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338

        281.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에서는 介庵 姜翼(1523-1567)의 학문 특징을 살펴보고 그의 학문 지향이 문학작품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서술 하였다. 강익은 당대 함양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평생을 수양으로 일관하였고, 남계서원 건립을 주도하는 등 유학의 사회적 보급에도 힘 을 기울인 인물이다. 이러한 강익의 학문 특징은 그가 남긴 記文에 집약 되어 있다. 강익은 이른 나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爲己之學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이는 스승 唐谷 鄭希輔(1486-1547)나 南冥 曺 植(1501-1572)의 영향 외에도 자신의 과단한 실천 성향이 그 기저에 자리했다. 과단한 실천 성향이 위기지학을 확고히 실천하도록 만든 요 인이며, 성현의 본지를 ‘自得’하는 학문 방법을 통해 더욱 정교한 실천 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조식은 강익에 대해 ‘끝을 잘 맺을 것이 분명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하였다. 강익에게서는 문학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감지되지 않는데, 이는 문 학에 대한 고민보다 심신수양에 역점을 두었던 그의 학문 지향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그의 학문 지향이 집약된 작품이 「양 진재기」이다. 강익은 「양진재기」에서 양진재를 건립하게 된 경위와 택지의 이유 및 의도 등을 설명하였다. 이 작품에서 강익은 성정의 참됨[性情之眞] 을 기르고자 외부와 격리된 곳에 택지를 하고, 주변의 자연물과 자신의 공부방이 교감할 수 있도록 안배하였으며, 수양을 돕는 물건들도 주위 에 배치하였다. 즉 「양진재기」는 강익의 자기 수양을 위해 자연물·인공 물을 가려서 배치하고 연출한 의도와 그 속에서 성정의 참됨 기르고자 했던 학문적 지향이 담긴 글이다. ‘양진재’가 본인의 학문 정진을 위해 사적 공간을 의도대로 조직한 건물이라면, ‘남계서원’은 학문의 표본을 제시함으로써 지역사회에 유 학을 널리 장려하고자 설립한 건물인데, 이러한 강익의 학문적 지향이 표출된 글이 「남계서원기」이다. 「남계서원기」에서는 一蠹 鄭汝昌을 제 향해야 하는 도학적 당위와 서원의 교육·교화적 기능을 주로 설명하였 다. 인간만이 도를 사회에 실천할 수 있는데 이는 도를 지닌 사람만이 가능하므로 정여창과 같은 선현을 서원에 제향하여 추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현을 서원에 모시고 제사지내는 의식이 학생들을 고무 시키는 측면이 있으며, 이를 통해 정여창의 도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유학이 부흥할 거라는 것이다. 강익은 두 편의 記文을 통해 내면으로 학문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대외적으로 학문을 장려하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16세기 초반부터 조식·이황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유학자로서의 표상을 정립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학적 가치를 실천하고 보급한 강익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사림의 자기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졌던 것이다.
        282.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내러티브 접근에 기반한 질문 중심 수업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 로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연구를 수행하였다. 첫째, 문헌 연구를 통해 내러티브 교육 과 질문 중심 수업의 필요성을 진화심리학, 교육학적 관점에서 각각 고찰하였다. 둘째,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고등학교 문학 과목의 시 수업을 직접 설계해보았다. 이를 위해 Carol Lauritzen, Michael Jaeger의 내러티브 교육과정 설계 템플릿을 활용하였다. 설계의 과정은 ‘기본 목표 및 성취 목표 고려하기’, ‘내러티브 맥락 선정하기’, ‘탐구 질문 생성하기’ 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283.
