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에드문트 후설의 내적시간 의식을 중심으로 ‘현상 학’을 이론적 프레임워크를 삼아 종합회화를 창작할 때 어떻게 멀티미디어와 다차원적인 형태로 추상적인 철학적 시간 개념을 구체적인 시각적 경험으로 전환하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에드문 트 후설은 시간은 단순한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라 ‘인상 (Impression)’, ‘파지(Retention)’, ‘예지(Protention)’로 구성된 내 적시간 구조라고 언급하였다. 본 연구는 내적시간 의식 이론을 활용해 종합회화가 어떻게 매체의 중첩, 탈구축, 재구성을 통해 시간의 다차원성을 보여주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창작이 이루어 지는 매 순간은 ‘현재성’을 외재화한 것이면서도 과거 기억에 대 한 지속과 미래에 대한 열린 기대를 담고 있다. 논문은 종합 회화의 창작 과정과 최종 형태가 내적 시간 의식 의 복잡한 교직(交織)을 구현함을 깊이 있게 설명한다. 즉, 모든 창작 행위는 '근원 인상(primal impression)'의 현재적 드러남인 동시에, 과거의 층위와 흔적에 대한 '파지(retention)'를 필연적 으로 내포하며, 나아가 미래의 화면 형태와 의미를 향한 '예지 (protention)'를 잉태하고 지향한다. 이 과정에서 매체는 단순히 물질적 지지체를 넘어 시간의 '물질적 증거'가 되며, 그 물리적 특성과 조합 방식은 시간의 층위성, 연속성 및 잠재적 변화를 담 지하고 드러낸다. 작품 형식의 개방성과 미완결성은 관객이 자신 의 내적 시간 의식으로 해석에 참여하여 유동적인 의미를 함께 구축하도록 이끄는데, 이는 '예지'의 미래 지향성과 호응한다. 본 문은 리히터, 폴록, 켄트리지, 블라지 등 예술가들의 작품 사례 분석을 통해, 종합 회화가 어떻게 '근원 인상'의 즉각성, '파지' 의 회고성, 그리고 '예지'의 예기성을 단순한 선형적 중첩이 아닌, 다차원적 예술 시공간 속에서 함께 얽혀 공존하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종합 회화가 그 독특한 예술 실천을 통 해 단순히 회화의 표현 경계를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중 요하게는 내적 시간 의식이라는 추상적 철학 사변을 감각적으로 인지 가능하며 시간의 깊이를 함축한 실존적 체험으로 전환시킨 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예술, 시간, 그리고 주체 의식의 관계 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현상학의 구체적 예증과 깊은 통찰을 제공 한다.
본 논문은 한국화의 채색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한 천경 자 화풍의 시기별 변모 과정을 분석하고 작품에 나타난 독창적 인 색채미를 연구하였다. 천경자의 작품활동은 1941년에 시작한 일본 유학 시절, 귀국 후 1945년부터 시작된 국내 활동, 1970년대 해외 스케치 여행 을 통한 작품 제작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일본 유학 시절 습득 한 일본 화풍과 귀국 후 일본 화풍을 극복하고 한국 전통 색채 미를 변용해 제작한 작품 제작, 1970년대 이후 해외에서의 경 험을 통해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색채미로 제작된 작품을 시기 별로 나누어 조망하였다. 천경자의 색채 정서는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여성미이다. 귀 국 후 전통 조각 보자기나 옷감의 색채를 도입한 작품에는 한 국의 색 감정이 배어 있다. 물론, 해외여행 이후 작품에 나타난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색채미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녀의 정체 성을 기반으로 탄생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해외여행 이후의 색채는 주체적인 작가의식의 색 감정 표현으로 그동안 한국화 에서 볼 수 없었던 지극히 자율적인 색 해석이 담겨있다. 1980년대 이전 한국 채색화는 일제강점기 때 유입된 일본 화 풍의 영향으로 왜색화풍이라는 오명 속에 경시되었다. 천경자 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전통 색채미와 기법을 복원하고 이후 오롯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성과 색채미를 발현하였 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화의 현대화 과정에서 이전에 볼 수 없 었던 천경자만의 회화 양식으로 나타났다. 천경자의 예술세계 는 개인의 성과를 넘어 한국 채색화의 세계화에 새로운 이정표 를 제시한 회화사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본 논문은 1960-1970년대 동양화단에서 추상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를 거쳐 동양화로 선회한 박래현(朴崍賢, 1920-1976)을 분석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 동양화단이 주체성과 시대성이라는 대립 양상을 보이며 현대화를 전개했던 주요 흐름을 먼저 살펴본 다. 그리고 박래현이 남긴 다수의 기고문에 나타난 미술 양식과 재료, 태도 등을 통해 현대화에 대한 예술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 는지 고찰한다. 이러한 작업은 그동안 반추상 또는 추상 시기 작품을 통해 동양화를 현대화, 즉 서구화한 사례로 조명하거나, 미국 유학 시기의 태피스트리와 판화만을 조명함으로써 동양화단을 떠나 새로운 장르를 모색한 작가로 여겨졌던 박래현을 재고하려는 시도이다. 본 연구는 박래현의 현대화 방식이 기존에 주로 알려진 동양화단의 이원적 대립 노선 외에 보다 다양한 국면을 형성했 으며, 과거에 대한 반성적 계시와 함께 미래지향적인 자세와 확장된 지평을 제시해 준 것임을 밝힌다.
