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was conducted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dietary total mixed ration (TMR) supplementation and dry-aging period on the physico-chemical and sensory quality of striploin (longissimus lumborum) from multiparous Hanwoo cows. The experimental cows were divided into two treatments (n=3/treatment) according to the type of feed: in one treatment (slaughter age: 87±6 months old, parity: 5±1) the cows were fed on TMR for 7 months before slaughter, while in the other treatment (slaughter age: 83±9 months old, parity: 5±2) the cows were fed on concentrate and rice straw (CRS) for the whole rearing period. After slaughtering, the striploins were dry-aged for 20 or 40 days at 2±1℃, 85% relative humidity and 2 m/sec air flow velocity and then utilized for quality measurements. The pH value, cooking loss, and hypoxanthine content were higher (p<0.05) for the striploins dry-aged for 40 days than for those dry-aged for 20 days. Notably, the inosine 5’-monophosphate content was decreased (p<0.05) by increasing the dry-aging time. With regard to microbiological quality, the striploins dry-aged for 40 days exhibited lower (p<0.05) lactic acid bacteria counts and higher (p<0.05) coliform counts than those dry-aged for 20 days. Moreover, the tenderness and overall liking scores based on sensory evaluation were higher (p<0.05) for the dry-aged striploins of the TMR treatment and those dry-aged for 40 days than for the CRS treatment and those dry-aged 20 days, respectively. These findings suggest that dietary TMR supplementation leads to an increase in the sensory preference of dry-aged striploins from multiparous Hanwoo cows, and alteration of the CRS into the TMR may improve the quality of dry-aged Hanwoo beef.
茶山 丁若鏞(1762~1836)이 살았던 19세기 초 조선후기 사회는 깊게 병들어 있었다. 이 시기에 다산은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되어 있 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살려 낼 방안을 찾기 위해 힘을 다하 였다. 특히 다산은 당시 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학문풍토와 아동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하였고, 그것을 통해 대중의 의식을 개조하고 참된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본고는 다산의 아동교육 개선에 대해 총체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먼저 다산의 아동교육 개선의 발단과 전개과정에 대해 논의한 다음, 개선의 이유 와 목표에 대해 조명하였다. 이어서 조선후기 아동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다산의 비판과 다산 아동교육방법론의 특징에 대해 논의하였다. 특히 다산 아동교육방법론의 특징에 대해서는 다산의 아동교육 관련 저술을 인 성교육․문자교육․지식확충․언어교육의 네 분야로 나누고 각 분야의 특징을 찾 아 다산의 아동교육방법론의 특징을 설명하였다. 즉 인성교육 분야에서는 ‘文心을 키워주고 慧竇를 열어주는 교육방법’을, 문자교육 분야에서는 ‘觸類旁通의 교육방 법과 字書를 통한 개별 字義 교육방법’을 지식확충 분야에서는 ‘一以貫之를 위한 一以串之식 교육방법’을, 언어교육 분야에서는 ‘改非矯俗식 교육방법’을 특징으로 잡았다. 그리고 맺음말에서는 다산의 아동교육 개선의 의의에 대해 언급하였다.
茶山의 나이 52세 때인 1813년에 완성된『論語古今注』는 실로 二千年 論語學史에 있어서 획기적인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당세와 후세에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주자의 『논어집주』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탐구의 깊이나 철저한 고증 력에 있어서는 『논어집주』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大作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 닐 것이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은 茶山 論語學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하고 가치를 밝히는데 있어 굳건한 토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본고에서는 [質疑 68]에서 [質疑76]에 대해 검토하였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질의68]은 주자의 仁在心內說을 부정한 것이다. 다산은 여러 저술에서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이고 理가 밖으로 발현되어 行事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인의예지라고 생각하였다. [질의69]는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의 ‘歸’에 대해 주자가 집주에서 “歸, 猶與也”라고 한 것에 대해 이의를 표시한 것이다. 주자에 의하면 여기서의 ‘歸’는 ‘허여하다’․‘칭찬하다’․‘칭탄하다’ 등의 의미가 된다. 다산에 의하면 ‘歸’는 ‘歸化’ 의 의미가 된다. [질의70]은 주자가 “爲之難, 言之得無訒乎?”의 句에 대한 주자의 풀이가 공자 의 원뜻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다산이 이의를 표시한 것이다. [질의71]은 “膚受之愬”에 대한 주자 注에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의 해석에 의하면 “부수지소”는 현재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앞의 “浸潤之譖”은 현 재는 그 현저한 효과가 없으나 서서히 그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침윤지참”과 “부수지소” 모두 그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으로 종국에는 엄청 난 파국을 낳는 것으로 보았다. [질의72]는 “足食, 足兵, 民信之矣.”에 대한 주자의 주에 다산이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는 足食과 足兵이 民信의 선결조건으로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이 세 가지가 각각 하나의 일로, 서로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질의73] 역시 (12-7)의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에 대한 주자의 주에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주자는 임금과 백성이 지배와 피지배라는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여 이 구절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백성과 지도자는 신뢰를 가운데 두고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존재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질의74]는 “惜乎夫子之說君子也駟不及舌”의 句에 대한 주자의 독법에 대해 다산이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에 따르면 이 구절의 표점은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이 된다. 다산은 “惜乎夫子之說君子也.”를 9자 一句로 보았 다. 다산에 따르면 표점은 “惜乎! 夫子之說君子也.”가 된다. [질의75]의 논의는 文質論의 일단이다. 경문에 따르면, 극자성은 重質輕文論者 에 속하고 자공은 文質幷重論者에 속한다. 주자는 文質을 本末 관계로 보았기 때 문에 자공의 문질론은 공자의 문질론과 어긋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자공의 뜻이야말로 공자의 문질론과 일치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질의76]은 “誠不以富, 亦祗以異.”에 관한 程子의 착간설에 이의를 표한 것이 다. 다산은 정자나 주자처럼 착간으로 보지 않고 본문 가운데서도 단장취의로서의 의미로 충분히 성립되는 것임을 증명하였다.