        2017.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글은 HK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의 연구성과를 총결하면서 지리산인문학이라 는 새로운 범주의 학문으로의 이전을 준비하는 과정 중의 하나로 씌어진 것이 다. 이를 위해 우선 지리산권문화연구라는 HK사업의 아젠다가 갖는 ‘징후’로서 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10년전 징후읽기와 그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한 HK사업 은 10년 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로 본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HK사업으로서의 지리산권문화연구와 지리산인문학은 한국사회에 서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급박한 대응으로서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글에서는 먼저 지리산권에서 산출한 고전문학 작품들이 어떤 것 이 있는가부터 살펴보았다. 고전문학은 전통시대에 산출한 국문문학과 한문서 사를 총칭하는 것이며 여기에 구비문학인 민요와 설화를 포함한다. 지리산권 고전문학 작품들을 쭉 열거해본 결과 전기소설이나 판소리, 동학가사 등 고전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 이 지역에서 산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지리산권고전문학이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들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제4차 산업혁명의 한국적 전개에 시사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증강현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작품과 사람들을 엮 어 하나의 장르가 생성되는 현장의 운동 논리는 기본적으로 지능과 연결로 대 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前驅的 특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글에서는 일 단 지리산인문학과 지리산권고전문학, 제4차 산업혁명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시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논의를 발전시켜 아젠다로서 지 리산인문학의 임무를 수행하는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284.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산업의 발달과 농촌의 도시화로 인하여 각종 농기계가 도입되면서 혼자서도 농사지을 수 있게 되었고, 들녘을 가로지르던 농부들의 노랫 가락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온갖 이야기를 풀어내던 사랑방 대신 마을회관에 모여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화면이 시키는 대로 웃고 울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은 과거와 같은 자연적이고 역동적인 구비문학의 전승현장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남아있는 구비문학 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채록하여 지역민의 정서 표출 욕구를 풀어내야 하겠지만 이야기판이나 노래판을 벌이기에 여건이 마땅치도 않고 몇몇 사람의 노래나 이야기만으로 마을을 대표한다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가장 최근에 조사된 『한국구비문학대계』 개정, 증보판의 내용이 자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기에 대계의 자료를 중심으로 개평마을의 설화와 민 요를 살펴보았다. 개평마을의 이야기와 노래가 지니고 있는 최근의 모습은 마을 공동체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문화가 창출되고 변용되는 시공 간이 지닌 구비문학의 양상을 살피는 미시적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주민들의 유대와 협력을 중시한다. 여성 제보자들은 허구적이며 상상력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즐기며, 남성 제보자는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성을 증명할 수 있는 이야기에 공을 들인다. 여성들의 이야기에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와 며느리로서 집안을 일으키고 잘 살아야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생을 들여다보고 살피는데 있어서도 여성들의 이야기는 운명적인 데가 많다. 타고난 팔자는 피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도 행운과 불운에 대해 민감하며, 우연과 행운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살아간다. 구비문학 현장에는 여성제보자들의 이야기와 노래가 많다. 남성들은 이야기판에 관심이 없거나 직접 겪은 일이 아니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감정표현에 솔직하고 욕망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여성제보자들의 이야 기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표현이라고 하겠다. 오랜 세월 여성들은 자연적이고 자발적으로 민요를 가창했을 것이며,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즐기고 만족하며 노래불렀을 것이다. 자신 들의 힘들고 고된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기보다는 민요에 얹어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타박네가 엄마 찾아 산소 가는 사연을 노래 부르며 어머니로서보다는 딸로서 어머니를 찾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으며, 계모가 사위 죽이려는 노래에서는 딸이나 여자로서의 꿈과 행복이 가장 좋은 일조차 방해받을 수도 있다는 한스러움을 노래했던 것이다. 농삿일이 기계화되고 놀이조차 행사나 축제의 하나로 통합되면서 여성들이 모여서 ‘노랫가락’이나 잡가를 부르고 놀게 되었던 일까지 이제는 오래 전의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285.
