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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1.
        2020.01 KCI 등재후보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의 목적은 중국 대학 한국어학과의 교과목 개설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어학과의 교과과정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향후 교과과정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중국 31개의 4년제 대학 한국어학과의 교과목 중 한국어학 관련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을 한국 문화, 한국 문학, 한국학 세 영역으로 나누어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본 연구는 실제 교육과정 운영 현황을 고려하지 못 하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나 중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들을 대상으로 최근 개편된 교과과정을 반영하여 현재 중국 대학 한국어학과의 교 과과정 개선 방향 및 현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82.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독도는 지금 그대로 있는 것처럼 그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던 돌섬이다.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도 있는 그 섬이 장소를 상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현재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섬이다. 독도에 대한 서사, 즉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독도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인물을 형상화하기에는 너무 소재 중심적이지 않은가 하는 회의가 든다. 반면에 문학적 형상화가 잘 드러난 소설의 경우, 독도를 지킨 역사적 인물 안용복에 대해서 사건과 사건 사이의 개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 사회적 상상력을 펼치기가 용이하다. 한 민족이나 한 나라의 이상적 인간상은 역사적 전통 속에서 다듬어져 내려온 인간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상품처럼 필요에 의해 단시일 내에 만들어지거나 다른 민족이나 나라의 정체성으로는 대치되거나 수입될 수는 없는 일이다. 문학에서의 실제성은 과거와 현재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은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차용한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과거의 사실을 기반으로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작가의 역사적 해석이자 미학적 창작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이 반드시 역사적 기록과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문학은 역사적 사료를 넘어 작가들의 직관력과 상상력으로 사실 이상의 진실을 찾아낼 수가 있다. 작가의 해석이 개인의 독단적 편견이 아닌 동시대인의 관점을 반영할 때, 그때의 문학은 다시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적어도 막연한 바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이 노력을 담는 그릇이 될 때, 문학적 이야기가 또다른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학작품에 나타난 독도와 안용복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독도는 실존 공간이다. 실존 공간은 하나의 문화 집단 속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다. 그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문화와 구성원들과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일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우리 문화를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의 일인 것이다.
        283.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오연 김면운은 19세기 경상 우도의 유림 사회에서 중임을 맡으며 활발히 활동한 인물로서, 총 88제 147수의 한시를 문집에 남겼다. 그 중 주위의 인물들 과 교유하며 짓거나 선유들의 작품에 소회를 붙인 화운시, 증별시, 만시가 대부 분을 차지한다. 오연의 시문학은 진심을 전하며 서로를 격려하였던 19세기 강우 지역 유림들의 문학적 특징과 삶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는 시의 실용적 역할 을 중시하였던 남명 시관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고찰될 필요가 있다. 오연은 특히 만년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잇달아 겪고, 궁핍한 현실과 질병 으로 운신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울적한 소회를 시문학에 적극적으 로 담아냈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주위에 보이고 조언을 구하며 文才를 연마하 고자 하였다. 제석시 등 성찰적 작품은 오연 시문학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주었는데, 대체로 정적인 풍경 안에 詩意를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여, 沖澹閑雅한 풍격을 만들어냈다. 이는 자연스러운 성정의 발현을 중시하는 시관, 은일적 시세계를 지향한 작자의식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안빈낙도의 주제의식은 처사 문학적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는 자신의 현실적 어려움을 작품 안에서 초극하면서, 세속적 가치의 초월을 지향한 남명학파의 시문학 전통을 계승하는 단서라고 할 수 있다.
        284.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남고 이지용은 남명의 유향이 스민 산청군 단성에서 태어나 남명에 대한 존모의 뜻을 품고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학문적인 면에 있어서는 남명학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문학에 있어서는 남명학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성정을 표현하 는데 있어서는 뛰어난 묘사와 정제된 문풍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의 시는 인위적인 수사와 彫琢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정의 발 로이며 天稟과 자질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관조와 성찰에 의 해 발현된 언어들은 아무런 격의 없이 사람에게 스며들 듯 감동과 찬탄이 나오게 한다. 「관등행」은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악부시 형태의 시로 당시의 풍속과 시대 상을 읽을 수 있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민속학적인 측면에서도 중요 한 자료가 될 만한 작품이다.
