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불교문예연구 KCI 등재 Studies on Buddhist art and culture

권호리스트/논문검색
이 간행물 논문 검색

권호

창간호 (2013년 8월) 11

1.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모순을 안고 출발하는 글이다. 언어를 부정하는 선의 세 계와 언어가 기본 자료인 시가 서로 동질성을 갖는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을 전제로 이 글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자 자신이 선시라는 용어의 사용에 항시 주저스러움을 금하지 못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첫 이유가 선은 언어를 부정하려 하여 말을 떠나고 생각을 끊으라[離言絶慮]라 하는데 언어가 제1차적 도구인 시 와 선이 하나가 되는 선시라는 용어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소박 한 회의에서이다. 그래서 여기서 선과 시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고민 끝에 상징성(象 徵性)이라는 답을 얻게 되었다. 시는 시인의 상상에 의하여 지극히 상징화된 언어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자이다. 독자는 이 상징된 언어 를 다시 상상을 통하여 그 표현된 원형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사(禪師)들이 진여의 실상을 고도의 상징으로 포장하여 대중의 교 화 수단으로 삼는 점과 동일하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석가여래(釋迦如來)와 마하가섭(摩訶迦葉)은 뛰어난 상징적 예술가요 지혜로운 상상적 청중인 셈이다. 석가여래가 영산 에서 치켜든 꽃 한 송이의 상징을 정확하게 상상한 가섭의 미소는 영 산의 무대공연에서 극도의 환희적 연출이었던 것이다. 의사소통이라 는 인간의 정신적 교감이 있어온 이래 이 염화(拈華)의 꽃 한 송이와 미소의 대답보다 더 분명하고 정확한 전달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 한 적이 없다. 이러한 염회미소(拈花微笑)적 언어가 바로 선시의 출 발인 셈이다. 이렇듯 선과 시의 만남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송대 (宋代) 엄우(嚴羽, 1185~1235)의『滄浪詩話』이었으니, 시도(詩道)나 선도(禪道)가 다같이 묘오(妙悟)에서 출발한다 하였다. 이어 17세기 명대(明代)의 왕사정(王士禎,1634~1711)이 명확한 정론을 내렸으니, “사다리를 버리고 언덕에 오르는 것을 선가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라 이르고, 시인에게는 조화의 경지라 하니 시와 선이 하나로 되는 것이 똑같아 차별이 없다.[捨筏登岸禪家以爲悟境詩家以爲化境詩禪一致 等無差別]”(香祖筆記)라 하여 선에서 깨달음의 경지라 하는 것을 시 인은 조화의 경지라 하여 차별이 없다 하였다.
6,700원
2.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의 목적은 초의선사(1786-1866)의 우리 차의 우수함과 이 로운 점을 찬탄하는『동다송』을 중심으로 선다시와 마음치유 관계성 의 시학을 살펴보는데 있다. 시와 글씨 그림과 차에 뛰어나 4절이라 불리는 초의선사는 전남 무안출생으로, 속성은 장씨이고 법명은 의 순(意恂), 초의는 법호, 중부(中孚)는 이름이다. 24세 때,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해거도인 홍현주, 자하 신위 등 거유들과의 만남은 초의의 생애에 전환점이 되었다. 그들과의 교 유는 초의의 일생동안 유지되었으며, 초의의 독특한 차 정신을 발전 시키는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 그의 정신토대를 확립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초의에게 선과 차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다시 말해, '다선일미'였 던 것이다. 여기에는 마음을 수양과 찻자리 사이에는 어떠한 다름이 없다는 것이 함축되어 있다. 