        2016.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강혼(姜渾)은 조선 연산군 때 문한을 담당하고 중종반정 때 정국공 신(靖國功臣)으로 녹훈되었으며, 묘도문자와 제영을 많이 남겼으나, 사림의 공론에 저촉되어 그 역사 활동의 실상과 그 문학 성과가 전면적 으로 검토된 일이 없다. 본고는 연산군과 중종 시기의 문학사를 종합적 으로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하고 조선전기 진주 지역의 문화적 기반의 성립을 이해하기 위해 강혼의 문자활동에 대해 개괄했다. 강혼이 연산 군조에 관각문인으로서 아유구용의 시문을 작성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문학세계는 권력에의 유착으로만 규정지을 수 있는, 관각문인으로서의 독특한 국면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강혼은 「정 미수신도비」에서, 신명을 보존키도 어려운 처지에 처한 정미수가 남의 죄를 덜어주고 가혹한 형벌을 받지 않도록 애쓴 모습을 그려 보였다. 묘주(망자)가 생전에 법률을 근거로 타인을 변론했던 내용을 그대로 담아 신도비의 문체로서도 매우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본고는 몇몇 기문과 구묘문의 일문(佚文)을 찾아내기는 했으나, 강혼의 ‘부학적문 (富學績文) 발언성장(發言成章)’을 이해하기 위해 일시문(佚詩文)을 더욱 수습,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강혼의 매부는 우리 문학사에서 많은 일화를 남긴 어득강(魚得江, 1470~1550)이다. 연산군과 중종 연간의 문학 집단이 지녔던 지향과 성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혼과 어득강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필요하다.
        286.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진주 강씨 집안은 강희맹(姜希孟, 1424-1483)에 이르러 정치적으로 훈구파의 입지를 다지는 한편, 관각문인으로서의 재능을 꽃피운, 조선 전기의 대표적 명문 거족이다. 이 집안의 문학적 전통은 그의 조부인 강회백(姜淮伯, 1357-1402)에 서부터 시작되었는데도, 그동안 연구된 바가 없다. 삼대에 걸친 시문집인 『진산세고』에는 93제 108수가 실려 있다. 이 작품들은 강희맹이 강회백의 문집 『통정집』에서 정선한 것으로, 강회백의 대표적인 시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대상으로 강회백의 시문학을 고찰하였다. 『진산세고』에 실린 백여 수의 시를 살펴보면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고 려와 조선에 걸쳐 관료 생활을 하는 도중 지은 시, 국가적인 행사나 임무에 참 가하여 지은 시, 개인적인 소회를 읊은 시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능력 있는 관료의 자질을 지닌 문인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는 관료로서의 포부와 함께 백성과 국가에 대한 근심을 드러내기 위해 강개한 시구가 많이 쓰인다. 반면 외 교 임무를 띠거나 국가의 위상을 드러내야 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현실과는 상 관없이 공적인 임무에 맞도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어를 활용하였다. 또한 개인적인 소회를 읊은 시들은 유자(儒者)로서의 깨달음에 기반한 노성한 품격을 드러낸다. 『진산세고』가 연방집(聯芳集)의 백미로 꼽히고, 강희맹으로 이어지는 관각문 인의 시초가 강회백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강회백의 시문은 연구가 할 가치 가 있다고 사료된다. 또한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자 (儒者)로 자처한 관료들의 시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보여 주는 전범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287.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倻溪 宋希奎(1494-1558)는 佔畢齋 金宗直, 寒暄堂 金宏弼, 新堂 鄭鵬, 松堂 朴英, 杏亭 都衡 등의 인물이 영향을 끼친 星州에서 태어나 고 자라서 출사하고 만년을 보냈던 인물이다. 야계와 사마시 동년이었 던 晦齋 李彦迪 및 7년 연하인 南冥 曺植과 退溪 李滉 등이, 학문적 역량을 크게 드러내었던 시대에 이들과 같이 살면서, 어떠한 삶을 살면 서 어떠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은, 성주의 학술사 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거니와, 영남의 유학사 및 나아가 우리나라 조선초기의 유학사 내지 정신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816년에 초간 목활자본이 나오고 1924년 중간 목판본이 나올 때까 지 남아 전하는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냥 묻어두기에 는 우리 유학사 내지 정신사의 한 부분을 빠뜨려 두는 일인지라, 이에 대한 연구는 꼭 이루어져야 할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논문에서의 논의를 요약하여 정리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야계의 가계는 시조로부터 9세에 이르기까지는 합천 야로 지역 에 世居하다가 야계의 6대조인 관찰사 宋構가 성주로 이거함에 따라 성주 사람이 되었다. 