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항공서비스 전공 대학생의 외모관리행동이 자아존중 감과 취업불안을 매개로 진로준비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 보는데 있다. 이를 위해 충청 및 경기도 소재 항공서비스 관련 학과 대 학생 4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본 연구의 결과를 요 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외모관리행동은 자아존중감에 정(+)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외모관리행동과 자아존중감은 취업불안에 부(-)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외모관리행동과 자아존중 감은 진로준비행동에 정(+)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취업불 안은 진로준비행동에 부(-)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자 아존중감과 취업불안은 외모관리행동과 진로준비행동 간에 매개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항공서비스 전공 대학생의 취업불안을 낮 추고 진로준비행동 강화를 위해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진 로준비 과정에서 직업에 적합한 이미지를 찾고 이에 대한 외모관리행동 을 한다면 취업역량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 논문은 존 밀링턴 싱(John Millington Synge)의 『서쪽 나라의 멋쟁이』를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비평적 개념을 통해 읽어보려는 시도다. 논문은 싱의 작품 전반에서 극단적 형태의 패러디 활용, 유머와 웃음에 대한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흐친의 표현을 활용하여 그를 ‘라블레주의’(Rablaisian) 작가로 볼 수 있음을 제안한다. 논문은 싱의 극과 바흐친의 대화주의(dialogoism)와 카니발레스크에 관한 이론 사이에 연결고리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싱의 작품에서 작용하는 사회적, 언어적 역학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작품 속 웃음이 갖는 전복적 성격, 그리고 크리스티의 지위 변경 등이 서로 다른 세계들의 갈등과 대립을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통합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음을 주장한다.
본 논문은 존 던과 조지 허버트의 시에 드러난 죽음관을 비교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은 17세기 초 잉글랜드의 성직자이자 형이상학파 시인으로, 서로 교류하며 종교시를 남겼으나, 그들 시의 갈래와 성격은 다르다. 이를 알기 위해 그들의 종교관을 파악하여 시를 분석하였다. 결과적으로 던은 아르미니우스의 사상과 가톨릭의 종교관을 가졌던 반면, 허버트는 칼뱅의 사상과 개신교의 종교관을 가졌다. 그래서 던은 시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의 행위구원론과 같이 회개라는 인간의 노력을 끊임없이 촉구한다. 또한 가톨릭의 교리와 같이 사후에 연옥과 같은 중도 상태를 드러내며,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다. 반면 허버트는 시에서 칼뱅주의의 사상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확신한다. 또한 개신교의 교리와 같이 사후에 영혼과 육체가 즉시 분리될 것을 언급하며, 천국에 대한 소망을 드러낸다. 특히 그는 몸의 부활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시에 드러난 죽음관은 그들의 종교관과 관련한다.