차와 선을 할 때에는 마음의 고요와 집 중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다선삼매’의 상태에서는 얻음과 상실, 사 랑과 미움, 너와 나 등 이항 대립이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초의는 한 잔의 차에 법희선열이 녹아있다고 생각하고 다선삼매에서 법희선열 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타인들과 차를 즐겨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교 유를 했다. 따라서 정성을 다해 차를 만들고 마심으로써 집중과 통찰을 높이고 마음을 맑히며 깨달음에 이르렀던 선사들의 선다시를 읽고 감상하는 것은 오감의 정화는 물론 베품과‘내려놓기’,‘ 비움’을 통해 불안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9,600원
3.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백용성의 선시 연구이다. 전집과 자료를 살펴보면 용성은 선시를 많이 남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수행초기에 선을 하였지만 선시에 관심이 적었던 것은‘불립문자’라는 전통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 달리 많은 불교경전과《선문염송》에 조예가 깊었고, 대중포교 를 위해‘역경삼장’을 조직하여 한문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 을 전개하였다. 선수행과 역경포교는 그야말로‘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대승불 교의 대의를 실천하는 보살행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깨달음 을 노래하는 시 즉, 오도송을 3차에 걸쳐 남겼다. 본 연구에서는 용성의 전집이나 단행본에 나타난 오도송을 중심으 로 그의 선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7,800원
4.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이‘금사자(황금으로 만 든 사자)’를 비유로 삼아 연기사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설명 했다. 설명하는 방법은『화엄금사자장』을 번역하고 소개함과 동시에 화엄에서 바라보는‘법계연기사상’에 대하여 해설했다. 이 과정에서 『화엄법계관문』의 관계를 설명하며‘사사무애법계관’을 인용하여 연 기사상에 대한 설명을 부연하였다. 더불어 필자는 여러 저술 속에서 바탕으로 한‘법성철학’이라는 신(新)개념을 주장, 논증했다. ‘법성철학’의 신(新)개념체계는『대승기신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승기신론』일심(一心)의 본질, 그중 진여적(眞如的) 속성은‘묘유 (妙有)’하고 진공(眞空)하다. 법성은‘진공이면서도 묘한 방식으로 존 재하는 것’이다. 『화엄금사자장』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0장들은 서로 병렬관계를 가진다. 금의 바탕을 변하지 않는‘진여(참 마음)’라고 보 고, 사자의 형상을‘인’과‘연’이 만나 생기고 사라지는‘생멸’의 상 태로 본다. 이런 수많은‘연’들은 쉼 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연기로 영원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공’을 알아야 하 고, ‘색’을 떠나‘공’이 별도로 실재한다 생각해서도 안 된다. 또한 금사자는 황금만을 노리는 도둑에게는 (사자의 형상은 없이)오로지 금으로만 보이고, 조각가 등 예술가에게는 (순금이 없이)오로지 사자 의 형상에만 쏠린다. 어디에 눈을 파는가에 따라‘드러나고’,‘ 숨고’ 를 하며 중중 무진으로 연기한다. ‘숨고’‘드러나는’본질적구조로인해서,‘ 진여’가움직이면, 그에 수반하여‘무명’도 따라서 움직인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마음의 작 용’속에는‘진(眞)’과‘망(妄)’이 혼융되어 있다. 결국은‘무명’쉬어 야하는데,‘ 무명’쉬게하려는것도역시‘마음의작용’이다. 결국은 ‘무념(無念)’해야 한다는 것이다.