야계는 대대로 중앙 관직을 역임한 유력한 가문의 후예로서 어릴 적에 杏亭 都衡으로부터 학업을 익혀 20세에 진사가 되고, 2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의 청현직을 두루 거치고 지방직으 로는 상주목사, 김해부사, 대구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상주목사에 재임 때 문과 동년인 金光準이 사욕을 부리려는 일에 동조해주지 않음으로 해서 그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명종 즉위 초에 司憲府 執義로 있으면서 文定王后의 밀지에 따라 尹任·柳寬·柳仁 淑 등의 세 대신을 처형토록 하는데 합의하자는 大司憲 閔齊仁과 大司 諫 金光準의 견해에 목숨을 걸고 반대한 것으로 인해, 54세 때 대구부 사로 재직하던 중에 良才驛 壁書事件이 일어나자 乙巳名人들이 다시 대거 화를 당하였는데, 이 때 야계도 전라도 高山으로 유배되었다. 58 세 때 放還되어 高山亭을 지어두고 65세까지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둘째, 야계의 문학은 그의 삶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孝敬忠信을 체득 하여 실천하는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공자의 제 자 曾晳에게서 보이는 유유자적함과 물아일체를 만끽하는 浴沂風雩의 삶을 추구하였음도 확인하였다. 이 두 가지 면모는 조선 초기 유자로서 의 전형적인 삶의 양식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요컨대 야계는 관직 생활에서 사림으로서의 확고한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함으로써 이른바 을사명인으로서 후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퇴처한 뒤 향리의 생활에서는 효제충신과 욕기풍우의 자세를 지니고 유유자적함으로써, 15세기 전반기 사림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할 만하다.
        288.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전지전능한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T. S. 엘리엇의 인생을 통하 여 드러나는 것이다. 악의 존재와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함에 대하여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던 엘리엇은 자신이 유니테리언 교리가 상징하 는, 진보의 이상에 바탕을 둔 낙관주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낙관 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엘리엇은 종교와 문학을 통합시킬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였다. 문학에서 종교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종교와 문학」이라는 에세이의 서두에서 잘 드러난 다. 엘리엇은 이 에세이에서 문학 비평은 윤리적, 종교적 관점을 통해 보완되어야 하며, 윤리적인 관점과 종교적인 관점이 조화를 이룰수록 문학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엘리엇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있 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가 문학에 대한 도덕적 또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289.
        2014.10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다문화교실에서 다문화교육을 하는 데에 문학 작품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작품 선정의 기준을 탐색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다문화교육의 목표인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능, 태도의 교육을 위해서는 문학 작품을 활용한 교육이 필요하다. 문학 작품을 활용한 다문화교육은 학생이 쉽고 재미있게 다문화 사회의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학생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한다. 또한 다른 문화적 배경의 인물에게 공감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태도 교육이 가능하다. 그리고 교사가 다문화교실에서 다문화교육 내용을 직접 전달할 때 느끼는 부담감을 덜어준다. 문학 작품을 활용한 다문화교육의 원리로는 다문화 사회의 현실 인식 및 다른 문화 이해의 원리, 다른 문화권의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의 원리, 다문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체성 형성의 원리를 들었다. 교육 원리에 따라 다섯 가지 작품 선정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다섯 가지 기준은 다문화 사회의 현실을 핍진하게 보여주는 작품, 문화적으로 공정한 시선에서 서술한 작품, 다문화로 인한 갈등 외에 다양한 갈등이 함께 드러나는 작품, 문화 간 유사성이 드러나는 작품, 독자의 수준을 고려하여 다문화 사회를 반영한 작품이다.