        285.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죽와 하일호의 시문학 세계의 양상과 그 특징에 대한 고찰을 연구의 목적으로 삼았다. 하일호의 가계는 대대로 남명의 학문적 영향을 입었고 하 일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유학적 도덕성을 견지하여 孝友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한편 학문공부에 근면하고 후학의 지도에서 『소학』의 가르침을 성 실히 전수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가족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가부장으로의 진중 한 모습이나 자손과 후배들에게 평생 체득한 삶의 지침을 전수하는 노년의 문사의 모습,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박한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해학 넘치는 모습이 형상화 되었다. 유가적 관념을 형상한 작품 외에, 소박한 일상의 사건과 사물을 묘사한 작품에 나타나는 구체성과 묘사성은 유학자이자 문인으로서의 하 일호의 작품이 갖는 특징이다. 이것은 자국적인 것의 가치를 인식하고 조선어를 활용한 시의 창작을 주장한 그의 독자적 시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조는 비록 평범하지만 내용은 전실한 시작품의 창작을 강조한 것이나 예에 부합되고 실지로 적용될 수 있는 학문 자세를 강조한 것 역시 그의 시문학 세계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86.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의 주요 목적은 T. S. 엘리엇의 비평에세이인「종교와 문학」을 면밀히 점검함으로써 문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를 해명하는 것이다, 1935년에 발표된 중요한 이 에세이에서 엘리엇은 자신이 시대를 세속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시대로 진단하며, 동 시대의 신학자인 폴 틸리히의 ‘궁극적 관심’과 주목할 정도로 의미적인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엘리엇이 ‘근원적 관심’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 시대에는 거의 완전히 잊어져버렸다. 엘리엇은 세속화의 주요 원인으로 오락의 명에 따라 고급문화를 탈구를 이끌고 있는 대중문화의 파과적인 힘을 지적하고 있다. ‘근원적 관심’의 회복을 추구하는 엘리엇은 문학 작품의 윤리적 종교적인 가치를 명확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오락에 탐닉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근원적 관심’을 파종시키는데 있어서 문학 비평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287.
        2019.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隱求型 지식인 임여송이 자신의 생활을 어떻게 작품화하였던가 하는 문제를 살피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事上學’이 라는 관점을 설정하였다. 이것은 ‘생활 속에서 진리 찾기’를 의미하는 바, 灑掃應對나 起居動作 등 인간의 일상을 중시한다. 우리는 흔히 문학 사적 측면에서의 문제적 작가나 사상사적 측면에서의 주요 위상을 지닌 인물을 주목한다. 이러한 연구방향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수많은 선비들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향촌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며 진리를 탐구해 왔고, 가족을 중시하며 생활에의 체험을 작품화해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고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일상과 생활, 평범과 소박을 존중하며 작품 생활을 해 왔던 한 작가에 집중한 것이다. 임여송 문학의 주제는 수양론적 측면, 가족주의적 측면, 그리고 자연 인식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향촌에서 생활하면서 그 자신이 이를 가장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양론적 측면에서는 居敬과 明誠, 그리고 愼獨 등의 개념을 내세우면서 적극 작품화하였고, 가족주의적 측면에서는 위로는 부모, 옆으로는 동생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그리고 산수 속에서 仁知나 歲寒之意 등 유가적 이상을 찾고자 하기도 하지만, 그의 자연관에는 무한한 자유와 자족감이 내포되어 있었다. 임여송 문학의 의의는 ‘지금-여기’에 대한 자각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생활 小事를 재발견하며 소재를 더욱 다양하게 수용하고 있었다. 사상학의 문학적 효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88.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지금까지 문학평가의 현장이 정책적 요구와 이상적 지향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계속해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진자 운동을 멈출 새로운 문학교육 평가 패러다임이 필요하며, 실제성이 담보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등학교 ‘문학’과목의 평가 실태를 분석하고, 추출된 문제점을 통해 문학교육 평가를 ‘왜’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 문학과 교육, 평가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문학교육 평가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문학평가가 내러티브에 기반 하여 삶을 알아가는 성장의 과정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으로, ‘내러티브 중심 문학교육 평가’라 하였다. 또한 ‘내러티브 중심 평가’는 나선형 곡선의 양상을 띠며 발달적으로 순환한다는 것을 보이고, 그 역동성을 드러내면서도 평가 설계의 구체적인 지침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분류학을 제시하였다.
