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시학과 평론은, T. S. 엘리엇의『전통과 개성』(1921년)과 해롤드 블룸의『영향의 두려움』(1973년)에서부터 지금까지, 앞의 작가의 나중의 작가에 대한 영향과 전범의 개념을 많이 다루었다. 본 논문은 예이츠를 전범으로 다루는데, 예이츠 이후의 작가로 먼저 오든을 간략하게 다루고 셰이머스 히니를 집중 고찰한다. 본 논문의 주장은, 예이츠의 영향이 통상 부정적이었다는 주장이 흔하지만, 그는 히니의 시학에 대한 생각에 지속적인 영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히니는 1978년 이 영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예이츠는 전범인가?』라는 유명한 글을 썼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영향이 사회적 정황보다는 “예술”의 문제일 때 좋은 것이라 주장한다. 즉, “모범적인 작가”라는 표현은 어려운 정치적 시대에—옳든 그르든—정치적 관심을 초월한다고 느끼는 작가들을 칭찬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들의 시대에 대해서 예이츠와 히니의 평가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본 논문은 예이츠 시 속의 모드 곤, 마키에비치 백작 같은 여성민족주의자들의 모습을 다룬다.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하기 위해 저항하는 민족주의자 모드곤은 예이츠가 사랑했고 수차 청혼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여인이다. 그녀는 예이츠의 시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본 논문은 아일랜드의 정치를 다른 시를 논한다. 또 한 명의 민족주의자 마키에비치 백작은 아일랜드 국회에 최초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고, 그녀도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예이츠는 그녀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나타나는 시를 썼다.
본 논문은 예이츠 시 “어린 학생들 속에서”에 나타난 춤과 춤추는 자의 합일성을 시인의 마음의 변화성으로 해석한다. 그 시 의식을 인지론적으로 접근하며, 그 합일성의 정도를 가능세계로 재음미해본다. 예이츠의 시심은 인지적 마음과 감성적 마음, 실행적 마음 중에서 시적 지성과 감성의 조화성만을 드러낸다.
본 논문은 W. B. 예이츠, 김소월, 그리고 김종길 등 3명의 모더니스트 시인들을 통해서 동서양이 시에서 자연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비교하고자 한다. 김소월과 김종길은 동양의 시학을 대변하고, 예이츠는 서양의 시학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는다. 그들은 각기 아일랜드와 한국의 모더니스트 시를 대변하는 시인들이다.
모더니즘의 대표적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를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읽으려는 노력은 조이스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조이스 연구에서의 탈식민주의적 전환의 이론적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검토하고, 이를 통해 조이스와 예이츠의 문학적 교차와 긴장의 결을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예이츠와 엘리엇은, 비록 동시대 작가들이지만, 다른 시인들로 간주된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적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엘리엇은 현대인과 사회를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것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많이 논의 되고 있다. 본 논문은 이점을 예이츠의 것과 비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예이츠도 어떤 면에서는 엘리엇과 비슷하게 이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인간관은 정신적 불모성, 불안, 맹목성, 공허함으로 특징지어진다.
『에머의 유일한 질투』에서 나타나는 고스트를 통해 예이츠가 만드는 분위기는 귀괴하고 섬뜩한데, 이것은 르네상스시대 때에 고스트 이야기를 하는 방법으로 획기적으로 여겨졌던 셰익스피어의『햄릿』에서와 유사하다. 이 논문은『에머의 유일한 질투』에서 예이츠의 고스트의 사용을 논하고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햄릿』의 기법과 비교하고자 한다.
W. B. 예이츠가 평생을 쏟은 비술연구는 그의 책『환상록』에서 결정체를 이룬다. 그의 문학작품의 기저를 이루는 중요한 자료가 된 이 책에서, 예이츠는 사후세계와 영혼의 영원한 환생에 대해 설명한다. 영혼의 환생사이의 기간은 6단계로 나뉘며, 두 번째 단계인 명상은 꿈으로 되돌아보기와 회기를 포함하는데, 이것은 예이츠의 작품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단계로, “양치기와 염소치기,”『연옥』,『뼈다귀들이 꾸는 꿈』등의 작품 속 영혼들이 지나간 생을 여러 번 살며 존재하는 곳이다. 또한 “마이클 로바티스의 이중비전” 에서 영혼은 축복의 단계에, 다른 영혼들은 마침내 정화와 예지의 단계에 도달하며, 환생의 영원한 순환 속으로 나아간다.