        290.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청옹 이명기는 17세기 후반 숙종조 조선왕조의 사대부들 사이의 당쟁이 격화되고 있었던 시기에, 중앙정부의 정치권력에서 점차 더욱 멀리 소외되고 있었던 밀양 사림을 대표하였던 인물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임진란 전후로 밀양의 내진리에 정착한 벽진이씨의 후예로서, 한강 정구 및 여헌 장현광의 학문 연원에 접속하였던 부형들이 전수한 家學을 토대로 학문을 성취하고, 부형들로부터 이어진 世交를 이어받아, 과거를 통하여 중앙정부의 관직에 진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가 되었는데, 집안의 喪故와 경신환국과 임술고변,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 더욱 격화되어가는 당쟁의 와중에 到記科에서 直赴會試의 은전을 받았지만 실현되지 못하였고, 예순이 넘은 만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지만 그 또한 관직에 임용되지 못한 채로 별세하였다. 나는 이 글에서 청옹의 생애 전 과정이 숙종조의 당쟁이 격화된 시점과 맞물려 있음을 주목하고, 그 생애 이력의 파란이 당쟁과 관련이 있음을 방증하는 한편, 당쟁의 시대에 지방 학교의 건설과 교육에 종사하였던 지방 사림의 역할과 그 시문의 문학적 성취와 특징적 면모를 드러내려고 하였다. 이를 위하여 ��청옹문집��에 실린 시문을 개관하는 한편,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문 십여 건을 찾아내어 그 내용을 소개하였고, 또한 청옹의 시문은 시어가 平順하고 義理가 雅正하다는 기왕의 논평을 기반으로, 이와 관련됨직한 몇몇 시문을 예로 들어 그 의미와 의의를 유추하여 논증하고, 산문으로 「紅紙說」 한 편을 분석하여 당대의 인재등용에 대한 풍자의 의의와 小品文으로서의 의의와 특징을 논하였다.
        291.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남회당 이이두는 퇴계 사후 寒岡 鄭逑 계열의 학통을 계승하여 퇴계의 학통이 밀양사림들에게 주류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퇴계 학통의 또 다른 한 맥인 학봉 계열을 계승한 갈암 이현일과는 교우관계로 아들을 갈암에게 배우도록 인도하기도 하였다.남회당 이이두의 생애는 ‘孝友’로 대표할 수 있는 생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학��을 통해 법도를 익히고 조금의 어김도 없이 몸소 실천하였다. 부모님이 살아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봉양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팔십이 다된 노구로도 조상을 섬기는 예를 어김없이 실천하여 지역의 유림들에게 존숭의 대상이 되었다. 남회당은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한 우의 또한 깊어 만년에 친가의 작은 터에 오두막을 짓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그리워하여 ‘覽懷堂’이라는 호를 얻게 되었다.남회당은 시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며, 특히 그가 지은 賦 5편은 다른 작가들의 문학작품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문학성과 작품성이 있었다. 그의 시에는 부모와 형제에 대한 정과 자연속에서의 은일과 자적, 학문에 대한 열정 등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의 부 5편은 그의 문학적 지취와 학문적 역량이 집약된 작품으로 조선중기 이 지역 한문학의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292.
        2013.08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paper intends to suggest some issues in relation to Korean literature education plan for Chinese students. It is very regrettable that Korean literature education has been little educated in the Korean education field for Chinese students. Even though many people think that education of Korean literature in educating Korean is unnecessary or unuseful. The main problem of literature education is the lack of useful textbooks. Therefore development of teaching materials meeting Chinese students' level is essential to improve the level of educating Korean for Chinese students. This paper hopes to contribute professors, teachers educating Korean for Chinese students to develop their teaching skill.