        289.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한문학 유산과 관련이 있는 대상들은 의식주 전반에 걸쳐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데, 이 가운데에서도 전통한옥은 1990년대 이래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문화재적 가치를 비롯해 관광 자원으로서도 매우 비중 있는 유형 유산임은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통한옥과 연관된 한문학 유산 중에서도 樓亭記는 가장 풍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누정기에 집중하였으며, 누정기를 단지 한문학 텍스트로만 간주하는 차원을 넘어 문화콘텐츠로서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로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디지털 아카이브(Digital Archive)로 구축하여 전문 연구자뿐만이 아니라 문화계 종사자 및 일반 대중들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누정기에서 문화콘텐츠로서 의미를 가질만한 요소들은 크게 세 가지로 상정해볼 수 있는데, 첫째는 인물에 대한 정보로서 누정기 내에 언급된 건립자 및 여러 관련 인물들에 대한 정보이다. 둘째는 전통한옥에 대한 정보로서 전통한옥을 어떻게 지었는지, 그렇게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건물의 구성 하나하나에 담긴 생각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정보이다. 셋째는 전통한옥의 이름과 관련된 정보로서 집 이름에 담긴 당대 지식인의 세계관에 대한 정보이다. 위와 같은 관점 하에서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누정기 1편을 집중 분석하였다. 누정기-문화콘텐츠의 디지털 아카이브는 위키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구축하였는데, 위키 소프트웨어의 장점은 다음의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누구나 쉽게 작성할 수 있으며 무료로 제작할 수 있다. 둘째, 하이퍼링크(Hyperlink) 기능을 쉽게 실현시킬 수 있다. 셋째,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넷째, ‘분류’ 기능을 사용하여 자동으로 색인(index)이 만들어진다. 위와 같은 장점을 충분히 수용하여 본고에서는 위키 소프트웨어로 제작한 아카이브 구축 예시를 제시하였다. 앞 장에서 자세히 분석한 바를 아카이빙한 것이다. 실제로 구현된 모니터 화면을 부분별로 캡처하여 설명을 덧붙였으며, 이것이 문화콘텐츠로 편리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290.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西崗 安益濟는 한말시기 경상우도 의령지역의 대표적 士人이다. 남명학의 磁場이 남아있는 강우지역에 세거하였으나 그에게서 남명학파의 성향은 드러나지 않았고, 耽津安氏家의 문중적 성향으로 보면 寒洲 李震相(1818~1886)의 계열임에도 이와 관련한 師承이나 학설이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타고난 문학적 자질을 지닌 뛰어난 문학가였다. 안익제는 19-20세기 어려운 시대에 재야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 현달한 치적을 남기진 않았지만,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활용해 다양한 장르에서 양적으로도 적지 않은 문학작품을 창작하였다. 소재 면에서도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작품으로 승화시켜 표현하였다. 주변의 돌 하나 꽃 한 송이도 모두 문학적 소재로 활용하였고, 특히 치열한 士意識을 일상의 소재에 투영함으로써 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그의 독특한 학문태도와 의식 성향이 더해져, 그의 작품은 차별적 특징을 드러내었다. 날짜 중심이 아닌 記事 서술 방식을 통해 지리산권역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남겼고, 지역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광범위하고도 섬세한 공부가 있었으며, 이에서 파생된 오류 정정의 태도 등은 이전 시기 강우학자에게선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더욱이 自問自答의 학문태도는 매우 참신하면서도 유효한 방식이었다. 貧寒한 가정형편으로 배움의 기회마저 잃은 士人이었지만, 이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문적 성취를 구현하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표출하였다. 그러나 본고에서 미처 수렴하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예컨대 그의 일생을 지배했던 易學과의 관계, 특히 洋學과 七佛寺 影池에서 보인 객관적 사고의 근원이 어디인가에 대한 규명 등이 부족하였다. 뚜렷한 師承 관계도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家學的 성향이 짙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이는 차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291.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문학치료 애도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 자살유가족의 애도 과정이 어떠한 지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그 경험의 의미를 탐색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문학 치료 애도 프로그램은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한 청소년 자살유가족 2명을 대상으로 00지역에서의 위기가족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주 1회 50분씩 총 48회로 구성하였고, 내러티브 탐구의 절차에 따라 수행하였다. 본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는 첫째, 연구참여자의 애도 과정은 ① ‘그냥요, 괜찮아요’, ② ‘모르겠어요’, ‘아무렇지 않아요’, ③ ‘저는 재수 없는 아이예요’, ④ ‘제 이름 좀 바꿔주시면 안 돼요’, ‘우리 아버지 사고로 돌아가셨어’와 같이 나타났다. 둘째, 애도 경험의 의미를 살펴보면 참여자들은 행 동적 부적응의 모습, 감정 억압, 정서적 무감각, 회피 등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드러냈다. 