비극적인 세대의 섹션 5에 있는 베일의 떨림(1922)의 제4권은 시인 클럽과 아일랜드 문학 협회에 대한 명상으로 시작된다. 이 두 조직 간의 연관성은 아마도 시인 클럽에서 활동하는 회원들 가운데 일부는 아일랜드인 또는 켈트인을 동조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1843년 3월에 존 켈스 잉그램(1823-1907년)가 쓴 「죽은 자들의 기억」은 분명 <젊은 아일랜드 시기>의 가장 위대한 발라드이다. 예이츠가 잉그램의 발라드에 권위를 부여했을 때, 이 발라드는 이미 “19세기 동안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애국가”로서 기능했다. 한편 예이츠는 외교관인 다니엘 크릴리(1857-1923)가 1888년 발라드 「바이바이의 남자들」을 낭송한 것을 떠올리면서 1916년 부활절봉기 이후에도 데이비스의 바람과는 달리 아일랜드가 하나가 되었는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한다. 그는 「1916년 부활절」에서 신성한 이름들을 중얼거릴 뿐, 추모 의식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선구적 사상가로 불리는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 의 종속 현상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보 았다. 여성과 남성은 자라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에도 차이가 나타나므로 여성에게도 많은 선택의 자유와 남성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 진다면 여성도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밀은 말과 행동 사이에 아무런 갈등을 보이지 않는 사상가로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을 자신의 저서와 실제 정치를 통해서 전개 시켜 나간 최초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밀의 주장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 니라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밀의 주장은 선택된 소수의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주고 소수의 여성들에 대한 교육의 확대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중산층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주의라 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19세기 서구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밀의 주장은 매우 혁신적인 주장이었고 여성문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양성평등 실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본고는 오랫동안 비평적 무관심을 받아 온 존 밀턴의 가장 초기 시들, 즉 시편 114편과 136편의 운문 번역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이 운문 번역 시편들은 밀턴이 15세에 쓴 것으로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작품들을 밀턴의 습작(習作)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운문 번역이 쓰여진 1620년 초기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밀턴의 시편 114편과 136편 번역은 지금까지보다 섬세한 독해를 요구한다. 본고는 밀턴의 초기 시편 번역이 단순한 습작이 아니라 모국어 운문 시편 번역 전통 안에서 밀턴 특유의 시적 자유와 시편의 전례(典禮) 전통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시도라고 주장한다.
장애인 캐릭터가 그들의 작품에 묘사될 때, 그 모습은 또한 재현 프로 토콜의 정체성을 촉진시킨다. 싱의 성자의 샘(The Well of the Saints)에서 메리와 마틴 그리고 오케이시의 주노와 공작(Juno and the Paycock)의 조니 보일과 같은 캐릭터들은 신체적인 장애를 통해 장애 캐릭터를 식별해 내는 아일랜드의 극적인 전 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도덕적 결함으로서 장애와 타자성과의 접점으로서의 장 애의 관점에서 두 작품 속의 장애 재현을 이야기하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주관 적인 인식과 정체성의 형태가 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장애인들 이 혼란스러운 식민지 시대의 객관적인 상관관계일 뿐 아니라 작가의 창조적 기질의 기표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몰개성은 경험의 진실을 가져오기 위해 예술가의 입장에서 행하는 실천 이다. 그러한 진실한 경험은 현실과 아름다움을 모두 포함한다. ‘실재적’인 능력 안에 서 우리는 몰개성의 경험이 충만함과 전체성을 가져온다면 몰개성의 미적 상태가 더 큰 이해를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 S. 엘리엇, W. B. 예이츠와 존 키츠는 인 간 삶의 모든 의미를 ‘결집’하여 예술로 만듦으로써 ‘감수성의 메커니즘’을 고안하여 예술을 창조했다. 이 위대한 시인들에게 몰개성화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현상과 현실이 구별되는 방식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엘리엇은 일상의 경험을 단편, 무정부 상태 및 불규칙성과 동일시하지만 예이츠는 일상의 수준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경험을 대립적 으로 본다. 한편 키츠는 탐닉이 최대 상태의 일상의 사건들과 상황들로 일상을 위치시 킨다. 