        293.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조선 중기에 살다간 藍溪 表沿沫(1449, 세종31-1498, 연산군4)의 작품에 나타난 그의 학문자세와 사상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藍溪는 일찍 부모를 여의어 유년기의 그의 삶은 그다지 호화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스승과 좋은 벗들을 만났다. 특히 그가 태어나 24살 2월까지 살았던 咸陽은 그의 꿈과 희망이 깃든 곳이었다. 남계는 우리나라에서 한창 성리학이 성장할 때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스승은 점필재였고, 서거정은 그의 座主였다.그가 깊이 사귄 친구들은 대부분 점필재의 제자이면서 그와는 동문관계인 사람들이었다. 그 외 그가 관직 생활을 하면서 사귄 친구들도 있다 寒暄堂과 一蠹가 도학면에만 뛰어났다면, 藍溪는 道學과 文章 두 가지에서 뛰어났다. 그의 「謹次朱子感興」시 20수는 그가 주자학을 구체적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을 입증한다. 藍溪는 道學과 文章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남계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中庸』에 나오는 ‘尊德性 道問學’이라는 말을 하나의 문젯거리로 다루었다. 그는 고려 말부터 서서히 싹이 트기 시작한 新儒學, 즉 性理學을 보다 깊이 체득하였고, 작품을 통하여 이론화 한 先驅者였다. 實踐 倫理面에서 보면, 藍溪는 春秋史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그의 의식 속에는 正名思想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의 心性修養, 즉 存心養性을 통하여 도학을 실천하였다. 그는 明道學, 闢異端의 이론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려 하였다. 그는 현실에 대해 憂患意識이 있었다. 그는 고고한 선비로서 王道政治 통한 道德的 理想主義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뒤의 靜菴 趙光祖의 이상과도 통한다. 그의 삶과 정신이 繼往聖 開來學이라는 말을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그 意義를 지닌다.
        294.
        2012.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 20주년을 기념하여 남명문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과제를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남명문학 연구가 시작된 1980년대 이후의 연구 성과를 장르별로 분류하고, 『남명집』에 수록된 문체 유형에 따라 운문과 산문 분야, 총체적 분야, 비교문학적 분야 등 4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남명문학 연구는 현재까지 100여 편의 성과가 산출되었다. 남명의 창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수치이다. 이의 검토를 통해 몇 가지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예컨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남명 삶의 특징적 국면을 강조하는 연구가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또 이를 대변할 만한 소수의 작품만이 지속적으로 재인용되었다는 점, 특정 분야의 연구는 초창기 이후 장기간 정지되어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연구가 지속되어 성과가 증가했음에도 이러한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남명문학 연구가 직면한 총체적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명문학 연구의 절대적 분량을 차지하는 한시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남명집』의 한시와 남명의 일대기를 대조하는 작업이다. 『남명집』의 수록 체계가 시대 순이 아니고 作詩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지만, 부분적으로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남명의 삶은 크게 네 번의 전환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뚜렷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왔다. 적어도 이러한 4 시기로의 분류만이라도 가능하다면, 현재 소강상태에 있는 남명문학의 연구는 한층 발전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95.
        2011.09 KCI 등재후보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최근 한국어교육은 언어 사용 능력 향상과 함께 문화능력 향상도 중시하고 있는 추세이다. 문화능력이란 폭넓은 영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적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문화 영역 중에서 문학 영역, 그리고 그 안에서 고전문학을 교수학습하고자 한다. 학습 대상은 부산외국어대학교 학부생으로 학부 전공필수 과목인 <한국 전통문화의 이해> 수업에서 한국 고전문학을 한 부분으로 설정하여 내용을 선정하고 그 실제를 진행해 보았다. 본 수업을 통해 들은 한국 고전문학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활동을 통하여 문화능력의 향상과 더불어 언어능력의 향상도 이룰 수 있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한국 고전문학의 교수학습을 위하여 유에게 교수학습 가능한 수업 내용이 제시되고, 이를 통한 그들의 문화능력과 언어능력이 함께 신장되기를 기대한다.