셋째, 애도과정은 여러 번 걸쳐 재작업 될 수 있고 반복적, 부정기적으로 나타났다. 이에 본 연구는 문학치료 애도작업을 통해 청소년 자살유가족이 느끼는 슬픔의 방식 그대로 함께하는 것과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연구자 에게도 청소년 자살유가족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292.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滄浪亭 李尙靖(1725∼1788)삶과 그의 문학에 나타난 정신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조선 후기의 문학이 한창 무르익었던 시대였다. 학문적으로는 義理學과 事理學이 병행하던 때였다. 그가 어렸을 때는 그다지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지는 않았다. 그의 학문 방향은 爲己之學에 있었다. 그가 많은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그가 嶺南 左道와 右道 학자들의 소통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예로 그가 도산서원을 참배하고 그곳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그의 문학에 나타난 정신은 크게 4가지이다. 첫째 큰 국량을 바탕한 追遠精神이다. 그가 선비로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였지만 그의 식견이 편협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여 집안을 부흥시키려고 하였다. 둘째 經術을 바탕 한 道學精神이다. 그의 학문은 육경에 연원을 두고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知行合一한 道學者였다. 셋째 마음을 바탕 한 義理精神이다. 그가 爲己之學을 바탕으로 義理學 에 전념하였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 正心이 바탕이 된다고 하였다. 넷째 그의 가슴속에는 尊王攘夷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道德的 理想主義의 실행을 바라고 있었다.
        293.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默齋 金墩의 文集인 『默齋集』을 중심으로, 그의 詩文을 검토하여 분석한 것이다. 김돈은 아직은 학계나 일반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김돈과 그의 문학을 보고하는 첫 보고서라는 의미와 試論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는다. 寒士, 즉 ‘가난하거나 권력이 없는 선비’라는 사전적 정의는 김돈의 처한 입지와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다. 그는 가난했고,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문학과 학문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김돈에 관한 자료가 2권 1책으로 묶인『默齋集』이 전부인 상황에서 그의 학문세계를 온전히 드러내기는 여건상 매우 어렵겠지만, 남아있는 시와 문을 통해 그의 문학세계를 짚어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은 묻혀있고 잊혀져있던 남명학파의 실체를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이것은 어려운 상황과 처지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剛毅한 정신세계를 이루었던 한 지성을 알리는 작업이며, 그가 남긴 예술적이며 심미적인 문학작품의 가치를 학계에 알리는 작업이다. 김돈이 남긴 시는 169수이다. 남명학파의 문집이 대체로 분량이 적고, 시편이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역사에 대한 慷慨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 몇 편이 있다. 이 작품들은 대체로 충신과 열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감정을 피력한 것인데, 특히 망국의 역사적 상황 속에 忠節을 다하였던 인물들의 원통함에 공감하고 함께 의분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김돈은, 평화로운 시기에 비록 知遇를 받지 못했더라도 危難의 시기가 오면 결연히 떨쳐 일어나리라는 결의를 평상시에도 늘 갖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또한 김돈은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않고 학문을 닦고 덕성을 기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결연한 의지로 실천해나갔다. 그는 특별히 알아주는 이 없는 ‘寒士’이지만, 부귀영화나 입신양명의 현달을 꿈꾸지 않았다. 그저 매일 학문을 닦고 인격도야에 매진하다가, 만약 위난의 시절이 닥쳐온다면 결연히 떨쳐 일어났던 남명학파의 선배들 발자취를 따르고자 했다. 또 한편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安貧樂道를 말했지만, 그 진정성은 의심스럽다. 즉, 우선은 가난하지 않은데 가난하다고 한 경우가 많고, 진정으로 도를 즐긴 삶이 아닌데도 도를 운위한 것이 의심스러운 인물들도 많았다. 그런 경우에 비해 김돈은 진솔하다. 가난하기에 가난하다고 했고, 입신양명이나 현달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일생을 학문에 정진했기에 도를 즐긴다고 할만하다. 이는 寒士의 剛毅함이라 요약할 수 있다. 김돈은 剛毅한 지조를 가진 선비였지만, 가족과 친족에게는 더없이 다감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평범함이 시로 표현되고 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진솔함과 다정함이 묻어나 공감을 자아낸다. 그의 평범함이 오히려 더 비범함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교유관계가 원만한 사람들은 타고난 성품의 덕도 있지만, 그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대한 노력이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김돈은 그런 심성과 노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공부하는 선비라면 文房四友에 대한 나름의 애착이 있기 마련이다. 공부에 꼭 필요한 文房具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金墩의 문학에는 文房四友가 아니라 五友가 자주 등장한다. 다섯 번째 벗이 기도 하고, 이 벗이 있어 五友가 완성되기도 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김돈은 매우 다정다감한 감성을 지닌 文人이었다.
