 1916년 부활절봉기 이후에도 데이비스의 바람과는 달리 아일랜드가 하나가 되었는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한다. 그는 「1916년 부활절」에서 신성한 이름들을 중얼거릴 뿐, 추모 의식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선구적 사상가로 불리는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 의 종속 현상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보 았다. 여성과 남성은 자라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에도 차이가 나타나므로 여성에게도 많은 선택의 자유와 남성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 진다면 여성도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밀은 말과 행동 사이에 아무런 갈등을 보이지 않는 사상가로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을 자신의 저서와 실제 정치를 통해서 전개 시켜 나간 최초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밀의 주장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 니라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밀의 주장은 선택된 소수의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주고 소수의 여성들에 대한 교육의 확대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중산층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주의라 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19세기 서구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밀의 주장은 매우 혁신적인 주장이었고 여성문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양성평등 실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본고는 지지울라스의 삼위일체적 교회론을 선교적 관점으로 재해 석한 선교적 교회론 연구이다. 지지울라스는 성부의 인격 엑스타시스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성한 것처럼 세상을 구성하고, 종말론적 코뮤니온을 이루기 위해서 아들과 성령을 세상에 보내시며 코뮤니온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선교는 코뮤니온이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상응하는 교회로서 코뮤니온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회는 존재론적으로 코뮤니온 공동체를 이루는 선교적 차원을 가져야 하고, 지역교회와 교회 일치 운동은 코뮤니온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의 신학의 중심에 성찬식을 두어, 성만찬이 이루어지는 지역교회는 지역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 지역 문화에 배타적이지 않고, 코뮤니온을 이루되 교회성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교회는 교회중심으 로 모여 종말을 선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코뮤니온 교회론은 개인주의와 배타주의를 극복하는 코뮤니온 선교적 교회가 된다.
John Webb’s An Historical Essay Endeavoring a Probability that the Language of the Empire China is the Primitive Language is regarded as the first extensive European treatise on the Chinese language and among the earliest sinological studies. Webb’s argument in Historical Essay is that the Chinese language is the primitive language and Noah in the Genesis is Emperor Yao from the ancient Chinese history. For proof of his hypothesis, he gathered up various intellectual discourses circulating in seventeenth-century England, which inversely allows us to approach the pre-sinological discourses of his time. Through this, we can find to what extent he intervened in the current discourses and deviated from them. Webb enthusiastically responded to the reports from Jesuit missionaries, one of whose main aims were to collect mission fund enough to propagate their religion, which was carried out by first portraying China as an ideal nation to appeal to the Europeans. His idealization of the Chinese language conceals the anxiety of his time as the Europeans first encountered Eastern civilizations in the seventeenth century. We can see the symptoms when Webb wishes to attribute the ideal qualities of China delivered by the Jesuit authors to Noah. While he attempts to prove the primitiveness of the Chinese language, he incorporates Chinese civilization into European discourses by making pious Noah the common ancestor of England and China and by asserting that all the superiorities of Chinese civilization are derived from the figure of Noah in the Genesis.
몰개성은 경험의 진실을 가져오기 위해 예술가의 입장에서 행하는 실천 이다. 그러한 진실한 경험은 현실과 아름다움을 모두 포함한다. ‘실재적’인 능력 안에 서 우리는 몰개성의 경험이 충만함과 전체성을 가져온다면 몰개성의 미적 상태가 더 큰 이해를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 S. 엘리엇, W. B. 예이츠와 존 키츠는 인 간 삶의 모든 의미를 ‘결집’하여 예술로 만듦으로써 ‘감수성의 메커니즘’을 고안하여 예술을 창조했다. 이 위대한 시인들에게 몰개성화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현상과 현실이 구별되는 방식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엘리엇은 일상의 경험을 단편, 무정부 상태 및 불규칙성과 동일시하지만 예이츠는 일상의 수준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경험을 대립적 으로 본다. 한편 키츠는 탐닉이 최대 상태의 일상의 사건들과 상황들로 일상을 위치시 킨다. 전체성의 출현이 연기되는 분명한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엘리엇, 예이츠, 키츠 는 경험의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확실한 조치인 ‘몰개성,’ ‘존재의 통일,’ ‘부정적 능 력’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존 던의 사랑시를 통해 큐피디타스와 카리타스 사이의 전통적인 이원론이 재고되는 방식을 고찰한다. 던의 시가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랑을 다루는 두 가지 범주로 대별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속적 사랑과 종교적 사랑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서로 중첩되는 경향을 보인다. 던이 인생 경로에서의 변화 과정이나 회개 등의 개인사적 경험과 관련하여 성 어거스틴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던의 초기/세속적 시와 후기/종교적 시 사이의 대조는 상대적이며 문제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 던의 시에 나타난 이런 경향은 이질적인 생각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결합시키고 통합하는 그의 형이상학적 상상력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본 연구는 던의 사랑시를 변증법적 논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하면서, 신체와 영혼 사이의 분리를 전제하는 어거스틴 의 ‘부정의 신학’과 던의 형이상학적 시학이 빚는 차이에 대해 논의한다. 던의 변증법적인 사랑의 철학은 큐피디타스와 카리타스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경험을 통해 영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논리를 궁극적으로 전달해 준다.