전체성의 출현이 연기되는 분명한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엘리엇, 예이츠, 키츠 는 경험의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확실한 조치인 ‘몰개성,’ ‘존재의 통일,’ ‘부정적 능 력’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안원(顔元)의 『사존편(四存編)』을 통해 그 교육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여기서 사존(四存)이란 존성(存性), 존학(存學), 존치(存治), 존인 (存人)을 말한다. 존성은 인성을, 존학은 치학을, 존치는 정치를, 존인은 종교 등에 관한 것으로 안원은 「존성편(存性篇)」, 「존학편(存學篇)」, 「존치편(存治篇)」, 「존인편(存人篇)」을 각각 써서 자신의 학설을 수립했다. 그는 『사존편』을 통해 역학치지(力學致知), 습사견리(習事見理)를 강조하고, 정주리학(程朱理 學)을 비판하며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을 주장하였다. 안원은 이중「존학편」을 통해 배움에 있어 습행(習行)을 강조하고 실천의 중요성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존성편」을 통해 인간 본래의 선성(善性)을 확보하고, 이러한 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후천적으로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본 연구는 안원의 사존 중「존학편」, 「존성편」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교육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본 연구는 존 던의 사랑시를 통해 큐피디타스와 카리타스 사이의 전통적인 이원론이 재고되는 방식을 고찰한다. 던의 시가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랑을 다루는 두 가지 범주로 대별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속적 사랑과 종교적 사랑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서로 중첩되는 경향을 보인다. 던이 인생 경로에서의 변화 과정이나 회개 등의 개인사적 경험과 관련하여 성 어거스틴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던의 초기/세속적 시와 후기/종교적 시 사이의 대조는 상대적이며 문제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 던의 시에 나타난 이런 경향은 이질적인 생각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결합시키고 통합하는 그의 형이상학적 상상력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본 연구는 던의 사랑시를 변증법적 논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하면서, 신체와 영혼 사이의 분리를 전제하는 어거스틴 의 ‘부정의 신학’과 던의 형이상학적 시학이 빚는 차이에 대해 논의한다. 던의 변증법적인 사랑의 철학은 큐피디타스와 카리타스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경험을 통해 영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논리를 궁극적으로 전달해 준다.
이 논문의 목적은 존 웨슬리의 영원한 시간과 현재적 구원과 열린 구원을 탐구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영원을 과거의 영원과 장래의 영원으로 분류한 후, 더 나아가 장래의 영원을 행복한 영원과 불행한 영원으로 구분한다. 웨슬리는 현생의 목적이 단지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현생에서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행위이다. 웨슬리는 구원은 우리 자신의 선한 행위의 보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구원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주장한다. 웨슬리 신학에서 큰 구원과 열린 구원 은 동의어다. II 장에서 웨슬리의 영원한 시간을 과거의 영원과 장래의 영원, 행복한 영원과 불행한 영원으로 구분해 다룬다. III 장에서 웨슬리 의 현재적 구원을 죄로부터의 해방, 은총의 수단과 마술적 태도, 참된 종교인 내적 종교로 나눠 다룬다. IV 장에서 웨슬리의 열린 구원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V 장에서 이 논문의 결론을 맺는다.
본 논문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영국 예술가인 존 아콤프라의 흑인 영화 작업에 관한 것으로 그의 작품에 표상된 인종주의와 정체성의 문제, 이주와 전치, 차별과 소외 현상을 후기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세부적으로 연구한다. 또한, 마가렛 대처 수상의 재임 시기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사회문제를 통해 흑인 영화가 영국에서 어떻게 출현했고, 흑인 영화 공동체가 어떻게 작품을 제작하고 발전시켰는지를 살펴본다. 본 논문에서는 아콤프라가 감독한 두 편의 영화인 <핸즈워스 의 노래>(1986)와 <스튜어트 홀 프로젝트>(2013)를 살펴보는데, <핸즈워스의 노래>는 흑인영 화공동체인 블랙 오디오 필름 콜렉티브(Black Audio Film Collective, BAFC)와 협업으로 제작한 것이고, <스튜어트 홀 프로젝트>는 그룹 해체 이후 제작한 작업이다. 두 영화는 주류 미디어에서 어떻게 흑인을 재현하는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복하고 새로운 흑인 주체를 표상하고자 한다. 아콤프라가 제작한 작업에는 영국 사회에서 벌어진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폭동, 공권력의 남용과 같이 다소 어두운 사회의 이면이 등장하지만, 이를 하나의 방식과 사건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아콤프라는 아카이브와 텍스트, 사진, 음악 등을 다양하게 편집하여 사유의 다채로운 층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식에는 작가의 주관적인 표현방식과 해설, 논평이 개입되지만, 관람객이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존 아콤프라의 논쟁적인 작품을 통해 흑인 영화가 문화적 산물로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인종주의와 정체성의 정치학의 문제와 함께 논해 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성찬을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 본디 의미를 고찰하고, 목회 현장에 적용할만한 ‘선교적 성찬’(Missional Eucharist)을 예시하여 교회의 선교적 동력으로 삼으려는데 있다. 