        294.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에서는 『寒溪遺稿』를 바탕으로 하면서, 한편 여러 문헌에 남아 있는 한계 관련 자료를 통하여 한계의 삶과 문학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계는 南冥學을 가학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삼종제인 河大觀과 더불어 晉陽의 巨擘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그의 학문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金聖鐸과 내왕한 편지, 그리고 친한 벗 朴挺新의 아들 朴受紋에게 준 시와 서문 등을 통하여 그의 학문을 窺見할 수 있었다. 그의 시는 거의 절반이 내외의 인물들의 죽음에 대해 쓴 것인데, 이들 만시는 한계의 한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는 것으로 한계의 한시세계를 대표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의 만시는 다만 고인을 애도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한계의 교유 범위와 깊이 등을 이해하는 데로 확장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문장으로도 문중에서 인정을 받아 族譜의 序文을 쓰기도 하였으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遊頭流錄」이다, 일찍이 김성탁에게도 알려져 김성탁이 빌려달라고 할 정도였는데, 그 내용은 대략 세가지 방면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는 하대명이 한시를 酬唱한 흔적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아 전하는 것이 많지는 않으나 한계가 한시를 지었던 자취는 「유두류록」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계는 지리산을 가는동안 다섯 여섯 군데에서 13수 정도의 시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유두류록」이 선현과 선조에 대한 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한계는 지리산에 들어가 고려 때 지리산에 숨어들어가 은거하였던 韓維漢의 자취가 있는 鈒巖과 禮記巖을 둘러보았을 뿐만 아니라, 水精社에 기문을 쓴 것이 지금도 『동문선』에 전하는 權適의 기문과 수정사에 남아 있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글씨 등을 보며, 옛날의 선현들과 자신의 조상에 대한 회념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셋째는 두류산 유람을 통하여 지리산 등산의 철학적 묘미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일찍이 南冥 曺植도 산을 오를 때와 내릴 때의 차이를 통하여 善을 하는 일을 이야기하였는데, 한계는 남명이 한 말이라고 인용하였다. 이 말은 본래 유래가 매우 오랜 것으로 『國語』에서 나온 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말을 鄭汝昌, 李滉 등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등산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유두류록」에서 보여주고 있다.
        295.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문학교육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내러티브의 개념을 정리하고 내러티브에 기반한 문학 교수-학습 모형을 개발하는 데 목적을 둔다. 국어와 문학교육에서 내러티브는 서사, 소설 등 장르적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어 내러티브에 대한 교육적 의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내러티브를 수업의 내용, 방법, 목표, 체제로 구성하여 이를 기반으로 한 문학 교수-학습 모형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내러티브를 실체로서, 방법으로서, 사고양식으로서의 측면으로 구분하여 ‘작품의 이야기’, ‘이야기 나누기’, ‘이야기 생성하기’로 내러티브를 세분화하였다. 내러티브에 기반한다는 것은 내용인 문학 작품을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인식하고, 교사와 학습자가 작품 감상과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 삶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 생성해 나가는 목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수업 자체가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점에서 체제로서의 내러티브도 요구된다. 