본 연구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예수의 발 씻기 사건 (요 13:1-20)을 선교적으로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필자는 발 씻기 내러티브가 선교적 개념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발 씻기 내러티브의 구조와 보냄의 언어가 선교를 말해 주고 있다. 둘째, 예수의 선교는 그의 죽음을 통해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의 성취였다. 셋째, 제자들은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 그들의 선교는 그들의 사랑과 섬김의 삶 방식을 통해 예수를 증언할 뿐 아니라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이들 선교적 의의는 오늘날의 한국교 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한 공동체,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 그리고 진리 안에서 복음 전파를 하는 공동체가 될 것을 도전해 주고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존 웨슬리의 영원한 시간과 현재적 구원과 열린 구원을 탐구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영원을 과거의 영원과 장래의 영원으로 분류한 후, 더 나아가 장래의 영원을 행복한 영원과 불행한 영원으로 구분한다. 웨슬리는 현생의 목적이 단지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현생에서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행위이다. 웨슬리는 구원은 우리 자신의 선한 행위의 보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구원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주장한다. 웨슬리 신학에서 큰 구원과 열린 구원 은 동의어다. II 장에서 웨슬리의 영원한 시간을 과거의 영원과 장래의 영원, 행복한 영원과 불행한 영원으로 구분해 다룬다. III 장에서 웨슬리 의 현재적 구원을 죄로부터의 해방, 은총의 수단과 마술적 태도, 참된 종교인 내적 종교로 나눠 다룬다. IV 장에서 웨슬리의 열린 구원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V 장에서 이 논문의 결론을 맺는다.
본 논문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영국 예술가인 존 아콤프라의 흑인 영화 작업에 관한 것으로 그의 작품에 표상된 인종주의와 정체성의 문제, 이주와 전치, 차별과 소외 현상을 후기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세부적으로 연구한다. 또한, 마가렛 대처 수상의 재임 시기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사회문제를 통해 흑인 영화가 영국에서 어떻게 출현했고, 흑인 영화 공동체가 어떻게 작품을 제작하고 발전시켰는지를 살펴본다. 본 논문에서는 아콤프라가 감독한 두 편의 영화인 <핸즈워스 의 노래>(1986)와 <스튜어트 홀 프로젝트>(2013)를 살펴보는데, <핸즈워스의 노래>는 흑인영 화공동체인 블랙 오디오 필름 콜렉티브(Black Audio Film Collective, BAFC)와 협업으로 제작한 것이고, <스튜어트 홀 프로젝트>는 그룹 해체 이후 제작한 작업이다. 두 영화는 주류 미디어에서 어떻게 흑인을 재현하는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복하고 새로운 흑인 주체를 표상하고자 한다. 아콤프라가 제작한 작업에는 영국 사회에서 벌어진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폭동, 공권력의 남용과 같이 다소 어두운 사회의 이면이 등장하지만, 이를 하나의 방식과 사건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아콤프라는 아카이브와 텍스트, 사진, 음악 등을 다양하게 편집하여 사유의 다채로운 층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식에는 작가의 주관적인 표현방식과 해설, 논평이 개입되지만, 관람객이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존 아콤프라의 논쟁적인 작품을 통해 흑인 영화가 문화적 산물로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인종주의와 정체성의 정치학의 문제와 함께 논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