        296.
        201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Eliot has been known as a poet and critic for being so serious and moralistic that he might teach his readers. Yet, he published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 in 1939 for children, especially for his friends. In this sense, this poetry is aimedat amusing children with an allegory of a variety of cats. Usually, the style that children like lies in amusement in form and satirical language in use. Eliot knew it; so it is an interesting task to examine the significance of the old possum, his nickname, from the poetry for children, and the poet hidden behind the nickname. The Old Possum poetry appears to take into account what children like: a poetry collection of amusement and seriousness put together for children using lively rhythms and regular rhymes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of practical cats. The poetry shows a variety of each cat’s characters and habits, which, the poet believes, practically reflect various forms of human life. Above all, Eliot tried to associate practical cats in profound meditation with himself as a thoughtful, yet invisible poet and critic just like the wild, yet shy animal: a metaphor of the old possum in poetry.
        297.
        2010.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the case of T. S. Eliot, the difference between the use value of literature and its exchange value stems from the philosophical difference between the inner value of literature and its outer value. In the view of literature from an economic value, its exchange for money means the exchange of cultural and literary capital. Yet, it is not easy to ignore Marx’s concern the about the disturbing author’s consciousness of social criticism and his/her communication with reader’s when a literary work exceeds its worth by a critic in terms of commodity fetishism. But, if insight about human beings and society turns out to be a property of capital as a productive added-value, its literary worth is so satisfying that the fetishism of the reader as a consumer for the book cannot be an irrational action towards the market. From such a view, the study of economics of literature in the case of Eliot, gives us an instance in which we can find the use value of humanities in literature and its exchange value in terms of economics. As a poet, critic, and publisher, Eliot can be a most valuable person in literary history necessary for the study of literature in the light of economics. This paper examines Eliot through the effect of unity between literature and economics on the study of economics of literature and its positive elements in market, such as literary production, publica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298.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南冥 曺植(1501-1572)의 「神明舍圖銘」은 한 인물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수양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다룬 것 으로, 그의 엄격한 수양론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고에서는 남명의 「신명 사도명」을 계승한 남명학파 학자들의 문학 작품 5편을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 써, 지리산권 가운데 하나인 진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남명학파의 마음 공 부를 이해하는 일단의 실마리로 삼았다. 대상으로는 삼은 작품은 龜巖 李楨의 「神明舍賦」, 東岡 金宇顒의 「天君傳」, 寒沙 姜大遂의 「神明舍記」, 台溪 河溍의 「神明舍記」, 俛宇 郭鍾錫의 「神明舍賦」 등이다. 이 5편의 문학 작품이 가지는 재해석의 면모와 시대적 의미를 고찰해 볼 때, 크게 두 가지 정도로 그 결론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남명의 「신명도사명」을 각기 계승하되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와 중 요성을 저마다의 입지와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5편의 작품 들은 자신의 관점과 시대적 필요에 의거해 「신명사도명」의 핵심을 파악하는 해 석의 각도가 차이를 빚게 되었다. 따라서 부각시키려 한 중심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 남명학파의 계보상에서 저자들을 구분해 볼 때, 그들의 작품이 가지는 의의를 남명학파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시켜 가늠해 보게 된다. 구암과 동강의 작품은 ‘남명학의 계승과 전파’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한사와 태계의 작품은 인조 반정 직후 남명학파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봉착하여 ‘학 맥의 수호’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면우의 작품은 외세의 침략과 국 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시기에 유학적 마음 수양의 指南으로서 ‘남명의 심학을 천양’한 것이라고 규정해 볼 수 있다.