이 시도의 신학적 근거는 첫째, 존 웨슬리의 성찬신학에서 살펴볼 수 있다. 웨슬리는 복음 설교자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국국교회의 사제로서 고교회(High Church) 전통의 성례주의자였다. 그가 성찬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거룩한 은총에 의한 회심의 변화가 여기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음적 성화의 사건으로 선교적 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 성찬 그 자체가 이미 선교적일 뿐 아니라 흥미롭게도 그 의미에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신학적 관점들이 농후하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찬은 은총에 의한 회심 체험 이나 변화의 부재로 ‘명목상의 성찬’(Nominal Eucharist)이 된지 오래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의 내적 동력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추구하는 성찬이 되려면, 감성과 이성, 전통과 신학 그리고 통전성과의 조화로운 결합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본고는 ‘선교적 성찬’을 통해 선교적 성화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접근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존 웨슬리의 일차자료, 특히 그의 설교를 중심으로 그의 낙원과 음부라는 중간 상태와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이해를 밝히는 것이다. 웨슬리는 죽으면 곧장 천국으로 간다는 통속적인 천국 이해가 비성경적이라며 이의 수용을 거부한다. II장에서는 웨슬리의 중간 상태를 다룬다. 웨슬리에 의하면, 음부와 지옥은 전혀 다른 영역이 고 낙원과 천국도 전혀 다른 영역이다. III장에서는 웨슬리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다룬다. 웨슬리에게 천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은 동의어다. IV장에서는 우리의 목표는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최종적인 새 창조 안에서 하나님과 서로 간 완전한 사귐을 갖는 것이라는 하워드 A. 스나이더의 유명한 문장을 소개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본 논문은 사전트가 제작한 남성 초상화를 생물학적 남성의 지위나 가치보다 남성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남성성의 가치를 살핀 연구이다. 사전트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영국, 미국의 저명한 귀족, 학자, 정치인 등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이들의 초상을 제작함으로써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의 남성성을 확립했다. 사전트의 남성 초상화는 일견 계급과 젠더라는 측면에서 우월한 귀족 계급의 남성 위치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듯 보이나, 사실은 귀족 계급이 붕괴되기 전으로 회귀하려는 노스탤 지어적 성격을 띤다. 그는 급격히 성장한 부르주아지 계층들이 구 귀족 세대를 따라하려는 욕구를 초상화에 반영했다. 사전트는 당시의 댄디라는 개념을 적용해 초상화를 제작했으며, 이는 부르주아지 뿐 아니라 상류사회의 기호에도 맞는 방식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 문맥에서 댄디란 신체의 외모, 세련된 언어 구사, 여유로운 여가 등에 특별히 의의를 부여하는 사람을 이른다. 사전트는 19세기 말 벌어진 커다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변화를 목격했다. 동시대 남성들에게 산업화에서 제국주의에 이르는 커다란 변화는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으며,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곧 새로운 남성상을 요구하게 되었다. 19세기말 ‘남성성(Maleness, Masculinity, Manliness)’이란 용어는 특별한 함의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Manliness’는 용감하거나 강하다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특질을 말한 다. 반면에 ‘Masculinity’와 ‘Manliness’는 사회적으로 구축된 남성상의 형식을 지시하는 표현이다. 이 두 개념은 특별히 19세기말의 남성 연구와 관련 있으며, 사회적으로 요구 되는 남성상의 개념이다. 이러한 남성상의 패러다임에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은 젠틀맨, 댄디, 비지니스맨과 같은 사회적 남성상의 개념이다. 따라서 사전트의 초기 남성 초상화의 남성성의 개념은 생물학적 개념보다는 사회적 개념인 남성상의 개념과 관련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도 사전트의 남성 초상화의 남성성의 개념을 생물학적인 층위에서 보다는 남성상이라는 사회적 측면에서 고찰했다. 그 결과 사전트는 시터와 화가와의 전통적 관계에서 교감하거나 소통 혹은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관찰하며 시대적 변화를 담아내는 사회적 초상을 제시했다.