7,000원
5.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불교의 조직적 특성이 무엇일까? 한국불교는 장구한 역사만큼 다양한 요소와 시대성이 반영되어 있다. 식민지시대의 일본불교영 향, 문화공동체로서의 중국불교영향, 근대의회민주정치제도의 영향 등 다양한 요소가 현대 한국불교의 조직 구성에 반영되어 있다. 현재 의 조직체계를 중심으로 고찰한다면 한국불교는 두 가지 과제를 여 전히 전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첫째는 현대사회의 조직적 특성, 특히 민주주의 제도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때로 실험 적인 움직임으로 그치기도 하지만 불교계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작용을 하기도 한다고 본다. 특히 의회민주주의제도를 수용한 종회 (종의회) 제도는 불교라는 종교의 정체성과 부합하는가 아닌가의 논 란을 넘어 불교가 지니고 있는 수구적이면서도 퇴행적 이미지를 탈 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本末寺제도는 중국의 오랜 정 치제도인 종법제도의 유습이기도 하지만 교구본사가 지역의 거대 거 점사찰이며, 지역의 불교문화를 주도하는 중심지라는 점에서 순기능 으로 작용할 여지도 충분하다. 특히 지방자체제도의 정착화는 본말 사제도의 변화에 새로운 전기가 되리라 전망한다. 둘째는 불교의 종교적 정체성을 여하히 지키며 발전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시대조류 에 편승하면서도 종교적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발전시킬 수는 없 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농본사회를 배경으로 발전해 온 불교가 도시 산업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현대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문제는 수많은 토론의 과정이 있었다. 적응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아직도 전 통과 적응의 완전한 조합은 미완성의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불교의 조직적 특성이 무엇일까? 현대적인 교육제도 속에서 성장한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불교는 여전히 역동성을 제공할 수 있 는 종교문화로 남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노 력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역시 조직의 문제라고 본 다. 교육과 사회제도, 대중의 의식에 대한 변화는 불교조직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하며, 그런 점은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지 않을 수 없다. 이미 90% 이상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 보지만 신도의 관리나 융합, 도제의 양성과 관리, 신도단체들의 통합 등 다양한 문제점은 아직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고 보며, 그러한 점은 지속적으로 변화의 요구 앞에 노출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8,600원
6.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일본의 한국 지배 기간(1910~1945) 동안 한국과 일본의 불교인들 사이에 이루어졌던 한국의 독신 및 대처(帶妻)수도생활과 관련된 정통 수행에 대해 정의하려는 고투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선학원의 창립과 한국불교 전통에 부과된 일본불교 관례에 대해 대 응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 규정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이 문호를 개방한 이래 한국불교도들은 대처수도생활이라는 일본 전통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조도신슈(淨土眞宗)의 개조인 일본 승려 신란(親鸞, 1173-1263)은 1210년에 한 비구니와 결혼하였고, 이후 일본불교에서는 하나의 관례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1907년부 터 매일신보에는 대처수도생활을 허용할 것인지에 관해 논의하는 글 들이 등장한다. 1910년 8월 28일 일본은 한국을 공식적으로 합병하였으며, 10월 1 일에는 조선총독부를 설립하여 한국을 통치하였다. 1911년 6월3일에 는 사찰령(寺刹令)이, 7월8일에는 사찰령시행규칙이 반포되어, 9월 1 일부터 시행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그 법령으로 30개 본사와 해당 말 사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본산제도를 확립함으로써 한국불교에 대한 실질적인 식민지화를 이루었다. 1912년 5월, 처음30명의 본사 주지들이 만났을 때만 해도 대처수 도생활과 육식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1919년의 3··1운동 이후 한국 사찰들은 수많은 승려들을 불교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보낸다. 이중 많은 수가 기혼으로 혹은 일본불교 영향을 받아 귀국하여 원래 의 사찰로 임명되는데, 이들은 원로승려들이 반대한 대처수도생활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1925년에 이르면 대처수도생활이 한국에서도 만연하게 된다. 1925년 10월, 본사연합의 몇몇 주지들이 대처승려가 주지가 될 수 있 도록 법규의 수정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원로 독신승려들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가, 1926년 11월 총독부의 압력하에 10 개 이 상의 본사들이 그들 법규에 대한 개정을 제안, 결국 승인되었다. 대처수도생활은 한국불교를 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게 해주었고, 한국불교의 독립에 손상을 주었으며, 또한 사찰재산의 손실로도 이 끌었다. 대처승려가 총독부에 충성하지 않으면 그의 가족이 의존하 는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이다. 대처승려들은 좋은 자리를 놓고 경쟁하 기 시작했으며, 사찰의 재산을 마치 자신들의 것처럼 사유화하기 시 작하였다.