내러티브 기반 교수-학습 모형은 위의 용어와 이론에 근거하여 [이야기 의 활성화]-[이야기로의 독해]-[이야기의 공유]-[이야기와 관계 형성]-[자아 이야기 생성 및 상호 텍스트성]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296.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에서는 介庵 姜翼(1523-1567)의 학문 특징을 살펴보고 그의 학문 지향이 문학작품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서술 하였다. 강익은 당대 함양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평생을 수양으로 일관하였고, 남계서원 건립을 주도하는 등 유학의 사회적 보급에도 힘 을 기울인 인물이다. 이러한 강익의 학문 특징은 그가 남긴 記文에 집약 되어 있다. 강익은 이른 나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爲己之學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이는 스승 唐谷 鄭希輔(1486-1547)나 南冥 曺 植(1501-1572)의 영향 외에도 자신의 과단한 실천 성향이 그 기저에 자리했다. 과단한 실천 성향이 위기지학을 확고히 실천하도록 만든 요 인이며, 성현의 본지를 ‘自得’하는 학문 방법을 통해 더욱 정교한 실천 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조식은 강익에 대해 ‘끝을 잘 맺을 것이 분명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하였다. 강익에게서는 문학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감지되지 않는데, 이는 문 학에 대한 고민보다 심신수양에 역점을 두었던 그의 학문 지향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그의 학문 지향이 집약된 작품이 「양 진재기」이다. 강익은 「양진재기」에서 양진재를 건립하게 된 경위와 택지의 이유 및 의도 등을 설명하였다. 이 작품에서 강익은 성정의 참됨[性情之眞] 을 기르고자 외부와 격리된 곳에 택지를 하고, 주변의 자연물과 자신의 공부방이 교감할 수 있도록 안배하였으며, 수양을 돕는 물건들도 주위 에 배치하였다. 즉 「양진재기」는 강익의 자기 수양을 위해 자연물·인공 물을 가려서 배치하고 연출한 의도와 그 속에서 성정의 참됨 기르고자 했던 학문적 지향이 담긴 글이다. ‘양진재’가 본인의 학문 정진을 위해 사적 공간을 의도대로 조직한 건물이라면, ‘남계서원’은 학문의 표본을 제시함으로써 지역사회에 유 학을 널리 장려하고자 설립한 건물인데, 이러한 강익의 학문적 지향이 표출된 글이 「남계서원기」이다. 「남계서원기」에서는 一蠹 鄭汝昌을 제 향해야 하는 도학적 당위와 서원의 교육·교화적 기능을 주로 설명하였 다. 인간만이 도를 사회에 실천할 수 있는데 이는 도를 지닌 사람만이 가능하므로 정여창과 같은 선현을 서원에 제향하여 추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현을 서원에 모시고 제사지내는 의식이 학생들을 고무 시키는 측면이 있으며, 이를 통해 정여창의 도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유학이 부흥할 거라는 것이다. 강익은 두 편의 記文을 통해 내면으로 학문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대외적으로 학문을 장려하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16세기 초반부터 조식·이황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유학자로서의 표상을 정립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학적 가치를 실천하고 보급한 강익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사림의 자기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졌던 것이다.
        297.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내러티브 접근에 기반한 질문 중심 수업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 로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연구를 수행하였다. 첫째, 문헌 연구를 통해 내러티브 교육 과 질문 중심 수업의 필요성을 진화심리학, 교육학적 관점에서 각각 고찰하였다. 둘째,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고등학교 문학 과목의 시 수업을 직접 설계해보았다. 이를 위해 Carol Lauritzen, Michael Jaeger의 내러티브 교육과정 설계 템플릿을 활용하였다. 설계의 과정은 ‘기본 목표 및 성취 목표 고려하기’, ‘내러티브 맥락 선정하기’, ‘탐구 질문 생성하기’ 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298.