The aims of this study are to examine the lifetime and educational thought of Dasan Jeong Yak-Yong and to find the significance of meeting and Dasan's educational spirit. Dasan was born on June 16, 1762 and died on February 22, 1836. In general, his lifetime is divided into four periods : ①learning stage(1-28age), ②public service stage(28-39age), ③exile stage(40-57age), ④emancipation stage(57-75age). He systematized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practical science of the late Joseon Dynasty. An ideal image of a man to Dasan is a shepherd, who not only keeps his duties of magistrate but also is well qualified as a governor with learning and virtue, and as a teacher to lead people. Therefore, a shepherd is a practician having the whole personality of self-control first and then govern others. The spirit of governor based on practice of the self-control first and then govern others should not be looked down on as the old, and its spirit and lesson should not be overlooked in modern education. Dasan emphasized here and now and service to humanity. His aim was to educate a person to be a good father, mother, son, daughter, friend, and citizen. He believed that every person should strive for the continual development of self until excellence is achieved. The seven principles of teaching and learning which Dasan executed are as follows : ①step by step, ② major, ③fitting, ④practice, ⑤discussion, ⑥collaboration, and ⑦creative activity. It is sincerely hoped that this study on Dasan's Educational Thought will be contributed as a stepping stone of some help to those scholars and students who are interested in new teacher-education of the 21st century.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茶山丁若鏞(1762∼1836)은 利用厚生을 위해 외국 의 선진문화를 수용하자고 했다. 다산은 『技藝論』에서, 利用厚生을 위해 淸나라 의 百工技藝와 新式妙制, 즉 첨단 과학기술문명을 도입하자고 했다. 또한 일본의 ① 國防의 견고함, ② 우수한 造船技術, ③ 館倭의 房櫳(격자창)의 長點을 배우 자고 했다. 다산은 申維翰이, 通信使일행으로 가서 일본의 “器物의 정교함과 여 러 가지 調鍊하는 법”을 관찰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跋海槎見聞錄) 다산은 贈序에서, 使臣은 이용후생에 필요한 백공기예를 수입해오는 것이 제2의 책무라 고 했다. 다산은 ① 李基讓과 같이 剝綿攪車를 구입해와 이용후생에 기여한 사신(贈序), ➁ 申緯처럼 개인취미를 위해 怪石을 구입해오는 사신(題載石圖)으로 분류하고, 前者를 높이 평가했다. 淸나라에서 박면교거를 수입해온 李基讓의 공 로는, 목화 씨앗을 수입해와 이용후생에 크게 기여한 文益漸의 공적과 비견할 만 하다고 극찬했다. 다산의 외국 선진문화 수용론은 바로 이용후생을 위한 것으로,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Dasan (茶山) Jung, Yak-Yong (丁若鏞, 1762-1836) who compiled the Practical Thought in the latter period of Chosun dynasty had asserted the acceptance of foreign advanced culture for the people's utilization and welfare. He, in Giyeron, asserted that Chosun should introduce the hi-tech culture of Chung dynasty for people's utilization and welfare including all the technical skill and new institutional systems. And he asserted that we should learn the merits of Japan, as it were (1) the strengthening of the national defence (2) the excellent shipbuilding technology (3) the lattice window of the official residences. Dasan criticized that Shin, Yu-Han (申維翰) who had dropped in Japan as a communication man hadn't surveyed on “the elaborateness of their industry and various training exercises" in Valhaesagyunmunrok (跋海槎見聞錄). He, in prefaces for declaration, asserted that the import of diverse hi-tech industry is the second obligation of the ambassador. Dasan who had classified the ambassador into two kinds as like (1) the style of Yi, Ki-Yang (李基讓) had contributed to the people's welfare by introducing their thrashing fan machine for raw cotton <prefaces for declaration>, (2) the style of Shin, Wi (申緯) had purchased oddly shaped stones for individual taste <Jaejaesukdo (題載石圖)> judged the latter more highly. He won the highest praise on Yi, Ki-Yang that his achievement could be stood beside Moon, Yik-Jum (文益漸) who had contributed a lot to the people's welfare by importing the cottonseed first. Dasan's assertion for the acceptance of foreign advanced culture had aimed just to the people's easy utilization and welfare had been derived from his realism and practicalism.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determine physiological and mechanical factors effecting on the pregnancy rates following artificial insemination in dairy cattle. Estrus for artificial insemination of cows was checked whether the outflow of mucus from the elements was out flow or not. There were no significant difference of gestation rates with mucus release (31.76%) and without mucus release (24.03%). The pregnancy rates were 39.02% in 10~20mm of follicle size group and 27.08% (p<0.05) in 20~30mm diameter of the follicles. There were not different pregnancy rates between twice inseminated dairy cattle and more than 3 times inseminated cattle. The pregnancy rate was 28.57% under automatic milking system. In contrast, under artificial milking system pregnancy rate was 56.85%. Two systems significantly (p<0.05) were different. These results suggest that pregnancy rates were not effected by physiological system, but mechanical condition.