본 연구는 국내산 목재의 효율적인 이용과 이용확대를 목표로, 낙엽송, 소나무 그리고 백합나무의 도장처리에 따른 흡수성과 방사방향 및 접선방향 의 고습환경하의 팽윤율을 조사하였다. 도장처리재는 미처리재에 비해 3수종 모두 고습환경에 노출 된 후 150시간 이후의 흡수율은 작게 나타났고, 도장처리재의 흡수율은 백합나무(2.2%) > 소나무(2.1%) > 낙엽송(1.9%)의 순이었다. 고습환경에 노출된 후 150시간 이후의 함수율은 흡습량에 비례하여 증가하였고, 그 크기는 백합나무 > 낙엽송 > 소나무의 순이었으나, 소나무의 경우 양자의 차이가 적은 것이 확인되었다. 도장처리재의 방사방향 팽윤율은 2.18% - 3.44%의 범위였고, 그 크기는 낙엽송이 백합나무나 소나무에 비해 현저히 적은 값을 나타내었다. 또한, 도장처리재의 접선방향 팽윤율은 4.17% - 6.36%의 범위에 있었고, 이 값은 방사방향과 같이 낙엽송이 가장 적었고, 소나무, 백합나무의 순이었다. 이 값은 미처리재에 비하여 0.85 – 0.96배의 적은 값을 나타내었고, 방사방향의 약 1.9배 높은 값을 나타내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청 황제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1796)가 발문한 사 슴뿔 그림인 <녹각도(鹿角圖)>가 소장되어 있다. 기존 연구에서 이 그림은 건륭제가 서양의 회화 주제인 사슴뿔을 서양 화법을 적용하여 그림으로써 서양풍을 모방하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전용하고자 한 시도로 이해되었다. 본고는 관점을 달리하여 <녹각도>의 상서적(祥瑞 的) 요소를 발견하고 청 황제들의 대표적인 사냥감이었던 사슴의 뿔이 사냥 전리품에서 산령 (山靈)이 보낸 상서로운 징표, 즉 부서(符瑞)로 변모한 과정을 고찰한다. 이를 위해 우선 북 경ㆍ심양고궁박물원에 소장된 홍타이지, 강희제, 건륭제가 제작한 녹각의(鹿角椅)를 통해 청 황제들에게 있어 사슴뿔이 만주족의 전통과 용맹함을 보여주는 사냥 전리품이었음을 확인 한다. 또한 <녹각도>에 실린 건륭제의 발문인 ‘녹각기(鹿角記)’를 분석하여 이 사슴뿔이 어떻게 부서가 되었는지 밝힌다. <녹각도>에서 건륭제는 사냥감보다 서수(瑞獸)로서의 사슴 을 강조함으로써 청 황실의 사냥 의식이 중시한 만주적 무용(武勇) 위에 한족의 전통 사상인 천인감응설(天人感應設)에 의거한 부명(符命)의 가치를 덧입혔다. 이처럼 <녹각도>에서는 사냥을 자연의 정복이 아닌 자연과의 교감으로 해석하여 만주 황권을 성군의 경지로 끌어올 리고자 한 건륭제의 의도가 읽힌다.