본 논문은 존 던의 작품 『제레미의 비탄』에 나타난 인간의 죄, 고난, 그리고 이에서 벗어나고자 하여 비롯된 절대자에 대한 간청이 어떻게 형상화 되고 있는가를 다룬다. 작가는 당대의 런던시에 창궐했던 역병의 위력에 영향을 받아 작품 속에서 영적인 병, 즉 신에 대해 저지른 이스라엘인들의 내적인 죄를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1610년대의 작품들은 주로 외적인 병폐를 다루었다면 본 작품은 인간의 내적인 부패상을 종교적인 시각에서 그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예언자 자신의 죄의 고백과 참회, 그리고 신에게의 간절한 애원도 그려줌으로써 인간의 죄를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역에까지도 깊이 있게 접근하여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를 연구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안점이다.
PURPOSES : This study aims to propose widths of pedestrian zones considering the characteristics of sidewalk areas, pedestrian volumes, and pedestrian density.
METHODS : We derived a pedestrian zone formula considering the maximum pedestrian volumes, mean intervals between pedestrians (pedestrian density), occupancy widths of pedestrians, and average speed of pedestrians. We compare the widths obtained using the formula with the existing Korean standards.
RESULTS: Considering the pedestrian volumes and density, the pedestrian zone widths of neighborhood main sidewalk areas are determined to be 1.4~4.5 m, whereas those of commercial sidewalk areas are determined to be 1.4~2.9 m.
CONCLUSIONS: Existing Korean regulations and guidelines provide a uniform standard sidewalk width. However, this study proposed a formula for determining pedestrian zone widths considering pedestrian volumes, characteristics of the sidewalk area, and pedestrian density.
이 논문의 목적은 존 웨슬리의 일차자료, 특히 그의 설교를 중심으로 그의 교회 이해를 밝히는 것이다. 웨슬리는 그의 신학적 관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대부분의 설교를 출판했다. 웨슬리가 그의 사역 초기부터 교회의 본질과 형태와 기능이라는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숙고했다는 하워드 스나이더의 분석을 기반으로 본문을 구성하고 교회의 역사에 관한 웨슬리의 견해를 더한다. 2장에서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웨슬리의 견해를 다룬다. 3장에서는 교회의 형태에 관한 웨슬리의 견해를 다룬다. 4장에서는 교회의 기능에 관한 웨슬리의 견해를 다룬다, 5장에서는 교회의 역사에 관한 웨슬리의 견해를 다룬다. 6장에서는 각 사람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자신들의 구원을 달성하기 위하여 서로 돕는 일과,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일이 교회의 목적이라는 웨슬리의 소견을 소개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악의 문제는 선하고 전능한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난해한 주제가 되어 왔는데, 이는 둘의 공존이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악을 죄의 결과로 보는 전통적 견해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상처를 입힌다. 화이트헤드와 힉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옹호하면서, 전능성을 희생하는 또 다른 신정론을 제시한다. 화이트헤드는 악을 우주의 창조성의 원천이자 통제 불능의 능력으로 봄으로써, 하나님조차 그 악과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분으로 인식한다. 힉은 악을 하나님의 창조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한 인간의 성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 저자들은 악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실제적인 해결책보다는 악의 문제에 대한 재해석을 제공하는데 그쳤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이에 본 연구자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욥의 고난을 통해 현상 이면의 영적 및 종말적 관점의 이해를 추구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