8,100원
7.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안덕암스님(1913년 8월27일~2003년 10월29일)은 근대 고승 가운 데 한 분이다. 덕암스님은 근대 스님들 가운데 유일하게 모든 불교분 야를 섭렵하신 분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덕암스님의 어떤 사상이 시 에 투영 되어져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태고보우의 원융사 상과 신라의 원광법사가 화랑의 세속오계로 대중과 화합하며, 『華嚴 經』의 화엄사상을 융합하여 몸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신 보현 보살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安德菴스님은“포교는 불제자라면 누구라도 다해야 하고 다할 수 있는 일이다. 꼭 승상설법만이 포교가 아니고 어떠한 一言一行, 一物 一事라도 중생에게 이롭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고뇌를 除하고 위안 을 받게 하는 것이면 모두가 포교인 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 씀하셨다. 이와 같이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하시고 생활하신다. 법제자에 게 전법하신 게송을 제외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시의 세계 를 살펴본다.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지으신 시와 태고보우 스님 의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지으신 시를 위주로 살펴본다. 여기서 안덕암 스님의 사상이 바로 불이사상이 시에 그대로 녹아 있음을 알 수가 있다.
7,800원
8.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청담스님의 시문학 세계에 대한 연구논문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거목이자, 해동의 큰 별이셨던 청담스님은 1902년 경남 진 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산업대학교 재학 중 박포명 스님을 만나 불교 에 관심을 갖고, 스물다섯 살에 경남 고성 옥천사에서 박영호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박한영 선사와 만공선사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33세에 깨달음을 얻었다. 해방 이후 한국불교의 현대화 운동을 주도 하는 등 조계종의 초석을 다지는데 선구적 역할을 다 하였다. 흔히“시는 짧고 단순한 언어와 문장으로 복잡한 감성을 표현한다” 라고 말한다. 불교문학 즉 불교선시는 불교의 진리를 가장 효과적이 고 함축적인 표현법으로 드러낸 일체의 언설과 문장이라 하겠다. 그 러나 필자는 직접 스님이 발표한 시를 인용해 분석하는 방법과 더불 어 스님과 교류했던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과의 교류 속에 나타 난 문학세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보조적으로 스님 의 시를 필요한 만큼 인용해 소개했다. 불교적 세계와 사상을 시적으 로 표현한 것을 분석하는 일은 유의미한 만큼, 그동안 발표된 많은 연구 논문과 중복될 우려도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직접 저작한 시와 함께 간접적으로 교유했던 문학인들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다. 이것이 많은 연구자들과의 중복을 피할 수 있는 연구방법이자 스 님의 연구 영역을 넓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6,700원
9.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의 목적은 효봉선사(曉峰, 1888~1966)의 선시 세계를 반상 합도(反常合道)와 불반상이합도(不反常以合道)라는 관점에서 살펴보 는데 있다. 효봉선사는 한국인 최초의 판사 생활을 하였으나 독립지 사에 대한 사형 언도를 내린 후 인생에 대한 회의를 절감하고 38세의 늦은 나이로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석두(石頭)화상을 스승으로 하여 삭발 득도하였다. 장좌불와의 용맹정진으로 일관한 무서운 난 행고행의 수행으로 43세에 금강산 법기암의 토굴에서 깨달음을 얻은 선사는 1962년 75세에 통합종단으로 출발한 조계종의 초대종정으로 추대되어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승풍을 진작하고 헌신하다 가 79세에 입적하였다. 선사가 남종선의 법맥을 계승하여 평생을 무(無)자 화두를 들고 참 구했지만 또한 보조국사를 흠모하여 돈오점수설과 정혜쌍수설을 간 화선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독특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효봉선사 선 시의 특징은 일상을 벗어나되 진리에 부합됨(反常合道)과 일상을 벗 어나지 않고 진리에 부합(不反常以合道)하는 두 면모가 동시에 나타 나고 있다. 선사의 반상합도의 선시들은 오도송이나 혹은 법거량시 에 높은 선지를 드러내거나 자연물을 이용한 강렬한 모순적 대조를 보여준다. 