본 연구는 중국 수채화 전공 대학생의 정서불안감과 학업성취도 간의 관계에서 학습동기와 학습몰입의 매개효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 해 중국 후베이성, 산동성, 헤이룽장성에 소재한 수채화 전공 대학생 574명을 통해 설문지를 수집하였다. 수집된 설문지는 SPSS WIN 22.0 프로그램과 AMOS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대학생 들의 정서불안감을 야기시킬 수 있는 환경들을 제한하고 학업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정책과 적절한 지원책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기초정 보를 제공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본 논문은 ‘민간회화로서 무화(巫畵)의 예술적 기치-이미지의 미적특질을 중심으로’를 회화사적 입장에서 실증자료를 토대로 성찰하고자 한다. 그 동안 무화에 관한 도상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민속학적 관점에서 문화사적 의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다수를 이루었다. 신의 형상을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기에 불화와 마찬가지로 우리 회화사에 서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져야 되는 측면에 있으나, 무(巫)에 대한 부정적 시선 과 특정한 사조 또는 대표적인 작가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는 미술사에서 적극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장르이다. 무명(無名)의 작가에 의 해 그려졌으며 무당이 죽음이 다가오면 자신이 봉안하던 무화를 땅에 묻거나 불태워서 정리하는 관습 때문에 100년 이상 된 무신도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에 관한 연구를 꺼린다면 한국 인의 고유한 신에 대한 관념과 미적인 사유체계에 관한 이해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라 판단한다. 이러한 연유로 본 논문에서는 무화만이 지닌 미 적 특수성을 찾고자 하며, 이는 기층의 미감을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것 이라 본다. 본인은 무화의 예술적 가치를 미적인 측면에서 논하기 위해서는 방향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속학자인 김태곤은 무화는 민간신앙 속에서 전 승된 일종의 원시회화이므로 민화적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하며, 무화를 전형 적인 순수한 민화이고 말하고 있다. 민(民)에 의해 소통된 민간회화라는 점이 민화의 핵심이라면, 무화(巫畵)는 무당의 집인 신당에서 사용되었지만, 그 당 시 대중들의 욕구에 의해 제작되고 소통되어진 측면이 크기에 민화의 하나로 분류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본 논문에서는 무화의 예술적 가치를 민간의 회화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하며 통시적 입장에서 사료의 분석과 실제 남아있는 무화의 실견을 통한 검토를 통해 무화라는 이미지가 지닌 본질을 파악하고 그간의 논의를 확장시키고자 한다.
에어브러시는 실용적이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므로 산업 각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바디페인팅 아티스트에게도 필수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에어브러시는 정교한 색상, 형태, 그라데이션 표현이 가능하며, 작업 시간이 단축되는 장점이 있어 바디페인팅 분야에서도 그 활용 영역이 점차 확대되 고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월드 바디페인팅 페스티벌의 에어브러시 전용 카테고리 수상 작 품을 중심으로 디자인 구도, 색채 기획 및 배색과 표현기법을 분석하여 에어브러시 바디페인팅 작품의 최 신 디자인 경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디자인 구도에 있어서 주로 강조 (emphasis)와 균형(balance)의 원리를 사용하여 상반신의 정중앙에서 메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하반신에서 는 좌, 우 대칭으로 균형이 잡힌 구도가 주요한 디자인으로 분석되었다. 둘째, 색채 기획 및 배색으로는 주 목성을 높일 수 있는 대비 배색의 활용이 주요하게 활용되었으며 셋째, 주요 수상 작품 모두 스텐실과 그라 데이션 기법을 활용하여 형태의 정확성과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이상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바디페인팅 디 자인을 기획하고 에어브러시를 활용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작품 제작을 통해 에어브러시 바디페 인팅의 예술적 활용을 대중화하고 국내 에어브러시 바디페인팅 작품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사대부가 창작의 주체인 문인화는 필묵을 숭상하며 채색이 맑고 담백하다. 