볏짚버섯속 유망버섯인 차신고버섯은 현재까지 1종만이 품종으로 등록되어 있는 실정으로 국내 고유품종 확보 및 버섯재배품종 다양화에 기여하고자 품종육성 연구를 수행한 결과, 차신고버섯 신품종 ‘다산’의 균사생장적온은 25~30℃이었으며 탄소원으로 glucose(maltose), 질소원으로 ammonium chloride(pepton)를 사용 시 균사생장 및 균사밀도가 우수하였고 탄소원과 질소원 무첨가 시 균사는 생장하였으나 균사의 밀도가 비교적 낮았다. 또한 버섯발생 특성은 신품종 “다산”이 초발이 소요일수, 수확 소요일수 및 수량은 각각 12~13일, 6~8일, 118.2g 으로 진향품종에 비해 다소 발이가 늦은 편이나 수량성은 양호하였다. 또한“다산”’ 품종은 갓의 색깔은 대조품종 보다 진하고 갓의 직경은 작았으며 대의 길이는 길고 갓의 직경이 작은 자실체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Rapid economic growth and social change have made us not only enjoy rich life in a material way, but also suffer severe mental anguish caused by the confusion about 'true value.' It is impossible to expect us to develop a better society without curing tha
본 연구는 다산의 목민론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자의 마음가짐과 자세, 그리고 교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목민의 직을 수행하는 목민자는 그 근본인 백성을 위해 존재하고[爲民], 백성을 사랑으로 길러야 하며[愛民],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畏民].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자로서 교사 역시 교육의 과정에서 배우는 자가 그 근본임을 명심하고, 배우는 자를 사랑하고 나아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목생자(牧生者)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가르치는 자는 배우는 자들이 내적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그 잠재력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信] 그들의 후천적 익힘을 충분히 도와야 한다[助]. 목민자에게 백성들의 개전성(改悛性), 즉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듯, 교육의 과정에서 가르치는 자에게 배우는 자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조력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가르치는 자는 배우는 자에 대해 ‘신뢰자’이자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배우는 자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여 개개인의 자질, 처지 등을 고려하여 그에 적절한 교육적 조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목민자는 반드시 먼저 자기를 닦고[修身] 이를 토대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듯[治民], 목생자로서 교사 역시 우선 자기를 간단없이 성찰하고 이를 토대로 교직에 임해야 할 것이다. 결국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자의 역할은 교육의 과정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과 상통하는 것으로, 교육은 바로 목생의 과정이고 가르치는 자는 목생자이다. 특히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 다산의 토로는 오늘날 목생자로서 가르치는 자에게 그 마음가짐과 아울러 실행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다산1호'는 내랭성이 강한 통일형 초다수 벼 품종을 육성하기 위하여 1997년 하계에 Bengal/Yongmoonbyeo F1에 Dasanbyeo를 삼원교잡시켜 계통육종법에 의하여 육성한 품종으로, 2006년 12월에 직무육성신품종선정위원회에서 신품종으로 결정되었는데 그 주요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다산 1호'의 출수기는 보통기 재배에서 8월12일로 다산벼보다 2일 정도 늦은 중생종이며, '다산 1호'의 도열병, 흰잎마름병, 호엽고병 및 오갈병에
본고는 다산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東坡蘇載에 대하여, 褒揚하고 貶下한 내용을 考究한 것이다. 다산은 동파를 ‘千古의 奇才’, ‘大儒’, ‘博士’라 했으며, ‘夫子’와 ‘先生’이라고 존칭했고, 그의 뛰어난 문장과 독보적인 지식은 場火에도 죽지 않아 文采는 영원히 빛난다고 포양했다. 그리고 목민관 시절의 善政한 치척을기렸다. 다산은 한편으로는 동파가 長壽와 短命과, 생과 사를 하나로 본 것을 病痛이라 했고, 反高麗노선을 취한 도량이 좁고 은혜가 적은 자이며, 輝學에 울든 이단이 라고 비판했다. 특히 동파의 ‘潮州脩韓文公廟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上圓丘 合察六議箚子에 대하여 14개항의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폄하한 것은 茶山學의 浩瀚한 세계를 입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산은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소신으로 동파를 포폄했다. 다산의 동파론은 중국 문인에 대한 비평의 세계와, 다산학의 一斑 이해하는데 기여가 있을것이다.