품격 높은 선사의 선시에서는 반상합도의 경지를 나타내 는 시문보다는 일상의 평범함과 대중들에 대한 자애로움, 그리고 당 시의 어려운 불교 상황을 맞이하여 이를 타개하기 위한 의연한 결의 가 보이는 선시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선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반상이합도의 선시들은 무엇보다 불 교의 현실적 발전과 또한 수행자들의 실천수행을 독려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돈점을 가리지 않고 무애하게 선의 다양한 관점을 수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점은 결코 반상합도와 불반상이합도를 둘로 본 것이 아니라 선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일체에 분별없이 원융무애한 선지를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선 사의 선시에 나타나는 선적 경지는 돈점으로 가름할 수 있는 것이 아 니라 이미 그 양자를 초월한 분상에서 그 양자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경지에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불반상이합도의 기조를 지닌 선사의 시적 세계 를 중심으로 선자(禪者)로서의 일상생활의 평범함을 보이는 영물(詠 物)적 선시, 대중들에 대한 자비교화의 선시, 그리고 당시 불교 진흥 을 위한 실천적 선시 등으로 나누어 선사의 선사상의 특징과 수행정 진에 힘쓸 것을 강조하는 선사의 시학의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6,700원
10.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담선사의 발자취는 한국 근·현대 불교의 역사이다. 청담선사의 삶은 修行의 연속이었고, 行은 계율의 실천이었다. 願力은 한국불교 의 청정성의 회복이었으며, 가르침은‘마음’을 찾는 길을 제시하였 다. 청담선사의 행적, 업적, 영향은 다양하고 모든 분야에 걸쳐 지대 하다. 본 연구는 그중에서 청담선사의 계율관을 요약 정리하여 어떻 게 마음사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한국불교도가 이를 어 떻게 인식하고 계승하여야 하는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청담선사는 戒律이 교단의 토대이자 본질적인 요소의 핵심임을 밝 히고 있다. 또한 청정한 戒律을 바탕으로‘마음자리’찾는 修行을 하 여야 한다고 설한다. 청담선사의 戒律觀은 한국불교의 전통성을 확 립하고 불조의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음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계율관은 당시 한국불교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고 그 근저에는 철저한 수행을 통해 얻어진 청 담스님의 마음사상이 바탕하고 있다. 청담선사가 주창했던 불교정화운동은 비록 완성을 하지는 못하였 지만 한국불교의 청정성회복과 수행종단으로서의 면모, 看話禪을 중 심으로 하는 禪사상과 마음사상은 철저한 청담선사의 持戒사상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마음’은 청담선사에게 있어서 출가의 동기이자 깨침의 원천이며 교화와 자비행의 원동력이었다. 마음을 찾고 정화 하기 위해서는 持戒를 통한 參禪으로 무명을 타파하고 반야를 실현 하는 見性이 최종목표였다.
7,700원
11.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선불교는 동아시아 불교 문화권에서 창의적으로 발달시킨 불교문 화의 정수(精髓)이다. 선(禪)은 학문적 소양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 다. 선은 발달 초기부터 수행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참선 수행이란 소위 화두(話頭)라고 하는 언구를 스승으로부터 받아, 이를 마음속에 붙들고 끊임없이 의심을 하는 집중 수행이랄 수 있다. 하지만 선 수 행의 초심자들은 이런 선 수행의 모호함과 막연함으로 인해 수행 중 에 흔히 여러 유형의 정신적 갈등이 노출되곤 한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화두를 내려준 경험 있는 노련한 선사로부터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정신치료 전문가가 되기 위해 정신치 료 교과서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정신분석적 임상 경험이 풍 부한 스승의 점검을 받아야 되는 이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드물지만 경우에 따라 선 체험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 발적으로 체득되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여기서 최근에 개인적으로 체험한 공(空)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선 센터를 찾아가 몸소 관찰하고 겪은 경험도 기술하고 있다. 정신 역동에 대한 저자의 임상적 경험을 토대로, 선 수행에 따른 정신 역 동의 과정을 나름 추론하여, 임의적이나 잠정적 가설도 제시하고 있 다. 한 가지 화두를 예를 들어, 이에 대한 해석을 곁들이고 있다. 향 후 선 체험에 대해서, 정신분석학적 상상력을 활용한 이해의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6,7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