민화나 궁정 회화에 비해 정신적 의미의 표현 과 화면의 상징적 의미를 더욱 중요시하고 문인의 사고방식으 로 물상을 정신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화가 개인의 정서와 관념 을 투영한다. 이로써 작품은 정신세계의 물질화 형식으로 존재 한다. 그리하여 문인화는 ‘자기 위안’과 ‘유사성을 추구하지 않 고 운율 생성을 추구하는’ 회화 이념을 형성하였다. 문인화는 어떤 기법의 대명사가 아니라 일종의 관념이자 의 식이다. 필묵과 색채의 계승 면에서 채색-흑백-간결한 필묵-필 묵+색채의 발전과정을 거쳤다. 이는 오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당(唐)대에 기원하여 송대에 발전하였다. 당시 궁정 회화가 주 류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문인화가는 자신만의 회화의 길을 묵묵히 고수하며 탐색하였다. 북송부터 오대 시기까지 색 채를 벗겨냄으로써 차별화된 흑백산수화가 형성되었다. 원대에 는 복잡한 필치의 준찰(皴擦)을 버리고 깨끗하고 간결하게 화 면을 구성하였다. 대부분 수묵 위주이지만 화가는 ‘묵분오색’, ‘여백’ 등의 형식을 통해 문인화의 독특한 필묵의 언어 및 색채 관계를 형성하였다. 명·청시대에는 고대의 기법을 바탕으로 필 (筆)을 뼈대로, 묵(墨)은 살로 삼고 색으로 정신(神)을 입힘으로 써 필묵과 색채가 서로 돋보이도록 하였다. 본고는 회화 주체의 역할 변화 및 시대적 배경의 관점에서 문인화의 ‘기승전결’을 탐구하고, 문인의 내면 정신과 사고방식 을 결합하여 필묵과 색채 표현 간의 부침을 분석한다. 필묵과 채색으로 화면의 색채를 운용하는 관계에서 출발하여 문인화의 비판적인 색채 계승 및 재창조를 해석하고 문인화의 필묵과 색 채 간 긴밀한 연관성을 정리한다. 그러면 문인화를 더 잘 이해 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림을 소재로 한 기존의 시와 달리 린다 패스턴의 시는 자신이 의도한 메시지를 부각하기 위해 회화 작품을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데, 「윤리학」은 여기서 더 나아가 ‘렘브란트’라는 이름 말고는 그림의 정체 파악에 필요한 정보를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시인의 인생관과 예술관을 집약하는 시의 결론을 난해하게 만든다. 본 연구는 시인 패스턴과 화가 렘브란트와 철학자 아리스리토텔레스의 상호관계성을 논의의 중심축으로 삼아 「윤리학」에 언급된 첫 번째 그림은 렘브란트가 그린 일련의 자화상을 깊게 의식한 것이며, 두 번째 그림의 정체는 종교적 성격을 강하게 띤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이라고 주장한다. 그림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독자적 해석을 병행하면서도 막상 그림의 정체는 모호하게 제시한 패스턴의 독특한 시적 전략은 에크프라시스적인 시에 대한 정치(精緻)한 강독과 비평이 해당 그림에 대한 충실한 음미와 해당 화가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수반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 논문은 이종구의 1980년대 농촌 회화에 나타난 리얼리즘에 대한 연구이다. 이종구는 처음부터 서사와 메시지를 내포한 리얼리즘 작품을 하고자 했다. 단순한 서 술이 아닌 작가 고유의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극사실 기법으로 초 현실주의적인 작품으로 화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그의 관심은 경제발전으로 호황인 도시의 그늘 속에 가려진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후 고향에서 가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자각했고,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 고 있었던 이문구의 농촌소설에서 농촌 표현의 영감을 받았다. 1984년부터 고향 서 산시 오지리를 주제로 농촌사회의 암울함을 회화로 계속해서 표현했다. 1984년 <연 혁-아버지>를 시작으로 농촌회화에 적극적으로 매진했다. 작품에 표현한 아버지의 생애는 개인의 서사를 넘어 보편적인 농민의 일생이다. 이종구의 농민 초상화는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농민들의 애환을 보여주고 소를 의인화하여 농민의 삶과 감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오지리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 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으나 농촌의 실상은 점차 황폐해져갔다. 이것은 오지리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농촌의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이종구는 생명을 길러내던 땅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농촌 상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농촌을 지키는 농민을 민족의 주체로 규정했다.