        299.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면우 곽종석의 문학사상을 고찰한 것이다. 문학 그 자체에 대한 기본 적인 사고들을 문학사상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내용별로 본질론·창작론·비평론 으로 분류하여 검토하였다. 본질론에서 면우는 도덕을 갖춘 吉人이나 君子의 문장을 진정한 문학이라 보 았다. 이때 도덕이란 일종의 작가의 내면세계인데, 그것은 전통적 문예이론에 서 말하는 작가의 내면에 축적된 志趣·個性·才能·品格의 文氣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면우는 문학의 본질에서 문학작품이 단순히 한 작가의 내면세계를 알 게 해 줄뿐 아니라 그 시대 정치의 治亂得失과 사회의 문화나 분위기를 알게 해 주는 治世의 자료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즉 知人論世와 移風易俗의 기 능을 담당할 수 있어야 진정한 문학이라고 본 것이다. 또 문학에서 추구해야 할 본질은 文藝性을 고도로 높이는 것이나 명망을 추구함에 있지 않고, 오직 자신 의 인생에서 實質을 추구하여 실천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면우는 文의 實이라 하였다. 문학의 본질로서의 實이란 存心과 立誠의 학문을 통하여 도덕 을 내면에 확충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부득이하여 유출된 말이 글로써 형상화 된 것이었다. 그것을 면우가 인용한 말로 표현한다면 작가의 층위에서는 修辭 立誠이고, 사회적·문화적 층위에서는 經天緯地의 文이다. 창작론에서 면우는 存養省察과 學問講究와 常行以謹과 凡事以理가 축적되어 부득이하여 말에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읊조리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는 창작의 과정이 求道의 과정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求道의 과정과도 같은 創作의 과정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에 대해서 문으로 표현하려는 대상에 대한 깊은 理解와 識見의 올바름과 實踐의 專一함을 들었다. 또 면우는 곧바로 率性의 학문을 닦아 나아가다보면 文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成文章의 경지 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작의 과정에서도 결국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내면의 도덕을 확충하는 存心의 공부이지 文辭의 枝葉을 좇는 공부가 아 니라는 것이다. 즉 求道의 과정으로 표현한 창작의 과정에서 存心의 공부는 그 핵심을 이루는 방법론으로 제시된다. 비평론에서 면우는 이반룡·왕세정이 작품의 실제에 보인 擬古的 실천이 부정 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아울러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문장을 전범으로 삼는 것 에 반대하였다. 典範을 상정함에 비판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道에 얼마나 羽 翼이 되는가에 기준을 두어 玉石을 가려서 취해야 함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左 傳󰡕과󰡔國語󰡕와 같은 先秦兩漢의 규범적 텍스트조차도 취사선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文을 비평하는 기준으로 작가의 내면에 축적된 學問과 節槪에 두었 다. 한편 면우는 공령문의 폐해가 심지어 道를 밝히는 말이나 학식이 높은 자의 詩나 聲律에 맞지도 않는 글을 막론하여 퍼지고 있음을 개탄하였다. 衰世의 文 章에 亡兆가 든 단서를 功令文에서 찾은 것이다. 면우는 文明의 한 기축을 담당 하는 문학이 허물어져간다고 인식하고, 그것을 文明守護의 차원에서 扶持하려 고 노력하였다.
        300.
        2009.06 KCI 등재후보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한국어 교재에 나타난 문학 텍스트와 문학 텍스트의 학습 활동을 분석하여 한국어 교육에 나타난 문학 교수-학습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제안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교재분석 결과 한국어 교재에 수록된 텍스트 중 문학 텍스트는 극히 일부이며, 장르가 다양하지 않고, 대부분 중급과 고급에 치우쳐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교재에 제시되어 있는 학습 활동의 유형에 주로 어휘 학습과 읽기, 말하기에 한정되어 있다. 한국어 교육에서 문학 텍스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인의 정서과 주제의식, 문화적 요소는 물론 언어적·기능적 사용 맥락을 보여줄 수 있는 텍스트를 선정해서, 수업의 목표와 학습자 유형, 과제 활용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학습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