이 논문은 먼저 연금술의 과정이 의미하는 것을 살펴보고 그것의 상징적인 의미 그리고 그 과정이 예이츠가 시나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순서를 정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나를 연구한다. 연금술 과정이란 다름 아닌 납을 금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예이츠는 이 과정을 그의 시뿐만 아니라 그의 시집에도 이용하고 있다. 시와 시집 공히 알케미컬 내러티브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시와 시집이 혼돈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정제된 상태로 끝을 맺거나 아니면 최소한도 도입부에 암시된 거친 상태를 순화시킬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마치기 때문이다. 나의 논지는 납에서 금으로의 변화는 예이츠가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그의 조국이 필요로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예이츠는 플라톤의 이원론에 대해서 이중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데아의 세계를 통해서 정신과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것에는 긍정한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이 정신의 영역을 강조하고 물질적인 영역을 폄하하는 관점에 대해서 부정적 견해를 갖는다. 예이츠는 둘 다를 존중한다. 예이츠의 초기시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정신은 에로스와 유사성이 있다. 현실에 대한 결핍의 인식이 곧 창조적인 상상력을 가져오는 것과, 존재합일을 이루기 위한 투쟁과 갈등의 과정도 역시 플라톤의 에로스의 정신과 유사한 면들이다. 본 논문을 이러한 예이츠와 플라톤 에로스와의 연관성을 밝힌다.
셰이머스 히니의 다섯 번째 시집인『밭일』은 정치 및 역사, 평화로운 전원생활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지만 북 아일랜드 사태 때 죽은 자들에 대한 애가와 사랑을 주제로 삼는 일련의 글랜모어 소네트를 담고 있는 것이 전 시집과 다른 점이다. 얼스터 분규 때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시에서 전원애가라는 전통 장르까지 사용한 것은 그가 폭력사태를 비판하고 이상향으로서의 전원을 갈구했음을 증명하는 예이며 시인이 북아일랜드 사태를 피해 글랜모어에 정착해서 쓴 일련의 소네트는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 전원을 폭력의 치유책으로 제시한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밭일』에 쓰인 많은 시중에서 애가와 소네트를 주로 분석해 시인이 어떻게 북아일랜드 사태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다룬다. 이 시집의 구조 역시 폭력을 고발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강화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히니는 비록 북아일랜드 폭력에서 탈출하지만, 시에서 폭력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장르, 시의 구조 등의 형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다루면서 폭력에 저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은 은둔적 삶을 살며, 파괴적 정체성과 분열된 자아로 자신의 창조적 충동을 일기처럼 짧은 시로 담아내었던 디킨슨과, 종교, 예술, 역사 신화, 사랑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삶을 경험하며 창조적 활동을 한 예이츠를 비교한다. 이 두 시인은 뛰어난 다층적 시각을 갖고 있었으며, 광대한 상상과 창조로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고, 진부하고 통속적인 관념을 거부하였다. 또한, 삶과 죽음, 영원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의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디킨슨과 예이츠의 공통점은 고결함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빛의 고결함을 의식 속에서 잃지 않았고, 우주의 불가사의한 힘을 반추하고 상상하였으며, 그 완성은 허황되지 않은 실체였으며, 그 고결성은, 인간의 존재와 영원성의 진리를 위해 끊임없이 외로운 투쟁을 치룬 그들의 깊은 긍지에서 승화된다.
예이츠의 바보의 독특성은『환상록』에서 드러나지만, 시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예이츠의 대표작인『환상록』에서 바보는 달의 상 중 제28상에 해당하며 이는 거대한 바퀴의 순환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중요한 위치이다. 제목에 “바보”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시『바보의 노래 두 곡』과『바보의 또 다른 노래』에 대한 읽기를 통해 바보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예이츠의 바보는 목표나 규칙에 얽매이는 세속적 삶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며, 신적인 지혜를 소유한 자이다. 바보가 지닌 특징은 시에 등장하는 ‘산토끼’, ‘나비’, ‘장미’ 등의 상징들을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이는 바보의 내적 갈등이 어떻게 통합으로 이르는지를 보여준다.
시대적 억압이 주는 갈등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시인은 개인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과 더불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희망을 노래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본고에서는 한국의 신경림과 아일랜드의 예이츠에게서 영웅서사의 시적 변용으로 탈 식민지적 정체성을 회복하여 주체적 삶의 본질을 모색한 시 정신을 비교연구 하려고 한다. 신경림과 예이츠는 영웅서사를 시적으로 변용하여 개인의 고뇌와 민족의 분열과 아픔을 달래고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 이상의 사회를 추구하려했다.
이 논문은『북쪽』에 나타난 히니의 신화적 재현에 대해 비판한 비평가 들에 답하기 위하여 그의 산문과 늪지시편을 정독하여 그의 신화적 방법을 검토한다. 그는 두 공동체의 신화들을 이데올로기적 담론으로 진단하여, 신화가 허구이지만 그들 의 심리와 현실에서 실제로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분규와 대립을 더 악화시키는 원인 이라고 진단하였다. 과거의 모더니스트들이 현실을 표현할 매개로 신화를 활용했듯이 히니는『늪지사람들』의 고대 덴마크의 희생제의를 상징으로 활용해 북아일랜드의 신화로 인한 폭력과 심리적 현실을 표현하려하였다. 그의 늪지시편들은 이러한 신화로 인한 현실과 이성 간의 “힘의 장”으로서의 갈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