Painting pretreatment is an important task in determining the life of painting as it removes rust or foreign substances from the painting surface and gives adhesion between the painting surface and the painting surface. Since painting pretreatment is an important task, IMO strictly requires that the painting pretreatment surface be maintained at a Sa 2.5 grade and the surface roughness is 30μm~75μm. Painting pre-processing is an important task that determines the lifespan of a painting, but it is done through visual inspection by the inspector, and the quality varies depending on the inspector. In this study, in order to develop a quality measurement system for the painting pretreatment surface, Matlab2023b was used to determine the range of appropriate quality brightness by comparing the brightness of the painting pretreatment surface and surface roughness.
본 논문은 김환기 현대문인화의 ‘소박미’를 고찰한 것이다. 요 즘처럼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소박’이라는 주제는 왠지 사회적 요 구와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물질문명에 취해 정신없이 달려온 인간 문명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처럼 오늘날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오늘날 미학으로서의 ‘소박’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이자 본 논문의 목적이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소박하다’라는 말은 사치스럽거나 과하 지 않고 ‘검소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미학적으로 ‘소박’의 의 미는 그보다 훨씬 심오한 자연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이러 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의 결정적 과 오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이를 어떻게 보완하고 극복해야 할지 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소박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 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문인화에 나타난 소박미에 대하여 논술하였다. 문인화는 작가가 마음을 비우고 자연과 물아교융 하는 순간적인 기의 흐름을 통하여 자연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소박미를 대표하는 장르로 볼 수 있다. 이에 한국의 소박미가 한국 현대문인화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 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김환기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특유의 소박미가 현대 미술에서도 여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중국 사찰 채화의 시대별 전개 양상, 독자성과 보편성 등을 파악 하며 한국과 중국의 단청과 채화를 비교・분석한 것이다. 중국 채화는 송대에 편찬된 『영조법식(營造法式)』에 의해 정형화되었고, 명・청대는 채화의 전성기 를 이루었다. 고려시대 단청은 중국과 차별화된 이른바 한국적인 특색을 나타 내었고, 조선시대에는 명・청과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으로 교류하면서 사찰 단청의 형식과 문양 등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띠게 되었다. 명・청 사찰 채화와 조선시대 사찰 단청의 머리초[조두], 금문(錦紋), 별지화[잡화], 단독문 등을 통해 공통점과 독자적인 특징을 살펴보았다. 머리초・금문・단독문은 한 부재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도안화된 장식문이고, 별지화는 부재별로 다양한 도상이 사용된 회화적 장식화이다. 한국 단청과 중국 채화의 유사한 문양 가운 데 네 종류를 선별해 조선시대 단청과 명・청대 채화를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양국 단청[채화]의 차이점과 공통점 그리고 국가별 독자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수묵화’가 아시아의 역사적 정체성을 띠고 서구에 대항하는 수단이 되면서 미술시장에 서 변화를 만들고 있다면, 그 차별화된 미술시장에서 새로운 변화는 무엇일까? 본 연구는 중 국의 개혁・개방 이후로 경제 발전기인 1990년대부터 ‘당대 미술(컨템포러리 아트)’로서 ‘수 묵화’를 중심으로 그 의미와 한계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미술품 경매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2010년대에 이르면 아트페어와 같은 시장이 현지화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사회주의 중국에서 반(反)전통과 반(反)서구적 방법으로 모색했던 ‘신수묵’의 범주에 속한 ‘실험수묵’이 어떤 당대적 의미를 담거나 포기하고 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고전기 아테네 도기에 대한 미술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의 관점과 접근 방법이 ‘도기화’의 조형 양식과 주제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장 가치와 사회적 기능에 대한 문 화적 맥락 탐구로 전환되어 온 양상을 고찰한다. 20세기 초 존 D. 비즐리와 에드몬드 포티 에가 시작한 자료 집체 작업으로부터 고전기 그리스 세계에서 아테네산 적회식 도기의 시장 가격, 유통과 소비 양상, 도공과 도기화가의 제조 공방의 운영 양상 등에 대한 동시대 쟁점 들은 고대 그리스 회화 장식도기 연구에서 미술사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리고 사회적 맥락에 대한 기초 자료의 필요성이 어떻게 증대되었는지 보여준다.