        2017.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글은 HK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의 연구성과를 총결하면서 지리산인문학이라 는 새로운 범주의 학문으로의 이전을 준비하는 과정 중의 하나로 씌어진 것이 다. 이를 위해 우선 지리산권문화연구라는 HK사업의 아젠다가 갖는 ‘징후’로서 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10년전 징후읽기와 그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한 HK사업 은 10년 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로 본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HK사업으로서의 지리산권문화연구와 지리산인문학은 한국사회에 서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급박한 대응으로서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글에서는 먼저 지리산권에서 산출한 고전문학 작품들이 어떤 것 이 있는가부터 살펴보았다. 고전문학은 전통시대에 산출한 국문문학과 한문서 사를 총칭하는 것이며 여기에 구비문학인 민요와 설화를 포함한다. 지리산권 고전문학 작품들을 쭉 열거해본 결과 전기소설이나 판소리, 동학가사 등 고전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 이 지역에서 산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지리산권고전문학이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들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제4차 산업혁명의 한국적 전개에 시사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증강현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작품과 사람들을 엮 어 하나의 장르가 생성되는 현장의 운동 논리는 기본적으로 지능과 연결로 대 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前驅的 특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글에서는 일 단 지리산인문학과 지리산권고전문학, 제4차 산업혁명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시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논의를 발전시켜 아젠다로서 지 리산인문학의 임무를 수행하는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299.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산업의 발달과 농촌의 도시화로 인하여 각종 농기계가 도입되면서 혼자서도 농사지을 수 있게 되었고, 들녘을 가로지르던 농부들의 노랫 가락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온갖 이야기를 풀어내던 사랑방 대신 마을회관에 모여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화면이 시키는 대로 웃고 울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은 과거와 같은 자연적이고 역동적인 구비문학의 전승현장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남아있는 구비문학 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채록하여 지역민의 정서 표출 욕구를 풀어내야 하겠지만 이야기판이나 노래판을 벌이기에 여건이 마땅치도 않고 몇몇 사람의 노래나 이야기만으로 마을을 대표한다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가장 최근에 조사된 『한국구비문학대계』 개정, 증보판의 내용이 자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기에 대계의 자료를 중심으로 개평마을의 설화와 민 요를 살펴보았다. 개평마을의 이야기와 노래가 지니고 있는 최근의 모습은 마을 공동체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문화가 창출되고 변용되는 시공 간이 지닌 구비문학의 양상을 살피는 미시적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주민들의 유대와 협력을 중시한다. 여성 제보자들은 허구적이며 상상력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즐기며, 남성 제보자는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성을 증명할 수 있는 이야기에 공을 들인다. 여성들의 이야기에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와 며느리로서 집안을 일으키고 잘 살아야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생을 들여다보고 살피는데 있어서도 여성들의 이야기는 운명적인 데가 많다. 타고난 팔자는 피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도 행운과 불운에 대해 민감하며, 우연과 행운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살아간다. 구비문학 현장에는 여성제보자들의 이야기와 노래가 많다. 남성들은 이야기판에 관심이 없거나 직접 겪은 일이 아니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감정표현에 솔직하고 욕망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여성제보자들의 이야 기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표현이라고 하겠다. 오랜 세월 여성들은 자연적이고 자발적으로 민요를 가창했을 것이며,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즐기고 만족하며 노래불렀을 것이다. 자신 들의 힘들고 고된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기보다는 민요에 얹어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타박네가 엄마 찾아 산소 가는 사연을 노래 부르며 어머니로서보다는 딸로서 어머니를 찾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으며, 계모가 사위 죽이려는 노래에서는 딸이나 여자로서의 꿈과 행복이 가장 좋은 일조차 방해받을 수도 있다는 한스러움을 노래했던 것이다. 농삿일이 기계화되고 놀이조차 행사나 축제의 하나로 통합되면서 여성들이 모여서 ‘노랫가락’이나 잡가를 부르고 놀게 되었던 일까지 이제는 오래 전의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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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강혼(姜渾)은 조선 연산군 때 문한을 담당하고 중종반정 때 정국공 신(靖國功臣)으로 녹훈되었으며, 묘도문자와 제영을 많이 남겼으나, 사림의 공론에 저촉되어 그 역사 활동의 실상과 그 문학 성과가 전면적 으로 검토된 일이 없다. 본고는 연산군과 중종 시기의 문학사를 종합적 으로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하고 조선전기 진주 지역의 문화적 기반의 성립을 이해하기 위해 강혼의 문자활동에 대해 개괄했다. 강혼이 연산 군조에 관각문인으로서 아유구용의 시문을 작성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문학세계는 권력에의 유착으로만 규정지을 수 있는, 관각문인으로서의 독특한 국면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강혼은 「정 미수신도비」에서, 신명을 보존키도 어려운 처지에 처한 정미수가 남의 죄를 덜어주고 가혹한 형벌을 받지 않도록 애쓴 모습을 그려 보였다. 묘주(망자)가 생전에 법률을 근거로 타인을 변론했던 내용을 그대로 담아 신도비의 문체로서도 매우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본고는 몇몇 기문과 구묘문의 일문(佚文)을 찾아내기는 했으나, 강혼의 ‘부학적문 (富學績文) 발언성장(發言成章)’을 이해하기 위해 일시문(佚詩文)을 더욱 수습,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강혼의 매부는 우리 문학사에서 많은 일화를 남긴 어득강(魚得江, 1470~1550)이다. 연산군과 중종 연간의 문학 집단이 지녔던 지향과 성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혼과 어득강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