『개자원화전』은 일반 독자층을 대상으로 미술서적으로 중 국고대 화가와 화공(畫工)의 화법(畫法), 화론(畫論), 도보(圖譜) 를 편집하고 있다. 역대 화가들의 진문적인 내용을 비전공인(非 傳功人)이나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교 양 도서의 하나이다. 이는 전통 중국 그림의 언어 부호의 탄생과 성숙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회화의 발전 과정으로 광범위한 확산을 가져왔 다. 또한 전통화화의 부호 시스템의 발전을 촉진하였고, 아울러 문학과 미학의 범주에서 포괄적인 구현이었다. 본 연구는 『개자원화전·매보』에서 출발하여 화법과 부호학 의 측면에서 그들의 부호 표현을 분석하였다. 또한 그 배후의 예술적 특징을 함축하여 서술하였으며 현대의 전통 회하 창작 과 전통 문화 정신에 대해 기술하였다.
본고에서는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저명한 화가로, 고숙화 파(姑孰畵派)의 창시자인 소운종(蕭雲從: 1596-1673)의 산수화 도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소운종 산수화의 도식 특징 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산수화 도식의 형성배경과 변화양상 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심도있게 논의했다. 이를 통해 소운종 이 산수화 도식에 끼친 영향과 그 시사점을 새롭게 밝혀냈다. 청(淸)나라가 명(明)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한 환경 속에서 사회정세는 매우 혼란했지만 당시 화단(畫壇)은 도리어 더욱 활발해 수준 높은 작품들이 대거 나왔다. 고숙화파의 창시자인 소운종은 당시 산수화 도식의 새로운 풍조를 선도한 화가이다. “경쾌함을 기뻐할 수 있다.(輕快可喜)” 라는 화풍과 독특한 산수화 기하도식 언어는 중국 산수회화사 (山水繪畫史)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소 운종 산수화 도식은 주변 국가에 전파되어 남종문인화(南宗文 人畫)의 교류 전파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로 인해 소운종의 산수화 도식에 대한 연구는 학술적 의의 가 크다고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how late Joseon art scene interpreted and reflected the concept of “The four masters of Yuan dynasty (元四大家, from this out I’ll mark it as a Yuan-sadaega)” into landscape paintings during the late 18th to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This study employs a comparative approach, analyzing paintings created during this period in Korea and China, particularly those featuring Yuan-sadaega, while also investigating written records. The understanding of the Yuan-sadaega and their paintings began through the early 17th century Gosi's painting manuals(顧氏畵譜). Through Heo Guseo (許九敍)'s works and literary records, It can be observed that the perception of Yuan sadaega's artworks and artistic aspects during at least the late 18th century was established within the art community. Notably, a distinct shift in the understanding of painters and the composition of Yuan-sadaega is observed in the trends of the late 18th and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In the late 18th century, the use of dwelling in the mountain(山居) image into landscapes in Yuan-sadaega compositions is evident, particularly in works by artists like Won Myeong-ung(元命雄) and Jeong Su-yeong(鄭遂榮). This trend is rooted in the contemporaneous significance of the art scene that produced a variety of paintings with the theme of ‘benevolence and daily life and in the shared understanding of the Yuan-sadaega as recluse(隱士) within the artistic community. This collective perception of the Yuan-sadaega seems to have been influenced by the influx of theories and writings on painting by Dong qi chang(董其昌) and by the circulation of painting manuals. The early 19th century, a new a new type of painting emerged alongside Bangjak(倣作, paintings of creative imitation) about the Yuan-sadaega, known as ‘Bangjak about Yuan dynasty painters(倣元人山水圖). Through the works of Kim Jeong-hee(金正喜) and Heo Ryeon(許鍊), it is noteworthy that various scenes are depicted under the same theme. This reflects the establishment of universal values and standards for literary painting within the art community. This process led to the term ‘Ni-hwang(倪黃, abbreviation of Ni zan and Hwang gong wang)’ emerging and the concept expanding under the term ‘Yuan-in’ (元人, the symbol of Yuan art scean). As a result, the desired artistic style pursued by the contemporary artistic community was encompassed under the universal concept of ‘Yuan-in,’ and ‘Bangjak about Yuan dynasty painters’ came to embody this comprehensive th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